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 글이 날짜까지 기묘하게 딱 9년째인 2019년 3월 18일 지금보니 아주 조야하고 나이브하다. 허나 그 당시 마음 아파서 풀 곳이 없어 혼자 끄적여둔 글이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제서야 표면위로 드러난 것에 이제서야 '자연'이라는 망자의 한이 풀릴 수 있는 길이 조금이라도 열린것에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방금 문재인 대통령의 진상조사 특별지시가 내려졌다.)
예전 류쌤이 혜화역 시위 여성분들 집단 투쟁에 '한철연'도 고고하게 '한철연' 깃발을 나부끼며 거기에 합류하면 멋지지 않겠냐고 얼핏 얘기하셨는데, 그때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 이 땅의 매스컴은 남녀간 서로 증오심, 다문화 증오심, 지역갈등 증오심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모든 아젠다가 셋팅되어 있기에 그런식의 방향성은 꽤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오히려 '한철연'의 고고한 깃발이 휘날려야 할곳은 혜화역 시위가 아니라 광화문 조선일보 건물앞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주목하지 않았고 잊고있던 장자연 그녀의 얘기속에 이 모든사회의 권력,자본,착취,조작,차별의 문제가 원론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혜화역에 주목할때, 한철연은 본질적 문제, 악의 근원과 싸워야한다고 믿었다.
혜화역의 시위는 조선일보,월간조선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던게 당시 내 판단이었고 지금도 내 소신은 변함이 없다.
나는 진짜 쎈놈들과 쎄게 싸우고 싶다. 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중생의 방식이 쓰일때가 있고 호랑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방식이 또 따로 있다. 사냥꾼은 몇달 간 눈속에 은거하다 결정적일때 방아쇠를 당긴다.체질적으로 내게 아주 맞는 방식이다.
9년 전 남성들 그 누구도 심각하게 주목하지 않았던 그녀의 사건에 홀로 울분을 삼키며 글로 위령제를 올렸다. 나는 지난 9년 동안 단 하루도 장자연 그녀를 잊지 않았다. 거리에서 투쟁의 방식이 있을테고 나 같이 영원히 잊지않고 문사화 하는 방식이 있을테다. 나의 방식은 조용히, 그리고 일상적인듯 그러다 사냥꾼처럼 쎈놈을 노릴것이다. 나의 방식은 산발적인 길거리 투쟁이 아니다. 나는 10년이고 20년이고 잊지않는다. 때가 되면 쎈놈의 급소를 노릴 수 있을 때 분연히 일어서는 방식이다. 나는 약산의 파괴적 정신을 늘 기억하고 있다. 쎈놈과 싸우려면 내가 쎈놈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기다릴 자신이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011년 3월 19일 싸이월드에서
<밀양 영남루 아래에 아랑의 사당이 있는 대나무 숲이 있고, 그 밑으로 밀양강이 도도히 흐른다. / 아랑 동옥의 영정: 그녀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이의 이름은 동옥東玉이며 나이는 막 16세를 지난 봄바람 같은 웃음을 지닌 숙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명종(1545~1567) 때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부임해온 윤尹부사의 외동딸이다.
태어난 지 겨우 수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의 품에서 자라난 윤 사또의 금지옥엽 같은 소중한 혈육이다.
윤동옥은 자태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재주가 뛰어나 밀양땅에서 뭇 총각들의 입에 회자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느 달밝은 사월 십육일, 그날따라 달이 유난히 휘엉청 밝았고 유모가 달도 밝고 좋은 날에 책만 볼 것이 아니라 아버님에게 허락을 얻어 영남루로 달구경을 하러 가자고 하는 것이 었다.
그리하여 동옥은 윤부사에게 허락을 받고는 달 구경을 나왔다. 아랑이 영남루 능파각 쪽으로 올라갈 무렵 유모가 소피를 보러 간다고 자리를 떴고 그 사이에 갑자기 어떤 괴한이 나타나 겁탈을 하려 하자 아랑은 죽을힘을 다해 항거했다.
괴한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얼굴을 본 아랑을 죽여서 대나무 밭 속에 숨겼다.
한편 괴한과 공모한 유모는 후환이 두려워 “아랑아씨가 호식을 당했다. 범이 와서 물어갔다”며 거짓말을 하였다. 이 일을 안 윤부사는 온 나졸을 풀어서 무남독녀의 딸을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딸을 잃은 슬픔으로 홧병을 얻은 윤부사는 할 수 없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윤부사가 서울로 올라간 후 밀양에 내려오는 후임 부사마다 그날로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부임하자마자 죽게 되니 그 밀양부사 자리는 비어 있게 되었다.
이 때 글은 뛰어나나 집안배경이 없어서 급제를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과객으로 지내는 이진사라는 사람이 영남루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 속에 흰 소복을 하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한 처녀가 나타나서,
“오랜만에 내 원수를 갚아줄 어른을 뵙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속으로 놀랐지만 워낙 대담한 사람이라서,
“네가 도대체 귀신이냐, 사람이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 처녀가 하는 말이
“나는 어느 때 윤모부사의 딸인데 유모의 꾀임으로 영남루에 달구경을 나왔다가 욕보이려는 괴한에게 죽음을 당해서 대밭 속에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제 원수를 갚기 위해 새로 부임하는 사또를 뵙고자 했는데, 모두 보자마자 기절해 돌아가시고 오늘에야 좋은 어른을 뵈었으니 내 한을 풀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진사가 네 원수가 누구냐고 물으니 그 처녀는 말을 안하고 자꾸 뒷걸음질치면서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이진사는 이상히 여기면서도 이 고을에 꼭 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과거를 보니 급제하였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밀양부사를 자원해서 부임하게 되어 그날 밤을 지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밖이 소란하였다. 신관사또 이진사가 죽은 줄 알고 모두 염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관속들을 호통치고 전임자를 막론하고 모든 관속들의 명단을 죄다 가져오라고 일렀다.
명단을 쭉 훑어보는데 제일 끝머리에 현직에서 물러난 사람으로 붉을 ‘주朱’자와 깃발 ‘기旗’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 때 이진사는 빨간 깃대 생각이 나서 유모와 함께 그놈을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둘을 추궁하니 결국 모두 자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놈을 앞세워 영남루 대밭에 가서 보니 시체에 칼이 꽂힌 채 썩지도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그 뼈를 거두어 좋은 자리에 묻어주니 그 후로는 밀양 고을에 부임하는 사또들에게 변고가 없이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판본에는 이진사가 예전 일했던 모든 관속들을 모아놓으니 아랑이 나비가 되어 범인의 상투위에 앉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랑을 애도하고자 아랑의 시신이 떨어져 있던 대밭에다 열녀사烈女詞라는 사당을 짓고 지금까지도 매년 4월 16일 밀양땅의 지혜로운 규수들을 뽑아 제사를 지내고 ‘밀양 아랑제’를 열고 있다.
지금 사당의 내부에는 이당以當 김은호 화백이 그린 아랑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여기 또 한명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붉은 자줏빛처럼 곱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자연紫姸’이다.
일본 군인들의 총칼에 쓰러져 간 동학 농민의 피맺힌 함성이 서린 붉은 황토와 백제의 유구한 전통이 있는 전북 정읍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자연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정읍 학산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서울로 올라와 CF 광고 모델일을 하고, 드라마에도 출연하던 중 2009년 3월 7일 경기도 성남시 이매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처음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지만 장자연 전 매니저 유씨가 성상납 내용을 담은 장자연의 자필 문건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경찰은 2009년 7월 10일 금융회사 간부, 언론사 관계자, 프로듀서(PD) 등 수사 대상자 20명 중 9명을 입건하는 것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전 대표 김씨와 유씨를 기소하고 나머지를 무혐의 처리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2011년 3월 다시 귀천을 떠돌던 그녀의 울음이 들려온다.
“오빠 미안해. 혼자가면 무지 쓸쓸하고 그곳이 무서울 것 같아...”
“근데 이렇게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인정할 수가 없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
억울한 한을 풀지 못한 망자亡者가 저승에서 보내온 편지이다.
그녀의 한恨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망자의 한을 풀어주려 많은 이들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드디어 한스런 그녀의 삶에 조금이라도 살풀이를 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건만, 허무하게도 또 다시 그녀의 목소리는 가짜라고 낙인찍혀 버렸다.
여기까지가 우리들이 아는 자줏빛 그녀의 모든 얘기다.
고향 밀양에 내려가면 아랑의 사당이 있는 영남루 대나무 밭 아랫길을 걷거나 밀양강(남천강)이 흐르는 밀양교 위에서 가만히 한참동안이나 밀양강을 내려다 보고는 한다.
아랑의 한恨은 다 풀렸을까? 아랑의 위패가 놓여진 사당 본관문은 녹슨 자물쇠로 굳게 문이 잠겨 있지만 헐거워 그 사이로 동옥의 얼굴을 볼 수가 있어 아주 가끔 혼자 가서 한동안 보고 오고는 했다.
온화한 웃음이 머금어 있기도 하고, 서글픈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마음을 아직 잘 모르겠다.
‘밀양 아랑제’에서는 매년 전국 백일장 대회를 하는데 2000년 대학교 2학년때 아랑의 남은 한을 어떻게든 풀어주고 싶었다. 아니 동옥을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옥에게 힘껏 글을 쓰고 싶었는데 주제어가 ‘그늘’이었다. 어떻게든 동옥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일반부 장원이 되어버렸다.
동옥을 위한 언사言辭적 살풀이가 되기에는 한없이 모자랐고, 형편없었는데, 그래서 기쁠 수만은 없었다. 장원을 위한 글이 아니라 아랑의 살풀이를 위한 글이 되기를 바랬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랑을 위한 글은 다시 아랑아씨만을 위해 오롯히 풀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여전하다. 어쩜 그해 아랑 아가씨는 내게 동옥의 그 후의 얘기를 해줄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한恨은 누가 풀어줄까? 그녀의 목소리가 기적처럼 다시 우리에게 전해져서 망자의 한을 풀어줄 것이리라 확신했지만 거대한 권력과 돈의 힘 앞에 이렇게 그녀의 목소리는 사그라진다.
자연의 목소리가 진짜 그녀의 목소리라 믿는 제보인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느 한쪽은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인간의 진실은 숨겨질 수 없다. 어머니 제사에도 자유롭지 못한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비참함에 대한 절규가 조작으로 판명된 지금 나는 침묵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모른체 그냥 일상속에 귓전으로 그녀의 이름을 스치며 흘려야 할까?
아랑도 자연도 이렇게 역사 속에 사멸되어지는 그녀들을 그냥 잊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조금이라도 기억해주면, 또 가까운 미래에는 자연의 한이 어떻게든 나비가 되어 풀리지 않을까? 이 시대에 자연의 한을 풀어줄 또 다른 이진사는 과연 없는가?
2011.03.19
첫댓글 9년전 설서생이 바라던 이진사가 이제서야 정확히 9년만에 나타났다. 문대통령이 내가 그리도 기다리던 현대판 이진사였던가? 아랑의 원한을 풀어준 이진사가 다시 500년 후 문진사가 되어 장자연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한다. 그것도 이진사가 다시 미심쩍은 사건수사를 다시 명령한 것처럼 그 양태도 놀라울 만큼 똑같이.
아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학의·장자연 사건 ‘재수사’ 가닥…외압·은폐 의혹까지 겨눈다
기사입력2019.03.18 오후 7:46
<문 대통령, 박상기 법무 보고받고>
“공소시효 상관없이 명백히 밝혀야”
사실관계 수사 미진했다 판단한 듯
검찰 등 ‘재수사’ 뒤따를 가능성 커
장자연님 아랑처럼 나비가 되어 문진사 앞에 날아오르소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文불호령에..'김학의·장자연 사건' 조사 연장 급선회
2019.03.18. 20:39
검찰과거사위, 2개월 조사 연장 의견 모아
문재인 대통령, "의혹 진실규명" 지시내려
지난 12일에 연장불가 입장였지만 번복해
법무부, 검토후 내일 연장 여부 발표 예정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2019.03.18. (사진=청와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