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독교의 연구와 선교의 기초들
그래함 킹 (헨리마틴도서관 편집인, 케냐 선교사)
"친애하는 각하, 제가 먼저 비극적인 천재, 마틴씨의 죽음에 대해 알려드리게 되어 너무도 유감입니다. 그는 소아시아의 토캇에서 죽었는데 아마 콘스탄티노플이나 알레포로 가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아이작 모리어씨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말했지만 제가 추측하기에 그는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책들과 사재는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는 태브리즈에서 9월 1일날 떠나서(그의 몸상태로 볼 때 너무 빠른 출발이었습니다.) 10월 16일쯤 죽은 듯합니다. 그러나 그가 열병으로 죽었는지 여행의 피곤에서인지 사인은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인도와 세계가 감당해야할 이 손실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편지는 1813년 1월 11일 동인도 회사의 회장이었던 찰스 그란트에게 찰스 시므온 목사가 쓴 편지이다. 나는 이 편지를 리들리 홀에서 발견했다. 시므온은 헨리 마틴의 영적 아버지였고 그의 1800년 회심때부터 마틴과 가깝게 지내왔었다.
마틴은 1812년 아르메니아의 토캇에서 31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동인도 회사의 사목으로 디나포레와 카운포레에서 섬겼고, 5년동안 신약성경을 우르두(힌두스타니어)어와 페르시아어(현재 이란)와 아랍어로 번역하는 것을 감독했다.
그는 캠브리지 대학의 세인트 죤스대에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797년에 다니기 시작하여 세니어 랭글러상(수학계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이어서 라틴어상의 수상자가 된다. 그는 일기에 “나는 내가 꿈꾸어 왔던 최고의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림자를 잡았다는 것에 더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세인트 죤스대의 연구원으로 발탁이 되고 홀리 트리니티에서 부목사로서 성직을 얻게된다. 이 때가 인도로 떠나기전 1805년이다. 비극적인 것은 그의 연인이었던 리디아 글렌펠을 고향 콘월에 두고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인도에까지 그를 동반하지도 않았고, 그 역시 그녀를 설득하고자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다.
최근, 옥스퍼드의 한 연구원인 발렌틴 커닝햄은 소설 제인에어에 나오는 세인트 죤 리버스의 모델은 헨리마틴의 일생을 기초로 한 것이라는 이론을 발표했는데, 샤롯 브론테의 아버지가 세인트 죤스대에서 수학할 당시 마틴의 도움을 받아 왔었고, 마틴은 그의 영웅이었다고 한다. 그는 패트릭 브런티를 만나 헨리 쏜톤과 윌리엄 윌버포스에게서 일년에 10파운드의 돈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커닝햄 1993)
무엇이 헨리마틴의 유산인가? 나는 그에 대한 세가지 기초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그의 번역작업들(미래 선교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 그의 영적인 삶(선교사의 소명에 대한 기초이다), 그리고 그의 도전적인 발상들(세계 기독교와 선교를 위한 연구의 기초이다)
1. 마틴, 언어학자와 번역가로서: 미래 선교를 위한 기초 마틴은 1809년 자신의 친구 데이빗 브라운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러카라 출판사에서 출간된 셀틱 파생어들이라 불리는 책이 있다-이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구상 온세계 언어들의 문법책과 사전들이 필요하다. 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히브리어, 라비니칼 히브리어와 찰디, 시리아어, 에디오피아어, 사마리탄어, 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 벵갈어, 힌두스타니어에 대한 책들은 한 두권쯤 가지고 있다.” (1922년 패드윅에서 인용)
케네스 크래그는 이슬람인들을 위한 또 하나의 기독교 번역학자인데, 세계 신앙의 관심에 대한 필생의 연구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마틴이 짧은 선교 번역가로서의 삶동안 이룬 업적은 무엇보다 놀랍다. 특히 신앙에 관련된 어구와 단어들에 관한 문제에서 그러하다. 마틴은 곧 ‘x는 y로 번역한다’는 단순번역의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꾸준한 영적인 고뇌로부터 얻어진 강한 학자적 소양으로써 맞서서....“은혜, 진리, 구속, 교회, 소망”같은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들을 인도의 관용어구로 재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마틴에게 있어서 그가 얼마나 비교언어학적인 이론을 가지고 다른 언어학자 못지 않게 민감하게 번역했는지는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충실한 종 문쉬, 지역 학자의 도움으로 단어들간의 차이에 대한 선명한 느낌과 중요한 함축적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비교언어학의 이론“이란 훌륭한 어구를 의미하며, 미묘하고 힘든 성경번역의 핵심을 의미하고 있다.
마틴은 자신이 인도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상냥함의 힘이란 저항하기 힘들며 이 사람들은 결코 바보들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사고의 명확함은 유럽인들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브릴 파웰은 그의 저명한 [무슬림과 인도에서의 선교]저서에서 마틴의 번역작업이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녀는,
마틴은 이슬람과 복음적 선교사들간의 논쟁에 있어 대화의 새로운 채널을 마련했다. 마틴의 최초 우르두어 신약성서는 코란의 우르두 번역서에 앞서 캘커타에서부터 배포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이 기독교를 이해하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도구를 제공했다.
요셉 울프는 독특한 선교 여행자로서 1833년 1월 31일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무술사람들과 물라들은 아랍어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페르시아어로된 마틴의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각 구절들을 빨간 잉크로 죄다 그어 놓았는데, 이는 그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성경을 읽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울프 1835년)
마틴은 먼저 신약성경을 우르두어로 번역하는데 특별한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어의 번역작업을 감독하였다. 그의 무법하고도 냉정한 도우미였던, 학자 사밧은 페르시아어보다는 아랍어에 보다 능통하였었다. 마틴은 사밧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그의 현학적인 뽐냄을 보고 웃었다. 나는 저런 독단적인 자만함을 캠브리지의 파르박사가 설교할 때 들은 이후에 본 적이 없다.”
마틴은 자신의 번역작업에서 많은 서툰문장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번역을 상황에 맞는 번역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페르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상황에 대한 중요성은 결코 현대 선교언어학적인 관점만이 아니다. 그는 다마스커스와 아라비아를 거쳐 영국까지 그의 종양질환을 개선하기를 바랬고 성경사본을 찾으려고 했다. 그의 캘커타 동료들은 이를 극단적으로 말렸지만 그는 1811년 떠나고 만다.
토마스 토마슨은 캠브리지에서 그의 친구로서 캘커타의 사목이었으며, 후에 구약성경을 우르두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시므온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그는 아라비아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건강과 지식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당신도 알 듯이 그의 천재성은 그가 하는 모든 일마다 엄청난 진보를 이루고 맙니다. 그의 마음엔 언제나 큰 계획이 있는데 나로써는 감히 판단조차 하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 목적은 한 사람의 일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고 그의 나약하고 지친 체질로는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서도 그는 동일합니다. 그는 사랑의 위대함에서도 언제나 크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말할 수 없는 신성한 위엄이 늘 뒤따릅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많이 할 때는 비록 작게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먼지와 재같은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데이빗 브라운은 마틴이 아라비아로 가려는 계획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자네는 발열하는 인의 강하고 날랜 불꽃으로 불타고 있구려...”
페르시아에서 그는 신약성경을 완전 재번역하였다. 그는 쉬라즈에서 번역을 배우고 무슬림 학자들과 논쟁하면서 일년을 보낸다. 캠브리지의 아랍어 교수인 사무엘 리는 1824년 소논문을 출판한다. 그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페르시아의 중심부에서 가장 박식하고 재능있는 마호멧학자들의 연합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믿음을 홀로 변호하였다.”
쉬라즈에서 마틴은 그의 쇠약해가는 여행을 태브리즈를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가려고 한다. 그리고 토캇으로 가는 도중 사망함으로 자신을 실재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고어 오슬리경은 태브리즈의 영국대사로서 그를 간호하였는데 마틴에 대한 개인적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여 그의 페르시아 신약성경을 성 피츠버그의 출판사까지 배달하고 1815년 인쇄되기까지 교정읽기를 해 주었다.
시므온은 10월 18일 1814년 그랜트에게 편지하여 다음과 같은 열정적인 후기를 남겨놓았다.
“존경하는 각하 봄베이에도 사목자리가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그 자리를 위한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기까지 그에 대한 일을 더 진행시킬 수 없군요.
마틴씨의 페르시아어 성경이 피츠버그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페르시아왕이 그것을 귀하게 여기더군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한질을 복사하였고 자신의 친구들을 위해 여러 복사본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친필로 그 성경에 추천사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 한 복사본은 피츠버그의 성경공회에 넘겨져 바로 인쇄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
현재 헨리마틴 도서관의 전시실에는 이 신약성경 초판이 있으며 그 책은 쉬라즈 교회에서 1936년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증정한 것입니다.
2. 마틴, 선교 사명에 있어서의 영감있는 기초
마틴은 그의 일기에서 그가 심적으로 지쳐있을 때 “만일 내가 단 한명의 인도인도 회심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내 사역의 존속을 통해 미래의 선교사들에게 용기를 주실 것이다.” 사익 살리는 마틴이 1809년-1810년 카운포레에서 설교할 때 그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마틴을 따라 캘커타로 와서 다니엘 코리로부터 1811년 압둘 매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후에 매시는 루터교와 영국교회에서 목회자로 안수를 받는다. 이로써 그는 최초의 인도-영국교회 목사가 되어 아그라 지방에서 선구자적인 의료와 복음 선교사로 쓰임을 받았다. 런던의 CMS 사무실의, 협력의 집에는 유화로 그린 큰 매시의 초상화가 있다. 이렇듯이 마틴은 그의 일생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영감은 죤 사젼트로 하여금 자서전을 쓰도록 했으며, 사무엘 윌버포스가 마틴의 일기와 편지들을 편집하도록 하였다. 또한 죠지 스미스와 콘스탄스 패드윅이 그의 자서전을 집필하였다. 마틴의 친근하고도 강렬한 감수성의 일기는 영적인 고전이 되었다. 캠브리지대학에서 그의 삶은 수많은 사람들을 해외선교에 바치도록 한 강한 도전이 되었다. 1887년 이후 홀리 트리니티교회 옆에 ‘헨리 마틴 기념홀‘이 개관되었을 때부터 그 곳은 학내의 선교 모임을 위한 특별한 장소로 쓰이고 있다. 이 기념홀 안에는 도서관과 선교 박물관이 따로 자리잡고 있다. ... 중략... 마틴의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인 리디아 글렌펠은 결국 인도로 오지 못하였고 그는 그의 편지에 이와 같이 회상한다. 이 편지는 죤 헨스만에게 1804년 10월 3일 쓴 것이다.
“해변의 한 친구집에 들러, 나는 리디아와 함께 산책을 했다. 그리고 해변의 장관과 아름다운 그녀의 경건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을 기쁘게 경청했다. 오후가 되어 우리는 와트의 책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곧 우리는 아마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암울한 시간을 맞게 되었다.”
결국 그 뒤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는데 리들리 서고에서 나는 벨벳 케이스에 있는 마틴의 메달을 발견했는데 호기심이나 그것을 벨벳에서 꺼내보았다. 뒤집어보니 그 케이스의 뒤쪽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 유리 안에는 긴 여인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리디아의 것이었을까? 상상해 볼 뿐이다.
3. 선교와 세계 기독교를 위한 학구적인 연구를 위한 기초
헨리마틴의 기념홀은 1887년 오픈되었으나, 도서관은 10년 뒤에 캠브리지 대학의 선교도서관의 필요에 의해 모금운동을 위한 광고지를 인쇄하면서 지을 수 있었다. 이름하여 ‘헨리 마틴 도서관’이다. 그리고 이는 홀의 지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광고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작년 리버풀에서 개최된 세계 학생 선교 컨퍼런스의 중요한 소득은 선교 도서관과 독서실을 캠브리지에 지음으로써 선교적 열정에 대한 영구적인 부흥을 이어가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1896년의 마지막 3개월동안 19명의 캠브리지 학생들이 선교에 자원하여 파송되었고, 100명 이상이 선교적 일과 역사, 원리들을 위해 연구하고자 모였습니다. 이 연구는 학생 자원 선교회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으로 체계화되었으며, 평균적인 학과기간동안 선교의 전반적 분야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헨리마틴 기념홀”의 부가적인 요소로서 “헨리마틴 도서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중략... 현재 이 도서관과 홀을 통해 현대 선교 운동을 위한 수많은 자료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첫댓글 스.포.츠.토.토 프.로.토의 또다른 즐거움!
KUS855 닷컴 (추천인1234)
회원가.입.시 3000원지.급, 매일 첫,충,전5%추가지.급.
올킬,올다이,이벤트중입니다. 단,폴(50)~모바일가능
365일 연중무휴 24시간(해,외,운,영) 온라인 고객서비스!
믿.음.과 신.뢰는 MUSIC의 전.부.입니다.
스.포.츠.토.토 프.로.토의 또다른 즐거움!
KUS855 닷컴 (추천인1234)
회원가.입.시 3000원지.급, 매일 첫,충,전5%추가지.급.
올킬,올다이,이벤트중입니다. 단,폴(50)~모바일가능
365일 연중무휴 24시간(해,외,운,영) 온라인 고객서비스!
믿.음.과 신.뢰는 MUSIC의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