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다녀 온 미국여행Ⅱ-4
(Yosemite National Park)
캐나다 뮤즈 한국 청소년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수필가 박혜정
모모 호수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공원 표지판을 보고 따라 가다보니 입구에 주유소가 있었다. 차에 기름이 아직은 남아있고 혹시 모자란다 해도 공원 안에 주유소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름을 넣지 않은 것이 나중에 후회가 되었다. 왜냐하면 공원 안의 주유소는 값이 비쌌기 때문이다. 주유소를 지나 공원 입구에서 7일 동안 유효한 입장료를 $20을 내고 들어갔다.
차를 타고 보이는 밖의 풍경은 꼭 한국의 불영 계곡을 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한계령을 올라가는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경계석도 없고, 약간 겁이 났다. 왜냐하면 예전에 한국에서 눈이 많이 오던 날 한계령을 올라가다 휴게소로 들어갈 때 갑자기 차가 미끄러지면서 경계석에 걸려 겨우 살아났던 아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고. 그때 시멘트 경계석이 얼마나 귀중했던지...
출입구는 동쪽, 서쪽, 남쪽에 있었다. 우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공원을 횡으로 통과하여 서쪽 입구 근처까지 가서 남쪽으로 통과해서 LA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겨울에는 동과 서를 횡단하는 120번 도로가 폐쇄 된다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작년 겨울, 아쉽게 관광을 할 수 없었다.
무섭기도 하고 멋지기도 한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구불구불 해발 3513m의 산을 올라 관광안내소(Visitor Center)에 도착했다. 다른 곳에 비해 작은 규모로 숲 속의 조그마한 산장 같았다. 몇몇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블랙 베어 털 조각이 있었고 만져 볼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매우 뻣뻣했다. 또 곰 발자국을 떠 놓은 것이 있어 보니 앞발과 뒷발의 크기가 달랐다. 앞발이 뒷발에 비해 조금 작았다. 보통 곰은 뒷발로 서서 앞발로 공격을 하고 오른쪽 앞발로 꿀을 따기도 한다.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곰발바닥 요리가 오른쪽 앞발이 더 맛있다는 말을 들어 보았다.
어디로 갈지 잘 몰라서 공원 입구에서 나누어준 ‘디스커버 요세미티(Discover Yosemite)’ 라는 신문을 보면서 그곳에 나와 있는 사진들 중에 마음에 드는 몇 곳을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신문을 보니 이곳은 경치만을 구경하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놀고, 공원에서 준비해 준 프로그램을 보고, 배우고 하기에 적당한 곳 같았다. 공원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들은 아침 8시30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프로그램이 저녁9시에 시작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예를 들면 포토 워크(Photo Walk), 디스커버리 하이크(Discovery Hike), 아트 클래스(Art Class), Meet Your Yosemite 라는 15분짜리 대화 프로그램, 다양한 종류의 투어(Tour) 등이 있었다.
공원에 며칠 묵으면서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좋으련만 LA로 가는 일정이 바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대충 둘러보고,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신부의 면사포(Bridalveil)’ 폭포는 꼭 보고 가기로 했다. 폭포 주위의 경치도 멋졌다. 꼭 설악산 한 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로키 마운틴의 어느 곳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폭포는 굉장히 특이했다. 다른 폭포처럼 우람하게 물줄기가 내려오지 않고 정말 신부의 베일처럼 폭포의 끝자락이 안개같이 흩어져버렸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저리 흩어지기도 하고. 그 센 물줄기가 어떻게 흩어져버리는지 신비하기까지 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어두워지는 것 같아 서둘러 출발했다. 언젠가 캐나다 사람이 요세미티에 가면 실망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가보니 알 것 같았다. 자연이 캐나다만 곳이 있을까 싶다. 로키 산맥에, 거기에다 가까운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호수, 태평양바다, 계곡, 폭포 등. 그러니까 요세미티는 경치를 구경하러가기 보다는 그곳에 숙박을 하면서 바비큐도 숲속에서 해 먹고, 프로그램도 참가해 공원 깊숙한 곳도 가보고, 밤에 별도 관측해 보는 곳에 더 어울릴 것 같았다.
LA로 가기위해서 남쪽으로 41번 도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공사 중인지 길이 막혀있었다. 조금씩 움직이다가 하필, 갈 길이 바쁜 우리 차부터 기다리게 되었다. 민망하게 정지 표지판(STOP SIGN)을 든 사람과 눈이 자꾸 마주치게 되었다. 원망스러운 눈길과 또 언제 가야하는지에 대한 답답한 눈길을 보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결국은 기다리다가 답답해서 직접 나가 물어 보니 편도 1차선만 이용할 수 있게 해놓고 선도차(pilot car)가 와서 이쪽 차선 한번, 반대편 차선 한번을 데리고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그래서 15분 거리를 왕복을 하니 꼼짝없이 30분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한국과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기다리는데 익숙한지 불평 한 마디 없이 잘도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여행을 다니며 눈에 보이는 곳에서 사 먹는 것이 전부 서양음식이다 보니 갑자기 자장면 같은 음식이 먹고 싶었다. 남편은 우동이 먹고 싶다고 했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그곳에서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는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선도차가 왔다. 그 차를 따라 공사현장을 다 빠져나오니 벌써 깜깜해졌고 길은 굉장히 꼬불꼬불했다. 우리 뒤에 오는 차는 우리를 놓치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추격전을 벌이듯 하며 공원을 빠져 나왔다. 조금 가다 보니 시야에 한국어로 ‘스시’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보였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자장면 대신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 물론 스시도 먹었고.
CA-41번 도로를 타고 CA-99번을 타고 가다 보면 그 도로가 I-5가 바뀌면서 LA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캐나다에서 곧장 내려오면 LA까지 갈 수 있는 I-5를 만나게 되었다. “며칠 만에 다시 보는 I-5인가!” 너무 반가웠다. 안도의 숨도 내쉬고. 그런 생각도 잠시, LA는 워낙 복잡하고 고속도로 규정 속도도 캐나다에 비해 빠르고 차선도 같은 차선을 타고 가도 2차선이 되었다, 1차선이 되었다 막 바뀐다.
LA에 들어 설 때는 이미 새벽1시가 넘어선 시간이었는데도 고속도로는 복잡하기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깐 꾸벅꾸벅 졸았다. ‘출구를 지나친 것 같다’는 남편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이 복잡한 곳에서 어찌하랴. 그래서 배터리가 없을까봐 아껴두었던 네비게이션을 꺼내서 결정적인, 이 긴박한 순간에 고맙게도 잘 사용했다. 그래서 무사히 길을 찾아 딸 아이 집에 도착했다. 드디어 긴 여정의 반환점인 LA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