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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62)씨는 얼마 전 갑자기 심장 부근 왼쪽 가슴에 쥐어짜는 듯한 통증 때문에 잠을 깼다. 그의 머리에 떠오른 말은 심근경색. 날이 밝자마자 동네병원으로 가 심장초음파와 심장 조영술을 받았다. 의사는 심장에 이상 소견이 보인다며 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증상은 없어지지 않았고, 결국 큰 병원에 가자 심장내과가 아닌 소화기내과로 가라고 했다. 검사 결과는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직장인 황모(37)씨는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기침으로 고생하고 있다. 처음에 감기려니 하고 넘기다 증상이 없어지지 않아 비염이나 천식일 수도 있겠다 싶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어봐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큰 병원에서 이비인후과부터 호흡기내과까지 이 과 저 과를 돌다 결국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속 쓰린 증상 한 번 없었는데 역류성 식도염이라니 황당해요."
역류성 식도염이란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위액이 식도로 거슬러 올라오는 질환으로 서양사람들에게 흔한 질병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식습관의 서구화와 비만 인구가 늘면서 역류성 식도염을 포함한 위식도 역류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효진 교수는 "건강검진 수검자의 8~12%가 위식도 역류질환이라는 보고가 나와 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식도 역류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은 속쓰림과 위산 역류다. 그래서 명치 끝에서부터 목 끝까지 타는 듯한 느낌이 있거나 목으로 신물이 올라오면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한다.
하지만 위식도 역류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상당 수에서 속쓰림과 같은 전형적인 증상은 없다. 오히려 위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부위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엉뚱한 병으로 오인하기 쉽다. 이 때문에 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키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독특한 증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슴 통증과 만성기침이다. 가슴 통증은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부산대병원 소화기내과 김광하 교수는 "위식도 역류 질환에서 가슴을 쥐어짜거나 타는 듯한 흉통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협심증 증상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헷갈릴 때가 있다. 특히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이 있는 사람이 위 내시경을 받다가 자칫하면 사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심장질환이 아니라고 확인될 때까지는 내시경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증상으로 볼 때 위식도 역류질환인데도 심장 검사부터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박효진 교수는 "실제로 가슴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50%가 위식도 역류질환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개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으로 생각하고 무척 절망한 상태로 병원에 오지만 위산 억제제를 먹게 하면 가슴 통증이 금방 사라진다.
위식도 역류질환이 있을 때 왜 가슴 통증이 생기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위산이 신경을 자극해 심장을 둘러싼 관상동맥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한다.
만성기침과 쉰 목소리도 위식도 역류질환의 주요 증상이다.
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최명규 교수는 "만성기침 환자의 20~30%는 위식도 역류질환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위 식도역류는 천식, 콧물이 목 뒤로 넘어오는 후비루에 이어 만성기침의 세 번째로 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위식도 역류질환이 이비인후과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역류된 위산이 후두나 기도의 기침 수용체를 직접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목에 계속 무언가 낀 듯한 인두 종괴감이 느껴지거나, 위산이 입까지 올라와 충치가 생기는 치아 미란증후군도 위식도 역류질환의 증상일 수 있다.
위식도 역류질환은 위 내시경 검사로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위산 역류가 있어도 내시경 검사는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전체의 50%나 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24시간 역류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장비는 값이 비싸 없는 병원이 많다.
최명규 교수는 "가슴 통증이나 만성기침이 위식도 역류질환의 흔한 증상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특별한 원인 없이 이런 증상들이 오래 지속되면 24시간 역류검사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 소화기내과를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