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사람을 기다린다
2007년 10월 최영수 소장
얼마 전에 만났던 독보적인 사회복지사, 그 분은 온 젊 음을 바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한 시간 속에서 자신을 너무 많이 소진하신 것 같아 보인다. 가을 낙엽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지낸 세월, 어려운 사람들에 둘러 싸여 산 세월 끝에도 자신을 돌보아 줄 사람은 없고 내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만 여전하다는 사실이 지난 삶에의 좌절과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그 분 스스로 지난 세월조차 거꾸로 주워 담는 모습에 내 마음도 많이 허전했다. 만약에 내가 어린 시절의 가난과 아픔을 못 벗은 채 여전히 그렇게 절어 지낸다면, 나도 그분을 지치게 만든 한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 옛날의 춥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주위를 돌아본다.
정말 그 때는 매섭도록 추웠다고 생각된다. 내복도 없이 영하 20도를 견뎠으니…, 그래도 동상하나 걸리지 않고 이리도 멀쩡함에 감사한 마음이다. 불안 땐 방에서 얇은 이불만 덥고도 그 찬기를 무엇으로 견뎠는지 지금도 등이 뜨뜻하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종내는 등을 드러내놓고야 잠이 든다. 아마도 그 때는 주위가 온통 꽁꽁 얼어 있어서 얼지 않는 공간과 온기만으로도 감사해하는 마음이 그득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마음 덕에 시린 추위를 감당할 만큼 당연한 의지와 투지가 어느 새 방한복이 되어 내게는 싼타클로스 선물로 다가온 듯 여겨진다. 그렇게 잘 겪은 추위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되풀이 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겨울옷을 입히고, 그것도 벗고 입고 갈아입힐 여유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이 부자다. 게다가 거실과 부엌의 난방을 끄고 지내는 내 삶에 가족들이 따라주는 것도, 그렇게 알뜰함을 익힐 수 있음도 내게는 더 부자될 일로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나는 세상의 가난과 병든 자를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만드신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가족보장을 먼저 챙겨야 함을 배웠다. 아마 아버지가 그랬었더라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물심양면으로 더 많이 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좋은 일 하시는 아버지에게 나머지 가족은 서로 서로 아버님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부담이 되지 않으려 각 자 애쓰고 살 뿐이었고 아버님 역시, 노년에는 자식들에게 지나친 경제적 부담을 안 주려고 스스로 연구소의 활동범위를 제한하셨던 것 같다. 노년의 아버지는 당신께서 만든 제도와 정책들에 대해 한 차원 높은 많은 생각들을 분명 하셨을 텐데, 여전히 창고에 묵힌 아버지 자료들을 이 가을에 떠올리며 당신의 생각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낼 다짐을 해본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오직 한 가지 바람은 주위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날마다 노력하며 살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봉사하는 삶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날부턴가는 희망으로 하루를 열고 보람으로 하루를 접는,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태양을 느끼는 그런 열망이 넘실대는 삶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나도 지금 이 길을 걷듯이 우리 자식들도 내 길을 따라 걸을 것 같아서 그런 소망을 욕심내어 본다. 아버지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 국민 모두를 가난과 병으로부터 구하고자 광의의 사회복지를 하셨다면 나는 여성을 중심으로 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하는, 그래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각 가정이 보다 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결국엔 이 사회가 튼튼해지는 협의의 사회복지를 하는 셈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보다 더 세분화 되거나 아니면 질적으로 보다 나은 내용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싶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동쪽을 향해 두 팔 벌려 매일매일 뜨는 해를 새롭게, 뜨겁게, 설레며 맞는 세상살이를 하는 나무이기를 바란다. 「행가래로」의 길을 안내하는 나무들이 언젠가는 숲이 될 날을 기다리며 ‘같지만 다르게 크는 나무’들을 봄처럼 기다린다.
가을이 하늘만 파르라니 다가오고 몸은 초겨울처럼 싸-아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게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멋지게 차려입고 스카프를 휘날리며 바람을 마시며 이 가을을 누비고 싶다. <행가래로 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