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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잃어버린 얼굴
정 원 구
그는 아무래도 그녀의 사진 속 얼굴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 사진으로라도 그녀의 얼굴 특징을 잘 봐 둘 걸 했다. 어째서 휴대폰 전화번호 쪽지와 사진을 잊어버리고 나온 건지, 호주머니에 오른쪽 손을 찔러 넣고 연구학교 관계 서류와 월간 문학잡지가 든 봉투만 왼쪽 손으로 꼭 붙잡은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의 꼴이 마냥 한심스럽고 무지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그는 바깥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면서 해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항상 마치 습관처럼 눈을 찌푸리면서, 가끔씩은 눈알이 붉어지면서,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리고 유달스럽게도 눈병이 잦아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 결과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선생님이 쓰는 칠판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면서 참으로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그는 지독한 근시안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생활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큰 장애가 되었다는 사연을 다시 한 번 약점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군청 소재지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시력검사도 없이 그는 조그마한 변두리 안경점에서 최초로 두꺼운 근시안경을 적당히 맞추어 쓰게 되었다. 당시 안경점 주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 건네는 말인즉슨 ‘그걸 눈이라고 달고 다니나’ 하더니, 두꺼운 안경알을 눈앞에 갖다 대고는 ‘잘 보이나?’ 한마디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안경을 쓰고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그의 경우 주변이 환해지면서, 약간은 어질어질하면서, 그러나 칠판 글씨가 참 잘 보이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또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간판 글자들이 확 눈앞에 다가서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럽고 우선 머리가 띵 해지면서도 확연히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최초로 안경을 쓴 이후 상당한 세월을 보낸 다음 시내 큰 안경점에서 다시 안경을 바꿀 때 시력검사의 결과는 거의 약시에 해당되는 지독한 근시안 판정을 받았다. 그러고부터 그는 눈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나름대로의 시력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허지만 그의 시력은 두꺼운 안경을 쓰고도 상대방 얼굴을 분명히 기억하거나 특징을 가려낼 수 있는 재주가 없는 것이 큰 약점이었다. 그 약점은 최근에 와서는 생활 주변 상황에 대한 분별력도 크게 위축되고 뭔가에 대한 자신감마저 상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사연으로 만나거나 만나야 할 사람의 얼굴이 단번에 형상으로 자리매김 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자괴감을 실감하게 했던 것이다.
이틀 전, 그는 중앙시장에서 오랫동안 혼수 감 점포를 경영한다는 이모님을 만나고 있었다. 덕성스럽게 생긴 아가씨 사진과 핸드폰 번호가 적힌 쪽지를 내밀면서 그를 민망스럽게 했다. 꼭 마음에 들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만약 이번에도 놓치면 넌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리게 될 거야. 소개팅 쪽지대로라면 지금 쯤 그를 처음 만나게 될 아가씨는 A호텔 커피숍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요즘 아가씨들이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이고.
버스에서 내린 그는 행여나 저만치 모롱이를 돌면 지난 날 기억의 연상대로 A호텔이 있을 것도 같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둘러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변의 거리와 건물들이 불과 팔구년 전의 모습과는 확 달라져 있었다. 오가는 숱한 사람들 중에 그가 찾고 있는 A호텔 위치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은, 아는 얼굴도 없었다. 별 수 없이 이 건물 저 건물 모롱이를 돌아 안을 기웃거리며 요행을 기다렸다. 점점 어딘지 모를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초조해지고 있었다. 족히 이십 여 분을 아련한 A호텔 건물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 건널목 주변 거리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망연히 서 있었다. 하지만 상가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사방의 거리가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만고만한 옷가게와 식당과 커피숍이 줄지어 있었다. 길을 잘 못 들었었다는 사실을 안 건 이미 마구잡이로 꽤 오래 걸은 뒤였다. 부족한 시력의 분별력이 새삼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좀 멍청해지는 느낌과 함께 싫증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흔들며 따가운 햇살을 손사래로 가렸다. 멍청한 기분으로 방향도 모른 채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가 서 있는 곳의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가까운 곳에 ‘지센‘이라는 이름의 할인매장 옷가게가 보였다. 쇼윈도에 샘플 옷가지가 복잡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서 별 수 없이 최대 50% 이상 활인 띠를 달고 있는, 장식대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가게였다.
그는 순간 지금 그가 만나게 될 여자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맨 왼쪽 가장자리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마네킹의 넥타이를 맨 와이셔스에 눈길을 주었다. 넥타이의 연분홍 빛깔이 선명하고 은근히 수줍은 듯한, 그래서 와이셔스의 엷은 보랏빛에 우아한 인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다가섰다. 예전에 학교 동료 직원 누구든가의 상큼하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언젠가부터 그도 꼭 구매해서 입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스타일이었다. 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연구·시범학교 보고회에 입고 간다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차!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가까운 지난날 얼마 전 쯤 지하철 복잡한 캐쥬얼 옷가게에서 저런 상큼한 넥타이와 와이셔스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저 옷을 입고 금년도 연구·시범학교 보고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넥타이와 잘 어울릴 밤색 재킷에 대해서도 생각했다는 사실. 그는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것들은 모두 기억하면서 그가 만나게 될 여자의 얼굴 모습은 하나도 기억할 수 없는 건지. 어쩌면 턱없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센’ 할인점 옷가게의 바로 이어지는 왼쪽 맞은편에는 ‘탑마트’가 있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도 같은 이름의 마트가 있었다. 그는 그 마트에 자주 들리곤 했는데 그 마트의 여주인이 무표정하면서도 사람을 은근히 끄는 포근한 인상이 고향집 누님을 생각하게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요즘 별로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선반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현대라는 유행 감각의 흐름이 그곳에만 멈춰버린 듯한 느낌. 언젠가는 가게주인에게 그 물건들을 어디서 들여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은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은 그러나 옛날 냄새를 풍기는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이 어딘가에 있겠거니 했다. 아니면 망해버린 회사의 재고품 정리장에서 아주 헐값으로 실어 온 물건일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는 자신 없는 발걸음으로 좀은 낯이 선 ‘탑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곳에도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물건이나 과자나 음료수를 팔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보았다. 마트 안은 보통의 슈퍼마켙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무얼 찾습니까? 마트 안을 서성거리는 나에게 살이 찌고 가운데머리가 엉성하게 숱이 적은 가게주인이 물었다. 나는 가게주인 뒤로 투명 미닫이문이 달린 냉장고 안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요란한 무늬의 비닐봉지에 싸인 얼음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옥수수수염이 그려진 플라스틱 물병을 끄집어내고는, 얼마에요? 하고 물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는 늘 더위를 많이 타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어서 찬 냉장고 물에 설탕을 듬뿍 타서 마시거나 얼음과자를 달고 사는 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특히 차가운 콜라를 많이 마셨다. 그래서 잠을 설쳤고 아토피 피부가 버석거리며 기운이 없었다. 설탕이 녹아 있는 음료수 때문에 건성 피부 간지러움에 시달렸고, 그 간지러움으로 오는 불면의 피로를 떨쳐버리려고 다시 쥬스 종류의 음료수를 마시는 나날에 시달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런 나쁜 악순환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단지 좀은 강력한 자극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옥수수차 물병은 차가운 느낌과 함께 물방울이 맺혀 있어서 좀은 끈적한 느낌이었다. 물병을 손에 쥐며 나는 요즘 냉쥬스 유혹을 물리친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병뚜껑을 비틀었다. 그러면서 뭔가 잃어버린 느낌들이 선명하게 정리되는 바가 있어 아! 하고 외쳤다. 그가 마트 안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 다 이 옥수수 찻물 때문이었구나 했다. 그 순간, 그는 지난날 즐겨 마셔댔던 설탕이 녹아 있는 음료수들과 땀 흘리는 불쾌와의 악순환이 그의 인생에 초래할 나쁜 영향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깨달아 되새김질을 해보고 있었다. 옥수수 찻물 병을 만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필이면 지금 당장 찾아가야 할 아가씨의 얼굴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순간에 말이다. 가운데 머리가 벗겨진 가게주인이 물을 사고도 떠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아저씨, 이 주변에 A호텔 커피숍이 어디에 있지요? 어디 있긴. 여기서 나가면 바로 앞 사거리 모롱이에 있지. 어느 쪽 앞 사거리요? 가게주인은 그가 금새 막 돌아온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첫 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틀어 약 삼십 미터 쯤에 공터 주차장이 있고 바로 호텔 커피숍이 있다고 했다.
그는 탑마트를 나와 가게주인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럴 수가! 옛날 기억이 쉽게 살아나는 듯한, 세련된 A호텔 커피숍 간판이 눈에 다가서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친절한 미소의 아가씨가 그를 보면서 다가왔다. 물 컵을 탁자에 놓으면서, 오세요, 그러고는 그를 은근히 쳐다보고 서 있었다. 무얼 주문하시겠느냐는 눈치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차는 좀 있다가 주문할 게요? 그는 살짝 수줍어하면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슴하게 먼 듯한, 그가 찾는 그럴 듯한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다. 손님도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창가에 그나마 세 커플이 한 테이블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드나드는 손님도 별로 없었다. 안쪽 자리는 텅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세 커플 중 가까운 창가에 앉은 두 사람의 젊은 남녀를 잠시 눈여겨보고 있었다. 여전히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걸로 보아 만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존댓말의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대화가 끊길 때에는 상대방의 얼굴을 비스듬히 곁눈질 하면서 뭔가 서로에 관한 정보를 찾느라 애쓰는 것이 옆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도 처음 소개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면 커피숍이라는 장소는 모든 소개팅의 가장 편리하고 손쉬운 접점이 되기에 알맞은 장소일 것 같았다. 카운터 뒷벽 중앙에 걸려 있는 시계는 약속 된 시간을 벌써 삼십분이나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삼십 분’이라는 시간에 무책임한 염치를 되새기면서, 연이어서 오늘 이 커피숍에서 만나게 될 ‘여섯 번째 소개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여섯 번째의 소개팅이라면 수줍고 소극적인 그의 성격으로 보아 어지간히 싫증도 나고 뭔가 시시하기도 해지는 횟수였다. 어쩌면 그녀를 만나지 못한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소개팅에 대한 무감각이 충분히 드러날 수도 있는 횟수이기도 했다. 어느덧 자포자기의 방기적인 피로감이 살며시 다가서고 있었다.
포목점 이모님은 주변 사람들과 발이 넓었다. 대개 집안 경제력이 탄탄하고 사회적 지위가 꽤 있는 양갓집 규수들의 정보를 모아 중매 소개팅을 많이 준비한다고 했다. 중매는 잘 하면 술이 석 잔이고 잘 못하면 뺨이 세 대라고 하는데 이모의 경우는 대개 술이 석 잔의 경우를 맛보는 듯 했다. 약간 복잡하지만 중매 소개팅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모 친구의 딸, 이모 친구의 선후배의 딸, 이모 친구의 학교 동창들의 딸. 뿐만 아니라 이모 고향 친구의, 친구의 아들, 이모부 직장 동료의 아들이거나 딸들이었다. 이번에 소개받은 아가씨도 대강 그럴 것이라는 짐작이 맞을 것이었다. 어쨌든 이모님이 그에게 준 정보에 의하면, 그녀는 얼굴이 덕성스럽고 성격이 아주 부드러워서 가탈스러운 그의 엄마의 비위에 딱 알맞은 규수라고 여러 번 반복을 했다. 허지만 그의 경우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좀은 허탈했다. 순전히 그의 실수이긴 하지만 그녀와의 소개팅이 이루어졌다면 이번이 사실은 여섯 번째 소개팅이 되는 셈이었다.
그는 아가씨와의 만남을 거의 소개팅에 의존했다. 주변에 여자를 소개해줄 인맥은 다행히 차고 넘쳤다. 처음 만남의 경우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효과적인 대화법에 대하여도 충고해 주는 주변인들도 많은 편이었다. 덕분에 소개팅에 대해 나름대로 별로 낯설지 않아도 되는 일가견이 있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아가씨 쪽에서 노골적으로 싫다는 확실한 얼굴 표정이나, 시선의 흐트러짐이나, 대화의 분위기에서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를 제하고는 보통 두세 번까지는 상대를 만났다. 소개팅을 준비해준 분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의 만남으로 상대를 다 판단하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인간적 예의는 충실히 지키고 싶은 셈이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두세 번의 만남 뒤 연락이 끊어지면 바로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길에서 마주쳐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니 소개팅에서 만난 아가씨를 연이어 두세 번째 만남까지 이어가는 건 우선은 서로의 성격이나 취미가 맞아 떨어지는 특별한 경우였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좀은 서툴지만 그의 소박하면서도 부드러운 화술에 아가씨의 감정이입이 상당한 수준에서 동감을 보여주는 경우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아가씨와 만남의 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배려가 있어 보이는 매력적인 인성과 교양 있는 멋과 다정다감의 품위를 형성하기에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다섯 번째의 소개팅이 이루어지게 되는 동안에는 만남을 마련해 준 사람의 간곡한 부탁대로 시간 약속시간을 잘 지켰고, 늘 정장을 입고 나갔었다. 처음 만나는 아가씨들 앞에서도 그는 점점 수줍어서 얼굴 붉히는 농도도 엷어져 가고 있었다. 만남의 첫 인사말도 스스럼없이 정중하게 잘 나왔다. 이어지는 대화의 주된 소재는 그의 경우 요즘 학교에서 자주 일어나는 문제 학생들의 엉뚱한 관심 끌기 행동들의 유형과 부모님들의 지나친 자녀에 대한 기대치와의 문제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경우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이고 있었다. 대강의 경우 세상의 관심사에 대하여 무관심이 내비치는 화제들을 이야기하는 유형과 그냥 선천적인 수줍음으로 내숭을 유지하는 다소곳한 유형으로 나눠지고 있는 편이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아가씨와의 두 번째 만남까지 가는 확률은 그의 경험상으로 삼십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사람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성격에 무슨 커다란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집안의 친척 어른들이 나이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그의 경우를 걱정할 때마다 주눅이 들고 못나 보이는 스스로의 자격지심을 일깨울 때마다 그냥 바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홀로 그를 뒷바라지하기에 평생을 보내신 어머니의 얼굴에 내려진 그늘을 느낄 때마다 그는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자괴감에 관하여 냉정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우선 자신의 꼬락서니에 풀이 죽고 있었다. 짱구머리에 두꺼운 안경이 가리고 있는 노르끼한 얼굴빛 하며, 중키에 하체가 약간 허약해 보이는 자신의 빈약한 체형에 자신감이 없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그의 성격은 소개팅에서 만난 아가씨들 앞에서 처음부터 수줍음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다만 학교 선생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은 짝을 구할 수 있는 양호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들 해서 행여나 하며 기대되는 인연의 끈을 자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서 크게 알아주지는 않더라도 교육 현장 연구 분야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연구교사라는 점은 그의 큰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들 했다.
가끔, 소개팅을 한 사람의 소식을 한참 세월이 지난 뒤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될 때가 있었다. 옷매무새가 깔끔하고 윤곽이 세련되어 보이던, 첫눈에 그에게 좀 과분한 느낌의 미인형 은행원 아가씨는 그가 잘 알고 있는 교장선생님의 며누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좀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선배의 주선으로 소개팅한 유치원 보육교사 아가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마비로 불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한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미장원 아가씨, 간호사, 그리고 소개팅이라기보다 그저 부담 없이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 했던 동료 여교사들이 손가락 꼽을 정도는 있었다. 대강의 경우 만남의 사연이거나 사건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가끔씩 우연한 기회에 회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제 그와는 다시 만날 일이 없는 기억 속의 아가씨들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들의 얼굴 윤곽이나 특징들이 전혀 기억으로 더듬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한심할 뿐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난다 해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한결같이 잃어버린 얼굴들이 되고 만 것이다.
불현듯 중앙시장 포목점에 앉아 있을 수다스런 이모의 화가 잔득 나 있을 얼굴을 떠올렸다. 약속 시간은 벌써 삼십여 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만나야 할 아가씨가 좀 느긋이 못 기다리고 가버렸다고 생각하자 섭섭하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구석진 자리에 앉아 삼십여 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삼십여 분은 만나야 할 약속 시간으로 짧은 시간이기도, 아주 긴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테이블 위에 음료수거나 커피 두 잔 쯤을 시켜놓고 한 두 시간은 예사로 보내는 연인들에게는 찰나와 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반면에 그의 경우라면 혼자서 음료수 한 잔을 시키고 삼십 여 분이나 기다리게 된다면 정말 화가 날 시간이기에 충분했다. 아마 그녀의 경우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보리오차만 홀짝 마시고 바쁜 일이 돌발한 척 바쁘게 그냥 찻집을 나가며 이렇게 속셈으로 외쳤을 것이었다. 몰상식하게 약속 시간을 삼십 분이나 어기다니? 헬스클럽이거나 요가 마음 수련원에 가서 삼십 분 동안 뛰었다면 하루치의 운동량이라고! 만나기로 약속된 그녀에게 그를 기다리는 삼십 분은 어느 쪽이었을까? 그녀의 생각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그녀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만큼 많은 것을 잘 알지도, 특별한 의무감을 느끼지도 못한 경우이기에 말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뭔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끄집어냈다. 포목점 이모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원이 꺼져 있는 핸드폰을 보고 또 한 번 더 황당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무슨 갑작스런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커피숍을 나섰다. 거리는 여전히 따가운 햇살이었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오가면서 무표정으로 무관심해 보였다. 잃어버린 아가씨의 얼굴을 상상하며 1001번 직행 버스에 뛰어 올라 탔다. 예의 그 자괴감이 되살아나면서 부끄러운 자신을 황당한 수줍음의 늪 속으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끝)
*정원구: 호 동림. 진주사범, 고등학교 교사 자격검정고시 합격, 한국 방송통신대학 영문학과,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70-’80년대 부산 <남부문학>동인, 시조문학 <볍씨> 동인, 소설 시조 발표. 겨레시조백일장 입상, <교육신문>, 공무원 문예지 <옥로문학>, <푸른문예> 신인상 소설 당선, 소설집 <마음의 소리 찾기>등, <남강문학> 편집 주간(전). 남강문학회, 금정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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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림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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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