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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信)해(解)행(行)증(證)의 수행
포교사단 인천경기지역단 / 사무국장
불교와의 인연
제가 처음으로 불교와의 인연을 맺게 된 가피력은 전생의 커다란 인연의 결과라고 확신 합니다.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어느 시골 벽촌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머님 등에 업혀서 6.25사변을 맞이한 어린시절!
3살 때 아버님은 채독이라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6남매를 거느리시고 힘겨운 죽음과 삶과의 전쟁으로 처절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 와중에 한분의 형님과 누님은 운명을 달리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큰 누님은 일찌감치 시집을 보내고, 저보다 11살 위인 형님은 남의 집 머슴살이로, 저의 작은 누님은 대전의 어느 장사 하는 집으로 식모살이를 가게 되어, 저의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는 삶을 살아야만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혹덩이같은 저를 대리고 전전긍긍 하시다가, 어느 보부상의 소개로 대전으로 오게 되었으며, 재취로 새 삶을 살게 되었지요, 어린저의 마음은 늘 불안하여 어머님 치맛자락만 잡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5섯살, 어린 저는 의붓아버지 밑에서 주눅이 드는 어린 시절을 살아야만 하였지요, 의붓아버지 집에는 3살 위인 형이 한분 계셨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 의붓아버지는 치과 세공사일로 그나마 간신히 의식주를 해결하고 계셨습니다.
세공사 뒷일과 눈칫밥을 먹어가면서 보낸 세월, 철이 없던 어린시절은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즐거운 시절이었습니다. 남동생도 태어나서 5섯 식구는 좁은 단칸방에서 아래위로 다리를 포개자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국민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 하였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도 포기하고 집에도 있기 어려워, 숙식이 제공되는 시계점으로 직장을 얻음으로써, 어려웠던 어린시절을 마감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어려웠던 어린시절의 시련은 제가 자수성가 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기술을 배우고 익혀가며, 커다란 나만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매월 받는 월급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하고, 직원 분들이 주시는 용돈으로 목욕비와 이발비를 충당 하면서 청년시절을 보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근검절약정신이 몸에 배였습니다.
군대를 갈 나이가 되어, 그 동안 사귀어오던 아가씨와 약혼을 하고, 3년간의 군 복무를 무사히 마쳤으며, 제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나만의 인생을 출발 하였지요,
그 동안 저축한 돈으로 조그만 점포를 차리고, 신혼의 단칸방도 마련하고, 한 가정을 이루어 단란한 신혼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푸른 꿈을 향하여 !
청혼의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울로 진출 하여야만 할 것 같아, 친구의 도움으로 예지동에 자리를 잡고 아내와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서울에서의 시작은 많은 일감과, 기술의 축적으로 나날이 발전되어가는 삶으로 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종로에서 영등포로 다시 부천과 인천으로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승승장구하는 인생의 황금기가 나에게도 찾아왔지요, 근면 성실의 삶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정신으로 부지런히 살다보니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부(富)를 축적하지는 못하였지만, 남에게 돈 빌리지 않는 삶으로 만족 하게 됨을 항상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지역은 서구문물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 한 개항지로서, 기독교 교회가 처음 생긴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교회들로 가득한 인천지역은 야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내리다 보면 빨간 십자가들이 불야성을 이룬다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사찰과 불교인구는 취약하기만 합니다. 항구를 중심으로 미개발된 낙후 지역에는 지금도 토속신앙인 점집 또한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2의 고향인 이곳 인천에 안주하면서 저의 꿈을 펼치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교육시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하였으며, 이제는 손자 둘과 손녀를 둔 어엿한 할아버지의 대열에 접어든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15년 전, 연수구 동춘동 보명불교대학에 입문한 아내가 집안일로 입학을 포기하게 되었지요, 등록한 입학금이 아까워 대신등록하게 되었으며 불교공부를 하다보니 너무나 신심이 나고 느끼는 것이 많아, 한 번도 빠짐없이 기본교리를 배우며 사람이 인간 몸 받음의 소중함과 우주의 이치를 배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제,팔정도, 연기법 등,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인연법의 소중함과, 진공묘유의 진리를 터득하며,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모르고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된 행위에 대한 후회와 어리석음의 업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은 참으로 즐겁고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젠 장사도 뒷전으로 밀릴 만큼 절에 가는 것이 일과가 되어갔습니다. 학생회장도 하고 신도회장도 하고 거사회 회장도 하고, 사찰의 행사라면 모두 참여하는 부처님 제자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전국으로 유명한 사찰에 성지순례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환희심으로 가득한 일상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부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날 새벽 ! 비몽사몽간에 찾아온 죽음의 공포는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부처님과의 만남
아직 50살도 되지 않는 젊음의 나인인데, 앞으로 할 일이 너무나 창창한데...
벌써 죽어야 하다니! 너무나 어이가 없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거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입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저승사자님들에게 끌려가는 수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고개를 푹 숙이고 커다란 죄를 짓고 끌려가는 죄인의 모습!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의 그 모습이었습니다.
이젠 짧았던 내 인생도 마지막이구나! 만약 지금 내가 죽으면!!!
내 가족들은 얼마나 당황하고 걱정할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여 왔습니다.
세 분의 저승사자에게 한참을 끌려가다가 문뜩 앞을 보니, 찬란한 눈부신 광채를 발하시며 결과부좌 하시고, 살며시 미소를 띠며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아 ! 부처님이시다 !
난생처음 대하는 거룩하신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그렇게 환희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함성을 지르며 환희하는 순간 ! 잠에서 깨어났으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 행운의 가피력을 입게 되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들은 곧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젠 살았구나! 부처님! 감사 합니다. 부처님! 감사 합니다.
이젠 나뿐 짓 하지 않고, 좋은 일 많이~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바로 죽음의 문턱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던 생생한 모습은, 지금도 너무나 황홀한 환희심 으로 닥아 옵니다.
책상에 엎드려 참회의 글을 씁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려오는 뉘우침으로 가득 합니다. 참회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립니다. 눈물을 훔치며 서원을 세웁니다.
부처님 ! 거룩하신 부처님 !
앞으로 주어진 소중한 저의 삶은 부처님제자로서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지금까지 50여년을 살아오면서 남을 속이고, 피해를 주고, 폭력을 쓰고, 하는 것만이 죄인 줄 알았는데, 무의식적으로 짓는 죄가 너무나 많다는것을 알게 되고, 나의 삶과 즐거움을 위하여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괴롭히고, 남을 속여 돈을 버는 것을 당연시 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 치부하는 옹졸한 행위들이 한심하고 한심하여 한없는 후회의 눈물을 주룩~ 흘려야만 했습니다.
[참회진언]
“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 를 수 없이 독송하며....
무간지옥행인 죄 많은 나에게도, 거룩하신 부처님께서 새 삶의 기회를 주셨으므로 모든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의 가피력에 보답하는 올바른 길을 가자고 “사홍서원”의 4가지 커다란 서원을 굳게~ 부처님전에 약속을 하였습니다.
지금부터의 삶은 다시 태어난 여벌의 삶이다.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진리의 법을 전하라는 사명감을 주셨다. 지옥의 문턱까지 간 나에게 이젠 어떠한 두려움도 없다, 라는 각오를 다지며 그동안 열심히 해오던 사업도 서서히 정리 하면서 불교 공부에 전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명사 불교대학을 이수하고 인천불교대학을 거쳐, 조계종단에서 실시하는 7회 포교사 자격고시를 통하여 품수를 받고, 서울,경기 지역단 군 불교 11팀에 소속되어 팀장으로써 도반들과 매월 한 주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장병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는 포교사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동안 인천불교대학 기초교리 강의와, 후배 포교사들을 배출하는 부학장의 역할과 신도회장의 역할을 겸하면서 불교대학 졸업생들을 모아 자원봉사 활동(나눔세상)을 시작으로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 의 대승보살도를 실천하는 행원을 마련하였습니다.
사찰에서 발생하는 폐지나 폐품을 모으고, 회원들의 회비를 모으고 사비를 털어 차량을 구입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토스트 공양과, 공양미를 구매하여 각 동사무소에 보시함으로써 하화중생구제의 실천 행을 실천하였고, 함께하는 모든 회원들과 불자들에게 불자들의 행불(行佛)의 인연을 이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염불봉사단을 조직하고, 불자들의 부모나 가족들의 임종시 염불봉사를 통하여, 외롭고 당황스러운 유가족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설명하며, 안락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포교방법은,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이나 유가족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포교 방법일 것입니다.
때로는 인연의 요청에 의하여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발병의 원인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한 치료방법을 제시해주며, 벗이 돼주고 상담자가 되어 인생설계를 도와주는 일도 중요한 포교 방법입니다.
통신 반으로 동산불교대학교 대학원에 등록하고, 사업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테이프 강의를 듣고 노트에 일일이 기록하며, 4년의 세월동안 수행과 사업과 공부에 전념하여 드디어 졸업의 자격을 인정하는 전법사의 인증을 무진장 큰 스승님으로부터 받는 가피력을 입었습니다.
몇년전
수십 년간 삶을 유지해오던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본격적인 신행 생활을 하기위하여 불자들의 무료급식 단체인 “인천 나눔 회”(다음 카페/인천 나눔회)를 창립하고, 매주 금요일 날을 정하여 어르신들께 점심공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상은 65세 이상 어르신들과, 장애인,독거노인,실업자들에게 무료급식공양을 통하여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횟수로 170회를 넘기다보니 어느새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매주 1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봉사를 하면서, 저희 봉사자들이 느끼는 감동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함과 여유로움과, 대승보살로서의 수행과, 다음 생을 위한 커다란 공덕지음의 행원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자세들을 보는 이웃들의 시선과 부평자원봉사센터의 지원으로 이젠 어엿한 인천불교를 대표하는 무료급식 단체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단체들의 봉사활동에 비하여 불교단체들의 봉사활동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포교사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시 되는 지역이 인천지역 불교포교입니다.
사찰마다 의무적으로 불교대학을 개설하여 포교사들에게 기초교리 강좌를 할 수 있도록 종단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군 포교, 전,의경 경찰포교, 어린이 법회의 활성화, 파라미타 청소년법회, 청장년법회의 활성화와, 자원봉사활동과, 상장례 교육을 통한 장례염불봉사의 지속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는 지역입니다.
제가 지금 원찰로 정하여 수행하는 인천불교회관은 인천불교를 대표하는 수행 처입니다. 비록 연륜은 짧지만 신도 수의 증가는 제일이라고 합니다.
금번 이곳에서의 포교방법으로 지장회를 창단하고 회장직을 임명 받았습니다.
지난 8월24일 우란분절 백중 날 창단된 지장회는 2달 만에 22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상,장례교육과 목탁습의를 통한 염불봉사 활동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인천지역 각 구별로 25명씩 1법등을 만들어 법등장 중심으로 지역 포교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주지스님이신 일지스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타 단체보다 빠른 성장으로 인천불교를 리더하여 갈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로 몸은 피곤 하지만 부처님은혜에 보답하고 나의 수행의 완성을 위하여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앞으로 이 단체들을 더욱 발전시켜 불교복지회관 건립의 서원을 기필코 완성하는 그날까지 더욱 열심히 정진 하고자 합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불교의 진리에 눈을 뜨게 하여주신 큰 스승님의 말씀을 항상 명심하고 실천 하려고 합니다. 기도로써 성취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아침 예불로 천수경과, 금강경을 독송하며 보살의 마음가짐을 살피고, 법화경의 오묘한 부처님의 지혜를 터득하며, 108배 참회를 통한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수행으로 한없는 반야지혜의 깨달음을 향한 정진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 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포교사 자광 합장.()
주 소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6동 1095-5 마하빌딩 502호
연락처 : 010-5873-4485 E-mail : puruna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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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_()_
대단하십니다.감사합니다.그리고 수고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나날이 번성하시어 많으니들에게
포교하시어 어리석고 어두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이에게 등불이 되는 포교사가 되실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거듭 감사드립니다.()
자광법사님!
저도 시간내어 봉사활동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쉼없는 정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