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정식 명칭은 위와 같이'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의 황제 나폴레옹 1세와 황후 조제핀의 대관식'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있다.
가로 10m나 되는 그림을 한참이나 압축한 위의 사진 속에서도 완벽하리 만큼의 짜임새를 볼 수 있다. 좌우는 어두운 색으로 눌러주고 중심의 나폴레옹과 조세핀에게 밝은 빛을 덜어뜨린 것이나 등장인물들을 화면 중앙 아래 줄줄이 배치하고 윗부분을 시원한 공간으로 비움으로 대작을 보는 이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나 모두가 다비드의 타고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폴레옹을 만난후 다비드는 보나파르티스트가 되어 황제를 찬미하는 대작을 몇 점 남겼다. 그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다비드의 회화관이 멋있게 반영된 것이라 한다. 여기서 그는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을 나타냄으로써 역사의 극적인 순간을 제현시키고 있다. 대관식은 1804년 12월 4일에 있었는데 다비드는 그 해에 이 작품의 제작을 의뢰받아 다음해 12월에야 제작을 시작하였다.
이 그림을 위해 많은 밑그림이 필요했고 또 그림의 해석도 여러 가지 나왔었지만 마침내 이 장면을 가장 바람직하고 예식의 절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나폴레옹이 자기 스스로 대관한후에 황후가 되는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광경으로 교황 비오 7세가 소심하게 그 대관을 촉복하고 있는 모습니다. 이러한 화면 구상은 나폴레옹의 권력이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지 타인으로부터 수여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기질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초상화의 전시라고 할 만큼 나폴레옹의 모든 인물들이 이 그림에 나타나 있으며, 또 제각기 그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의 정면에 별실로 만들어진 장소에는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모여 있지만 사실 그녀는 이 예식에 불참했다. 나폴레옹의 의사에 따라 다비드는 이 그림에 그녀를 참석 시킨것이다.
다비드의 이 작품이 유명한 이유는 그의 특이한 구상력이 역사적 사실을 엄수하면서 그내용을 더욱 강조했을 뿐 아니라 여기 참석했던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적 반응을 이 예식을 통해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1810년 관전에 전시되었으며 작가는 나폴레옹의 10년상을 받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