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늘소를 위하여 詩 / 임 성 용 해가 떨어질 때 모가지 속으로 한기가 느껴질 때 늙은 인부들과 일을 마치고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갔다 사무실 뒤 편을 어슬렁거리다 개울을 건너 밤나무숲이 있는 산 중턱까지 올라가 손두부집에서 보리밥을 먹었다 보리밥을 맛있게 먹고 내려오다가 다시 개울을 건너 돌다리 쯤에서 늙은 인부들과 헤어졌는데 그곳 길가에서 말라죽은 곤충 한마리를 주웠다 두 개의 뿔이 달린 장수하늘소였다 그 걸,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 위에 테이프로 붙여놓았는데 하늘소를 볼 때마다 나는 웬지모를 힘이 생겼다 하늘소가 근사한 뿔을 흔들며 기어다녔고 이빨을 벌리며 금방이라도 날아갈듯 생기가 넘쳤다 심약한 여직원은 깜짝 놀라 달아나기도 했지만 적잖이 친해져서 청소를 할 땐 하늘소를 조심껏 돌봐주기도 했다 오늘도 하늘소가 잘 있나 없나 얼핏 살펴봤더니 세상에, 뿔 한 쪽이 떨어져 나갔다 힘없이 머리를 수그리고 앞 다리도 잘려있었다 잃어버린 뿔과 다리를 책상에서 찾다가 혹시 하늘소의 모습이 처음부터 이런 몰골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나는 기세당당한 하늘소를 상상하고 힘을 얻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진짜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늙은 인부들이 일당도 못 받고 돌아간 저녁 나는 멍하니 혼자 남아있다, 배가 고파서 다시 개울을 건너갔다 밤나무숲을 지나자 머리에 돋아난 한 쪽 뿔이 떨어졌고 갑충처럼 다리가 또 꺾이는 걸 이빨 악물고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