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7월[비정기-백두대간11차]

[햇님]

2000년 백두대간 종주산행(제 11 차)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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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반 사 항

  1. 가. 대 상 지 : 백두대간(버리미기재∼이화령)

  2. 나. 등반방식 : 능선종주

  3. 다. 일 시 : 2000년 7월 16일∼17일(일∼월)

  4. 라. 등반대원 :

     • 고창조, 길기현, 김정복, 김태욱, 김해수, 송학균, 여재홍, 이순명, 하창수(총 9 명)

• 차 량 보 고

  1. 하창수, 여재홍 회원의 승용차 2대 이용, 버리미기재-은티마을, 은티마을-이화령까지 왕복.

  2. 증평IC까지 고속도로 이용, 괴산 경유, 쌍곡 통과하여 버리미기재 도착, 귀가 시는 괴산을 경유하여 증평IC를 통해 고속도로 이용.

• 운 행 보 고

  1. 가. 운 행 시 간

     • 제1일 대림상가(08:30) - 버리미기재(11:30∼13:02, 차량 은티마을에 대포, 중식) - 장성봉(14:10) - 827봉(14:48) - 787봉(15:35) - 악휘봉 3거리(16:25) - 은치재(17:30) - 주치봉(17:49) - 안부(18:10) - 은티마을(18:50) - 취침(11:30)

     • 제2일 기상 및 출발(04:30∼06:10, 조식 및 캠프 철수) - 안부(07:00) - 구왕봉(08:00) - 희양산(09:15) - 시루봉 전 캠프터(10:14) - 마당바위(11:30∼12:10, 중식) - 사다리재(12:55) - 981봉 지나 안부(13:50) - 백화산(15:05) - 777봉 갈미봉 갈림길(17:10) - 이화령(18:10) - 대림상가 앞(20:20, 괴산 경유 증평IC를 통해 고속도로 이용)

  2. 나. 특 기 사 항

     1. 초입에 목책을 지나쳐 수풀을 헤치면 오른쪽으로 길이 잘 나 있음.

     2. 장성봉 정상에서 왼쪽길을 택할 것. 진행방향으로 내쳐가기 쉬움.

     3. 은치재에서 은티마을로 내려갈 수 있음. 은티마을로 구간을 끊을 경우 차라리 주치봉을 하나 더 넘고 안부에서 하산함이 시간절약 상 더 좋을 듯 함.

     4. 구왕봉은 희양산 쪽 내리막길이 다소 험한 급경사길임. 주의만 한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음.

     5. 희양산 정상 못 미처 세미클라이밍이 필요한 누운바위가 제법 길게 나 있음. 굵은 밧줄이 있으나 그대로 오르는 편이 수월하고, 그 위의 가파른 경사가 조심스럽고, 능선마루턱까지 이어지는 걸리가 매우 위태하여 주의를 필요로 함.

     6. 시루봉 못미처 매우 양호한 캠프터가 있다. 능선 한가운데 제법 분지가 넓게 형성되고 옆의 계곡에 물이 풍족하다. 낮과 밤 구분없이 바람이 죽어 지낼만한 곳이다. 아늑한 기운이 가득하다.

     7. 백화산을 지나처 얼마안가 904봉 바로 전에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는 오른쪽 길에 백화산을 노리고 오는 등산객들이 걸어놓은 리본에 속아, 자칫하면 엄한 길로 들어서기가 쉽다. 그저 능선의 마루로 진행하는 감을 가져야 한다. 즉, 흔적이 희미한 왼쪽 길이 정답이다.

     8. 조봉을 지나 적당히 피로할만 하면 군부대 팻말이 나오고 금지구역이다. 여기서 능선사면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다. 예서 이화령 도로까지 십여분 남짓 걸린다.

• 장 비 보 고 :

  1. 가. 등반구 : 지도(각자), 컴파스(각자), 보조자일 1동

  2. 나. 막영구 : 텐트(5-6인용) 2동,

  3. 다. 취사구 : 개스버너 4개, 콕헬 대형 1조, 수낭 3

  4. 라. 기타 개인장비 : 침낭, 우의, 수통 1리터 외 1.5∼1.8리터들이 패트병

• 식 량 보 고

  • 식단 및 휴대식량표

    날 짜	조 식	중 식	석 식
    7월 16일	-	밥식, 도시락	밥식, 낙지,부대찌개
    7월 17일	밥식, 된장찌개	라면 및 밥식	매식 , 김치찌개
    * 개인 준비물 : 쌀 3끼니분, 밑반찬 * 식단구성 - 부대찌개 : 소세지 1,햄1, 팽이버섯 ,김치 ,양파 , 파 ,양념류 - 낙지복음 : 완성된 요리를 그냥 끊여 먹음. (정복 형님의 형수님께 감샤~) - 간 식 : 산도, 크래카 ,육포 , 미싯가루, 사탕류, * 여름산행이라 탈수에 재홍형님의 포도당식염 알약이 불티가 났고 배탈 때문에 정로환이 인기 였음

• 회 계 보 고
  

  • 수입 및 지출 내역표

    수입	180,000원	지출	180,000원	비고
    산행참가비 (20,000원 x 9)	180,000원	차량운행비 저녁식비 식량구입	70,000원 75,000원 35,000원

  
  

• 7월 16일 일요일 날씨 비

  • 엊저녁 사흘간의 제주출장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꾸겨넣은 베낭을 메고 나온다. 몸이 천근인데 마누라가 안 가면 안되냐? 고 체념 중에도 기어코 한마디 던진다. 씁슬한 고소로 응답하고 밖으로 향한다. 요 몇주간을 심히 앓고 있는 아내의 아픔이 내 몸의 나른함에 더해진다.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을 담보로 한 이기적 행각이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 낫살이 먹어 점점 더 애잔한 감정이 요란스럽다. 역시 한가지였을 창조형이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계신다.

  • 대림상가 앞에는 종혁이형과 해수, 재홍이가 미리 나와 있었다. 종혁 형은 마중을 나오셨다 한다. 약 20여분 기다린 끝에 모두 모인다. 인원이 8명 뿐이라 재홍이와 창수 형의 차 2대로 운행하기로 하고 분승하여 출발. 매우 피곤하다. 깜박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재홍이가 고속도로 곁에 차를 세운다. 웬일인가 했더니 시동이 꺼졌단다. 몇차례 시도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제너레이터가 나갔느니 연료펌프의 이상이 아니냐느니 혹은 플러그 배선이상인지? 밧데리의 이상? 아니면 과부하? 마이컴 회로가 엉킨건 아닌지 별 추측이 다 난무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들이다. 보험회사 서비스에 연락하고 기다리다가 다시 시동을 걸어보니 이상이 없다. 한 5키로 더 가면 1차 합류지점인 오창휴게소인지라 조심스레 운행을 계속한다. 휴게소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걱정스레 기다리고 있다. 주유소에 가서 증상을 얘기하다가 별 이상이 없으니 그냥 함 가보자는 의견이 나와 똥배짱으로 밀고나가기로 한다. 보험서비스에 레커를 취소하고 계속 달려본다. 어랍쇼? 아주 괜챦다. 쌍곡 입구에는 매표소가 설치되어 돈을 걷는다. 행선지가 가은으로 그냥 통과한다 하니 별 소리 없이 보내준다. 음 이 좁은 나라에는 조만간 전 계곡의 유료화가 될 듯 하다.

  • 버리미기재 도착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짐을 끌어내고 우의를 뒤집어쓰고 재홍이와 창수 형이 차를 데포시키고 돌아올 때까지 떨 요량을 한다. 창조 형이 판초를 꺼내시어 나무에 걸고 그 속에 옹기종기 모여 무료한 시간을 잇빨로 때운다. 은티까지의 길이 제법 먼지 1시간이 훨 지나서야 창수 형과 재홍이가 돌아온다. 1시가 다 된 시각이라 도시락을 까먹고 출발. 대간 진입구를 목책으로 막아놓았다. 그 옆으로 돌아 들어서니 곧 길이 갈린다. 왼쪽은 희미하고 오른쪽은 잘 나 있는데, 왼쪽길이 구미가 당긴다. 먼저 한차례 다녀갔던 재홍이가 오른쪽이 맞다고 코치한다. 한 30여분 조금 넘도록 견딜만한 경사를 올라 봉우리에 올라선다. 장성봉 바로 밑인 듯 하다. 한차례의 휴식 후, 발품을 파니 얼마 안가 바로 장성봉이다. 나무팻말이 뽑혀져 있는 것을 돌더미로 기우뚱 세워놓았다. 모두 모여 물한모금씩 마시고 내쳐 출발하려는데 재홍이가 옆구리를 찌른다. 진행방향으로 난 대로가 애기암봉 쪽으로 빠지는 길이었나보다. 정상으로 들어선 초입 바로 왼쪽으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짐이 없어 홀가분하지만 잠이 모자라서인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즈음 많이 쇠약해진 듯 하다. 한 30여분 진행하여 827 봉에서 한차례 쉬고 그 만큼 더 가니 눈 앞을 가로막는 능선이 환히 보이는 곳이 나온다. 787 봉인가보다. 코 앞에 악휘봉이 보이고 차례차례 흰 바위를 껴안은 능선의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저쯤이 은티재니 저게 구왕봉이니 떠들다가 예의 컴파스로 각도를 따니 영 아니다. 아직 갈길이 한참 길다.

  • 오후 4시 25분 악휘봉 삼거리에 도착, 오름길이 다 고만고만하다. 예전의 셈법이 복습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등이 가볍기 때문이겠지. 코 앞의 820봉을 지나치니 오르내림 폭이 만만치가 않다. 은티재를 얼마 안두고 다리를 쉬면서 내일 길을 걱정한다. 거리도 거리려니와 희양산의 악명높은 오름길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이다. 하여 가급적이면 구왕봉 넘어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현명하리라는 판단을 한다. 비는 계속 구질구질 나리지만 우의를 입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행 초입에 감기가 도질까 우의를 썼지만 아주 곤욕스럽다. 벗고 질척임이 훨 시원하다. 몸이 적당히 달아오르고 기온이 꽤 높아 온몸이 젖어도 견딜만 하다. 은티재를 지나 주치봉을 넘는데,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도 걸음을 재촉했는지 오른쪽 무릎이 그만가자고 신호를 보낸다. 뒤따르는 창수 형이 내려갔으면 싶으셨겠지만 체념 끝에 따라오시는 걸 보고 그를 핑계 삼아 구왕봉을 포기하기로 작심한다. 재홍이와 기현이가 차를 가지러 앞질러 가고 주치봉을 너머 하산하기 시작. 창수 형이 구왕봉은 안 넘느냐? 난 갈 수 있는데 하시면서 은근짜를 부리신다. 이래저래 선두의 횡포가 말이 아니다.

  • 약 40여분 하산, 은티마을에 도착. 5시경이다. 동네로 들어서는 막차가 끝났다고는 하나 버스의 종착지 너른 공터에 텐트를 치기가 좀 꺼림칙하다. 개울 건너 '산골집'이란 음식집 간판이 보이고 그 집앞의 공터가 썩 괜챦아 보인다. 메뉴판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오는데 기러기탕 영양탕 산오리탕 도토리묵 빈대떡 등 술안주로 그만인 것들과 동동주까지......! "형 차라리 저기 가서 도토리묵 한사라 시켜 놓고 사정하는 것이 어때요?" "그럼 먼저 가서 이야기나 해 봐" " 아 그러지 말고 우르르 가서 먼저 팔아주고 난 후 말하면 되지 않겠어요?" 강짜를 부린 끝에 모두들 짐을 한아름씩 메고, 안고, 그리로 간다. '산골집' 쥔 아낙네로 보이는 젊은 아줌마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묻기도 전에 텐트는 예다가 치고 몸은 어데서 씻고... 한다. 어쭈구리 그러고보니 대간 팀이 많이 지나친 모양이다. 아마도 민박도 하고 막영도 하면서 밥을 팔아주는 모양이다.

  • 텐트 2동을 가설하고 젖은 옷을 벗어 물에 행구어 짜내어 여기저기 널어두고 옷을 대충 갈아입은 연후 도토리묵과 감자빈대떡 동동주를 시킨다. 해수는 저녁준비로 분주하고...... 쥔 아낙이 저녁은 뭘로 할 거냐고 압력을 가했지만 우리 돈 없는 산쟁이들이다 고 철판을 깐다. 기현이와 재홍이를 기다리면서 동동주 한되나 비웠나? 담배를 찾으니 담배가 떨어졌단다. 아낙이 담배가게는 개울건너 집에 할머니가 파신다고 한다. 아픈 무릎을 절면서 찾아가는 중에 기현이와 재홍이가 "형 어디 있어요?"하고 나타난다. 저기 '산골집'에 가 보라고 이르고는 허름한 담배가게 장지문을 열고 들여다보면서 담배 세갑만 달라고 하니, 뭔 한글로 토 달아놓은 고서를 읽으시던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신다. "아 이 비 오는데 무신 청승이여?" 담배3갑을 받고 만원을 드리니까 장롱을 뒤져 3000원을 꺼내 드시고는 "아 늙으면 죽어야지 잔돈을 어따 뒀지?" 혼자말이 한 5분을 넘는다. 기다리다 못해 "할머니 아예 7갑 주세요 여기 700원 더 드릴게 3000원 저 주시고" "그려? 그라도 되?" 할머니께서 쑥스럽게 웃으신다.

  • 저녁식사를 마치고 쥔 아낙이 제 집 목욕실을 이용하라고 하여 차례차례 몸을 씻으러 다녀온다. 근데 급탕시설이 없어 지하수의 찬물만 나온다 한다. 비염걱정으로 그냥 버틸려고 하는데 손님 떨어지고 아이들을 눕힌 쥔 아낙이 바깥양반 낚시 가 심심했던지 다가와서 말을 건다. 아주 재미있는 아줌마다. 날씨도 이런데 산은 무신 산이냐 웬만하면 내일 예서 실컷 놀다가 귀가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녹초된 몸에 시험을 가한다. "하늘에 별 몇 개 떴는데요?" 했더니 " 아 제가 여기사람 된 지 벌써 십년은 됐어요. 저 산주변이 컴컴하면 영락없이 비지요" 한다. "음 한여름에 비면 우린 더 좋은디?" 장군 멍군 하다가 이바구가 충분했던지 자기도 자야 하니 아직 안 씻은 사람 어서가서 씻고오라고 성화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구나 속으로 궁시렁대지만 어째 찬물 뒤집어쓰는 것도 시원하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머리감고 물을 퍼 끼얹으니 코가 멍멍하니 신호가 오고 사타구니 호두알이 볼품없이 찌그러든다. 서둘러 젖은 몸을 닦아내고 돌아와 그대로 텐트 속으로 구겨진다. 술이 안 당겨 마시지 않아 그런지 몸은 나락으로 떨어져도 눈은 안 감긴다. 11시 반이나 되어 모두들 들어와 부시럭대다가 고요해진 시간이 12시 조금 더 되었나?
    
    

• 7월 17일 월요일 날씨 흐림

  • 이게 뭔가? 꿈인지 생신지 뭔 숙제를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이제 잘거냐 산행을 더할거냐 무얼 치워야지 질의응답도 하고 되묻고 하는 데 상대가 쥔 아낙도 되었다가 태욱이도 되었다가 한다. 또 누군가가 더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거 산행 끝에 자는 거지- 하면서 꿈나라로 들어서다가 또 방황을 하고...... 이런 살이의 숙제를 왜 이렇게 푸는지? 응답도 없이 뒤척이다가 얼핏 제자리로 들어섰나? 이래저래 부대끼던 주변이 홀가분해 실눈을 뜨니 아무도 없다. 밖에 조식준비가 한창이다. 시계가 5시 조금 안 되었다. 나른한 몸을 일으켜 색을 꾸리고 밖으로 나온다. 조반을 마치고 막영지를 철수하여 '산골집'을 뒤로한 시간이 6시 10분, 부부로 보이는 50대 남짓한 두분이 희양산 산길을 묻고 지나친 지 한 20여분 지났다.

  • 어제 온 길을 되짚어 다시 오르면서 예전 같으면 본전 생각이 아득했겠지만 웬지 시큰거리는 무릎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고요하다. 능선에 올라서니 하산길 40분 걸린 길이 45분 정도 걸린다. 정복이 형이 빠르다고 흐뭇해하시는 양을 또 한번 무심히 바라본다. 앞 길이 구만리, 거저 한번 가 보시자구요. 눈 앞의 봉우리를 지나쳐 조금 오르다보니 약간 평평한 바위가 나타난다. 다리쉼을 하면서 이게 마당바위구나 싶다. 이름 붙일만큼 볼품이 있지는 않다. 안부로 떨어지는 경사가 제법이지만 길이가 짧다. 우뚝한 구왕봉 정상에 올라서니 눈 앞에 개스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망연자실 그 먹먹한 심연을 보고있노라니 살풋 동그랗게 시야를 드러낸 저 아래터에 봉암사가 아담하고 그윽한 자태를 드러냈다 사라진다. 뒤늦게 올라선 일행이 "뭐야 이거 아무것도 안 보이네?" "나는 보았네" 잔잔하게 웃어보이니 이번엔 희양산이 풍요롭고 너른 하얀 옆구리 바위속내를 미끈하게 내보인다. 너풀너풀 개스가 춤을 추면서 봉암사가 또 모습을 보이고, 일행의 탄식이 아득하다. 재홍이가 개스와 운해, 구름의 차이를 묻는다. 산사람들은 안개를 개스라 하기도 하고 비구름을 가로지르면서 개스라 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 대충 넘어갔는데(나도 잘 모르지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잘 알아들었겠지.

  • 구왕봉 내림길은 거저 낭떠러지로 보아야 한다. 무릎 혹사를 피하느라 색시 걸음을 옮기는데 다행히 홀드와 스탠스가 매우 풍부하다. 차라리 군데군데 살 떨리는 바위지대가 편타. 가파른 흙길은 눈물을 쏙 빼게 만든다. 떨어질만큼 떨어진 끝에 희양산 오름길과 전투가 시작된다. 선두가 무릎병이 났으니 그 소걸음을 누가 탓하랴. 마음을 모아 모아 바지런을 떨다보니 약 50여미터의 누운 슬랩이 앞을 가로막는다. 굵은 동아줄이 걸려있지만 그걸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초심자라면 다소 가슴이 떨릴 듯 하다. 물론 나 역시 조심스레 스텝을 옮기고는 있지만 여차하면 동아줄을 낚아챌 마음을 단단히 챙기고 있다. 똥겁은 많아서리. 슬랩을 지나면 심한 경사가 좀 더 이어지고 좁다란 홈통같은 지저분한 걸리가 나타난다. 거의 급경사이다. 이제껏 길을 인도하던 동아줄은 없고, 오히려 이쪽이 더 위태로와 보인다. 잡을 것이 많아 별 어려움은 없지만 떨어지면 큰일이다. 홈통을 벗어나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희양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나오고 대간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소걸음 바지런이 희양산을 단숨에 치게 해 주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 좁은 등산로는 그나마 너덜지대라 진행하기가 거추장스럽다. 군데 군데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눈 앞에 시루봉이 보이고 그 오른쪽의 963봉이 걸음을 위축시킬만한 높이로 서 있는 걸 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다보니 평평한 안부에 캠프터가 나타난다. 그 왼쪽에 마치 지리산 연하천 같은 내가 흐른다. 캠프터에 배낭을 풀어 내리고 물을 긷는다. 아직 10시 조금 지난 시각이지만 조식이 일러 배가 고프다. 일행이 간식을 꺼내어 서로 권한다. 뒤늦게 도착한 창조형의 모습이 매우 지쳐 보인다. 이 곳은 저녁 늦게 도착하여 막영하기가 아주 그만이다. 무릅은 새금새금거리지만 몸은 힘이 남아있다. 몸을 일으켜 963의 완만한 경사를 오른다. 정상을 지나 잠시 시루봉 갈림길을 지나쳐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리지같이 기복이 심한 능선길을 지나치니, 내리막이 심해지는 곳 왼켠에 전망이 좋은 바위터가 있다. 한번 쉬고 사다리재에서 점심을 하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면서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데, 창수 형이 그늘이 아닌 땡볕이라고 내려가 쉬겠다며 지나치신다. 맨 뒤에 오는 이와 내려가 합류할 요량으로 웃통을 벗어부치고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바로 밑에서 이리오라고 고함이다. 알았다고 소리치고 그냥 앉아있는다. 멍하니 눈을 감기도 하고 뜨기도 하면서 조는 듯 깨어있는 듯 앉아있다보니 등에 내려앉는 햇볕이 따가운지도 모르겠다. 머리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도 그냥 그대로 상쾌하다. 뒤에 기척을 느껴 돌아보니 태욱이가 보인다. 일어나 옷을 챙기고 베낭을 메니 창조형이 힘겨운 걸음으로 뒤를 이으신다.

  • 내려가 보니 군데군데 그늘이 진 너럭바위가 있다. 저 위가 용바위 여기가 마당바위인가보다. 이게 설악이나 워출산 같은 암산에 있다면 이름을 얻을 요량이나 했겠나 싶다. 그러고보니 태생이 지위를 정하는 건 아닌지? 그러므로 세상의 이름들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겠다. 11시 20분 때가 좀 이르나 싶지만 아침이 일렀으니, 예서 중식을 들기로 한다. 라면을 끓이고 식은밥덩이를 얹어 허기를 떼운다. 어제 간간히 내린 비로 수풀이 젖어 양말이 흠뻑 젖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쥐어 짜 볕에 널어놓고 잠시 등을 눕힌다. 감촉이 조금 따가왔지만 그런대로 편안하다. "코스탁!" 이만봉 쪽에서 누군가의 에코가 날아온다. 일행이 합창으로 응답했는데, 한 두어번 오던 에코가 그대로 종무소식이다. 어데 다른 산악회에서도 이런 에코를 쓰나? 서로 궁금해 하면서 의견이 분분하다, 혹시 증권사의 에코는 아닌가?는 의견이 나온다. '코스타크'가 아닌 '코스닥'이라는 추측이다. 허긴 지금 이 산중에 우리말고 다른 회원이 무슨 지성이 뻐쳐 예까지 와서 목놓아 우리의 흔적을 더듬을소냐......

  • 충분히 쉬고나서, 짐을 챙겨 일어선다. 흔들흔들 띠엄띠엄 걸음을 놓아 정상에 올라서니 웬 건장한 중년남자가 베낭을 베게삼아 몽중한이다. "안녕하십니까?" 고 인사를 건네었더니, 쳐다보는 이의 콧잔등에 얹힌 선글라스가 근사하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했더니 선글라스를 벗는 그 이의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그 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내 눈이 더 커진다. 학균이 형이었다. 형은 갈까말까 그 맴이 찌그러진 탁구공처럼 오락가락하다 포기했다는 창조 형의 말씀이 있었는데 느닷없이 예서 뵐 줄이야. 급기야 오늘 아침 기침 시에야 맴이 정해져 아침길을 달려 시루봉을 경유하여 오셨다는 말씀이다. 아래의 에코를 들으시고 이제나 저제나 오려나? 고 한시간여를 기다리셨다고 함박웃음이시다. 아직 점심도 안 드셨다는 말씀을 듣고 또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드시라고 한다. 도시락과 더불어 나온 육포가 배낭 속의 소주병을 꺼내게 하고 정담이 한창.

  • 이만봉을 뒤로 하고 진행하는 길은 여전히 고만고만한 기복이 있다. 곰틀봉 쯤에서 건네다 보이는 길고 부드러운 능선잔등이 남은 길이다. 백화산만 넘으면 그 긴 길도 별 것 아니라는 재홍이의 탄사가 이어진다. 아 저 부드러운 길. 사다리재에 도착하니 웬 젊은이가 산만한 배낭을 놓고 쉬고 있다. 물어보니 한 일주일, 대간을 거꾸로 종주 중이라 한다. 오늘 중으로 어데서 끊을까를 고민 중인 듯 하다. 때는 좀 이르지만 시루봉 밑 캠프터에서 자고가길 권한다. 아마도 우리가 자고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자못 큰가보다. 그에게는 시간이 더 소중할지도 모르는데...... 그의 일정이라면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로 내려가거나 구왕봉을 넘어서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편이 알맞을 듯 하기는 한데. 일행은 천천히 가라고 이구동성이다. 젊은이가 그런대로 사람이 그리웠던지 오랜시간 우리와 이바구를 한다. 혼자 저만한 짐을 지고 가 본적이 언제였던가 아득하다. 흘러간 세월이 그립다기보다는 그 시절을 답습하는 또 하나의 분신을 보는 듯 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는 좀 더 아쉬움을 남기지는 않을 것. 지금의 모습이 그런 단단한 결심을 엿보게 한다. 그런 나와 담담한 작별을 하고 다시 진행 981봉 너머 또 한번 쉰다. 이제 평전치 지나 누구나 안을듯한 백화산 완만한 경사만 지나면 한시름 놓겠다. 15시 드디어 백화산. 남은 길이 꽤 길지만 다 온 듯이 주저앉는다. 오른쪽 무릎이 엄청나게 아프다. 은근히 걱정은 되지만 가는 길이 탈출로이다. 이화령까지는 그대로 고통 속에 안주하리라 다짐을 놓는다.

  • 백화산 스카이라인이 부드럽다 하지만 그래도 1000고지가 넘는지라 완만한 경사도 아픈 무릎에는 더없는 험로이다. 904 앞둔 평평한 안부에 길이 두 개 보이는 데, 왼 쪽은 흔적이 가물고 오른쪽은 신작로다. 그 쪽의 리본이 주렁주렁하여 앞의 기현이가 눈길로 길을 물어도 끄덕끄덕한다. 길이 매우 가파르다. 아픔을 참느라 무아경에 제법 내려갔는데 뒤에서 재홍이가 "이 길이 맞겠죠?" 한다. "맞겠지 뭐" 걷는 모습이 애처로왔던지 재홍이가 진통제를 먹고 가라고 권한다. 중간 평평한 곳에서 진통제를 털어넣고 쉬다보니 해수와 창조형이 저 아래로 내쳐 지나친다. 왼 켠에 벽처럼 솟은 능선이 의구심을 더하지만 앞사람의 자취를 더듬어 무심으로 걸음을 떼어놓다보니 아래에서 창조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가 확인해 봐". 그럼 그렇지. 거의 세 뭉치로 뭉쳐 진행했나? 선두가 기현이와 나 재홍이 중간이 태욱이 창수형 정복이형, 꼬리가 학균이 형 해수 창조형. 그러고 보니 몸통이 행불이다. 재수 옴 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죽을 맛인데...... 이럴 땐 거저 죽은 듯 만사를 체념하는 편이 시원하다. 아프거나 말거나 오르고 또 올라 갈림길로 들어서 확인해보니 역시나 왼쪽 호젓한 산길 저마치 외로운 리본 하나 '백두대간' 이쪽 주렁주렁한 리본의 잡소리에는 '백두대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친 몸통과 합류하기 위해 퍼진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내쳐 달린다. 피라밋같은 910고지는 덤불로 뒤덮여 있다. 그 다음 862 봉 오름도 잠시 잠깐씩이다. 길이 왼쪽으로 크게 휘돌아 내려가는 즈음에 저 밑에서 에코가 들린다. 답을 했는데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평탄한 길 오른쪽에 늪인지 작은 연못인지 하나 지나친다. 갈미봉 갈림길에 올라보니 창수 형과 태욱이가 기다리고 있다. 어케 된거냐? 고 묻는다. 헤멨지 머 쓴 웃음으로 답하고 한시름을 놓는다. 정복 형 자취를 물으니 아마도 씩씩대면서 앞에 놈 내달은 걸 꾸짖을 량으로 갈 때까지 갔나보다고 한다. 으이그 미련하기는......

  • 정복이 형은 어차피 갔을 거고 우리는 우리라고 여유를 보이면서 휴식. 이 긴 길을 덕분에 참으로 빨리 달렸다 싶다. 출발, 조봉을 지나쳐 조금 지루하다싶을만 하니까 군부대 입간판이 나타나고 그 오른쪽으로 우회길이 나 있다. 산 중턱을 가로질러 내리막길이다. 한 차례 휘돌아 오르니 저 앞에 초소가 보이고 초병 둘이 망연히 우리를 쳐다본다. 초병의 눈초리를 달고 오른쪽 사면 우회길로 접어들어 또 한번 휘돌아 내려가다보니 시멘트 계단길. 바로 밑이 이화령 도로이다. 이화령 휴게소에는 정복이형의 허탈한 썩은미소가 우리를 반기고, 암튼 끝냈다는 안식이 우리를 기다린다.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학균이 형과 아쉬운 이별. 휴게소에는 땀에 찌든 몸을 씻어낼 물이 없었다. 그저 산중에 씻은 마음을 벗 삼아 귀가. 괴산에서 막걸리 두어통을 사 재홍이 차에 반입하고 땡기는 이들을 옮겨 이동까페를 차린다. 그저 좋기만 하다. 우리네 잠시 인생소풍길의 한 때가 또 흘러갔다. 다시는 못올 어떤 곳으로......! 그립다 하지말고 그저 좋았다고만 말해야쥐.

  보고자 : 이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