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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유복합시설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플라자 아카사카 난데모'의 전경 | 일본 동경 시내 미나토구에 위치한 시설 ‘플라자 아카사카 난데모’. 이 곳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저출산으로 인해 급기야 준공된 지 10년이 채 안된 소학교가 폐교된 지역이다. 미나토구와 정부는 폐교된 기존 학교 건물을 공공성 높은 복합시설로 전환시키자는 데에 의견을 한데 모으고 마침내 지난 2003년 고령자시설과 아동후생시설을 합친 이른바 ‘노유복합시설’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특별양호 노인홈에 입주하거나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고, 손자들은 아동관의 시설을 이용하는 복합시설인 것이다.
아동시설과 노인시설을 복합적으로 설치하는 이 같은 ‘노유복합시설’이 세대간의 유대를 높이고 나아가 노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주거복지의 형태로 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호간 이질감 해소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지난달 17일 도곡동 현대힐스테이트 갤러리에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 ‘세대간 소통을 위한 노유복합시설의 건축환경 연구’는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노유복합시설의 현황과 구조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
이날 소개된 ‘플라자 아카사카 난데모’의 경우, 특별양호 노인홈에는 개호도 레벨 4~5의 비교적 중증 노인100여명과 데이서비스 이용노인 약 40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아동관은 0~18세 미만의 영유아와 청소년들이 하루 180명 정도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매월 2회 가량 1층 주간보호센터, 2층과 3층의 식당, 그리고 아동시설의 체육관 등에서 ‘콩주머니 넣기 놀이’, ‘노래’, ‘종이비행기 날리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교류하고 있는데 아동관 이용 아이들의 고령자시설 자원봉사 증가 등 상승 효과가 상당하다.
이 곳을 직접 현장 방문하고 돌아온 임인옥 한국여성건축가협회 보육분과위원장은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중증 고령자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며 “같은 대지와 건물 내에 있으므로 인해 자연스런 왕래는 물론, 지역의 경찰, 학교당국, 주민 간에도 의견 교환을 통해 시설과의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즉 고령자시설과 아동시설이 한 건물 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동의 자원봉사 기회가 많아짐은 물론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 제고 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설계 과정부터 개입
이날 또 하나 소개된 도쿄 인근의 ‘다케노우치 보육원+히가시후치노베 데이서비스센터’는 노인홈과 보육시설을 함께 설치해 주기를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생겨난 시설 유형으로 흥미를 끌었다.
설계 과정에서부터 보육시설과 노인시설을 모두 설계한 경험이 있는 건축가를 찾아 의뢰했다는 이 시설은 65세 이상의 노인 25명과 취학 전 아동 12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특히 이 보육시설은 대기자가 400~500명에 이를 정도라고 하니 ‘노인시설’에 대한 편견 자체가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노인들과 아동들의 교류는 요일별로 그룹을 설정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는데, 교류가 진행되는 동안은 상대방의 ‘별명’을 부르게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아동들의 노인시설 방문 의욕을 고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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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에서는 노유복합시설의 장점을 살려 노인과 어린이들이 함께 하는 노유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역 뿌리노인회 소속 어르신 풍물팀과 함께 신명난 춤을 추고 있는 어린이들. | 임인옥 위원장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어린이는 소학교로 진학한 후 교과 과정 중의 지역탐방 프로그램에서 노유복합시설의 이점을,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서서 알려주기도 하는 등 교육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시설이 있긴 하다. 대전시 대덕테크노밸리 단지 내 위치한 ‘뿌리와 새싹 커뮤니티 센터’는 직장탁아시설인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과 노인여가시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지난 2000년 11월 개관해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이 곳은 본격적인 ‘노유복합시설’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세배 드리기’, ‘화전 만들기’, ‘연 만들기’ 등 세대간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해 노인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과 어린이집 아동간의 상호작용을 돈독히 하고 있다.
노인과 아동 모두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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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관련 시설과 아동관련 시설이 동일 건물에 지어지거나 병설된 시설을 뜻하는 ‘노유복합시설’이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새로운 시설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주최로 지난 6월 17일 도곡동 현대 힐테이트 갤러리에서 개최된 ‘노유복합시설’ 국제심포지엄 모습. | 사실 보육시설 내 노인시설 설치는 일본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된 정책이다. 일본은 지난 1993년경부터 노인복지의 방향을 시설수용의 구조로부터 재택 지원이나 지역 복지활동으로 전환키로 하고, 각지에 소재하는 탁아소에 복합시설로의 조건정비를 실시한 것이다.
마츠오카 유타카 후치노베보육원 원장은 “보육시설과 노인 데이서비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첫째 복지를 기반으로 하는 것, 둘째 정든 지역에 소재하는 것, 셋째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복지서비스에 있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세대간 교류의 일상화를 목표로 과감하게 보육시설에 데이서비스를 설치ㆍ복합화했다”고 말했다.
또 유타카 원장은 “특히 핵가족으로 자라는 아이들의 보육과제나 개호도가 무겁고 심신 기능이 퇴보해가는 노인과의 교류를 이미지해볼 때, 좀 더 자연스러운 장면에서 일상적인 교류의 필요를 통절하게 느꼈다”며 “복합화는 교류 장면의 평가를 보육소 측에 의한 일방적인 시점에 머물지 않고, 노인이나 유아의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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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노인회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토끼장을 만들고 있다. 어르신들의 노력 덕에 근사한 토끼장이 완성됐다 | 박혜선 인한공업전문대학 건축과 부교수는 “노인관련 시설과 유아관련 시설이 함께 지어지거나 병설된 노유복합시설이, 설치ㆍ운영비의 절감이란 경제적인 이유 외에 오늘날 사라져가는 세대간 교류의 장이 되어 새로운 지역사회의 중심시설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세대간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건축적 장치를 도입하고 교류를 염두에 둔 배치와 공간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설명한 ‘플라자 아카사카 난데모’와 ‘다케노우치 보육원+히가시후치노베 데이서비스센터’의 경우도 애시당초 공유공간을 염두한 설계로 세대간 교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즉 단순히 한 건물 안에 두 세대가 공존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노인시설의 주 생활공간이 동선 범위 내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이도록 실 배치를 하는 등의 구체적인 설계와 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디자인 고민해야
한편 노유공동생활의 성공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디자인이 고민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노유복합시설은 고령화와 저출산시대에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구상하는 참신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혈연관계에 있지 않은 노인과 아동이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만큼 거기에 관련된 제반 조건과 변수들을 다각도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애써 만든 시설을 충분하게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노유시설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생활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며 “△노인들의 문화 역량 제고 △노유를 잇는 콘텐츠의 확보 △노인들의 육아 지식 리모델링 △낯선 언어세계에의 적응 △아이 부모들의 협조 유도 △운영 인력의 양성 등을 미리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유복합시설은 여전히 생경하고 낯설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 사회 부동산 문화를 지배해 온 지역사회의 시설 기피 현상, 곧 ‘님비현상’을 떠올려볼 때,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적용 가능하겠냐는 회의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세대를 가로지르는 공동의 생활 문화가 새롭게 창조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지평은 그만큼 넒어지고 풍부해 지는 것이 아닐까. <12호 ·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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