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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농촌 마을에 귀농·귀촌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 크고 작은 갈등의 양상은 항상 존재했다. 기존의 마을 주민 간의 갈등도 없지 않았겠지만, 유독 전입한 귀농·귀촌인과의 갈등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문도 빨리 퍼진다.
기존의 농사일 꽤나 하는 농민들은 귀농인들이 들어와서 신규로 농사를 짓는다 하면 농산물 가격은 내려가고 땅값은 올라가기만 하니 농지 구입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이건 농촌이 협동체계로 가는게 아니라 경쟁체계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지역마다 농업 관련 보조금, 지원금 등 예산은 한정적인데 이걸 서로 또 나누어 가지니 기존 농민이 보기에 귀농인이 좋게 보일 수가 없다.
한 사람 또는 한 가족 구성원이 귀농·귀촌 후 주민들과 어떤 이야기라도 새삼스러울 것 없이 나눌 정도로 마을의 주민으로 인정을 받는데 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마을의 이장자리를 맡을 정도면 대단히 인정을 받는 것이라 평가한다. 와중에 주민들은 또 갈등을 겪는다. 농사짓는 땅이 적고 집세를 주고 얹혀사는 ‘이방인’이니 언제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갈 것인가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마을의 돈을 관리하는 이장 자리는 ‘외지인’에게 절대로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이가 든 대다수 농민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질겁한다. 그래도 농촌에는 젊은이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죽고 난 뒤 평생을 살던 집과 농사짓던 농지를 어떻게 유지해야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땅값이 많이 올라 비싸게 팔려서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도움이 좀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러니 외지에서 살다 들어온 귀농·귀촌인은 살 집과 농사지을 땅이 필요하니 그들에 의해서 땅값이라도 좀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주민들이 부지기수다.
귀농·귀촌인의 유입으로 유지되는 농촌
최근 우리나라는 귀농보다는 귀촌 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물론 가족 단위의 이동이 두드러지고, 지역 또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니 지자체마다 ‘귀농천국’을 외치고 있다. 당연히 귀농·귀촌 관련 컨설팅, 교육기관, 심지어 귀농·귀촌인 대상 부동산업계도 승승장구다. 이 와중에 관심이 가는 것은 최근 귀농·귀촌인의 나이가 점점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고향 찾기 현상이 아니라, 도시지역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는 불안한 요인과 농촌의 발전과 생활양식의 변화 등으로 인한 유입 요건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현재 귀농·귀촌 선호 지역은 땅값이 오를 데까지 올랐으며, 빈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불과 5년 전보다 귀농·귀촌 가구는 10배 이상 증가해 4만 5천여 가구에 육박하고 있으며, 귀농·귀촌인에 의해서 20년 후의 농촌 인구가 현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농촌 지자체 마다 최근 5년 이내의 귀농·귀촌인 숫자만으로도 한 개 면 단위 인구 숫자를 능가하기 일쑤다. 귀농·귀촌인 자녀가 없으면 농촌의 학교와 유치원이 운영되지 않는 지역도 상당하다.
농촌 마을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환경이 좋은 읍내로 진출하고 출퇴근형 농사를 짓는 경우도 많다.
농촌 마을을 유지하는 중심은 귀농·귀촌인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여전히 힘의 균형은 그들에게 쏠리지 않는다. 늘 있는 갈등이라도 귀농인과의 갈등은 두드러진다. 원래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싫으나 좋으나 어지간해서는 떠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귀농·귀촌인은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마을을 쉬 떠나기도 하고 심지어 보조금으로 받은 빈집수리비, 영농정착금을 나 몰라라 하고 지역을 떠나기도 한다. 쉽게 농촌에 들어갈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고, 농사만으로 성공하는 억대 농부를 꿈꾸게 한다.
유럽연합, 젊은 농업인을 위한 직불제 도입
독일,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 소위 농업선진국도 젊은 농업인 감소와 농촌 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농업노동인구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인구 유입 정책을 유도하며, 정부는 농업에 새롭게 진입할 젊은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지원제도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은 2014년~2020년까지 ‘공동농업정책’에 40세 이하로 새로 농업에 진입하는 젊은 농업을 위한 직불제를 도입해 신규 농업인이 기존의 직불금 체계에 접근하기 어려워 수혜에서 됐던 점을 보완하고 있다.
영국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새로 진입하려는 젊은이를 위한 교육과 경력관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Fresh Start’ 같은 체계화된 교육훈련을 지원하기도 한다. 농업으로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공인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시행하는 2년 이상의 장기 교육과정을 통한 엄격한 농민입문과정과 다름없다. 귀농·귀촌인 희망자가 ‘특별한 조건’을 충족할 때 과감하게 지원하는 정부의 지원 시스템은 우리가 어중간하게 흉내를 내긴 하나 무언가 상당히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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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는 농촌’과 ‘돌아오 는 농촌’의 차이
굳이 비교하자면 유럽 농업정책의 핵심은 ‘떠나지 않는 농촌’이고 우리는 ‘돌아오는 농촌’인데 여기에는 많은 차이가 내포되어 있다.
유럽은 농사를 짓기 위한 자격으로(교육도 교육이지만) 부모를 이어 농사짓는 것. 농지를 넓히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일군 땅을 지키고 이어 가는 것 등 농지를 유지하고 농업의 지속성과 농촌의 경관보전 등의 가치를 우선으로 여긴다. 때문에 정부는 자연스레 농민에게 환경이나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지원을 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워낙 고령농이 많고 농사를 쉬는 농지가 많다 보니 농사를 위한 농지가 아니라 투기용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귀농·귀촌해서 농사를 너무 쉽게 지을 수 있다. 한국 농업의 어려운 현실과 부족한 농가수를 고려하자면 굳이 탓할 수 없긴 하지만,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적으로도 이런 농민입문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에 식량문제 해결, 토종 종자 보존, 경관유지와 환경 보전 등 농업이 지닌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농민의 자격을 주어야 한다.
전체 농업구조와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수익 구조에 초점을 맞춰 너도나도 돈이 된다 하니 블루오션이라 하는 ‘블루베리 농사를 짓겠다’, ‘오미자 농사를 하겠다’ 하는 사람에게 모두 다 보조금을 지원하며 허용해 주는 것이 현재 너무나 큰 문제이다. 농민들의 동반추락을 방관하는 꼴이다. 이러니 기존 지역민들은 신규로 진입하는 귀농·귀촌인을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소득을 좇기보다 농업·농촌의 가치에 집중하도록
귀농인에게 농사를 선택하게 하는 기준이 소득이나 선호하는 특용 작물을 무조건 하게 해서 농업 생산의 전체적인 불균형을 초래하게 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지키고 식량을 생산하고 토종 종자를 지키는 등 농업과 농촌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쪽으로 홍보와 교육을 강화해서 다수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도록 정책 방향이 수립되어야 한다. 소득적 측면의 어려운 점을 조건불리지역, 친환경, 농촌경관유지 등 다양한 직불금을 확대 강화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기존의 농민들과 상생할 수 있다.
도시의 수많은 인구가 왜 귀농을 했는지 주목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억대 농부, 스타 농부 이야기를 하면서 농사로 성공하는 귀농인의 모습을 일반화하고 있다. 이게 과연 맞는 방향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건강과 깨끗한 환경 등을 원해서 귀농·귀촌을 했다면, 농촌다운 모습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농지와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더 강화해야 할 것들도 많다.
경험과 정보가 부족한 귀농·귀촌 희망자에게 그들이 판단하고 실행하는 동안 선택의 여지를 잠시 줄 뿐이지, 그들에게 강한 의무감을 부여하지 않는다. 농민의 조건을 갖추는 일은 너무나 수월하다. 농민으로 ‘특별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돌아오는 파격적인 혜택도 그다지 없다. 농촌에 사는 주민으로서 생산자의 역할과 동시에 농촌의 경관과 문화, 공동체를 지키고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에 그 어떤 의미부여도 희박하다.
귀농·귀촌인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마을 입구에 붙기도 하고, 마을에 정착했다가 주민과의 불화로인해 상호 법적 다툼까지 벌어지는 일들이 허다하게 생기는 지금의 현실은 결국 소통의 부재,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문제다. 사람 간의 일이니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느냐만, 농촌에서 농업을 영위하며 농민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귀농·귀촌정책의 영역이기보다는 한국사회 전체 농업·농촌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데 고민해 볼 지점이다. 법, 제도적 장치로 해결할 일이 부지기수란 것이다.
농업이 없는 농촌은 없다
사전적 의미로 ‘농촌’이라 함은 ‘도시와 구별되는 사회 지리적 공간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통계나 건물의 건축양식, 사회 구성방식까지 포괄하여 농촌을 정의하라 하면 쉽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OECD의 개념으로는 인구의 50% 이상이 농촌 지역에 살고 있어야 농촌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거창군만 하더라도 인구의 60% 이상이 읍내에 살고 있어 면 단위의 공동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나마 면 단위를 채우는 근거는 최근 10년 이내 거창에 들어온 3천여 명 이상의 귀농인이다. 물론 대다수 귀농인은 읍내에 머무르고 있다. 전체 산업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과 20%를 넘어서는 예산 규모를 보면 농업군임이 분명하나 농촌으로서의 가치와 경관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과 농민들의 자발적 노력의 정도에서 느껴지는 거창군은 농업군이 아니라는 생각이 간혹 들기도 한다. 그리고 행정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근무지가 면사무소나 농업기술센터가 아니란 것도 하나의 근거라면 근거가 아니겠는가. 이건 다분히 자의적 해석이지만….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외국의 노력을 보자니 첫째, 일정한 교육을 수료하고 ‘특별한 자격’을 취득한 (청년)창업농민에게 월급을 직불금 형식으로 안정적으로 주는 것. 둘째, 안정적 농외소득을 보장해 주기 위해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는 것. 셋째, 농업직 공무원을 고등공무원으로 대우해 주는 것 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지속해서 ‘농촌’에 머무르더라도 도시의 노동자, 시민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모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농촌 지역의 면 단위 농민가족들이 -그들이 정주민이든 귀농인이든, 경제적 문제든 마을 내의 불화 때문이든, 농촌에서의 재취업이든 자녀들의 교육 문제이든- 생산현장인 면 단위를 떠나 읍내로 찾아드는 농촌의 역도시화, 재도시화 같은 현상이 지속되고 심각해진다면 귀농·귀촌 정책을 포함한 농촌정책의 지속가능성 여부는 분명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필자 김훈규: (사)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거창 하성단노을생활문화센터 사무국장. 주요 관심분야는 지역농정과 농촌의 문화를 매개로 하는 마을공동체 복원 등이며, 최근에는 친환경 먹거리 문제와 바람직한 귀농귀촌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