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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9. 14.~16.(화~목) - 음력(8. 8.~10.), 일출 06:09~일몰 18:40
●산행지: 춘천지맥 2구간(거니고개-소주고개)
●산행코스: 거니고개(44번 국도)-593.9m봉-777.3m봉-매봉(800.3m)-홍천고개(군도)-833.9m봉-가리산(1050.7m)-늘목고개-754.9m봉-가락재터널 상단부-709.4m봉-대룡산(899.3m봉)-853m봉-공군부대 정문-우회로-738m봉-연엽산(850.1m)-임도-406.7m봉 갈림길-모래재(5번 국도)-군자리 도로-70번 국지도-나가지고개-꼬깔봉(420.5m)-추곡고개-소주고개(403지방도)
●먹거리: 생수2.5리터, 빵2(호떡, 페스츄리), 자유시간, 에너지바, 양갱3, 단백질바2, 사탕15, 알마겔3, 토마토케챱2
●준비물: 침낭커버, 고아텍스, 바람막이2,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비닐우의, 매트, 은박매트, 경광점멸등, 호르라기, 안대, 귀마개, 머리띠, 양말, 여분의류, 띠지30
●거리: 약 73.22Km
●소요시간: 36.12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시외버스7,400, 직행5,200, 택시9,340, 뒤풀이46,800, 기차8,300
●날씨: 17~29, 첫날은 바람이 시원했고, 둘쨋날, 셋째날은 바람이 없어 조금 더웠습니다. 하늘은 맑았구요.
●산행경과:
* 9. 14.(화)
- 08:55 : 거니고개(332m)/ 건이치
- 10:00 : 592.7m봉
- 12:?? : 삼각점봉(小三角点)/ 778.4m봉
- 12:46 : 매봉고개
- 13:08 : 매봉(802.3m)/ 삼군봉(홍천군, 인제군→춘천시)/ 인제에서 춘천시 경계에 진입
- 14:43 : 713.3m봉(개념도 상 714.1m봉)/ 삼각점봉(내평 305/ 2005 재설)
- 15:07 : 홍천고개(574m)/ 홍천현
- 16:12 : 등잔봉(833.2m)/ 삼각점봉(내평 423)
- 17:15 : 새득이봉(937.2m)
- 17:27 : 가삽고개/ 평내현
- 17:44 : 물노리갈림길
- 18:15~18:40 : 가리산(1,050.7m)/ 삼면봉(춘천시 북산면, 홍천군 두촌면→화촌면)/ 1등삼각점
- 19:00 : 960m봉/ 삼면봉(북산면, 홍천군 화촌면 → 춘천시 동면)
- 19:56 : 광산고개 - 20:28 : 물안봉(781.9m)/ 삼각점(내평 427)
- 21:04 : 늘목고개(567m)
* 9.15.(수)
- 04:40 : 늘목고개(567m)
- 06:47 : 887.1m봉(개념도상 900m봉)/ 춘천 동면-홍천군 화촌면, 군계이자 면계
- 08:06 : 사오랑치
- 08:38 : 꼭두봉(753.6m)
- 09:25 : 가락재(667.7m)
- 11:35 : 삼면봉(708.3m)/ 자지분맥갈림봉/ 춘천시 동면, 홍천군 화촌면→북방면)
- 12:23 : 취벽봉(776.9m)/암봉, 뾰족봉
- 12:55 : 삼면봉/ 헬기장/ (홍천군 북방면, 춘천시 동면→동내면)
- 13:04~13:12 : 대룡산(899.1m봉)/ 춘천의 진산/ 2등삼각점
- 13:42 : 공군부대 삼거리
- 16:00 : 박달재
- 17:00 : 삼면봉(760.7m)/ 매봉갈림봉/ (홍천군 북방면, 춘천시 동내면 → 동산면)
- 17:3? : 구절산갈림봉/ (춘천시 동산면, 홍천군 북방면 → 동산면)/ 완전하게 동산면 안으로 진입
- 17:40 : 연엽산(850.1m)
- 18:33 : 왁박골임도
- 21:29 : 모래재(340m)
* 9. 16.(목)
- 07:25 : 모래재(340m)
- 08:24 : 새술봉(437m)
- 09:29 : 군자리도로
- 09:45 : 383.2m봉갈림봉/ 면계(동산면 - 신동면)
- 09:?? : 삼면봉(340m)/ (신동면, 동산면 → 남산면)
- 10:?0 : 능선봉(367m)/ (신동면 - 남산면 → 남산면)
- 10:40 : 덕만이고개
- 12:05 : 뵁이터골
- 13:30 : 나가지고개
- 14:18 : 383m봉(개념도상 380m봉)/ 면계(남산면 - 남면)
- 14:36 : 꼬깔봉(420.5m)
- 15:52 : 추곡고개
- 16:17 : 추곡봉(344.6m)
- 16:28 : 버들길고개
- 17:00 : 오동봉(355.5m)
- 17:25 : 소주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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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맥 세부 구간거리
거니고개(44번국도)-2.2km-593.9m봉-3.9km-777.3m봉-2.0km-매봉(800.3m)-4.2km-홍천고개(군도)-1.8km-833.9m봉-3.4km-가리산-4.2km-늘목고개-5.1km-754.9m봉-2.2km-가락재터널상단부-1.6km-709.4m봉-4.0km-대룡산-1.7km-853m봉-공군부대정문-6.3km(우회로)-738m봉-3.9km-연엽산-1.8km임도-3.2km-406.7m봉 갈림길-2.6km-모래재(5번 국도)-3.1km-군자리 도로-2.0km-70번 국지도-3.9km-나가지고개-1.6km-꼬깔봉-2.2km-추곡고개-2.5km-소주고개(403지방도)
* 구간거리
- 거니고개~가락재 31.6km
-. 거니고개~홍천고개 14.3km
-. 홍천고개~가락재 18.1km
-. 홍천고개~늘목고개 10.9km
-. 홍천고개~가리산 5.2km
- 홍천고개~모릿재 42.7km
-. 홍천고개~대룡산 25.3km
-. 늘목고개~대룡산 14.4km
-. 늘목고개~가락재 7.6km
-. 가락재~대룡산 7.3km
- 가락재~모랫재 23.5km
-. 대룡산~모릿재 16.2km
-. 가락재~박달재 11.8km
-. 박달재~모릿재 11.7km
- 가락재~모랫재 23.5km
-. 대룡산~모릿재 16.2km
-. 가락재~박달재고개 11.8km
-. 박달재~모릿재 11.7km
-. 연엽산~모랫재 8.6km
- 모랫재~북한강 32km
-. 모랫재~소주고개 17.5km
-. 모랫재~꼬깔봉 12.3km
-. 꼬깔봉~소주고개 5.2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거니고개: 청정조각공원휴게소(033-462-0034)/ 식당, 매점
- 신남개인택시: 033-461-6009
- 가리산: 정상에서 계단으로 300m 석간수
- 대룡산: 고은리 2.9km 이정표 계단따라 120m 아래 쉼터에 샘터
- 모랫재: 춘천쪽(우측)으로 60m, 정신병원 정문 지나 길 건너편에 식당 있음. (우일토종닭, 순두부)
- 덕만이고개: 초대교회
- 강촌택시: 033-244-5858, 033-263-3826
- 소주고개: 후평리쪽으로 고개 아래 쉼터가 있다하나 확인 못함.
* 서울에서 거니고개 가는 길
- 동서울~홍천: 06:15, 06:40,~10:45, 10:50, 11:21,~16:40, 16:50, 17:20~22:20, 1h~1.50h, 7,400~12,300
- 홍천~인제, 양구, 현리행: 신남리 하차, 시내버스 07:10, 08:40, 09:40, 57h, 5,300원
- 신남~거니고개: 택시 9,340원
* 남춘천에서 서울(청량리) 올라오는 길
- ITX: 17:05, 18:18, 18:57, 19:43, 21:27, 22:18, 0.54h, 8,300
* 홍천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5번홈: 06시~20:30, 30분 간격, 22시 막차, 1~1.40h, 7,400~13,100~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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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에서 홍천행 첫차로, 홍천에서 인제, 양구, 현리 들어가는 차로 신남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해 거니고개로 가서 출발했습니다. 44번도로는 6.25개전 초기 인제에서 홍천으로 침공한 북한군 12사단의 공격루트고 말고개, 한계전투에서 육탄10용사가 있어 3일간 적 전차의 예봉을 지연시켰던 전적지입니다. 고로 홍천과 인제, 춘천의 경계인 춘천지맥길은 방어진지로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기억하는 곳이죠. 51년 5월 춘계공세에는 소양강을 도하한 중공군 인해전술을 맞아 같은 장소에서 또한번 격전이 치뤄집니다. 벙커힐전투가 바로 그것입니다.
거니고개에서 출발하며 지맥 마루금 홍천쪽(좌측) 완만한 능선은 군데군데 간벌이 넓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맥의 우측은 가파른 사면길입니다. 간벌도 어렵거니와 지맥의 우측(북쪽) 조망이 트였더라면 소양강과 도솔지맥 뿐만아니라 향로봉으로 향하는 북한 지역의 백두대간도 바라보였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산을 기어오르는 적군을 바라보았을 군인들의 불타는 눈동자를 회고하며 마음속으로 "전선을 간다" 군가를 부르며 똑같은 감정을 가져보기도 했답니다.
높은산 깊은골 적막한 산하
눈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넋 숨져간 그때 그자리
상처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나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마루금은 고지마다 온통 6.25전쟁 방어진지인 교통호와 참호입니다. 51년 5월 춘계공세에 소양강을 도하한 중공군들은 절벽처럼 가파른 품걸리 북쪽 사면을 개미떼처럼 치고 올랐을텐데요. 수류탄을 까던지고 조준사격을 해서 아마 그 사면쪽으로 적군들의 유해가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나 춘천시 동면 늘목고개에서 다시 화촌면에 달라붙는 887.1m봉부터가 교통호로 구축된 진지입니다. 홍천쪽으로 바로 아래 800고지가 벙커전투 전적지입니다. 사오랑치로 가며 춘천지맥 마루금이 계속 유해발굴지역인데요. 가락재 직전 꼭두봉(754.9m)에서는 유해 발굴작업을 진행중인 군인들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첫날은 거니고개~늘목고개 25.2km, 둘쨋날은 늘목고개~모래재 31.1km, 세쨋날 모래재~소주고개 16.9km로 연3일 진행했습니다. 모래재에서는 춘천 거주하는 친구가 텐틀 가지고 나와 졸음쉼터로 옮겨 새벽2시까지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마지막 날 친구에게 짐을 맡기고 간단한 차림으로 출발해 완성이 가능했습니다. 추석 연휴에 춘천지맥 졸업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춘천지맥 24일 졸업 할려는데, 혹여 경강교로 하셨는데 합수점도 가보고 싶으신 분은 동행 가능합니다.^^
청량리에서 06:17분 첫차로 남춘천에 07:11분 내려, 버스로 소주고개로 가서 출발합니다. 합수점까지 약 21km, 9시간 예상하고요. 강촌에서 버스로 가도 되지만, 강촌에는 ITX가 서지 않아요. 남춘천역에서 다시 강촌으로 되돌아와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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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맥이 지나는 동네
* 홍천군
강원도 중서부에 있는 군으로 홍천강 유역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어 매우 오래 전부터 이 일대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연봉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지세가 동부는 높고, 서부로 갈수록 점차 낮아진다. 동북부에는 백두대간이, 동남부에는 한강기맥이 뻗어내려 해발 1,000m 이상의 전형적인 산지지형을 이룬다. 구룡덕봉(九龍德峰, 1,388m)·약수산(藥水山, 1,306m)·응복산(膺伏山, 1,360m)·두로봉(頭老峰, 1,422m)·오대산(五臺山, 1,563m)·계방산(1,577m) 등이 동쪽 경계를 이룬다. 중부에 아미산(峨媚山, 961m)·백우산(白羽山, 895m)·공작산(孔雀山, 887m), 서부에 매화산(梅花山, 752m)·금확산(金確山, 655m)·종자산(種子山, 581m) 등이 솟아 있고, 서쪽 끝에는 영춘지맥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경기도 가평군과 자연경계를 이룬다. 하계망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홍천강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 유역과 내린천(內麟川)을 중심으로 한 동부 유역이 그것이다. 홍천강은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산에서 발원하여 내촌천이라고 불리면서 흐르다가 북부 중앙의 매봉(800m) 기슭에서 발원한 장남천(長南川)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에 유입한다. 한편 내면 명개리 망월봉에서 발원한 소양강은 계방천이라고 불리며 북서류하다가 자운천 등과 합류하여 내린천이라고 불리면서 인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하천이 일대의 기반암을 침식하여 홍천읍·내촌면·동면·북방면·화촌면을 포함하는 홍천분지를 이루었다. 분지 내에는 5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하천 연안에는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벌력천현이었다가,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벌력천정을 설치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녹효현으로 개칭되어 삭주도독부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 940년(태조 23)에 홍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홍천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동안에도 유지되었다. 홍천의 별호(別號)는 화산(花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춘천부 홍천군, 1896년에 강원도 홍천군이 되었다.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38°선 이남에 있던 인제군의 인제면 등 3개면을 홍천군에 편입했으나, 6·25전쟁 때 인제군이 수복됨에 따라 1954년에 남면과 인제면을 다시 인제군으로 환속했다. 1963년에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풍천리가 홍천군 북방면·화촌면으로 편입되었고,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었다. 한편으로는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에, 남면 상창봉리는 횡상군으로 이속되었다. 1983년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되었고, 두촌면 천치리는 천현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5년 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인제군
강원도 중북부에 있는 군으로 국내 행정구역 중 군 단위에서는 가장 넓은 군이다. 백두대간의 서쪽에 자리잡은 산간지방으로, 강원도 내 800m 이상 되는 높은 산 가운데 약 1/5이 분포해 있다. 군의 북쪽은 휴전선과 맞닿아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으며, 동쪽은 향로봉(1,296m)·설악산(1,708m)·점봉산(1,424m), 서쪽은 대암산(1,304m), 남쪽은 방대산(1,444m)·구룡덕봉(1,388m) 등이 솟아 있다. 이러한 높고 험준한 지세는 이곳에 많은 고갯길을 발달시켜 일찍이 진부령(530m)·미시령(826m)·한계령(1,004m) 등이 동서교통로로 이용되어왔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 만월봉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소양강이 군 중앙을 흐르며, 동쪽에는 북천·한계천, 남쪽에는 방대천, 북쪽에는 서화천 등이 소양강에 합류하여 소양호를 이룬다. 인공호인 소양호가 군 남서쪽에서 북면 원통리까지 이르러 소양호 선착장에서 인제읍 남북리 군축교에 이르는 60㎞의 뱃길이 내설악으로 가는 중요한 수상교통로이나, 유량이 풍부한 하절기에만 이용이 가능하다. 6·25전쟁 후 격전지였던 인제군은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지형상 높고 험준한 고개가 많아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내륙산간에 위치해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희귀 동·식물이 많으며 삼림이 울창하여 주요 산들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제읍 느티나무와 상남면 은행나무는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이다. 내설악을 비롯하여 소양호·백담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오사회현(烏斯回縣) 또는 저족현(猪足縣)인데, 통일신라시대의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희제현(狶蹄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양록군(楊麓郡, 양구)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인제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춘주, 후에 회양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 군현제 개편 때 인제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別號)는 영소(靈昭)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춘천부 인제군, 1896년에 강원도 인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춘천과 강릉 일부를 편입하면서 면적이 확대되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군내면·동면이 군내면으로, 내면일리면·내면이리면이 내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16년에 군내면이 인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15해방 후 북면과 서화면 일원, 인제면·기린면의 일부가 북한에 편입되고 나머지 지역은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6·25전쟁 후 격전지였던 이곳의 대부분 지역이 수복됨에 따라 홍천군에 편입되었던 지역 중 내면을 제외한 인제면·기린면·남면이 다시 인제군에 이관되었으며, 1954년 휴전협정이 성립되면서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미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을 되찾았다. 이때 양구군 해안면이 인제군으로 편입되었고, 홍천군 신남면을 남면으로 개칭하여 인제군으로 복구시켰다. 1963년 해안면과 서화면을 통합했다. 이듬해 1964년 인제읍 귀둔리, 남면 갑둔리, 기린면 상남리, 서화면 해안에 출장소를 개설했다. 1973년에는 춘성군 북산면 수산리, 양구군 남면 상수내리·하수내리가 인제군 남면으로 통합했고, 홍천군 내면 미산1리·미산2리를 기린면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인제군 남면 두무리를 양구군 남면으로, 서화면의 현리·오유리·만대리·후리·월산리·니현리 등을 양구군 동면으로 이속시켰다. 1979년에 인제면이 인제읍으로 승격했다. 1983년 기린면의 상남출장소가 상남면으로 승격되어 상남리·하남리·미산리와 남면 김부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춘천시
대한민국 강원도 중서부에 있는 시로 1949년 시로 승격했으며 1995년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춘천군과 합쳐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강원도 도청소재지로, 강원도의 행정·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호반도시이다. 백두대간의 지맥이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뻗어내려 대부분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소규모 산간곡저평야를 제외하면 평야가 거의 없다. 그러나 중심시가지인 춘천분지에는 후평천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후평동·신동·우두동 일대에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시의 동부에는 가리산(加里山, 1,051m)·매봉(800m)·바위산(858m)·계명산(763m)·죽엽산(竹葉山, 859m) 등이 있으며, 북서부에는 촛대봉[燭臺峰, 1,125m]·화악산(華岳山, 1,468m)의 연봉인 응봉(鷹峰, 1,436m)·가덕산(加德山, 858m)·북배산(北培山, 867m)·토보산(589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남쪽으로는 대룡산(大龍山, 899m)·수리봉(水利峰, 645m)·구절산(九節山, 750m)·금병산(錦屛山, 652m)·꼬깔봉(421m)·좌방산(座防山, 502m) 등이 솟아 있으며, 남서쪽으로 지세가 낮아지면서 경기도와 만난다. 인제군에서 시의 북동쪽으로 흘러들어온 소양강이 중심시가지에서 화천군에서 흘러들어온 북한강과 합류하여 시를 남서방향으로 흐른다. 또한 홍천강은 홍천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시의 남동부를 서류하고 있다. 시 전체에 걸친 풍부한 수계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루어진 경인지방의 산업발전을 위해 신북읍 용산리에 춘천 댐, 천전리에 소양강 댐, 신동면 의암리에 의암댐이 건설되면서 크게 변모했다. 특히 북산면의 경우는 경지면적의 절반 이상이 수몰되었고, 높은 산들은 저수지 가운데의 섬이 되기도 했다. 의암호 가운데에는 중도가 있다. 응봉(應峰, 759m)과 금병산에서 발원한 공지천이 북서쪽으로 흘러 의암호에 유입하며, 대룡산에서 발원한 후평천도 북서류하여 소양강에 흘러든다. 삼국시대에는 먼저 고구려의 영역에 들었다가 뒤에 신라의 세력권에 들었다. 신라는 637년(선덕여왕 6)에 우수주 또는 우두주를 두고 군주를 파견했다. 통일신라시대인 673년(문무왕 13)에 수약주 또는 오근내·수차약으로 개칭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삭주로 바꾸었다가 뒤에 다시 광해주로 고쳤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춘주로 개칭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는 단련사가 설치되고 안변부에 예속되었다. 1018년에 춘주군이 되어 가평군 등 2개군을 속군으로, 기린현 등 9개현을 속현으로 관할했다. 안변부로 통하는 길이 험난하다 하여 1203년(신종 6)에 안양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춘주군으로 바뀌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춘천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춘천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춘천의 별호(別號)는 수춘·봉산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춘천부 춘천군이 되었다. 1896년에는 13도제 실시로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원주에 있던 강원도 관찰부가 춘천으로 이전되어 이후 강원도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20개면이 12개면으로 통합되었다. 이때 부내면·동내면이 통합된 부내면이 1917년에 춘천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46년에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춘천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춘천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춘천시를 이루었다. 1998년 상걸·덕두원·용산·조교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춘천시는 전국 최대의 수력발전지역으로 춘천·의암·소양강 수력발전소가 있다. 경춘선과 경춘국도로 알려진 서울-인제를 잇는 국도를 통해 서울과의 통행이 원활하다. 그밖에 화천-원주, 철원-홍천을 잇는 국도가 지나고, 중앙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어 교통이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소양호·춘천호·의암호 등 3개의 인공호수가 생기면서 내륙수운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소양강 댐에서 양구를 거쳐 인제까지 이르는 소양강 수운은 청평사와 동면의 품안리, 북산면의 여러 내륙지역을 연결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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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조각공원에서 왕복 6차로 44번 도로를 무단횡단 하자니 위험해 보입니다. 군부대 앞에 설치된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건너고 다시 홍천 두촌면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서야 우측으로 철계단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는데...
신남에서 택시를 타고 올라와 횡단보도에 내렸는데 어디가 들머리인지 원, 그냥 선답자 띠지가 있는 곳으로 치고 오릅니다. 군벙커도 숨어 있네요. 철조망이 있고, 이리로도 많이 치고 올랐는지 미끄러지며 급하게 오른 흔적이 많습니다. 거니고개 조각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가마봉의 모습이 보입니다. 홍천군 두촌면과 인제군 남면 어론리의 경계인 거니고개에서 북서향으로 이어지다 660m봉에서 대체로 서향하고 삼군봉(802.3m)에서 우측이 춘천시 북산면으로 바뀌며 남향하여 홍천고개 이후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거니고개 홍천고개 구간은 차량으로 움직이면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며 이름있는 봉우리는 매봉이 유일합니다.
♤ 거니고개(332m)/ 간인현(艮寅峴)/ 건이치(建伊峙)/ 44번 국도/ 휴게소
거니고개는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건남리, 원거리 북쪽에서 인제군 남면 어론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고개로, 인제군과 홍천군의 경계가 된다. 건니고개는 옛날에는 간인현(艮寅峴)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간인(艮 어긋날 간 寅 동방 인)방향 즉, 홍천의 동북방에 있는 고개라 하여 간인현이라 불리었고, 이후 음이화가 되어 간이-건이-건니로 변화 과정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고개 아래에 '건이원(巾伊院)'이라는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건이치(建伊峙)· 건률현· 간인현(艮寅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낮은 고개이므로 사람들이 다니기 편안하여 '넘기 좋기는 거니고개, 놀기 좋기는 합강정'이란 노래도 있다."고 전한다. 합강정은 인제군 인제면 합강리에 있다. 『해동지도(인제)』에 건이치(建伊峙)로 표기되어 있다. 산경표에는 건이산(建移山)으로 나온다.
청정조각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한방 박을까하다가 말았더니 사진이 아쉽네요.^^
♤ 청정조각공원
홍천에서 거니고개를 너머 인제로 들어가는 첫 번째 휴게소인 청정조각공원(인제군 남면 어론리 497번지)에는 성을 테마로한 화양(華洋) 고명규(高明圭)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인제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명규 작가는 1943년 충남 서산에서 한옥을 짓는 도편수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나무 다루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서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고명규 작가의 성을 테마로 한 다양한 작품들은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는데 벌과 꽃, 꽃과 열매 민들레 홀씨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의 탄생과 대자연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서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 592.7m봉/ 삼각점봉(개념도상 593.9m)
능선분기봉인 첫 봉우리(456.9m) 군(軍) 교통호에서 우틀하여 내려선다. 538.4m봉을 직진하고 유해발굴지역을 지나 592.7m봉에서 우틀한다. 이 봉 직전에 T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뚜렷한 길은 두촌면 장남리 장사랑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틀하면 바로 592.7m봉이다.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와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삼각점이 정상을 알리고 있다.
♤ 두촌면 장남리(長南里)
홍천군 두촌면에 있는 마을로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졌으며 마을 뒤로 매봉이 있고, 동쪽으로 장남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 강지나뭇골, 남덕골, 복상나무골, 장사랑이, 큰골 등이 있다. 장남리에는 강원도 문화재인 장남리 3층석탑이 있는데 고려후기 3층 석탑이다.
♤ 680m봉
능선 우측으로 인제군 남면 어론리 절골로 내려서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지맥은 이곳에서 약간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 짤린 통나무가 널려있는 봉우리이다.
♤ 인제군 남면 어론리(於論里)
인제군 남면에 위치한 어론리는 남쪽으로 어론천이 흐르고 동쪽으로 응봉산과 소뿔산 자락이 펼쳐져 있는 산간 오지마을이다. 자연마을로 양골, 새다무리, 속세매기, 신수골, 숯둔 등이 있다. 숯둔은 어론 안 마을로 숯을 많이 구웠다고 전해오며 1988년 강원도 민속 예술 경연대회에 "숯둔골 숯굽기 놀이"를 출전하여 놀이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어론리는 동리 사람들 중에 말다툼이 많아서 어론(於論)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 644m봉(개념도상 660m봉)
위도상으로 춘천지맥의 가장 북단(北端)이 되는 지점이다.(故 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국방부유해발굴 지역이 계속된다.
삼각점봉 갈림삼거리는 다녀올 생각을 못하고 그냥 지나쳤네요.
♤ 778.4m봉/ 삼각점봉 갈림삼거리
갈림길로 춘천지맥은 우틀한다. 등로 좌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삼각점봉(매봉 동봉, 777.2m)을 다녀온다.
- 삼각점 대리석 기둥 옆면에 한문으로 '小三角点'이라 세겨져 있는 연식이 오래된 삼각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매봉고개는 좌측 홍천쪽으로 간벌지대이고 골짜기가 아주 길게 내려가는게 보입니다.
♤ 매봉고개(628m)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와 인제군 남면 수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펑퍼짐한 안부처럼 보이는데 좌측 장남리 방향은 엄청나게 넓은 면적이 간벌로 인해 산 전체가 벌거숭이가 되어있고 골짜기가 가리산 입구까지 내려가는 아주 깊은 골이다. 우측 수산리는 숲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형도상에는 고개로 나오지만 인적이 끊긴 탓인지 고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응봉, 매봉이 주변에 왤케 많은지 원... 신남에서 거니고개 오르는데 군인아파트 벽면에도 응봉이라고 써있더군요.^^
♤ 740.5m봉(개념도상 754m봉)
국가정보원 지도상 매봉이다. 선답자들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약간 트인다.
- 지맥은 우틀한다.
다시 올라선 지점으로 뒤돌아가 지맥에서 우측으로 약 40m 벗어나 있는 매봉 정상을 다녀와야 합니다. 군 삼각점이 있는 곳은 짝퉁 매봉입니다. 정상에서 북쪽 방향이 조망된다면 도솔지맥 봉화산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지점일텐데 잡목으로 인해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곳입니다.
삼군봉인 매봉은 소양강 건너 양구군과 제일 가까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 매봉(鷹峰, 802.3m)/ 삼군봉(홍천군, 인제군 → 춘천시)/ 인제를 벗어나 춘천시 경계에 진입...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와 인제군 남면 수산리, 그리고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춘천지맥에서 우측으로 조금 벗어나 있다.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따라 산꾼들이 다닌 흔적을 찾으면 깨진 삼각점이 있는 매봉 정상을 만나볼 수 있다. 거니고개와 홍천고개 사이 유일하게 명칭을 부여받은 산이다. 인제와 춘천의 경계는 북쪽 수산리 수산재 방향으로 보내고, 춘천지맥은 우측으로 행치령에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온 인제군과 작별하고 춘천시 구간으로 접어든다. 좌측은 계속 홍천군이므로 지맥은 삼군봉부터 우측으로 춘천시 북산면, 좌측으로 홍천군 두촌면을 가르며 남향하게 된다.
국가정보원 지도상 북쪽으로 약 40m 떨어진 곳에 매봉(799.5m)을 표시하고 있다. 4등삼각점(판독불가, 국토지리원자료에 내평 419)이 있다. 군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지맥은 급좌틀하여 내려선다.
♤ 689.7m봉(개념도상 700m봉)
간벌된 능선을 따라 곡예하듯 걷는데 앞으로 걸어야할 등잔봉, 새덕이봉, 가리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689.7m 봉에 오르면 등로 아래쪽 멀리 두촌면 원동리가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조덕골이다.
- 거니고개에서 약 10.4km 지점이다.
♤ 홍천군 두촌면 원동리(遠洞里)
원동리는 대부분 지역이 완만한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진 농촌마을로 마을 중앙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마을 뒤로 길미봉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다릿골, 대대울, 문봉리, 삼거리, 조덕골이 있다.
♤ 텃골재(659m)
밋밋한 잘록이 안부 능선을 지나는데, 개념도 상 텃골재다. 좌측 아래로 두촌면 원동마을 뒷쪽 산 능선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재 이름인데, 밋밋한 능선인데다 좌측은 온통 벌목지대라 고개 분간이 되지 않는다.
♤ 706.2m봉(개념도상 708m)/ 매봉 남봉
매봉에서 남쪽능선으로 연결되어 약 2.5km 지점에 위치한 육산이다.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와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특별한 특징이 없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산이다. 자그막하고 펑퍼짐한 공터로 지맥길은 좌향인데, 이 봉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데 북서쪽은 무애마을로 내려서고 서쪽은 지장골로 내려서는 두 갈래 갈림길이다.
- 등로 아래로 텃골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눈을 들면 멀리 한강기맥 마루금이 보인다.
♤ 713.3m봉(개념도 상 714.1m봉)/ 삼각점봉
이 봉우리도 조교리와 장남리의 경계이다. 지맥은 좌틀하여 급경사로 내려서서 홍천고개로 향한다.
저는 여기까지 가지 못하고, 우측 아래 도로가 보이는 지점으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홍천고개로 올랐습니다.
♤ 677m봉 갈림길
홍천고개 내려서기 직전에 넓은 공터가 나오고 원래 지맥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 가면 이동통신중계탑이 있는 677m봉이 나오지만 그곳은 도로 개설로 인한 홍천고개 급경사 절개지이면서 낙석방지 펜스때문에 내려설 수 없으므로, 좌틀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선다.
- 시그널이 부착되어 있다.
날머리 도로변 옹벽 위에는 검정 차양막과 원형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아주 조심조심 원형철조망을 밟고 도로에 내려서서 우측 홍천고개로 약간 이동하여야 합니다.
♤ 홍천고개(574m)/ 홍천현(洪川峴)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원동리와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인데 절개지가 상당하고 구절양장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원동고개라고 부른다. 1917년 발행된 고지도에 홍천현으로 표기되어 있다. 홍천고개 우측으로 내려가면 조교리가 나오는데 행정구역은 춘천시북산면 조교리이지만 춘천으로 나갈려면 소양강에서 뱃길을 이용해야 하기에 홍천고개에서 두촌면으로 가서 홍천IC에서 춘천으로 가는게 훨씬 빠르다. 전에는 배를 타고 조교리에 접근하여 바위산(858m)-매봉(800.3m)-매봉남봉(708m) 산행을 하였으나 2000년부터는 홍천고개를 확포장하여 홍천 두촌면에서 조교리까지 2차선 도로가 개통되어 버스와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다.
- 춘천시 북산면 교통표지판 좌측 옹벽 끝 전봇대 옆 숲길을 들머리로 능선으로 올라섭니다. 반대편 옹벽 끝에서 올라도 되고...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가리산은 세 개의 산봉우리가 뾰족하게 암봉으로 튀어 나와 멀리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보통은 홍천고개서 가리산-늘목고개-가락재터널갈림길까지 약 18km를 한번에 주파하는데 짧게 늘목고개까지 단축하여 주행하기도 한다.
♤ 680.9m봉/ 교통호봉
첫 봉우리인 622.1m봉을 지나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차츰 고도를 높혀간다. 6.25때 구축한 진지일려니... 교통호 흔적이 파인 680.9m봉에서 좌틀로 약간 내려서니 아니나다를까 나무 등걸에 6.25전사자 유해발굴 표지를 매단 지역이 계속 이어진다.
♤ 등잔봉(833.2m)/ 삼각점봉
등잔봉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물노리와 홍천군 두촌면 원동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춘천 소양댐 선착장에 닿으면 동쪽으로 두 산이 보이는데 정면으로 물고기 머리처럼 솟아 오른 산이 가리산이고 그 옆에 병풍처럼 서 있는 산이 두루봉(545m)이다. 등잔봉은 가리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산으로 홍천고개에서 남쪽으로 펑퍼짐하게 버티고 서 있는 산이다. 정상 주변은 넓고 펑퍼짐하나 잡목으로 빽빽하다. 표식을 인식할 수 있는 삼각점과 코팅지와 시그널이 보인다. 초원지대로 인접해 있는 새득이봉이나 가리산이 뾰족한데 비해 둥그스름해서 넉넉해 보인다. 하산은 밤가시 마을로 하는데 예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가시 마을이라 불렸다는 이름의 유래가 흥미롭다.
- 우측 진행방향 앞쪽으로 가리산이 뾰족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 등골산갈림능선
지맥길은 우틀로 이어지고, 좌측 능선은 등골산(883.4m)을 지나 가리산휴양림(2.5k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등골산은 춘천지맥 좌측으로 1.3km 벗어나 있다.
- 갈림능선의 위치표시판(가리산 2-3지점/ 국가지점번호[라사/ 4164 / 8708])과 이정표(↓원동고개 4.0km, ←휴양림 2.5km, 가리산 2.2km→)이 서있다.
전방에 보이는 봉우리를 보고 새덕이봉임을 직감했습니다. 힘 한번 쓰고 새득이봉에 올라서니 이후론 가리산까지 탄탄대로네요.
♤ 새득이봉(937.2m)
새득이봉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물노리와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경계선상의 가리산과 맥락을 같이하는 산이다. 등골산 갈림능선에서 약간 더 올라 가장 높은 봉우리를 지나는데, 아무런 표지도 없어 무심코 걷다가 표지기를 놓치기 쉬운 곳이다. 봉우리 옆에 나무의자가 있다. 새덕고개 위에 있으며 멀리서 보기에는 꽤나 뾰족한 봉우리이나 정작 정상은 가리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임도에 있어서 봉의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워낙 산이 깊다보니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않고 또 비교적 덜 알려져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지명이다. 새득이봉은 원시청정림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환경이 오염되지 않아 어디를 가나 빽빽한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 정상은 안타깝게도 나무들이 우거져 조망이 그리 좋은 편은 못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나마 제법 웅장한 암골미를 드러낸 서남쪽 가리산 정상 풍광은 일품이다.
가삽고개 직전 야영지로 안성맞춤인 잘록이 안부 넓은 공터를 지나고, 가삽고개에서 20여분 진행하면 거대한 암봉을 만납니다.
♤ 가삽고개/ 평내현(平內峴)
가삽고개는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에서 춘천시 북산면 물노리로 넘나드는 고개다. 국토정보원 지명 유래에는 “홍천군 두촌면을 넘어 다니는 고개로 평내고개라 부름”으로 기록해 놓고, 고시 지명은 가삽고개다. 고지도에는 평내현(平內峴)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가삽이란 지명은 가리산 아래 있는 마을 이름인 가협리(加峽里)에서 가져온 이름이라 한다.
- 이정표( ←가리산 0.9km, 등골산 5.2km/ 원동리 6.0km→)와 등산안내도 그리고 고사목으로 만든 나무의자가 있다. 이정표에는 엉뚱하게 휴양림쪽 0.3km 가삽고개로 해두었다.
♤ 물노리(勿老里) 갈림길/ 소양호선착장까지 2시간
춘천시 북산면에 위치한 물노리는 소양강다목적댐이 있는 호수 주변의 산간마을로 북쪽으로 소양호가 위치하고, 물로리는 가리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양지말, 장촌말, 가삽, 참배나무골, 째작나무골 등이 있다. 가삽은 가협리(加峽里)라고도 부르며, 가리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데서 유래되었다. 째작나무골은 이 마을에 자작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고 하며 물로리는 무로골 또는 무로곡(無老谷)이라 부른다. 물노리갈림길에서 무로골로 내려서면 2시간의 계곡산행으로 물노리마을 소양호선착장에 도착하며 등로는 상당히 뚜렷하다. 배시간이 맞지 않으면 물로리에서 민박을 구해야 한다. 마을에 구멍가게가 있다.
♤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勿老里)
물로리는 예로부터 주변경관이 뛰어나고 공해가 없는 자연 속의 삶으로 인해 늙지않는 골짜기라 하여 '무로골', '무로곡(無老谷)'이라 하였던 것을 “아니 勿”로 고쳐 勿老里라고 하였다. 현재도 장수마을로 통한다.
물로리 갈림길에 한 천자 이야기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건너편 참나무에 '가리산→물노리 선착장→댐' 안내판이 달려있습니다. 춘천 가리산 '천자묘'에 관한 전설이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데, 도솔지맥을 마치신 분들은 우두산 소슬묘에 얽힌 전설도 유사하다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안내판과 약간 다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한 천자 이야기
춘천의 가리산 중턱에는 "천자묘"라 불려오는 무덤이 있다. 소양호변에 자리한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는 한때 매우 번성했던 마을로, 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에는 400호 안팎의 가구가 모여 살던 면소재지로 춘천에서 양구, 인제로 들어가던 길목이었다. 이제는 아홉 가구만 사는 쓸쓸한 산골마을로 쇠락한 이 마을에서 천자묘 이야기는 비롯된다. 옛날에 한(漢)씨 성을 가진 머슴이 이 마을에 살았다. 하루는 두 명의 스님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주인은 방이 없으니 머슴방이라도 괜찮으면 자고 가라고 했다. 방에 들어간 스님들은 머슴에게 계란을 구해달라고 했다. 머슴은 스님들이 고기를 못 먹으니 달걀이라도 먹으려는 줄 알고 계란을 삶아다 줬다. 그날 밤 머슴은 잠결에 스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들은 가리산에 있다는 명당 터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가리산에 있는 묘 터에 계란을 파묻고 축시(丑時)에 부화해 닭이 울면 천자가, 인시(寅時)에 울면 역적이 날 자리라고 했다. 엿듣는 처지라 머슴은 차마 삶은 계란이라는 말을 못했다. 이튿날 머슴은 그들을 몰래 뒤 따라 갔다. 소양강을 건너 물로리로 들어가더니 산세가 좋은 곳에 이르러 계란을 파묻었다. 그들은 밤을 지새며 닭이 울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축시는 커녕 인시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님들은 역적도 천자도 아니 나겠다. 닭이 축시에 울어도 금으로 관을 쓰고 황소 100마리를 잡아 제를 지내야 하니 웬만한 사람은 묘를 쓸 수도 없을 것이라며 산을 내려갔다. 집에 돌아온 머슴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을 그곳에 묻기로 했다. 천자가 되든 역적이 되든 종놈의 신세보다는 낫겠다 싶어서였다. 그는 꾀를 내어 금관(金棺) 대신 노란 귀리 짚으로 시신을 싸서 묻었다. 하지만 제 몸보다도 귀한 황소를 잡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런데 무덤을 다 쓰고 쉬고 있자니 몸이 가려웠다. 머슴은 옷을 걷고 이를 잡기 시작했다. 토실토실한 이를 100마리도 넘게 잡았다. 황소 대신 황소만한 이로 제를 지낸 셈이었다. 며칠이 지나 밤중에 뇌성벽력이 치는데,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을 싸서 빨리 집을 떠나라는 소리였다. 머슴은 처자를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갔다. 얼마 후 폭우에 내평강이 마을을 치고 나가 새로운 강을 만들었다. 목숨을 구한 머슴은 북으로 발길을 재촉한 끝에 중국에 닿았다. 그때 중국에서는 천자가 죽고 후대가 없어 새 천자를 구하고 있었다. 관리들이 짚으로 된 북을 매달아 놓고 오가는 이들에게 쳐보라고 했다. 천자만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머슴이 북을 쳤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관리는 머슴의 어린 아들더러 너도 사내니 한번 쳐보라고 했다. 아들이 북을 치자 "쿵"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국 머슴의 아들은 천자에 올랐다. 이 이야기는 물로리의 박치관씨(65)가 구술한 것이다. 그 뒤 한씨 머슴이 살던 마을은 "한터"가 되고, 그 묏자리는 "한천자(漢天子)묘"가 됐다. 그러나 내평리 한터마을은 수몰됐고, 지금은 한터라는 지명만 지도 위에 겨우 남아 있다. 중국에서 그 묘를 단장하려고 왔지만 산이 깊어 묘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천자묘는 물로리의 양지말에서 고깔바위 앞을 지나 연국사에 닿은 뒤 가리산 정상쪽으로 10분쯤 더 올라간 가리산 중턱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우물 안에 들어온 것처럼 산들이 주변을 에워쌌는데, 묘 앞쪽으로 산자락이 열려 있다. 묘는 뱀꼬리처럼 능선 자락이 끝나는 곳에 앉아 있다. 무덤 안에는 널다란 바위가 신기하게도 누워있는 사람 형상으로 파여 있어 자연스레 석곽 구실을 한다. 동네사람들은 날이 가물고 마을에 흉한 일이 있을 때 몇 차례 묘를 파본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시신들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묏자리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래 묻어둔 시신들이었다고 한다. 천자묘 전설은 삼척에 있는 준경묘 전설과 비슷하다. 준경묘는 이성계의 4대조인 이안사가 그의 부친을 모신 곳. 이안사는 왕손을 얻게 될 명당터라는 스님의 말을 엿듣고 금관 대신에 보리짚을 쓰고, 100마리 황소 대신에 흰소(白牛)를 제물로 썼다. 천자묘는 아직도 신성하게 여겨져 개고기나 비린 고기를 먹고 이곳에 오면 화를 당한다는 속설이 있다. 지금도 해마다 천자묘를 가장 먼저 벌초한 사람은 산삼을 캔다는 얘기가 있어 심마니들이 성지로 여긴다. 그 때문에 천자묘는 떼가 자랄 날이 없다.
정상 등산 안내도와 위치표지판과 이정표(←1봉 0.3km/ 약수터 0.3km, 1·2·3봉 0.1km↗, 휴양림 3.2km↘)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줄을 잡고 계단을 밟고 오른다.
♤ 갈림길
좌측은 2, 3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정상으로 가는 우회 등로다. 위치표시판과 이정표(←1봉(정상), 2봉·3봉↗, 휴양림(하산로)↘)가 서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2·3봉 방향으로 오른다. 우측으로 가더라도 1봉으로 갈 수는 있다. 갈림길에서 능선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가리산 정상이 우뚝 솟아있고, 2봉으로 가는 등로 앞에 암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제 2봉은 나중 나올 때 둘러보기로 하고 우회하여 진행하면,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곳을 지나고 제3봉으로 오르는 암릉길을 로프를 잡고 오른다.
갈림길에 배낭을 놓아두고 2봉을 지나 3봉에 올랐다가 다시 뒤돌아 나옵니다.
♤ 가리산2봉
전위봉에서 바라보는 가리산 2봉은 큰바위 얼굴이라고 부르는데 자세히 보면 진짜 그렇다. 동쪽으로 가리산 휴양림 계곡, 인제 방향이 조망되고 서쪽으로 진행할 기맥 능선과 멀리 연엽산과 대룡산 방향이 조망되며 소양호도 조망된다.
- 제2봉에 올라 가리산 정상(1봉)을 건너다 본다. 안만봉이란 음각 글씨가 보이는데, 봉우리 이름인지, 글씨를 새긴 사람 이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 큰바위 얼굴의 유래
가리산 큰바위 얼굴은 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인 조선조 영조대왕 후반기, 이곳 가리산이 소재한 두천면 천현리에 △씨 성을 갖는 ○○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달하여 공부를 잘했고, 틈틈이 가리산 정상에 올라 휴식과 책을 읽고 호연지기를 키웠으며 스무살 되던 해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판서까지 오르는 벼슬을 했다고 한다. 그후 △판서가 앉아서 공부하여 호연지기를 키우던 가리산 제2봉의 암벽이 조금씩 사람 얼굴을 띠며 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산 큰바위 얼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리산 큰바위 얼굴의 소문이 전해지면서 지역에 사는 많은 청년과 선비들은 △판서가 했던대로 가리산 제2봉에 올라 학업과 휴식과 호연지기를 키우면서 많은 이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을 둔 학부형들이 가리산 큰바위 얼굴을 찾아 기도하면 수능대박을 얻는다는 큰바위 얼굴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형들이 가리산 제2봉에 올라 큰바위 얼굴에 전하며 기도하는 진풍경 속에 많은 등산객이 찾는 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3봉에서 사명산을 잡아볼까 하고 야전? 화장실 아래로 조금 내려가 보았는데 조망이 트이질 않습니다.
♤ 가리산3봉(북봉)
현위치표지판과 이정표(제3봉/ 제1봉 100m, 제2봉 300m↓)가 있는데, 이정표의 제2봉 거리가 약간 이상하다.
♤ 가리산(加里山, 1050.7m)/ 삼면봉(춘천시 북산면, 홍천군 두촌면 → 화촌면)/ 주봉/ 1등삼각점
가리산은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化村面)과 두촌면(斗村面), 춘천시 북산면(北山面)이 갈리는 삼면봉이다. '강원 제1의 전망대'로 손꼽힐 만큼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올망졸망 이어지는 육산의 능선상에 우뚝 솟은 바위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골짜기 깊숙이 코발트빛의 소양호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도솔지맥 줄기가 펼쳐지며 사명산과 죽엽산을 찾아 볼 수 있다. 동쪽으로는 지나온 춘천지맥 뒤로 북에서 남으로 향로봉에서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이 파도 일렁이듯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야 할 방향 멀리 뾰족한 연엽산과 그 우측으로 녹두봉과 대룡산이 조망된다. 이 산의 동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水系)는 자은리 부근에서 여러 수계를 합하여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강(洪川江)으로 흘러들어 남서쪽으로 흐르며, 두촌면의 역내리를 지나 철정리에 이르러 서석면과 내면의 경계인 응봉산(鷹峰山, 1,103m)부근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내촌천(乃村川)과 합류하여 화양강(華陽江)을 이룬다. 북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는 물노리에 이르러 소양호로 흘러들고, 서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도 품안리에서 역시 소양호로 흘러든다. 산이름인 가리는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둔 큰 더미'를 뜻하는 순우리말로서, 산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고깔 모양으로 생긴 데서 유래한다. 멀리서도 솟은 봉우리가 뫼 산(山)자처럼 세개의 암봉으로 된 가리산은 남쪽에서부터 1,2,3봉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1봉이 가장 높은 정상이고 1등삼각점이 있다. 1995년 가리산 자연휴영림이 개장되어 통나무집•야영장•체육시설 등 편의시설이 있다. 휴양림 입구에는 높이 8m의 용소폭포가 있고, 주변에 스키장•온천•수타사•팔봉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홍천군의 소개처럼 강원도를 가장 넓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그 말이 틀림없을 정도로 전망은 뛰어나며 뾰족한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천군 가리산 휴양림안내에는 "석간수가 샘솟는 신비한 암봉" 가리산 정상(1봉) 바로 아래 석간수 샘터가 홍천강 발원지라고 소개를 하는데 홍천강의 발원지는 춘천지맥 분기봉인 청량봉 아래 서석면 생곡리에 있는 미약골 골짜기가 맞다. 정상 아래 바위틈에서 석간수가 솟아나는 모습은 기묘하다.
- 가리산 정상(1봉)에 올라서면 초입에 위치표지판과 이정표, 그 옆에 1등삼각점(내평 11/ 1988 재설)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석과 해병대 가리산전투기념비가 있다.
♤ 가리산이 품은 전설
가리산은 산신이 여산신인데 부끄럼을 타서 봉우리 세 개 중 하나는 꼭 가린다고 해서 가리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하는 전설도 전해진다. 옛날에 높은 벼슬을 하는 양반집에 외동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그녀는 조상신을 찾아갔다. “꿈을 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산신이 되어 꿈을 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조상신이 “아름다운 산은 가리산이니라. 가리산 산신으로 가거라.”하고 보내주었다. 처녀로 죽은 딸은 가리산 산신이 되어 골짜기의 물과 바위와 나무와 풀, 그리고 산에 사는 온갖 짐승들을 자상하게 보살펴 주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다른 양반집의 아들이 죽어서 가리산으로 왔다. 그런데 와보니 이미 산신이 좌정해 있지 않은가. “저의 아버님께서 가리산으로 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제부터 이 가리산은 제가 다스리겠습니다.”라고 총각신이 말했다. 처녀신은 어이가 없었다. 다른 산으로 가라고 했다. 두 신은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다툼은 점점 거세어졌다. 그러자 가리산의 정기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물은 썩고, 나무는 마르고, 풀은 시들고, 짐승들은 포악해졌다. 약한 짐승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숨어 지내야 했다. 그 아름답던 가리산이 점점 황량해져 가는 것을 보면서 가리산 처녀신은 가슴이 아팠다. 처녀신이 총각신에게 말하였다. “가리산의 초목과 짐승들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저들의 꼴을 차마 못 보겠습니다." 총각신은 “그러니 어찌하자는 말씀이신지?”라고 물었다. 그러니 처녀신은 “당신도 결혼하지 못한 몸, 저도 결혼하지 못한 몸. 이러지 말고 우리 결혼합시다. 우리가 내외가 되어 이 가리산을 사이좋게 나누어 다스리면 저 초목과 짐승들이 생기가 돌 것 같습니다.” 했다. 총각신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날씨 좋은 날을 가리어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부가 신랑에게 말하였다. “말을 타고 앞장서시지요. 저는 가마 타고 뒤따르겠습니다.” 신랑은 말을 타고 행복에 겨워 건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골짜기의 물과 바위와 나무와 풀과 짐승들이 모두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었다. 신랑이 축하를 받으며 흥에 취하여 한참을 가다 보니 뒤따라와야 할 신부가 보이지 않았다. 신랑이 뒤로 돌아서서 멀리 바라보았더니 멀리서 신부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왕 나서신 길, 당신은 그대로 구멍동으로 넘어가십시오. 저는 이쪽 가리산 골짜기로 내려가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랑은 구멍동의 신이 되었고, 신부는 가리산을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가리산 산신은 여신이고, 구멍동의 신은 남신이다. 가리산 산신은 여신이라 부끄러워서 세 봉우리를 다 보이지 못하고 두 봉우리만 사람들에게 보인다고 한다. 여신과 남신은 일 년에 한 번씩만 만난다고 한다. 지금 가리산에는 그때 여신과 남신이 결혼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선 각시바위와 신랑바위가 있다. 각시바위는 각시가 머리를 숙여 절하는 모습이고, 신랑바위는 사모관대한 모습이다. 대례상은 장씨 또는 박씨 묘이고(아기장수설화가 있음), 말 바위는 신랑을 태운 듯한 모습이고, 가마바위는 엎드려 있어 신부가 타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또 여기에 있는 무쇠말잿등은 신랑이 말 타고 넘어간 고개이고, 가마봉은 신부가 가마타고 넘어간 봉우리이다.
♤ 해병대 가리산전투기념비
6.25전쟁 당시 가리산은 중요한 전술 요충지였다. 춘천,홍천,인제를 모두 관제할 수 있는 고지로 당시 북한군 6사단 1,500명이 이곳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군 9군단은 대반격을 위해 가리산을 탈취해야 했다. 그래야 양구, 화천으로 돌파하여 원산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해병 1연대는 중과부적의 병력이지만 해병정신으로 7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가리산을 탈환하였다. 가리산전투는 1951년 3월 21일 가리산 능선 975고지 탈환작전에 나선 해병대 1, 2대대는 적의 의표를 찌르는 야간 공격을 감행해 큰 전과를 올렸다. 홍천 가리산 전투는 32명이 전사하는 치열한 전투에서 적군 121명을 사살하고 완전히 몰아내었다. 미 해병대 한국전쟁 공식 전사(戰史)는 ‘피의 길, 승리의 길, 영광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가리산 전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미 해병 제1연대와 제7연대는 각각 독립작전을 실시해 계획된 목표를 점령했고, 한국 해병 제1연대는 3월 23일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미 해병사단의 중요 목표인 975고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는 23일과 24일 새벽까지 계속됐는데 총탄과 수류탄이 난무하는 생지옥 같은 백병전이 전개되자, 한국 해병대는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감투정신으로 중공군 아성을 쳐부수고 끝내 고지를 점령하고 말았다.〉 이 때 한국군 지휘관은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이었다고 한다. 밀고밀리는 치열한 고지전이 계속되었는지 가리산에서 전투 기록이 또 있다. 1951년 5월 15, 16일 이틀 동안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로, 미 제10군단이 이 전투에서 중공군의 홍천 방면 진출을 저지해 결국 공세가 역전되면서 이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이 원산, 장진호까지 반격에 나서게 됐던 6·25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다.
♤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泉峴里)
가리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는 가리산의 동쪽 자락에 위치한 산간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평내, 새말, 모로골, 경수, 장여울 등이 있으며 장여울은 홍천강의 긴 여울 옆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장탄(長灘)이라고도 부른다. 평내는 마을 앞에 큰 냇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평천(平川)이라고도 부르며 천현리는 섬재고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섬재 또는 천치(天峙)라 하다가 천현리가 되었다.
가리산 정상 맞은편 봉우리에 강우레이다가 보입니다.
♤ 남쪽 무쇠말재를 지난 977.9m봉의 '홍천 가리산 강우레이더관측소
홍천 가리산 강우레이더관측소는 한강 유역의 정확한 강우량 예측을 통해 북한강, 남한강 등지에 신속・정확한 홍수예보를 발령해 홍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2016년 5월 전국에서 6번째로 조성되었는데, 사업비는 총 240억 원이 들었다. 관측소 높이는 54.5m(레이돔 높이 10m제외)이다.
♤ 홍천무쇠말단맥
홍천 무쇠말단맥은 홍천기맥 가리산 정상에서 동남으로 홍천군 화촌면과 두촌면의 경계를 따라 무쇠말재-691.3m봉-물골임도 -381.2m봉-큰말고개-330.4m봉-44번국도 말고개를 지나 화촌면 성산리 섬말 인근 야시대천과 홍천강이 만나는 곳에서 끝이 나는 약 1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무쇠말재의 전설
옛날 이 일대가 큰 홍수가 나서 물바다가 되었을 때 무쇠로 배터를 만들어 배를 붙들어 놓았다 하여 무쇠말재라 하는데 그 당시 모든 사람이 다 죽고 송씨네 오누이만 살아 남았다 한다.
석간수를 뜨러 계단공사를 하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150m 내려가니 공사하는 인부들이 마시는 음료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죄송스럽지만 시간이 촉박한지라 150m를 절약하기로 하고.....
정상석 뒤쪽으로 가보면 천길 낭떠러지이다. 거기서 좌우를 살펴보면 좌측으로 능선이 보이는데 그 능선을 따라야 한다. 정상석 맞은편에 있는 일반 하산 등로를 잠시 따르다 우측 암릉길이 지맥 능선과 이어지는 바른 등로다. 이때는 계속 석간수를 뜨러 아래로 내려가면 안되고 우측을 바라보며 40m쯤 내려서면 띠지가 보인다. 우측 능선을 넘어서서 내려서야 한다. 가리산 정상에서 일반등산객들은 좌측 전망대 바위에서 암릉으로 떨어져서 암릉 계곡을 따라 가리산 휴양림쪽으로 내려가지만 지맥 산꾼들은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꺾어져 내려서야 하는데 독도에 유의해야 할 구간이다. 정상석에서 좌측으로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암릉계곡으로 내려서면 선답자들 시그널이 보인다. 암릉구간을 우측으로 우회한 다음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선다. 암릉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마사토 재질의 암릉사이를 곡예하듯 내려서는데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다. 909.6m봉을 지난 갈림길에서 우틀하여야 한다. 30여분 내려서면 암릉갈림길이 보이는데 가리산 정상 아래 암봉으로 연결되는 우측 지맥길 방향으로 선답자 흔적이 보인다. 다시 글씨가 지워진 흰 표지판이 달려있는 능선 안부에서 직진 암릉구간을 버리고 선답자들 시그널이 있는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해는 저물고 소는 달아나고 나그네 똥줄은 타고.... 위험구간을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야 하겠기에 서둘러 내려섰더니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네요. 낮이라면 960m봉 잠깐 올랐다 내려오는건데 그냥 우틀합니다.
♤ 960m봉/ 삼면봉(북산면, 홍천군 화촌면 → 춘천시 동면)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지는 정면 바로 위 봉우리가 삼면봉인 960m봉이다. 좌측이 홍천군 화촌면에서 춘천시 동면으로 바뀌어, 지맥길은 이제부터 동면과 북산면을 가르며 서쪽으로 이어진다.
어느만큼 내려왔을까... 목이 말라 숨한번 돌리고 갑니다. 날은 어둡고 좌측 아래로 윗광산마을 불빛이 보이네요.
♤ 광산골 임도
등로에서 빠져나오니 마치 골프장에 나온 것처럼 넓은 잔디밭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넓은 임도로 지도상에 나오는 광산골 임도이다. 우측은 춘천시 북산면 물노리 방향 소양강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춘천시 동면 품걸리 윗광산골이다. 광산골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면 전기와 전화선이 지나는 전봇대가 있고 5분여 고도를 높이면 물안봉이다. 물안봉부터 춘천시 동면과 북산면의 면계를 떠나 온전히 춘천시 동면으로 진입하여 능선을 걷는다.
- 광산골 임도가 끝나는 지점으로 지맥길은 직진 숲길이다. 이후 5분여 고도를 높이면 물안봉이다.
물안봉에서 북산면과의 면계는 북쪽으로 흘려 보내고, 온전히 춘천시 동면 안으로 들어서서 남향하여 늘목고개 이후까지 이어집니다.
♤ 물안봉(781.9m)/ 삼각점봉/ 북산면-동면 → 동면
춘천시 북산면 물노리와 동면 품걸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가리산 서쪽 능선상 봉우리로 정상은 숲이 무성하고 국립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안내판과 4등삼각점 (내평 427/ 2005 복구)이 있을뿐 별다른 특징이 없다. 개념도상에는 지명은 없고 781.9m봉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소양강변 선착장이 있는 물노리에서 은주사 방면 물안골로 들어와 주능선에 붙어 우측으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봉이다. 물노리 안쪽에 있는 봉우리라 물안봉으로 불르고 있다. 춘천지맥과 겹쳐 많이 이용 되고 있다.
- 물안봉 정상에서 무성한 철쭉군락지를 빠져나오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희미한 등로가 지맥길이다. 우측으로 선명하고 넓은 등로를 따르면 은주사를 내려가는 알바이다.
♤ 춘천시 동면 품걸리
본래 동산외일작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품곡리 일부와 말걸리, 판향리를 병합하여 품곡리의 품자와 말걸리의 걸자를 따서 품걸리가 되었다. 가리산 서남쪽 아래 해발 650m~700m에 위치한 지역으로 광산골, 삼년골, 늘목마을 등이 있으며, 예전에 이곳에 중석(텅스텐)광산이 있어 광산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생업으로 호박농사와 산나물 채취를 주로 하고 있다.
♤ 740m봉
740m봉 잣나무군락지를 지나 늘목고개 0.4km 전에 잡풀이 무성한 폐헬기장을 만난다. 등로 좌측 아래로 춘천시 동면 품걸리 삼년골마을이 보인다. 능선에서 내려서지 말고 잡풀이 우거진 능선으로 직진 등로를 찾아 따라야 한다.
늘목고개에 이르니 아래 마을에서 개짖는 소리도 들리고, 새벽에 일어나니 닭 우는 소리도 들리고....
가락재까지 야간행군으로 가기에는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에 도로 옆에 은박 메트리스를 깔고 눕습니다. 옷을 껴입고, 침낭커버로 들어가 은박메트리스 한쪽을 잡아당겨 둘둘 마는 식이죠. 핸드폰, 스틱, 랜턴은 꼭 손이 가는 곳에 두어야 합니다. 새벽 네시쯤에 자동차가 올라오길래 차에 깔리지 않을려고 벌떡 일어났더니 운전하시는 분도 깜짝 놀랐다고 하네요. 약초꾼인데 곧바로 차 시동을 끄고 한숨 주무시더군요.
♤ 늘목고개(567m)/ 판항현(板項峴)/ 양회임도
시멘트 포장도로인 늘묵고개는 춘천시 동면 품걸리 늘묵마을에서 큰거리로 넘어가는 Y자 형태의 고개로 고지도에는 판항현(板項峴)으로 표기되어 있고, 판창고개로도 불린다. 늘목고개는 깊은 산중의 고갯길 정상이지만, 어엿한 로터리를 이룬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우측 모두 춘천시 동면 품걸리에 속하는데 한쪽은 홍천군 두촌면의 야시대리(성산리) 쪽을 향해 열려 있고, 한쪽은 춘천시 동면 신이리 쪽으로 열려 있다. 품걸2리에서 윗광산골임도로 올라 북산면 물로리로도 이어진다.
고개 좌측 차량통행 차단봉이 닫힌 임도 우측, 입산통제 안내판 옆 들머리로 진입하여 오르막 능선을 1,2,3,4단으로 오르는데 가리산 방향에서 동이 터오네요.
♤ 887.1m봉(개념도상 900m봉)/ 춘천시 동면 - 홍천군 화촌면(化村面) 경계와 다시 만남.
물안봉에서부터 춘천시 동면 품걸리 내를 진행해 온 지맥은 이 봉에서 홍천군 화촌면(풍천리)을 다시 만나 좌 화촌면, 우 춘천시 동면을 가르며 우틀(북서서)하여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선다. 이후 지맥의 우측은 대룡산 직전까지 동면과 함께한다.
- 늘목고개에서 2.5km 지점이다.
♤ 벙커고지(Bunker Hill) 전투
1951년 5월 중공군은 제 2차 춘계대공세 중 홍천-인제라인을 공격하다, 주공격선 우측의 미 제2사단 38연대 방어선으로 공격을 전환하였고 다시 격렬한 저항에 부딪친 중공군은 미 제2사단 제38연대 좌측의 제3대대가 위치하고 있는 800고지를 향하여 인해전술을 사용하여 공격하였다.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3일에 걸친 "벙커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은 5,000명이 전사하였고 홍천 방면으로 진출에 실패하여 공세에서 수세로 전세가 변하였다. 바야흐로, '벙커힐'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5월17일 어둠이 지면서, 24개의 벙커에 몸을 숨기고 있는 3대대의 전초중대인 킹중대 병사들 귀에 중공군의 뿔피리 소리가 차가운 산골짜기의 안개를 뚫고 들리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제일선 철조망 부근 지뢰가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중공군들은 지뢰가 상대적으로 적게 매설된 급경사면을 타고 고지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킹중대가 일제사격을 개시하고 고지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중공군과 미군이 교차사격하는 총성과 고함소리가 전 고지위를 뒤흔들었으며, 전투경험이 부족한 킹중대장 '브로넬대위'는 혼란에 빠져, 중대에 퇴각명령을 내렸다. 이에 헤인즈중령은 퇴각중인 중대원에게 원위치로 복귀할 것을 명령하고, 고지위에 있는 중공군을 몰아내기 위해 예비소대병력을 고지위로 투입시켰다. 헤인즈중령은 4.2인치 박격포 소대에게 중공군이 몰려든 고지위로 포격을 명령하고는 직접 진두지휘하에 고지위의 중공군을 공격하였다. 날이 밝자, 심각하게 약화된 중공군 공격부대는 고지 아래로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밤이 되자, 전력을 재정비한 중공군들이 다시 고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치열한 포화속을 뚫고, 중공군은 자신의 전우들 시체를 넘고넘어, 마침내 고지정상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벙커속으로 깊이 몸을 숨긴 미군들과 지상 1미터에서 폭발하여 수많은 날카로운 파편을 날려보내는 다중폭발탄뿐이었다. 38연대 포병대대에서 발사한 105mm 다중폭발탄 2천발이 8분 동안 고지 정상과 전사면을 향해 일제히 발사되었다. 고지위에 올라와 있던 중공군 전원이 전사하자, 중공군은 제2공격군을 고지위로 올려보냈다. 고지위에 깊숙이 엄폐하고 있던 킹중대원들은 800고지 정상과 전사면을 포탄으로 짓이겨 줄것을 포병대대에 요청하고, 제38연대 포병대대는 다른 야포대대의 지원을 받아 밤새도록 10,000발의 다중폭발탄을 발사했다. 날이 밝자 고지위에 중공군 생존자가 전무한 것을 확인한 미군은 전선 재정비의 일환으로 소수의 부상자만이 발생한 채 전원 무사히 고지를 철수하였다. 5월28일 재반격에 성공한 한국군과 미군은 인제를 탈환하였다. 제2차 춘계대공세중 중공군과 북한군은 65,000명이 전사하였으며, 벙커힐에서 확인된 포병공격에 의한 중공군의 전사자수는 5,000명에 달하였다. 1951年 5월 중공군의 춘계공세는 1950년 9월 부산방어전투와 유사하게 전장 내 전투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전투라 할 수 있다. 유엔군은 서울과 중동부지역을 두고 어디에 예비대를 치중하느냐를 저울질하고 있었고 중공군은 서울과 중동부지역을 두고 어디에 전투력을 집중할 것이냐에 고심했던 전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엔군이 서울에 치중하면서 즉각 예비대를 중동부로 전환할 수 있게 한 것은 서울이 중요성에 비추어 안전한 전략이라 할 수 있으나 중공은 중부지역의 조공을 너무 약하게 배치하여 유엔군의 서울지역 예비대를 중도에서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엔군의 재반격기회를 마련해 주고 말았다. 중공군 5월공세에 대한 유엔군 no name방어전은 대표적인 진지전이였고 진지전에서 최적의 방어는 역습이며 이 역습을 위해 예비대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예비대가 원활하게 역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돌파구 견부(肩部)를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전투라 평할 수 있다. 미군은 이 전투를 방커고지(Bunker Hill) 전투로 명명했다. Bunker Hill 전투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어 독립군이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한 전투를 상기하여 이렇게 이름을 불렀다.
♤ 사오랑재(675m)/ 사오랑치
사오랑치를 향하는 마루금 정상에 참호가 즐비하다. 우측으로 낭떨어지와 다를바 없는 급경사인데 참혹한 전투가 벌어진 지형이란 걸 알 수 있다. 안부 좌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 사오랑치는 북쪽 춘천시 동면 신이리 방향 사오랑골에 사오랑마을이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이름이다. 故 조은산님의 자료에 따르면 옛지도에는 여기가 사오랑치이나 국가정보원 온맵에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간 더 진행하면 나오는 꼭두봉(753.6m)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간 떨어져 사오랑고개를 표기하고 있다. 사오랑고개 일대는 6·25전쟁 당시 미 2사단이 중공군 12·15군과 맞서 싸웠던 북방전투, 미 해병1사단이 중공군 39군과 혈투를 벌인 가리산작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격전지이다.
- 잘록이 안부를 지나는데, 여기가 옛 사오랑재로 표기된 지도도 있다.
♤ 754.9m봉/ 삼리봉(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춘천시 동면 품걸리 → 신이리)
춘천시 동면을 지나던 늘목고개에서 홍천군 화촌면을 만나 서향하던 지맥이 좌틀하여 남쪽 방향 가락재로 향하는 삼리봉이다. 홍천 풍천리와 동면 품걸리 경계를 따르다 이제 품걸리를 벗어나 우측이 신이리로 바뀐다.
군인들이 새벽밥을 먹고 올라왔네요. 가락재에서 올라왔을까요, 가락재까지 한참 가네요. 군인들과 대화하며 시원한 물도 500cc 얻어 마셨습니다. 개전초 홍천-춘천전투, 그리고 51년 중공군 5월 춘계공세에 두번의 격전을 치른 장소입니다. 우측 소양강쪽으로는 깍아지른 절벽인데 오히려 지뢰설치가 어려운 깍아지른 능선으로 총을 들고 기어올랐다니... 참!
♤ 753.6m봉/ 삼각점봉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이 거니고개에서부터 춘천지맥 전반에 걸쳐 상당히 광범위하다. 일대가 양구 화천에서 홍천으로 떼로 밀려드는 중공군 인해전술에 맞서 미군이 전투를 치룬 벙커고지 전투 현장이다. 벙커고지 정확한 위치는 887.1m봉에서 춘천시 경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하니 따로 찾아 보길 바라며 다만 사오랑치는 같은 장소 인접에 있다는 사실.... 2차세계대전 후 한반도에서 미군과 중공군이 전쟁을 벌어야 하는 국제 정세와 이념의 헤게모니를 생각케 한다.
- 등로는 비교적 유순한 편이다. 고만고만한 만두와 찐빵을 몇 개 넘어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를 쳐놓은 철조망 출입문을 열고 가락재로 내려선다.
♤ 가락재(加樂峙, 667.7m)
가락재는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와 춘천시 동면 상걸리 경계를 이루는 재로, 가치(加峙)· 가락고개로도 불린다. 고개의 풍치가 좋아서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저절로 즐거움과 흥을 붇돋아 준다고 하여 고개 이름이 붙었다는 그럴 듯한 유래가 전해온다. 엄청나게 넓은 삼거리 임도가 있는데 이 고개 아래로 가락재 터널이 생기기 이전에는 홍천에서 춘천으로 넘어가는 옛 도로였지만 지금은 옛 영화를 잃었다. 동쪽은 홍천군, 서쪽은 춘성군으로 표기된 오래된 간판이 있는데 춘성군은 1992년에 춘천군이 되었다가 1995년에 춘천시에 흡수통합되었다.
- 가락재에 내려서서 우틀하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바로 좌측 직진 임도로 진행한다.
가락재고개에서 가락재터널(터널길이 590m)로 구간을 끊는 경우도 많다. 좌측의 임도로 약 20분 정도 고도를 낮추며 내려서면 가락재터널(448m)이 있는 56번 국도이다. 가락재에서 대룡산까지 약 7.1km이며 넘어야할 100~200 고지의 찐빵이 예닐곱개 정도 된다. 가락재터널 직전 교통표지판에는 660m라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 높이는 460m쯤 된다. 정상이 660m이고...
♤ 708.8m봉(개념도상 709.4m봉)/ 삼각점봉
잘록이 안부(601m)에서 100고지 정도 오르막을 오르면 708.8m봉이다. 지맥은 좌틀이나 우측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4등삼각점 (내평 434)이 있다. 뒤돌아나와야 한다.
여기 올라서서 약초꾼 두분을 만난 곳인데, 특별한 표시는 없습니다. 좌측으로 자지분맥이 갈라져 나가고, 보만식계 띠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데 보수 불가였습니다.
♤ 삼면봉(708.3m, 춘천시 동면, 홍천군 화촌면 → 북방면)/ 자지분맥 갈림봉
삼각점봉에서 약 15분 진행하면 삼면봉이다. 남쪽(좌측)으로 자지분맥을 분기시키고 지맥길은 우틀하여 서향한다. 자지분맥의 주봉인 자지봉(紫芝峰)은 옛날에 이 산에 지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초는 옷감에 보라빛 물을 들이는 염료로 쓰였다.
♤ 자지분맥(紫芝分脈)
자지분맥은 춘천지맥 가락재와 대룡산 사이 708.3m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자지봉(紫芝峯)-망령산(望嶺山) -두개비산(262.1m)을 거쳐 홍천터미널 옆의 야산을 지나 홍천교 부근 홍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20.6km의 분맥이다.
♤ 거지울고개(637m)/ 가지울고개
홍천군 화촌면 북방리에서 춘천시 동면 상걸리 걸은골 마을을 이어주던 고개로 좌우에 길이 보이지 않는 고개의 형태만 남아있는 평평한 안부로 고개 이름만 전해진다.
- 자지분맥갈림봉에서 우틀로 서향하여 약 20분 진행하면 거지울고개다.
♤ 726.6m봉
커다란 참나무 고목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 늘목고개에서 약 11.8km지점이다.
故 조은산님 산행기에서 이 구간을 보면,
726.6m봉에서 완만하게 약간 내려서다 다시 올라 721m봉을 지나 내려서서 5~6분 정도 진행하면 직진 방향이 아니라 우측의 물길을 건너는 듯한 펑퍼짐한 지대 방향으로 시그날이 달려 있고 그쪽으로 진행하여 우측 능선으로 붙는다. 721m봉에서 내려선 펑퍼짐한 지대에서 직진 방향의 급경사 오르막 방향으로 맥길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오를 수 있는 등로가 보이지 않고, 먼저 진행한 일행들의 발걸음 등로는 우측 나즈막하지만 계곡인 듯한 곳을 건너서 이어지고 있으며, 선답자의 GPS 트랙도 우측 등로로 안내하고 있다. 미심쩍어 하면서 우측 능선을 따라 오르지만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더 지맥길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곳이다.
암봉인 뾰족봉 전망이 최고입니다. 취벽봉 산패가 달린 곳의 약간 우측 바위위 전망대가 명당이더군요.
♤ 776.3m봉(암봉)/ 뾰족봉
차돌바위 암릉에서 좌틀로 우회하여 급경사 암릉지대가 시작된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776.3m봉에서 앞 조망바위로 나가 북쪽 동면의 소양호 상류지역과 동쪽으로 지나온 가리산과 가락재 등 지나온 맥길 능선을 조망한다. 남쪽(동남향)으로 가야할 홍천 북방면으로 이어지는 엄송골과 그 우측 연엽산이 아련히 보이고, 서쪽으로 천혜의 요새인 녹두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뒤돌아 나와 서쪽으로 좌틀하여 암릉길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 송전탑을 지나 대룡산 헬기장을 향해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는데 여기 또한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으로 작업이 진행된 흔적이 있다.
삼면봉을 얼떨결에 사면으로 우회했습니다. 우째 이상하더라니.... 삼면봉에 올라야 바로 아래 방송국 중계탑들도 보이는건데...
♤ 삼면봉/ (홍천군 북방면, 춘천시 동면 → 동내면)/ 헬기장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이다. 지금까지 홍천군 북방면과 춘천시 동면의 경계를 걸어오던 지맥길이 이 헬기장에서 우측이 춘천시 동내면으로 바뀌어 남서향하게 된다. 헬기장 아래 우측편에 KBS춘천방송총국, 춘천문화방송, 강원민방 대룡산 중계소가 위치한다.
헬기장에서 몇 걸음 내려서면 바로 아래 이정표(거두리·명봉 4.7km, 정상 0.2km)가 서있다. 우측 거두리 방향 능선은 춘천시 동면과 동내면을 가르며 북서향하여 갑둔이고개를 지나 거두리와 만천리로 이어진다. 거두리갈림길을 지나면 대룡산 정상이 나오고 우측 아래 데크전망대에 설치된 조망판에서 삼악산, 계관산, 북배산, 삿갓봉, 화악산 등 춘천시내 방향과 춘천시 주변 산을 조망한다. 대룡산에서 2분 정도 원목계단길 따라 내려서서 도로변 등로를 따르고 군부대 경고판을 지난다. 늘목고개에서 14.1km 지점이다.
♤ 대룡산(大龍山, 899.1m봉)/ 춘천의 진산/ 2등삼각점(내평 25/ 1988 재설)
대룡산은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과 홍천군 북방면 능선에 위치한 전형적인 육산으로, 일명 여매압산(汝每押山)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그 유래는 산세가 부드럽고 여성스럽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호반의 도시 춘천의 동남부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춘천의 진산이기도 하다. 『춘천읍지』에 따르면 "부의 동쪽 25리로 일명 여매압산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대동지지』에는 "여매압산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2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동읍지』와 『국역관동지』에는 "부의 동쪽 20리에 있다. 일명 여매압산이라고도 한다. 중전산으로부터 와서 한 가닥은 봉의산의 주맥이 되고, 다른 한 가닥은 전방산의 주맥이 된다."고 묘사하고 있다. 『강원도 땅이름』에는 "춘천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899m의 산이다. 병자호란 때 춘천향교의 위패를 잠시 이 산에 옮겼다고도 전해지는데, 대룡산은 6.25당시 격전지로 유명했으며 미확인 지뢰지역 등 그 때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녹두봉의 경우 군부대도 위치해 있어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대룡산 정상 전망대에서 한눈에 조망되는 춘천 시가지는 아름답다. 북한강과 소양강 두 물줄기가 널찍이 합류하면서 생긴 수변도시 춘천 분지는 물동이 형상의 전두리라고 할 수 있는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볼 때 그 아름다움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 춘천지방에서 이 산의 이름을 딴 사회단체나 친목회 이름이 많다."고 기록하고 있다.
♤ 대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춘천 시가지
춘천은 원래 고대에 규모가 큰 원시부족국가였던 맥국(貊國)의 터로, 삼국시대에 들어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지배를 차례로 받은 뒤에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부터 현재의 이름인 춘천으로 불렸으며 강원도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강릉과 원주에 밀려 한적한 고을이었던 춘천이 하나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188년이다. 그때 춘천은 유도부(留都府)로 승격되어 경기도에 속해 있었다. 서울에서 난리가 일어나 조정이 위험해질 경우를 대비하여 임금과 신하가 피난할 궁궐을 지금의 강원도 도청 자리에 짓게 하였는데 궁궐이 들어선 뒤로 춘천은 강원도의 행정 중심지가 되어갔고 결국 1895년에는 영서지방을 통괄하는 관청인 관찰부가 들어섰다. 이듬해에 전국을 13도로 나누는 과정에서 영동지방, 즉 강원도 전체를 다스리는 관찰사를 이곳에 두게 되었고 그때부터 강원도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10년에는 관찰부를 도청으로 바꾸었다. 북한강 상류인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 등의 인공호수와 구절산, 대룡산, 가리산, 촛대봉, 북배산, 청평산 등의 크고작은 산들이 있고, 북한강변에 그림같이 떠있는 남이섬이 있는 호반의 도시 춘천은 천혜의 관광지로 손꼽힌다. 특히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신동면 의암리의 신연강(新延江) 협곡을 가로질러 축조된 의암댐 즉 의암호가 봄내리라고도 불리는 춘천을 물의 도시, 호반의 도시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의 좋은 경치 그림으로는 못 그리겠네. 사면(四面)의 산들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쌍 내[쌍천(雙川)]에 다다랐다"라고 이변이 노래했던 그 옛날의 정취는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다.
♤ 산경표에 있어서 대룡산
대룡산에서 분기하는 산줄기는 춘천지맥에 있어 중요한 기점이 된다. 산경표를 보면 청량봉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대룡산에 이르러 분이지(分二枝) 하면서 봉의산(鳳儀山, 301.5m)으로, 도 다른 한줄기는 향로산으로 갈라져 마감이 된다. 봉의산은 대룡산에 바로 갈라지고, 향로산은 녹두봉(공군부대) 남쪽에서 매봉쪽으로 가는데 현재의 연엽산쪽으로는 아무 표기가 없다. 오히려 남쪽으로 남은 산줄기가 더 길고, 연엽산이나 고깔봉 등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있는데도 더 이상 표기를 하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를 보더라도 대룡산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여러 가닥에 홍천강 하구까지 한참동안 이어지는데 말이다. 우선 봉의산으로 가보면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수하고, 향로산을 넘으면 공지천이 북한강에 들어간다. 여기서도 춘천이라는 도읍지(治所)를 고려했음인지 몰라도 홍천강쪽으로 더이상 표기가 없는게 아쉽다.
어쨌든 청량봉에서 분기한 춘천지맥은 북으로 소양강을, 남으로는 홍천강을 가르며 내려오다가 여기 대룡산에서 크게 둘로 갈라지며, 북쪽 봉의산으로 가는 줄기는 소양강의 하구로 가고, 남쪽으로 가는 줄기는 홍천강의 하구로 간다. 당연히 "산자분수령"의 교훈에 따라 강의 하구로 내려가는 산줄기를 택해야 하는데 소양강이냐 홍천강이냐 택일을 해야하는 지점인 것이다. 강의 세력으로 본다면 소양강이고, 산줄기의 세력으로 본다면 홍천강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현재의 춘천지맥은 소양강도 홍천강도 아닌, 춘성대교로 간다는 것이다. 이는 박성태님이 그은 '영춘지맥'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영춘지맥은 대룡산에서 일단 남쪽 홍천강쪽으로 가다가, 홍천강 하구 직전에서 북으로 틀어 춘성대교로 내려간다. 춘성대교는 '영춘지맥'의 지론대로 북한강 건너 화악지맥의 끝점과 마주보며 북에서 흘러온 북한강이 경기도를 만나는 곳이다.(故 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대룡산을 내려서면서 지맥길은 홍천군 북방면과 춘천시 동내면 경계로 이어지지만, 공군부대 때문에 녹두봉(889.3m) 전후의 기맥길을 걸을 수는 없어 군부대 출입금지 구역을 우회하여 지맥 능선에 접속해야 하며 다시 북방면과 동내면을 가르며 남동 및 남향으로 이어진다. 군부대 경고판을 지나 약 2분여 오르막을 잠시 올랐다가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희미한 등로가 있는 갈림길에서 직진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길로 들어서면, 원지맥길과 조금 가까운 등로를 간다는 의미는 있지만 어차피 군부대 때문에 정상 지맥길은 통과하지 못하고, 이 숲길도 약 10분 뒤 대룡고개로 내려서서 도로에 합류하게 되므로, 알기 쉽게 넓은 등로를 따른다.
공군부대 입구 삼거리에서 공군부대 정문쪽으로 가서 정문직전 공터에서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니 아래 사격장에서 PRI연습을 하는가 싶더니 소총 소리가 빵빵! 들립니다. 시상에나... 아마도 사격장 쪽으로 접근했으면 당장 내려가라고 지맥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을 상황이었네요. 사격장 위쪽으로 바로 질러갔으니 망정이지,,, 공군부대 울타리가 보이는 위쪽으로 올라 초병에 발견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며 우측으로 산비탈을 타고 이동하니 사격장에서 올라오는 철조망 옆 구 지뢰지대 철조망과 만나게 되네요. 군부대 앰프에서 경고방송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舊 지뢰지대를 횡단한 간큰 남자였습니다. ㅋ
♤ 공군부대 입구 삼거리
도로로 내려서서 좌측 도로를 계속 따르면 바이크 진입차단시설, 이정표(고은리 2.9km)가 나온다. 대룡고개(780m)를 통과하고 통나무 쉼터의자, 군부대 경고판, 이정표(고은리 3.4km)를 지나면 수리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수리봉갈림길에서 좌틀하면 공군부대입구 삼거리다. 보통은 사격장으로 내려서서 녹두봉 전위봉으로 우회하여 지맥을 이어가나 정문에서 철조망을 따라 내려가도 사격장에서 올라오는 갈림길과 만난다. 우측 사암리(4.0km) 방향으로 내려서서 사격장 입구를 통과한다. 좌측사격장 입구가 들머리이다.
- 이정표, KBS대룡산중계소, 공군 XXXX부대 표지판 등이 있다.
능선에 올라서서 좌로 가야하는지 저 전망대에 올라 지나온 암봉(뾰족봉)을 조망하기도 하더마는... 가볼려다가 시간이 없어 빠꾸하기로 하고 우측 바위 위로 올라 철조망을 넘어 이동하니 트랙을 자꾸 벗어납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다시 좌측으로 철조망을 넘어 가보니 오토바이가 버려진 협곡?이 나타나네요. 반갑드만요.^^
♤ 889.3m봉
과거지뢰지대란 경고판이 계속 이어진다. 공군부대 건물이 바라다보이는 능선이 보이고 공사현장으로 올라 춘천지맥에 복귀한다. 암반갈림능선에서 보통은 녹두봉에서 흘러내린 889.3m봉을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지만 좌측 원형철조망을 넘어 889.3m봉으로 길이 선명하게 나있다. 올랐다가 우측방향의 급경사 암릉 협곡으로 내려선다.
협곡으로 계속 내려서면 안되고 조금 내려서다가 좌틀로 절벽아래를 진행하여 능선을 타고 내려야 합니다. 이후로는 꽃길입니다.
박달재는 특별한 안내판이나 이정표는 없고 좌측 홍천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띠지가 달려 있어요.
♤ 박달재
고개 좌측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북방리 박달괘 마을이고, 우측은 춘천시 동내면 세거리를 거쳐 세계선교 훈련원이 있는 사암리 방향이다. 이곳에서 들날머리를 잡아 홍천 북방리로 춘천지맥을 끊는 경우가 많아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반대편 사암리 쪽은 등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 사격장에서 약 2.6km지점인 잘록이 안부이다.
매봉갈림봉도 띠지만 보이고 특별한 이정표가 없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 매봉갈림봉(760.7m)/ 삼면봉(홍천시 북방면, 춘천시 동내면 → 동산면)
매봉갈림봉은 삼면봉으로 우측이 춘천시 동내면에서 동산면(東山面)으로 바뀌어 남향한다. 매봉(鷹峰, 755.5m)은 우측(서쪽)으로 1km쯤 벗어나 있는 봉우리다.
♤ 연엽골재(684m)
좌측(동쪽)으로 북방면 연엽골이 펼쳐지는 곳이다. 연엽골재에서 5분여 올른 능선분기봉에서 좌틀하여 2분 정도 진행하면 연엽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암벽과 마주한다.
오나전 험난한 오르막이네요. 아래를 돌아보면 끔찍하고 나무를 잡고 올라야 하는 곳이 많아요. 겨울엔 정말 위험한 곳이 되겠더군요. 따로 길이 있는게 아니라 좌우를 살펴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선택적으로 올라야 합니다. 가끔은 띠지 한장씩 걸어두고 어찌어찌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에 이 산불감시초소가 딱 보입니다.
♤ 구절산갈림봉/ (춘천시 동산면, 홍천군 북방면 → 동산면)/ 완전하게 동산면 안으로 진입
이 봉에서 시군계는 좌측으로 보내고 춘천지맥은 우측으로 연엽산에 올라 온전히 동산면 안으로 들어서서 남서향으로 모래재 이후까지 이어진다. 좌측편으로 면계 능선이 이어져 새목현과 사곡현을 지나 구절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절산갈림봉에는 선답자들의 띠지와 철봉이 세워져 있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면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 구절단맥
연엽산에서 춘천지맥을 벗어나 남쪽으로 가지치는 능선이 약 3.5km 뻗어나가다 들어 올린 산이 구절산이다. 구절산에서 계속 남진하는 능선은 약 5km 거리에 성재산(553.5m)을 빚은 다음, 또다시 5km 더 나아가 부사원천과 성동천 합수지점인 상화계리(북방면 소재지)에 이르러 여맥들이 자취를 감춘다.
♤ 구절산(九節山, 750.7m)
구절산은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및 홍천군 북방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등산로 곳곳에 전설이 산재한 산으로 연엽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간 능선 위에 있다. 산세가 마치 구절양장을 연상케 하듯 아홉개가 넘는 봉우리와 지능선이 어지럽게 갈라진 형상을 하고 있다. 정상 아래 동굴이 있어 신비감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20여 분 아래로 내려오면 더운짐내기 고개가 있는데, 겨울에도 더운 바람이 불어와 나무꾼들이 언 발을 녹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도화동 부근에는 처녀 총각 나무꾼들이 인연을 맺었다는 각시골이 있다.
녹두봉에서 계속 남진하는 춘천지맥이 약 4.5km 거리에 빚어 놓은 산이 연엽산이며, 연엽산에서 춘천지맥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강촌역 남쪽 고깔봉(421m)을 지나 봉화산(515.1m)-새덕산(490m)으로 이어집니다.
♤ 연엽산(蓮葉山, 850.6m)
연엽산은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과 홍천군 북방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서 굵은 능선이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다. 지명 유래는 신라 말 승려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우리나라 산천지세를 점쳐 비보사찰 자리를 선정하기 위해 전국을 순례하던 중 이 산 지세를 보고, 정상을 중심으로 연꽃잎이 사방으로 펼쳐져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형상이라 하여 연엽산(蓮葉山)이라 붙였다고 전한다. 연엽산 정상은 사방이 수림으로 에워싸여 조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산불감시초소 방면 전망바위에 오르면 그런대로 멋진 조망을 즐기게 된다. 북서쪽으로는 외박골 협곡 건너 수리봉과 오른쪽 새골고개 뒤로 봉의산을 품은 춘천시내가 보인다. 다시 설명하자면 지나온 방향 녹두봉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뒤에 춘천시가 있고, 그 뒤로 명지산과 화악산도 조망이 가능하다. 북으로는 응봉 위로 녹두봉과 대룡산이 하늘 금을 이룬다. 남으로는 구절산 정상이 조망된다. 남서쪽으로는 쇠뿔봉과 금학산 뒤로 한강기맥과 용문산이 가물거린다. 원시림이 잘 보존된 연엽골계곡이나 왁박골계곡에는 울창한 숲 사이로 기암절벽과 크고 작은 연못이 있어 산행을 하며 경치를 즐길 수 있다. 강원대학교 연습림이기도 하다. 등산은 원창마을 입구에서 저수지를 지나 감시초소에서 출발한다. 강원대학교 입산통제소 오른쪽 길이 정상에 오르는 빠른 길이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고로쇠나무와 도토리나무, 단풍나무가 울창하며 노송밭을 지나 오른쪽 능선을 오르면 한국 잣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백만 평의 잣나무골이 나온다.
친구와 모래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는데 연엽산에서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운영진방에 문의하니 연엽산에서 모래재까지 동아지도 도상거리 8km, 실거리는 10km 예상해야 된다고 부뜰운영자님 신속하게 알려주시네요. 감사했습니다.^^
♤ 왁박골임도(548m)
왁박골임도는 춘천 동산면 봉명리에서 원창리 왁박골을 잇는 임도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왁박골을 지나 매봉 방향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굴지천(屈只川) 계곡을 따라 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분기점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동쪽 새목현 방향으로도 갈려 나간다. 원창리쪽은 포장이 되어있고 봉명리쪽은 비포장이다. 왁박골이 있는 원창리는 조선시대에 원창역(原昌驛)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 잠시 우측으로 나가 ㅓ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갈림길에서 약 100m 정도 임도를 따라 내려서다 좌측 잣나무 단지로 올라선다.
도솔지맥에도 산행기를 보니 칠성봉 문바위부터 수리봉까지 이런 이정표가 눈에 뜨이던데 같은 분인가 봅니다. 춘천 일대에 산패를 이쁘게 만드신 모양인데 이름은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르겠어요.
♤ 605.2m봉(개념도상 607m봉)
대부분 우회등로를 따르지만 밋밋한 봉우리에 올라 정상에서 좌틀하여 우회길로 내려선다.
안전에 신경을 써서 엄청 서둘러서 내렸습니다. 깜깜한 밤에 볼거리는 없었지만 화악산 공군부대 불빛은 알아보겠더군요. 띠링띠링~ 두 차례나 알바알람이 울려 되돌아 다시 길을 맞췄습니다.^^
♤ 수용골임도/ 상명고개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 수용골에서 봉명리 안원무동으로 이어지는 임도로 좌측에는 농장이 있고 수용골쪽으로는 잣나무 군락지가 잇고 내리막 황톳길이 보인다. 좌측 안원무동은 원무동(元武洞)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부르며 고려 때 원참위라는 무관이 마을을 이룩했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이곳을 원창리에서 상명암으로 가는 고개라고 하여 이 지역 사람들은 상명고개라고 부른다.
♤ 426m봉
지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잡목들로 뒤덮혀 있다. 다시 갈림길로 뒤돌아 내려가야 한다.
진행 방향 우측 전경 멀리 원경으로 춘천 금병산이 보인다.
- 4등삼각점 (내평 450/ 2005 복구)이 있다.
♤ 국립춘천병원갈림길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원무터널 위로 잣나무군락지를 지나고 잘 정리된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우측으로 국립춘천병원 지붕 기와가 보인다. 우측 등로는 춘천병원으로 바로 내려서는 길이고, 직진 길은 모래재로 내려서는 산책로이다.
♤ 국립춘천병원(國立春川病院)
국립춘천병원은 1988년 6월 강원지역 정신병원 건립 사업계획이 확정되고 1992년 3월에 완공, 개원하였다. 정신과 질환의 진료•조사•연구와 의료요원 훈련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으로, 진료분야는 조현병(정신분열병), 알코올의존, 기분장애, 불안장애, 노인질환, ADHD아동클리닉 등이다. 또 퇴원 이후 정신건강질환자들의 빠른 지역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홍천군 보건소 내에 정신보건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2002년 5월에 국립춘천정신병원이 국립춘천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2004년 12월에 노인병동 운영을 개시하였다.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東山面) 원창리 713번지에 있다.
모래재 사현,,, 6사단이 춘천전투 소양강방어진지에서 3일을 버티다 원창고개와 이곳 사현으로 축차적인 후퇴를 하였고, 이후 원주 충주로 옮겨갔습니다. 모래재는 춘천시내보다 홍천시내가 더 가까운 곳입니다. 춘천에서 홍천을 걸쳐 횡성과 원주로 넘어가는 직행버스가 정차합니다.
♤ 모래재(沙峴, 砂峴, 340m)/ 사현/ 버스정류소
모래재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조양리와 군자리의 경계에 있는 4차선의 5번국도가 지나는 고개이다. 재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모래가 많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대동여지도』에는 모래재를 사현(沙峴)으로, 국가정보원 온맵에도 사현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교통지도에 "모래재"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유현과 마찬가지로 구절산 줄기를 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지금 산이름대로 한다면 구절산과 대룡산 중간에 있는 연엽산의 줄기를 넘는 고개이다. 연엽산은 과거 구절산과 하나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고개 정상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으며 바로 아래는 춘천병원이 있다. 1992년 모래재에 춘천정신요양원이 건립되었다. 춘천에서 원주로 나가는 원창리에서 관문 길목에 있는 이 모래재가 인간을 구원하는 정신요양원의 본 고장이 되었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보이는 '오르막차로 끝' 표지판 우측 수레길로 들어섭니다. 넓은 수레길 따라 100m 정도 들어서서, 야생동물 이동통로 암거(토끼굴) 직전 좌측 수로로 치고 올라야 하며, 수로를 다 올라서면 좌측 옆으로 능선으로 올라 지맥길에 합류하여 급경사 오르막으로 송전탑봉(새술봉, 435m)에 오릅니다.
♤ 425.2m봉(개념도상 426.4m봉)/ 풀무봉
무명봉 갈림길에서 3분 정도 진행하면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고 우측으로 5m 정도 오르면 판독하기 어려운 삼각점이 나오는데 개념상 426.4m봉이다.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식별할 수 없는 삼각점을 보고 좌향하여 내려선다. 이름 있는 꼬깔봉보다 5m 정도 더 높다.
GPS상 435m로 찍히는 봉우리를 지나고 좌측 팔봉산 방향으로 벌목이 되어 조망이 확 트이는 능선길을 걷는다. 지도상 바람재이나 고개 흔적은 없다. 벌목지 아래쪽으로는 경춘고속도로와 그 너머로 취봉과 구만산이 보인다.
뜻밖의 수확도 거뒀습니다. 발 아래 두툼한 상수리가 둥실둥실 실하게 보이길래 주울려고 허리를 딱 숙이는 순간 아니 누가 떨어뜨린건지 군용 나침의가 눈에 딱 띄네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1구간에서는 군용 배낭을 주웠는데, 2구간에서는 군용 나침의를 주웠어요. 3구간엔 과연.... ㅋㅋ
철조망 안쪽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철조망을 건너가 좌틀로 바로 내려서야 합니다. 철조망 밖으로 내려서면 개구멍을 통과해야 됩니다. 이후 엄청난 칡넝쿨의 묵밭이 나오는데 지맥 능선을 따라 푸른색 수조 방향인 295m봉을 두른다고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 340m봉/ 철망 울타리
봉우리 정상은 잡목이 우거져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지도에 사슴목장으로 나온다. 철조망이 있는 곳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다 철조망이 넘어져 있는 곳에서 우틀하여 급경사지를 올라서면 넓은 묵밭이 나오고 우측으로 춘천정신요양원 건물이 멀리 가늠된다. 푸른색 수조 방향으로 칡덩굴을 밟고 지난다. 과거에는 사슴 목장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 절개지 위에서 우틀하여 사슴목장 초지로 내려오면 양옥 한 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더플레이어스CC와 그 뒤 멀리 지나온 공군부대가 있는 녹두봉이 흐릿하게 조망된다.
♤ 군자리고개(君子峙, 288m)/ 두무골고개
춘천시 동산면 군자리에 있는 고개로, 좌측 군자리 두무골과 우측 더플레이어스 골프장이 있는 갈골을 연결하는 4번 군도가 지나는 한적한 고개이다. 예전에는 고개 옆에 사슴목장이 있었다는데 전원주택 단지로 바뀌었다.
- 군자리고개를 지나 차츰 고도를 높이다 잘록이 안부를 지나 오르면 좌측 아래 강원양돈단지에서 올라오는 돈축사 분뇨냄새가 코를 찌른다.
♤ 383.2m봉갈림봉/ 면계(동산면 - 신동면)
연엽산에서부터 온전히 동산면에 접어들어 동산면 안을 지나오던 맥길은 이 봉우리에서 춘천시 신동면과 만난다. 갈림봉에 올라섰다가 동산면과 신동면의 면계를 따라 좌틀로 내려서서 덕만이고개로 남서향 한다. 우측(북쪽) 능선은 신동면과 동산면의 면계를 따라 금병산(651.7m)으로 이어진다.
삼면봉이지만 아무런 표지가 없다.
♤ 340m봉/ 삼면봉(신동면, 동산면 → 남산면)
계속되는 일본잎깔나무조림지를 지나 암릉구간을 우측으로 우회하면 차츰 고도를 낮추다 잘록이 안부(326m)를 지나 덕만이고개로 내려서기 직전 삼면봉에 오른다. 동산면과 신동면의 면계를 따라 남서향하던 지맥은 이 봉에서 좌측이 남산면으로 바뀌어 남산면과 신동면의 면계를 가르며 북서향하여 덕만이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 폐헬기장에서 우틀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선다.
♤ 폐헬기장
삼면봉에서 잠깐 내려서면 잔돌이 흩어져 있는 넓은 폐헬기장이 나오는데 직진 방향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우틀하여 내려서면 양회임도인 덕만이고개에 곧 도착한다. 골프장 울타리를 만나 좌틀로 이동통신중계탑으로 향하면 김유정로가 지나는 덕만이고개에 도착한다.
- 이후 콘크리트 옹벽을 뛰어올라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오르는게 들입구다.
♤ 덕만이고개(290m)/ 70번지방도로
덕만이고개는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혈동리와 남산면 광판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70번 지방도가 지나며, 혈동리의 남쪽 끝에 있는 덕만리(德蠻里)라는 마을의 이름을 붙여 덩마니고개라 하였다. 예전에 어느 관찰사가 이 고개를 넘다가 덕만이라는 심복 종을 잃어버렸다 하여 덕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유래도 있다. 『춘천의 지명유래』에 "덩마니에서 동산면 군자리 두못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덩마니고개라 한다. 김유정의 소설에도 "덩마니가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개 정상에 탤런트 정보석이 운영하는 "자연속으로"라는 레스토랑이었다는데 이제는 아래에 덕만이터널이 뚫려 통행하는 사람과 차량이 줄면서 카페도 문을 닫고 지금은 그곳에 초대교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교회라기보다는 재벌의 전원주택처럼 보인다.
♤ 소설가 김유정
덕만이고개를 지나는 도로명이 [김유정로]인데, 이 도로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김유정역이 나온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은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서 갑부의 아들(8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이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어려운 생을 살다가 1932년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다가 1937년 스물아홉 젊은 나이로 폐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 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 · 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불과 2년 남짓한 작가생활을 통해서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겼는데, 대표 작품으로 소낙비, 노다지, 금 따는 콩밭, 봄봄, 산골 나그네, 만무방, 동백꽃, 땡볕, 따라지, 봄과 따라지 등이 있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畵的)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게 특징이다. 소설에는 고향인 실레마을의 지명과 위치가 그대로 등장한다.
덕만이고개에서 무명봉에 올라 우틀로 내려서서 덕만이터널 위를 지나다 보면, 등로 우측 아래에 산허리를 파내고 있는 폐건축자재 처리업체인 삼호아스콘 회사 현장이 보이고 이후 고만고만한 300m급 찐빵하고 만두를 몇 개 지나 시그널이 붙어있는 357m봉에서 급좌틀하여 붕어터골고개로 내려선다.
♤ 붕어터골고개/ 뵁이터골/ 휴대곡(休垈谷)/ 혈동고개
붕어터골은 춘천시 신동면 혈동리 붕어터골과 남산면 행촌리 토목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원지명은 벙에터골인데 붕에터골, 휴대곡으로도 불린다. 벙에터골의 유래는 토목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부엉이가 많이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국가정보원 지도에는 '붕의터골'로 표기되어 있다.
- 시멘트 포장농로인 붕어터골고개(혈동고개)에 내려선다. 임도 우측편에 붕어터골이 위치하고 있다. 우측으로 붕어터골 마을과 바로 앞에 인삼밭이 보이는데 도로에 내려와 좌측으로 5m쯤 간다음 숲속으로 들어선다.
뵁이고개에서 10분 정도 올라선 능선분기봉에서 좌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있으나 지맥길은 희미한 우측길이다. 인삼밭과 묵밭을 지나고 좌측으로 조망이 잠깐 트이는데 팔봉산방향이다. 10분 정도 진행하여 붕어터골 내려가는 임도를 만나 좌틀하여 묘지로 향하다가 다시 좌측 숲속으로 들어선다. 임도에서 10분 정도 진행한 367m봉으로 오르는 도중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에 시그널이 걸려있다. 부인을 두명을 둔 전주이공 묘지를 둘러보고 되돌아 나간다. 이 묘지에서 바로 내려서는 능선길도 있기 때문에 바로 내려서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능선봉(367m)/ (신동면 - 남산면 → 남산면)
능선봉에서 남산면 안으로 온전히 들어서서 북서향하던 맥길이 남서향으로 꺽인다. 'V자' 잘록이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다가 계곡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정상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잣나무숲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다 374.1m봉에 올라 급좌틀로 내려서고 5분 정도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386m봉에 올라 우틀하여 급경사로 내려선다. 모래재에서 약 10km지점이다. 만두와 찐빵을 넘어 계속 진행하면 우측 잡목 사이로 춘천시 남산면 수동리에 소재한 휘슬링락(樂) 골프장이 내려다 보인다. 다시 6.25전사자 유해 발굴 흔적이 있는 358m봉을 지나고 절개지 위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시멘트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따라 좌측으로 약간 나가면 나가지고개이다. 김해김씨 납골묘로 내려서기도 한다.
내려서기도 가팔르고 올라서기도 벼랑빡입니다. 김해김씨 납골묘로 내려서서 들머리를 찾아보는데 대체 어디로 올라서는거지?? 한참 헤메야 했습니다. 좌측 고개 아래로 100m쯤 내려가니 용처모를 탄약고 같은 곳에 관리되는 수도가 있습니다. 건너편에 유정란을 파는 양계장이 있고,, 저기 보이는 건너편으로 오른다는 거네요.
♤ 나가지고개(落雁峴, 255m)
나가지고개는 춘천시 남산면 행촌리에서 수동리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 같은 1차선 도로이다. 낙안(落雁)은 열을 지어 땅으로 내려앉는 기러기를 의미한다. 기러기가 넘어다니다 쉬어가는 고개이다. 고개 아래 신동면 혈동리에 나가지마을이 지도에 표기가 되어있다.
♤ 검은동고개
골프장에서 쳐놓은 초록색 그물망을 넘어 등로를 이어간다. 그물망 펜스를 지나서 야생동물 보호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 생태통로를 지난다. 폐기된 전봇대가 있는 검은동마을 안부를 지나는데 좌우를 넘어다니던 고개가 골프장 때문에 그 역할을 상실했다.
♤ 383m봉(개념도상 380m봉)/ 면계(남산면 - 남면)
검은동마을 안부를 지나 급경사를 가파르게 올라서면 기반이 흙속에 파묻힌 삼각점이 있는 383m봉(개념도상 380m봉)이다. 지금까지 남산면 안을 진행해 오던 지맥은 고깔봉 직전에 있는 이 봉에서 좌측편으로 남면을 만나, 남면과 남산면 면계를 따라 잠시 서향하다 완만하게 북서향으로 이어지며 소주고개와 송이재봉, 물갈봉을 지난 269.5m봉까지 계속된다. 이 구간 유일하게 봉우리 지명이 있는 곳이 꼬깔봉이며 합수점이 가까워 오기에 야트막한 고개가 많다. 한동안 넓은 임도를 걷다가 360m봉에서 우틀하여 잠시 내려서다가 잘록이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틀하여 급경사를 80고지 정도 쳐올리면 꼬깔봉이다.
♤ 꼬깔봉(弁峰, 420.2m)/ 무인산불감시탑카메라
춘천시 남면 추곡리와 수동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북쪽 사면에는 휘슬링락(樂) CC가 위치하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오너스GC 골프장과 그 뒤로 남산면소재지가 보이고, 그 뒤 좌에서 우로 검봉산, 강촌, 강선봉, 삼악산이 펼쳐져 있다. 맑은 날에는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도 조망된다. 옛지도에는 변봉(弁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변(弁)은 ‘고깔 변’이다. 이는 훈차(訓借) 표기로 고리봉을 환봉(環峰)으로 표기한 경우와 같다. 국어사전에는 꼬깔은 고깔의 고깔의 전라도 사투리로 승려나 무당 또는 농악대들이 머리에 쓰는 위 끝이 뾰족하게 생긴 모자라고 적고 있다.
고깔봉 정상 직전 우측에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2005년 춘천시에서 세운 오석 정상석이 있다. 꼬깔봉 정상에서 약 30m 정도 내려선 갈림길에서 우측의 희미한 등로로 우틀해야 한다. 직진 넓은 등로를 따르면 알바이다.
♤ 성황당안부(301m)
돌무더기가 있는성황당 안부를 지난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약사암이고, 우측은 오너스골프장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성황당안부(301m)를 지키는 당산목이 완전히 말라 죽었다. 성황당 안부를 지나 347m봉(국가정보원 지도 상 352.5m봉)으로 오르는 도중 등로 우측으로는 펜스가 쳐져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촘촘히 붙어 있다.
347m봉(국가정보원 지도 352.5m)'에 올랐다가 좌틀로 약간 내려서고, 이후 고만고만한 만두를 예닐곱번 오르내리며 그물망 펜스를 따라 약간 고도를 낮추다가 직진하면 벌목지가 나오는 곳에서 좌틀로 급하게 내려서면 등로 우측 아래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추곡고개다.
♤ 추곡고개(楸谷峴, 286m)/ 아랭이고개
추곡고개는 춘천시 남면 추곡리와 남산면 수동리의 경계에 있는 3번 군도가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이다. 고개 정상에 남면에서 세운 표시석이 있는데 전면에는 충효의 고장 남면, 후면에는 義民之鄕이라 새겨 놓았는데 춘천시 남면은 의병장 의암(毅菴) 유인석 선생의 고향이고, 남면 가정리에는 의암 유적지가 있다. 이 고개 아래가 추곡리 마을이라 고개이름이 붙었고 추곡리에서 수동리 아랭이로 넘어가는 고개라 아랭이고개로도 불린다. 순우리말 오동나무골을 한자말로 표기하면서 '개오동나무추(楸)' 자를 가져왔다. 도솔지맥 공리고개 항일의병전적비 또한 유인석 장군 활약상이 나온다.
♤ 의병장 유인석(柳麟錫, 1842 ~ 1915)
의병장 유인석선생은 1842년 강원도 춘천시(춘성군) 남면 가정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흥양)이고 자 여성(汝聖), 호 의암(毅菴)이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할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894년 갑오개혁 후 김홍집의 친일내각이 성립되자 의병을 모의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다가, 을미사변과 복제개혁, 단발령 등이 내려지자 전통적인 유교적 관습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고 유림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고, 고종은 밀지를 보내 전국에 의병을 일으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승인을 내려주었다. 유인석 선생은 화서학파 사람이었다.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1792~1868)의 학맥을 이은 이들은 중화사상과 주자학의 정통계승자임을 천명하는 조직이었다. 이항로가 평생 머물며 제자들과 함께 했던 노산정사(蘆山精舍)가 있는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는 유인석 선생의 고향인 가정리에서 홍천강을 건너 설악면을 지나 그리 멀지 않은 통방산 자락 너머에 있다. 유인석은 단양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이며 진군했고 영월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그가 이끄는 의병대는 충주(忠州)로 진군하여 부패관리들을 죽였으나, 제천에서 관군에게 패전하고 강원도로 퇴각했다가 평안도를 거쳐 북상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일시 귀국하여 평안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09년 의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국권피탈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15년 연해주 목화촌(포시에트)에서 병사하였다. 의암선생 사당과 묘소 옆에는 김구 선생이 친필로 유인석 선생을 기리는 치사를 음각한 기념비도 눈길을 끈다.
♤ 추곡봉(343.8m 개념도상 344.6m)
잡목들로 전망은 없으며 손글씨 정상 표지가 두개나 붙어있는 343.8m봉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길을 간다.
약 30m 진행하다 우틀하여 내려선다. 직진은 알바~ 버들길 도로로 절개지에서 완만한 곳으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내려서기가 까다로워 스틱을 먼저 던져두고 뒤로 기어서 내려서야 한다.
♤ 버들길고개
강원도 춘천시 남면 후동리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 우측의 흰도라지마을과 좌측의 버들마을이 이어지는 고개이다. 춘천수동농공단지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로 내려서는데 버들길 고개다. 도로에 내려서면, 정면 우측으로 더존IT그룹 강촌 캠퍼스라는 입간판과 본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 더존그룹 후문이 보인다. 더존그룹은 회계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ERP시스템, IFRS솔루션, 그룹웨어, 정보보호, 전자세금계산서 등 기업 정보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우리나라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 더존 후문 좌측 무인경비실 옆으로 들어서서 절개지 사면을 올라야 하는데 막아놓았다. 목책 끝에서 옹벽 위로 올라서 목책 안 잡풀을 헤치면서 경비실 앞까지 가서 급경사 절개지 사면을 오른다. 패인 절개지 사이로 발산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놓여있다.
♤ 강원도 춘천시 남면 후동리
버들길고개가 있는 후동리는 춘천시 남면에 있는 청평호 상류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골말, 옹장골, 의실, 소실촌 등이 있으며 골말은 고촌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이 골짜기 안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옹장골은 마을이 가래나무가 많은 가래버덩 부근에 있다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남면 후동리는 뒷골이라고도 하는데 발봉 뒤쪽에 있어서 후동리가 되었다고 하며 이곳 후동리에는 춘천지역에서 일어난 화서학파 의병과 충절을 기리는 의병기념비인 충의현비가 있다.
넓은 수레길이 조성된 무명봉(350m)을 넘어서고, 등로 좌측 저 멀리 아래로 403번 도로가 지나고 그 뒤에 파가니니 퍼블릭 골프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등로 우측 잡목 사이로 남면 창촌리쪽 마을과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 355.5m봉
41번 송전탑에서 50여m 오르면 조망도 없는 밍밍한 정상이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면 소주고개이다. 342m 무명봉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차량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곳에 내려서니, 좌측 아래로 잘 정비된 묘지지대가 보인다. 등로 우측에 망가지 전봇대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직진 능선길을 따라 계속 나가다 좌측 커다란 원형 스테인레스 저수조 옆으로 무성한 칡넝쿨과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서, 403번 도로에서 우측 고개마루로 약간 오른다.
♤ 소주고개(燒酒峴, 260m)/ 면계(남산면 - 남면)
소주고개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창촌리에 위치한 고개이며 강촌에서 황골유원지로 오는 도중에 있는 고개로, 소가 고개를 넘다 너무 힘들어 죽었다하여 소 죽은 고개라 부르던 것이 소주고개로 와전되어 불리게 되었다. 『강원향토대관』에 "남면 후동리로 가는 고개로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가 아들을 감싸고 동사한 것을 기리는 살신성모비와 의병들의 충절을 기리는 충의현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소주고개 도로 좌측편 고갯마루에, 사육신 중 한 분인 유응부의 시호 충목을 딴 '춘천 杞溪兪氏 忠穆苑(기계유씨 충목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봉화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는 [↑봉화산 3.47km] 표지판 옆이다. 소주고개 내려서서 우측으로 약 100m 진행, 전력산업단지 맞은편에서 강촌역 나가는 버스 이용 가능하다.
♤ 기계유씨 충목원/ 사육신(死六臣) 중 한명인 유응부(兪應孚)
기계유씨(杞溪兪氏)는 경상북도 포항(기계는 포항의 옛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신라 아찬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다. 그의 후손인 유의신(兪義臣)이 신라가 망한 뒤 고려에 복종하지 않자 태조가 그를 기계현(杞溪縣)의 호장(戶長)으로 삼았으며, 그의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었다. 고려 후기에 경기도로 이주한 유득선(兪得瑄)• 유선(兪僐)• 유승계(兪承桂) 3대가 출사하여 현달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98명의 문과 급제자와 3명의 상신을 배출하여 열력(閱歷)이 단연 뛰어났다. 대표적 인물은 사육신(死六臣) 중 한명인 유응부(兪應孚)다. 유응부의 시호가 충목(忠穆)이다. 그는 무과에 급제, 평안도절제사를 거쳐 중추원동지사로 있을 때 성삼문· 박팽년 등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다.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한 후 역적이라 하여 가산을 몰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집달관이 갖고간 것은 집자리 한 장 뿐이었다 한다. 같은 시기에 유효통(兪孝通)은 세종 때 대사성을 거쳐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으며, 전의감정(典醫監正) 노중례 (盧重禮)와 함께 약용식물(藥用植物)을 정리한 《향악채집월령(鄕藥採集月令)》과 향약방문으로 된 의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하였다. 경기 포천에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충목단이 있는데 소주고개의 충목원은 길 건너편의 기계유공재충효비와 관련이 있는듯 보인다. 구한말 한성부민회장을 지낸 개화의 선구자 유길준(兪吉濬)은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내부대신을 지내면서 음력 폐지와 양력 사용, 종두법(種痘法) 시행, 우편제도 실시, 단발령 (斷髮令) 시행 등 많은 개혁정책을 수행하였다. 《조선일보》사장을 지낸 유진태(兪鎭泰)는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하였고,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선생도 기계유씨다.
첫댓글 장장36km 구간을 2박3일로 산행을 할수있는것만도 축복받은 사람이네요
근디 고은리 쉼터샘물은 얼은게 아니지요?
저희들 때는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합하여 영춘기맥이라하고
2007년2/11일 부터 24구간으로 쪼개여 2008,.1.,27에 끝을 보았던 구간인데
풍라라님의 산행기 사진 보니 한장도 기억에 남아있는게 없네요
머리가 나빠서 그런가 왜 깡그리 지워졌는지 알수없는 사연이네요
하여간 2박 3일동안 산행 하시고 휴일동안에 영춘지맥을 마무리 하신다면 지금은
산에계시겠습니다
부디 무사하고 즐거운 산행길 되시기를 바랍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시라는 말씀으로 대신 합니다,
화~~이팅
두꺼비대선배님!
2006~7년 산꾼들이 영춘지맥으로 엄청 몰렸던듯 했답니다.
벌써 15년의 세월이 지났네요.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영월지맥은 그 마지막이 같은 곳을 향하기 때문에 주왕과도 잘 어울리구요.
춘천지맥은 춘천-홍천전투와 용문산전투가 있기 때문에 도솔지맥과 묶어도 콤비가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박성태 선생님은 한강의 중류를 가르는 산맥으로 한북과 백두대간과 연계시켜 영춘지맥을 창조하였습니다.
포스팅이 워낙에 장문이다보니 1구간 시작부에
영춘과 춘천의 끝이 다른 이유를 나름 말씀드렸는데 케치하지 못하셨나봅니다.
3일동안 73.2km를 걸었는데 산행 소요시간만 36시간입니다.^^
고은리 방향 샘터는 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고요,
음용 부적합 이던데... 요즘처럼 등산객이 적은 경우는 적합인 걸루 봤습니다.^^
그리고 9. 24일 졸업 예정이니,
혹여 강경교로 가신분 중에서 합수점으로도 가보길 원하신다면 동행 가능하다고 광고하였습니다.^^
명절 잘 보내고 계시죠~^^ 감사합니다.
운영자님 73km 수고하셨습니다~
생각만해도 제무름이 아파오는것 같아요~
저에게는 3구간이죠~
감탄사가 절로나옵니다~
무름님을 너무 무리하시며 홀대 하는게 아니지요~
우리산꾼님 여러분들 께서 너무 무리해서
무름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있습니다~
운영자님도 너무 무리하지 마소서
한번 망그러지면 재생이 힘들잔아요~
운영자님의 힘든 산행기에 옛추억을 되색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안.줄산을 응원합니다~()()()
추석명절 가족과함께 잘보내셔요~
법광선배님 추석 명절 따뜻하게 보내고 계시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때문에 조상들 찾아뵐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온 인류에게 닥친 재난이니 조상님들도 이해를 하지 않으실까요.
매년 자주 찾아뵈도 가족력인지 투덜거리는 조상님은 투덜거리더라구요. ㅋ~
무릎은 아직 견딜만 합니다.^^
하루 30km 안짝으로 가고,
심야에 수면을 취해준다면 그닥 무리될건 없을것 같습니다.
꾸준히 연습해서
실거리 60km이하 짜리는 마음만 먹으면 한방에 끝내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연3일 진행하니 무릎보다는 허리가 더 아팠습니다.
산행을 안 한다고 해서 무릎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사는 동안 즐겁게 살고, 나중에 망가지고 나서는 어차피 망가지는거였다고 생각할랍니다.^^
아직은 하루이틀 지나면 거뜬하니깐요. 걱정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앞으로는 무릎연골재생치료제가 나온답니다.
법광선배님도 숨쉬기운동은 멈추지 마시고 재생치료제 나올 때까지 질기게 사십시요. ㅋㅋ^^
총알을 뚫고 지뢰밭을 횡단했으니 말 그대로 사선을 넘나들었네요.ㅎㅎ
정독을 했는데 지리적인 설명이나 정보는 기억에 안나고
정보석이 운영했다는 레스토랑이나 친구와 한잔하는
주변 잡기만 기억에 남으니...
산타는 일 보다 산답후기 작성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작업으로 보이네요.
이 많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후 산행에 나섰을텐데...
준비성에 감탄합니다.
그나저나
좌측이 라라님입니까?
왠지 그럴거 같다는 짐작이 ㅎ
참 여기 춘천을 지나는 지맥 지도
그런 지도들은 어디서 구하나요?
판매하는 지도 도서가 있나요?
아무튼 수고하셨어요. 푹 여독을 푸시는 연휴이길!
그 보다는 6.25전쟁에 포인트를 두셔야 하는 지맥이고 구간입니다.^^
맞습니다. 산행기 작성하는 것도 큰 작업입니다.
저의 경우 열다섯분 정도의 선답자 산행기를 읽고 미리 작성합니다.
다녀와서 사진 첨부하고, 보완하고 수정하는 식입니다.
낙동은 무사히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전 어제 야근하고 오늘 한두시간 자고 또 야근 자원했습니다.
잠은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푹 잘려고요. 원래 슬리피리스입니다.
지맥 지도는 선배들 산행기에 다 첨부되어 있고요. 동아지도나 e산경표등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잘 생기질 못했습니다.
겨우니와 다운이와 즐거운 추석 되십시요.^^
정이든, 정겨운 이예요 ㅎ
좌측 아녜요?
어휴 나중에 실물 볼 날 있겠죠 ^^
아 지금 야근중이군요.
무슨 일인지 주야 선택해서 할 수 있으니 나름 편한 점도 있겠네요.
근데 야근이 참 힘들텐데...ㅠ
이드니, 겨우니군요.^^
업무는 둘째치고 날밤 새우는 야근 자체로도 힘들어 건강을 잃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게작대기 출신이라 체력은 버텨주네요.
후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니고개~소주고개 정말 대단한 풍라라님 이십니다
우리는 이 구간을 2구간 반에 나누어 했는것 같은데 역시 산꾼이십니다
나홀로 산행 저도 가끔 하지만 편안한것 같네요
내 나름데로 패이스 조절해 가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해서 좋은것 같네요
그러나 늘 안전이 동반되니 늘 긴장속에 산행을 해야 되겠지요?
가리산 얼굴바위 언제나 봐도 사람 옆 얼굴 형상 입니다
예전 여름철에 100대 명산시에는 석간수 먹어 본적이 생각 나네요
그러나 춘천지맥시는 겨울철이라 보지 못했고 조구만 구멍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이 신기 하기도 했네요
날씨도 좋고 멋진 산행기 잘 포스팅 하고 갑니다
참고로 소주고개 다음 구간 소주봉에 누군가 소주봉을 나무에 거꾸로 끼어져 있어 쓴웃음이 문득 생각 나네요
늘 안산 즐산 하시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를 바랍니다^0^
와룡산선배님!
선배님 띠지도 간간이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최소 5년 이상은 되신것 같더군요.
저도 가리산 석간수 구경할렸는데,
정상에서 석간수 가는 길에 데크공사를 하느라 철재 프레임이 복잡했습니다
용접단계라 어느게 붙었는지 그냥 올려둔 것도 있어서 위험 했답니다.
인부아저씨들이 라면을 끓여드시는지 부르스타, 냄비와 물이 잔뜩 쌓여있어 3리터만 빌렸습니다.^^
해가 저물어 어둡기 전에 위험지대를 통과해야 된다는 마음이 급하기도 했구요.
저는 사오랑치를 가며 유해발굴지역 우측 가파른 사면 위에 구축된 참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공군은 오히려 지뢰설치가 어려운 가파른 사면으로 기어올랐다더군요.
거은 절벽에 가깝던데...
소양강에서 이어지는 품걸리 그 골짜기를 한참동안 바라보기도 했답니다.
춘천지맥 뒤돌아 보니 호국, 안보지맥으로도 매력있는 곳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가슴에 품고 걸으신 산길은 조망의 명품구간이었군요.
강원 제1전망대라는 가리산, 도솔지맥 방향의 조망이 일품인 776.3봉,
화악지맥, 명지지맥을 배경으로 춘천을 온전히 보여주는 대룡산,
듬직한 한강기맥 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연엽산....
특히 가리산 정상에서 잡은 일몰사진과 소양호 컷은 독자를 녹여주네요.
마루금을 밟아가는 여정은 역사를 확인하고 배우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이번 구간은 전쟁참화의 흔적을 보고 생각하고 체득하는 살아있는 학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야사의 꽃인 전설(한천자 이야기, 큰바위얼굴)이 재미까지 더해 주었으니 걸을 맛이 더했겠지요.
'아프니까 청춘이다'(최근 다소 해석 논란이 있지만)는 말이 있듯이
'위험하니까 더 깊은 산행 맛이 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네요.
캄캄해진 가리산 하산길, 녹두봉 지뢰지대 통과 등....
역시 이번 산행의 진수는 늘목고개에서의 노박과 모래재에서의 친구와의 정담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노박은 산과 진정으로 나누는 대화의 시간이었을 테고....
좋은 산에서, 의미있는 산행하면서, 멋진 사람 만나는 사람. 퐁라라님은 진정 부러운 사람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범산선배님!
참으로 멋지면서도 눈물나는 춘천지맥입니다.
제가 아홉번째 지맥인데요.
이제까지의 지맥 중에 최고 점수를 줘도 아깝지 않네요.
도솔지맥 광치령에서 올라 군통신부대 전에 삼면봉인 909.2m봉에서 조금 내려서면 조망이 탁트인다는데,
거기서 소양강 너머로 백암산에서 가리산까지 춘천지맥을 일렬로 한줄에 꿴답니다.
우연찮게도 춘천과 도솔은 전적지외에도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한 천자이야기와 우두산 소슬묘 전설은 유사합니다.
추곡고개 유인석장군은 도솔지맥 공리고개에도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도솔지맥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아쉽게도 춘천지맥에서 도솔지맥 마루금을 한번에 살필 수 있는 조망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봐야 되겠어요.
몽가북계 화악지맥을 하면서도 춘천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이제사 보일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도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번복되지 말아야할 눈물나는 춘천지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휴내내 바빳고요.
일상으로 돌아온 첫날 이제야 긴긴산행기를 읽어보았습니다.
힘든구간이 많은 춘천지맥 이었고요.
새벽녁에 대룡산까지 잘 올랏는데.녹두봉을 우회해서 사격장으로 올랏지요.
내려가는 길을 못 찿아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오르락 내리락을 한참하고서 쓰레기가 잔뜩쌓인 헙곡으로 내려섯던 기역이 생생합니다.
연엽산은 오름은 또 어찌나 가파르던지 마땅히 잡을것도 없고 죽을똥을 싸고 올서니 조망은 좋더군요.
그 난이도 쎈 춘천지맥을 세번만에 끝을 보시네요.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뜰운영자님!
춘천지맥 가리산에서 능선으로 내려서는 곳에서 잠시 헤맸고,
녹두봉에서 협곡으로 내려서는 지점을 못 찾아 잠시 헤맸습니다.
그리고 연엽산 오름 차분하게 조심조심 올라야 되겠더군요.
그런 어렵고 위험한 곳이 있어 춘천지맥이 더 빛나나봅니다.^^
내일 아침 군장 가볍게 꾸려 춘천지맥 마무리 하러 떠납니다.
하루종일 저번에 날려먹은 도솔지맥에 매달렸습니다.
일행이 있으면 강촌에서 닭갈비에 한잔하고 그렇지않음 포장으로 집에 와서 한잔 할려고요.^^
오랜만에 메밀막국수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주야없이 사흘간의 기억남는 여정은 이어지셨습니다.
이 구간 가리산, 대룡산, 춘천병원의 모래재 등 명소를 두루 섭렵하면서 추억을 남기셨네요.
저도 지난지 오래되서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간간히 옛 생각에 젖어봅니다.
친구분과도 즐거운 시간 나누셨네요.
멋진 여정담을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졸업한 9개 지맥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멋진 춘천지맥이었습니다.^^
가리산 석간수를 구경하지 못해 아쉽구요.
레드벅선배님이 대룡산 약수터를 알려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모래재에서 꼭 물을 구해야 하는 장소인데,,,
정신병원 정문 경비실에 문의를 하든지,
정신병원 정문 건너편으로 "우일토종닭"이라는 음식점이 있으니 거기서 물을 구하면 되겠더군요.
다음엔 도솔지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