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사(고대사)
Ⅰ. 사도시대 사도들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 (교회 건설기)
1. 사도의 정의
사도는 초대교회의 직분 중 첫 번째의 가장 중요한 직분을 말한다. 그러나 그 직분이 계승되었다는 근거는 없다. 사도라는 단어 ‘아포스톨로스’는 일반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지만 열두 제자와 바울에게 사용하는 특별한 직분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사도는 주님이 직접 보내신 중요한 직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사도의 자격에 대한 정의 ①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시고 보내신 자로서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한 직분이다. 막3:13-14 갈1:1 행9:15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 예수그리스도(히3:1) 주 예수께서 보내신 사도: 열두 제자 성령님께서 보내신 사도: 바나바와 바울(행13:2,4 행14:4)
② 사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였으며 부활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위임된 자도 실질적으로 사도임이 인정되었다. 행11:21-22 고전9:1 고전15:7-9 고후12:11-12
③ 사도는 예수께서 기적을 행할 많은 능력을 주신 자이었다. 막3:14015 고후12:12
사도라는 명칭은 극히 제한적이며 신약에서 열 두 사도와 바울과 바나바 또는 주의 동생 야고보외에는 사도라고 불린 구체적인 호칭이 없었다. 예수님의 아우인 야고보(고전15:7, 갈1:19)도 사도라고 불렀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 직분이 바나바와 야고보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도와 함께 병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독자적인 사도라는 직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없다. 교회 역사상 초대교회의 지도자와 감독들도 결코 사도라고 불린 적은 없었다.
3. 사도시대의 특징 ① 기독교가 각지에 전파되어진 시대 ② 신약성경이 기록되어진 시대 ③ 영적으로 성도의 생활이 충만했던 시대 ④ 바울의 개종과 전도에 의해 세계적 종교로 발전한 시대
4. 예수그리스도의 승천이후의 12사도의 전승
5. 초대교회의 형성배경
1) 정치적 배경: 기독교 시작 당시의 로마의 배경
① Pax Romana: BC27- AD180년에 이르는 시기 이민족의 침입이 그침으로 전쟁이 중단되고 국가적 부흥과 번영 제국 전체의 평화가 유지되는 시기이며 AD 64년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AD 64년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AD 70년 티투스 장군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등이 이시기에 속한다.
② 지중해를 중심한 전 지역이 로마 영토가 되고 로마가 문화의 중심지로써 문화의 동화와 통일 융화를 촉진시켰다.
③ 로마를 중심하여 각지의 도로시설로 교통이 편리해지고 군사용 도로가 개설됨으로써 전도여행 문서발달 개인교류에 유익하게 활용되게 하였다.
④ 언어가 통일되었다. 헬라어(그리스어)와 라티어가 통용됨으로써 전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⑤ 유대인들을 분산시켰다. 기독유대인들이 상업 박해 등으로 이주하여 각지에 분산되어 가는 곳마다 회당(Synagogue)을 세움으로 전도에 활용되어졌다.
⑥ 행정조직은 교회의 조직에 큰 영향을 미쳤고 로마의 법전은 교회법의 제정뿐만 아니라 라틴신학의 용어들을 캐내는 좋은 채석장이 되기도 했다.
2) 사상적 배경: 기독교 시작 당시의 로마의 종교
헬라화 시기는 종교적 혼합주의의 특색을 갖는다. 지중해 연안 세계들이 상호간에 문화적, 상업적, 정치적 유대를 맺게 됨으로써 각 지역들의 신성들이 상호 연관성과 동등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시스는 아프로디테와 데메테르와 동일시되었으며 제우스는 세리피스와 융합되었다. 다신주의가 이들의 근본적인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신비주의 종교들은 자기네 종교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이 있으면 서슴없이 받아들여서 적용하였다.
그래서 헬라화 시대의 종교들의 특성은 혼합 주의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는 당시의 정신이 철학적 절충주의와 혼돈된 상태였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당시에 유행하던 혼합주의적 제의로 전향시키려는 끈질긴 유혹을 느끼면서 결단을 내리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① 황제숭배: 황제는 현현신이고 법과 질서의 수호자이며 지역의 번영과 국민생명의 보존자로 숭배 황제를 거부하는 자는 반역자로 몰았다. 황제숭배는 로마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고 동방종교들이 로마세계에 침투함으로써 이룩된 몇 가지 경우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집트는 바로를 섬겼으며 페르시아 인들은 군주에게 절을 했으며 희랍인들은 영웅을 찬양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이 로마제국 내에서 황제숭배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② 밀의 종교: 의식을 은밀히 행하기 때문에 의식을 공개치 않는 신비주의 적 종교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비밀제전들을 말한다. 황소피로 목욕 성수로 목욕하고 구속적 성례 식을 강조하였으며 금욕주의 강조 내세사상 죄 씻는 의식이 강하다, 밀의 종교는 혼합종교로 밀의 집단에 들어가서 같은 음식과 음료를 먹고 똑같은 춤을 추는 사람들은 다함께 일체감을 느꼈다.
③ Magna Mather(Great Mather): Attis라는 목동을 처녀가 낳았는데 그가 피살되자 Magna Mather가 그를 살려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살아난 날을 기념하여 의식을 행한다.
④ Mithraism(미트라교 신앙): 페르시아에서 기원 광명의신이다. 죽어가는 소에게서 세계를 향한 생명의 씨가 나온다고 하여 소의 피를 마시며 성찬식을 함. 죽음을 각오하고 군에 가는 자는 그 피를 먹고 간다. 남자만이 회원이 될 수 있다. 특징은 모든 신자는 형제이며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기독교와 유사한 사상이다.
3) 문화적 배경: 헬레니즘
(1) 스토아 (Stoicism)철학-이성주의, 규칙적 철학 플라톤 사상 다음으로 기독교 사상의 발달에 영향을 준 것은 스토아 철학이다. 아리스토켈레스에게 영향 받은 고대 이교 윤리 사상이며 우주를 유기적 전체로 보는 범신론적 철학이다. 인간은 이성에 의해 주관되는 우주법칙에 조화되고 화합된 신성을 갖는 자로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걱정은 사라지고 무감정 이상에 도달한다는 사상주의, 엄격한 금욕주의이며 로고스 교리와 전 인류가 형제이다.
우주는 우주적 이성, 혹은 로고스의 지배를 받는다. 이 로고스는 단순한 외부적 힘이 아니라 사물의 구조 그 자체 내에 생겨진 이성이다. 우리 인간들의 이성은 우주적 이성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주적 이성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이성과 모든 에너지는 씨앗 로고스라고 부르는 이성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로고스 개념은 본래적으로는 어떠한 사유적인 관심과는 무관한 것이었는데 플라톤적인 사상과 점차 결합이 되어 기독교적인 로고스 이론이 다듬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스토아주의는 기독교와 대치하게 될 당시 로마제국 내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철학적 체계가 되어있었다.
(2) 에피큐리안이즘(Epicurianism) - 쾌락주의, 유물적 철학 사람의 최고의 목적은 정신적 쾌락이며 번뇌 없는 수동적 상태에서 얻는다. 인간의 죽음은 까닭모르는 공포에서 오며 원인은 죽음과 신의 진노에 대한 불안이다. 우주는 영원한 원자의 변화 결합이고 영혼과 신들도 물질이라고 하였다.
결국은 쾌락주의로 흘렀고 기독교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에피큐리안주의는 기독교가 모습을 나타내기 이전에 이미 호소력을 잃어버렸으며 기독교와 비교해 볼 때 너무 상이한 점이 많아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란 용이하지 않았다.
(3) Cynics(키니코스학파 견유학파) 로마 제국의 도덕적 타락을 슬퍼하여 독립자족의 정신을 민간에게 호소하며 사치스런 도시생활에 반대하여 농촌생활을 이상화하고 우주적 내재적 신관에 근거한 참 경건을 강조하였다. 기독교 수도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4) Platonism(플라톤주의) (BC420-347) 초기 기독교 사상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역시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두 세계로 분리하는 이원론(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킴) 주의로 최고의 가치는 진선미에 속하는데 이데아의 세계는 참된 세계이며 영혼은 이 세계와 교제하는 데에 최고의 만족을 발견하여 구원은 영원한 선과 미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플라톤의 사상은 영혼불멸뿐 아니라 영혼의 선재와 윤회까지도 말하고 있어 기독교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내용들이다. 기독교 사상의 주류는 영혼의 선재설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은 새로운 신앙을 플라톤 철학의 빛 아래서 해석해 보려는 신념으로 사상적 교리적 체계 내에 부분적으로 또는 사람에 따라서는 전체적으로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두 세계 이론은 상당히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설명하는데 사용했고 하늘과 땅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플라톤적인 경향으로 흘러서 두 세계에 대한 윤리적 구별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가시적인 세계는 악의 본거지이고 이데아의 세계가 인간들의 삶과 도덕의 목적지라고 가르쳤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일부 기독교인들은 플라톤의 물질세계가 창조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사상의 형상에 괄목할 만한 영향력을 끼쳤다. 티마이우스에서 플라톤은 이 세계의 기원은 신적인 예술가 혹은 데미우르지의 활동에 기인하는데 형체가 없는 물체에다가 선의 이데아의 형상을 따라서 형체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 사상이 초기 기독교 사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선의 이데아와 데미우르지 혹은 우주의 예술가를 구별함으로써 지고의 존재와 창조자 사이를 기독교와는 전혀 별개인 이분법으로 설명했으며 하나님 자신으로서는 무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서는 활동적이심을 설명하는데 좋은 근거로서 많은 학자들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근거해서 일부 신학 파들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서 하나님을 플라톤이 사용하는 선의 이데아를 지칭하는 언어들로 표현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즉 하나님은 무 감각적이며 무한하며 헤아릴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으며 등등이다.
(5) 아리스토텔레스 이원론을 반대하여 현상계와 이데아 세계의 관계속에서 한쪽이 없이는 다른 한쪽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것은 육체적 감각 외에도 신적인 Logos가 존재한다. 인간의 최고 목적인 선은 행복으로 귀착된다. 행복주의는 쾌락뿐만 아니라 행복의 종신 마음의 쾌적한 상태와 복지를 포함한 행복의 철학이다. 이성과 중용과 행복주의 도덕적 실천의지를 강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과 ‘최초의 부동의 동자’이론으로 힘을 과시했지만 이 사상들도 이미 당시 유행했던 중기 플라톤 사상에 동화되어 버렸으며 근본적으로 플라톤적인 체계 내에 휩싸여 버렸다.
4) 도덕적 배경 (1) 노예매매가 성행을 했으며, 잔인 포악한 풍속인 맹수와의 격투가 자행되었다. (2) 부모가 자녀에 대한 살해 권을 가진다. (3) 성적인 타락이 만연하여(신전에서 매춘) 기독교의 구분된 삶을 동경하게 된다.
5) 종교적 배경 (1) 그리스도의 활동과 제자들의 선교 (2) 신앙으로 박해받기 시작함(네로통치) (3) 예루살렘 멸망(AD70)으로 유대인 디아스포라-교회를 세우며 선교의 계기가 됨 (4) 유대교-이스라엘의 3대 종파(엣세네파, 바리새파, 사두개인)
6. 기독교의 기원 ①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 ② 세례요한의 출현으로 증거 받음 ③ 예수그리스도의 사역하심 ④ 12제자의 훈련으로 준비 ⑤ 오순절 성령강림 ⑥ 사도들의 사명과 활동이 시작 ⑦ 초대교회 조직(일곱 집사 선정) ⑧ 유대교의 핍박으로 분산 ⑨ 이방지역인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됨으로 기독교의 기원을 이룬다.
이상 설명한 모든 요소들은 기독교가 고립적으로 진공상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세상 한복판에서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형성된 당시의 세계를 떠나서는 기독교를 이해? 수가 없다.
7. 초대교회의 조직
(1) 형성과정 ① 오순절 사건이후 사도들의 활발한 전도 운동에 힘입어 초대교회 형성 ② 바울의 개종과 선교로 세계선교 발판 마련 ③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로마교회 탄생
(2) 조직 ① 선지직 (행12장) 사도직 (행14장) 장로직(행14:23) 집사직(행6장) : 2C 이후 선지자 사도직 소멸 ② 장로와 감독 함께 사용함(행20:17, 20:28) 2C이후 감독 권한 강화
(3) 예배 ① 장소: 예루살렘 성전, 회당, 개인집 ② 시일: 안식일과 주일 양일 예배를 드리다가 후에는 주일 예배로 통일되었으며 밤 예배, 비밀예배, 축제 예배 등이 성행하였다. ③ 순서 -성경낭독: 구약, 사도서신, 주님의 교훈 -교훈: 의장의 권고, 설교, 예언 -기도: 사회자 공고로 기도(금식, 회중의 기도) -찬송: 시편 및 성경어느부분
(4) 예전 ① 세례 -세 번 침수한다(병자나 물이 없을 때는 머리에 물을 뿌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었다.(마28:19) -죄를 회개하는 신앙고백이며 예수와 일치한다는 표시이다. (오늘날 물세례는 구원 받은 표이며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다. 벧전4장)
② 성찬 -매 주일 예배에서 행하여졌고 -세례 받은 자만이 참예 -기도로 떡과 잔을 받았다.
(5) 교회명절 ① 부활절 동방교회는 유대인의 유월절인 니산 월 14일을 지켰고 서방교회는 춘분 후 첫 만월 다음 주일에 지켰다.
② 사순절 부활절 전 40일간을 주일을 빼고 지켰다.
③ 승천일과 오순절
8. 초대교회 신앙생활의 특징
(1) 영적 감화가 많았다. ① 하나님과 교통하여 능력 받았으며 병고치고 마귀들 쫓아내는 능력이 일반에게 임하였다. ② 전도가 활발해졌다. ③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길로 갈 위험이 많았다.
(2) 재림의 확신을 가졌다. ① 유익: 고난을 참고 박해를 이길 힘을 얻었다. ② 피해: 정치개혁 사회개선에 무관심해졌다.
(3) 사랑의 덕을 베풀었다. ① 주인과 종이 함께 예배를 보게 되었다-평등 ② 고아 과부 가난한자를 돌보아 주는 자선사업이 많이 일어났다. ③ 먼 곳에서 오는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봉사의 풍속이 생겼다.
(4) 순결의 덕을 지켰다 ① 일부일처제로 부인의 지위를 높였으며 독신생활을 장려하였다. ② 금욕주의(육식 안하는 자도 있었다.) ③ 음주와 음란을 방지하였다.
(5) 생활의 징계 ① 개인적으로 충고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공중 앞에서 징계하고 ② 교회에서 추방하였고 교제를 단절해 버리는 순서로 단호하게 징계하였다.
9. 신약시대의 로마 황제들
10. 네로와 도미티안의 교회에 대한 박해
11. 예루살렘 멸망
1) 멸망 전 상태 ① 로마의 악정이 계속 되었다. 벨릭스(AD52-60)행24:26 루쎄이우스 알비누스(AD61-63) 플로루스(AD63-66) 의 지나친 탐욕으로 개인 재산 및 공동재산 압수를 자행하여 뇌물 만능이 되었다. ② 백성들이 강포해져 감람산에서 4천여 명이 폭동을 일으켜 절반이 죽고 다수가 포로가 되었다. ③ 제사장들이 부패했다.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웠고 (행23:3 대제사장 아나니아) 지도 역량이 부족하여 백성들의 신임을 잃었다(엘르아살)
2) 멸망의 원인 ① 헬라인이 유대인의 시민권 없음을 주장하여 로마정부가 이를 인정한 일에 대하여 분개한 가이사랴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킴 ② 예루살렘에서도 주권당이 득세하여 로마 군병을 습격 ③ 로마관리들의 악한 정치가 극심함이 근원이 되었다.
3) 멸망과정 ① 가이사랴에서 유대인 2만 명 살육 당했다. ② 수리아 총독 갈루스가 3만 명의 군사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실패 ③ 로마정부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6만 명의 군대를 주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 했으나 네로의 자살로 귀환 ④ 디도가 AD70년 4월에 출정해서 성을 포위하여 식량 결핍으로 고난을 당하였다.
4) 결과 ① AD70년 9월8일에 함락 ② 성전파괴, 사망자110만 명, 포로97,000명
5) 예루살렘 성전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 ① 기독교인이 가지고 흩어져 전도의 판도가 예루살렘에서 지중해 연안의 전 지역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② 정경 형성이 촉진되었다. ③ 기독교 조직화가 촉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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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복음의 진리를 위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해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