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차.141016.목. 고흥군 두원면 용반리 집앞들-도덕면 면사무소
간 밤엔 추위에 시달렸다. 온다던
비는 안 온다. 이른 새벽부터 나락을 말리던 농부와 대화를 나눈다. ‘어(디)
서 잤소. 추웠을 텐데. 나락을 세 번 말리는데, 손이 많이 간다. 어(디)서 왔소. 워메. 쌀이라면 쪼메 줄거인디’
그리고
조금 걷다 만난 예회마을 밭에서 일을 하던 73세 할머니. 농약을
안 쳤더니 벌레가 먹어 농약을 쳤더
니 배춧잎이 하얗게 변했다고 걱정하면서 ‘어서 왔소. 이 곳이 공기도 좋고 지하수도 나오요. 빈 집도 많고,
노는 땅도 많응께 혼자 와서 사소. 마누라 같이 오면 잔소리 했쌍께. 가끔 처자식 보러 가면 되지 않소. 여름
엔 바빠도 겨울엔 한가해요. 젊은 사람이 없고 늙은이 들 뿐이라오. 시간 내서 말을 걸어주어
대단한 영광이
요!’ 외지인이 와서 45만원에도 안 사갔다는
유자를 자식들이 150만원에 팔아 주었고 콩 40Kg에 7만원 밖에
받지를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해가며 훌륭한 바닷길을 자세히 알려 주신다. 오전에 온다던 비는 소식이 없고
더워진다. 하늘엔 옅은 구름만 조금
있을 뿐이다. 젊은 아주머니를 만나 물을 얻고자 했더니 차를 타란다.
걸
어야 한다고 하고 나는 지름길로 걷고 아주머니는 자기 차를 타고 아주머니 집에 닿는다. 생수 2리터짜리를
주면서 단감도 2개를 주신다. 풍류로를 일직선으로 걸으며 바다 건너 득량면의 오봉산이 점점 가까이 온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부드러운 갈바람이 내 몸에 꼭 맞게 열심히 불어 온다. 5시간만에 나타난 호젓한 바닷
가에서
라면을 끓여먹고자 하였으나 유기견 같은 귀엽고 작은 강아지 두 마리가 나타나 내가 좋다고 엉기는
바람에 포기하고 그냥 가자 거리까지 따라온다. 아무리 쫓아도 막무가내로 따라 오더니 어느 순간 사라진다.
추수하던
농부 넷이서 길가에 앉아 새참 중이다. 한 잔하고 가란다. 바로
자리잡고 앉자마자 소주를 큰 컵에
반이나 따라준다. 한 번에 다 마셨더니 또 따라주고 또 따라주며 ‘먹어야 힘이 나서 걷제’ 안주로 양태에 모시
떡 그리고 단감에 캔커피까지
얻어 먹는다. 나와 동년배인 그의 모습이 싱싱하게 나보다 10년은
젊어 보인
다. 아주머니는 바쁜 듯이 남은 떡을 정리한다. 하나만
더 달라고 한다. 그리고 동년배의 농부는 시간 약속이
라도 한 듯 바로 제자리로 가서 콤바인이 진입을
잘할 수 있도록 논 한 귀퉁이에서 벼 베기를 한다. 모두가
바쁘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 홀로 세상 구경을
다니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라면 먹기를 포기하고 계속 걷기로
한다.
바닷소리를 들으며 술 기운에 절로 흥이 난다. 이름도 멋 있는 풍류해변에 홀로 앉아 포효하는
바다와
대화를 나눈다. 막걸리가 필요하지만 없다. 바다 건너
득량면의 산들이 잘 걷고 있느냐며 묻는다. ‘난 잘 있
다. 너도
잘 있냐?’ 바람 쎈 고흥방조제를 넘어 용도해변가에 앉아 성난듯한 바다를 마주 보고 앉는다. 부서지
는 잔 파도알갱이가 내 얼굴을 감싼다. 난 바다를 사랑한다. 내 어머니를 사랑하듯 내 아내를 사랑하듯. 힘겹
게 고갯길을 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지나가며 ‘어서 왔능가. 혼자
왔능가. 부인하고 같이 다녀야 정이 더 깊어
지제’ ‘네, 건강하세요’ 길에서 마주친 마을 주민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대부분 ‘누구요. 처음 보는
거 같은디’ 하며 궁금해 한다. 당동농협에 들러 먹거리를 사 들고 지친 몸으로 흐느적거린다. 오늘의
숙소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전방 4.4Km지점에 도덕면
면사무소를 목표로 삼고 여유 있게 걷는다. 오후 6시 직
전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괜찮은 휴게실이 보인다. 사무소직원에게 나를 소개하며 휴게실에서 자겠다고 했더
니, 총무부에 이야기 하란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휴게실이 아닌
현재 사용치않는 당직실 같은 곳으로
안내를 한다. 엄청나게 훌륭하고 고마운 잠자리다. 방도 넓고 주방에는 가스렌지도있고 비록 더운 물은 나오
지 않지만 샤워기도 있다. 짐을 풀고 있는데 직원들이 야근하느라 도시락을 주문했으니 같이 먹자고 한다.
푸
짐한 돈까스 도시락을 11명의 직원들과 함께 먹으며 나의 행적을 간략히 소개하니모두들
놀라며 부러워한
다. 도덕면이 전국에서 제일 좋은 이름 같다고 했더니 ‘도덕면
사람들이 아주 도덕적’ 이라고 한다. 고흥만방
조제에서 교통량
조사를 하던 직원 두 명이 들어온다. 방조제에서 지나가는 나를 보았단다. 물론 나도 그 들
을 보았다. 커피까지 대접 받고 숙소로 돌아와 찬
물에 샤워를 한다. 석류와 단감으로 후식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정말 대박이다. 날마다 그럴 수는 없지만 맑은 가을날에 좋은 구경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대
접을 받았다.
첫댓글 풍류해변을 지나 도덕면이라...
온갖 호사(豪奢)를 다 누리시는구만. 헐!
도덕적이라야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풍류를 즐길줄 알아야 도덕적이 된다나 어쩐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