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 성종의 건강법(1)
‘옛것에서 지혜를 찾다’
오늘도 장동민 한의사와 함께 합니다.
(전화연결 - 인사 나누기)
Q1. 자, 원장님, 오늘은 조선시대 9대 임금인 성종이지요?
성종은 사실 왕위 계승 서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공신들과 대비의 손에 의해 왕이 된 임금입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왕권을 발휘하지 못했었지만, 이후에는 조선의 법치 근간을 세운 <경국대전>을 비롯해서 많은 업적을 이루면서, 이른바 태평성대를 만들어서 ‘세종’에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율곡 이이와 같은 현인도 자신의 저서 <동호문답>에서 성종을 세종과 버금가는 인물로 칭송했었는데요, 하지만 밤에는 술과 여자와 유람을 좋아해서 ‘낮에는 성군, 밤에는 폭군’이라는 이중적인 별명도 얻었습니다.
Q2. 성종이 술을 무척 좋아했었군요?
네 맞습니다. <오산설림초고>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기를 ‘역대 임금 중 가장 키가 컸으며, 술을 몹시 좋아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특히 성종은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하는데요.
이를 감독하는 늙은 내시가 있어, 임금이 건강을 상할까 염려하여 약간 물을 타 그 맛을 묽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성종이 이 물탄 술을 마시고 나서 싱겁다 하고, 그 환관에게 그 까닭을 물었는데요. 그가 사실대로 대답하자, 임금이 명하여 내쫓았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왕조실록>에는 아예 반대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성종이 왕의 신체를 조절하고 기혈을 보호하기 위해 향온을 드시라는 신하들의 요청을 여러 번 거부하면서 말하기를, “자신은 본래 술을 먹지 못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의원의 홍소주를 훔쳐 먹은 종의 처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술을 먹기는 한 것 같습니다.
Q3. 이렇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성종의 건강을 해쳤을까요?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술을 밥 대신에 먹게 되면 수명이 짧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는데요, 음주함에 있어 3잔 이상 마시면 오장(五臟)을 상하고 이성이 어지러워지고 발광의 상태에 이르게 되니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어기고 과도히 술을 마시면 독기(毒氣)가 심장을 공격하고, 위장을 막히게 하고, 가슴과 옆구리를 썩어 들어가게 하며,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하니,
처음에는 병이 옅어서 구토하고 땀이 나고 뾰루지가 생기고 코가 빨개지고 설사를 하고 명치끝이 아픈 정도이나, 병이 깊어지면 당뇨병, 황달, 폐병, 치질, 복창, 실명, 천식, 전간 등의 병이 생기게 되니, 이는 생명의 근본을 상실케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Q4.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군요.
그 중에서 성종에게 나타난 질환도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성종 20년 2월 12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성종이 치질 때문에 경연을 취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종이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내가 사헌부의 말에 따라 경연(經筵)에 나가고 조회를 보려고 하였으나, 다만 치질과 이질(痢疾)이 함께 일어나서 실행하지 못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다시 말해 성종 스스로 치질을 앓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원래 치질이란 항문과 그 주변에 생기는 질환을 말합니다. 이러한 치질은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덩어리가 생기거나 삐져나오는 치핵, 항문 내벽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주위 조직에 고름이 차는 치루 등이 모두 치질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보통 치질이라고 하면 치핵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5. 보통 치질은 창피해서
다른 사람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 질환인데,
성종은 스스로 밝혔군요?
네 맞습니다. 원래 병은 알릴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요. 왜냐하면 그 병에 대해 좋은 치료법이나 전문 병원 및 의사들을 소개받거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질환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치질(痔疾)입니다. 오죽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치질인 것을 숨기고 버티려다 기절하는 장면까지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역대 <왕조실록>에도 치질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성종은 워낙 증상이 심했었는지, 앞서 본 바와 같이 스스로 치질 증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치질로 인해 경연에 나가 오랫동안 앉아있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치핵이 악화되어 탈항(脫肛) 증상까지 가지 않았었을까 추측해봅니다.
Q6. 보통 변비가 있으면 치질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성종도 변비가 있었는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서의 기록을 보면, 성종이 치질과 이질을 동시에 앓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질은 설사병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다시 말해 치질과 설사를 동시에 앓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거지요.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변비가 원인으로 작용한 치질과는, 기전이 다른 유형인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성종은 어릴 때부터 평소에 설사를 자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변비가 아니라 설사로 인해서 생긴 치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요. 실제 <왕조실록>의 다른 기록을 보면, 성종이 기침병으로 고생할 때도 설사 증상은 항상 동반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로 미루어 볼 때, 성종의 치질은 설사가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Q7. 이 당시 성종은 치질 치료를 어떻게 했는지요?
설마 수술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수술 대신에 어의들이 한약 처방을 했는데요, 간혹 치질은 무조건 수술해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10명 중 7명은 보존요법과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되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겨우 30%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수술하기보다는, 근본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도 도움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의 치질의 원인은 과도한 음주와 성생활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여성들의 경우에는 변비나 산후조리 부실로 인해 하초가 약해진 경우를 손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성의 경우에는,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술독을 없애며 하초기능을 강화시키면, 치질이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여성의 경우에도 대변을 잘 볼 수 있게 도와주거나 비뇨생식계통을 강화시켜, 중기(中氣)를 강하게 해주면, 증상이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성종의 경우에도 오랜 설사와 진음부족 등의 증상으로 인해, 치질이 발생된 것 같은데요, 이후에 특별히 언급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어의들의 한약 처방이 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Q8. 아, 수술하지 않고 치료될 수 있다니 좋은 소식이네요.
원장님 아까 성종이 기침병이 있다고 했는데요.
기침은 사실 가벼운 증상 아닌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종 25년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성종이 자신의 기침 증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승정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특이하게도 이때 성종은 스스로의 병증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유독 밤에만 기침을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질과 함께 기침이 있었는데, 설사는 그쳤고 기침만 계속 있으면서, 이와 더불어 목과 혀가 말라서 불편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러한 기침, 즉 해수병을 열여섯 가지의 원인으로 분류해 치료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성종의 증상은 밤에만 나타나는 야수(夜嗽), 진액이 부족해 발생하는 마른기침인 건수(乾嗽), 주색을 지나치게 밝혀 허약하고 피곤해서 생기는 노수(勞嗽) 등에 해당된다고 불 수 있겠습니다.
Q9. 기침이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콜록콜록’하면서 기침을 하거다 피까지 토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요, 예로부터 이런 사람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푹 쉬면서 고기 먹고 영양보충 하면, 병이 낫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즉, 해수병(咳嗽病)은 몸이 허약해서 생기는 병증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실제 <동의보감>을 보면, 여러 가지 수많은 감기 증상 중에서 유독 ‘해수’부분만 따로 떼어서 난치병 쪽에 분류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허로(虛勞)’ 부분 뒤에다 배치해 놓았는데, 이는 기침증상이 허약하고 피곤한 증상 뒤에 온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기침이 잘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몸이 허약해진 것에서 비롯되는 경우일 때가 많습니다. 원래 평소에 허약한데 감기까지 겹쳐서 더 허약해진 것일 수도 있고, 감기를 너무 심하게 앓아서 몸이 급격하게 허약해진 탓으로 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몸이 허약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Q10.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인데, 몸이 허약해서
기침병이 생긴다는 게, 좀 웃기네요.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성종의 경우에는 이질과 더불어 기침증상이 나타났다가, 이질은 사라지고 기침만 남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질로 인해 몸의 진액이 많이 떨어지고 기력도 쇠퇴하였기 때문에, 기침이 해수병으로 전변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기침과 가래 증상은 함께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성종은 목안이 건조하고 메마른 느낌을 가지면서 마른기침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러한 경우도 몸 안의 진액성분이 부족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경우 평소 진액성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기에 걸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이질과 같은 다른 질병을 앓아, 고열이나 탈수로 인해 2차적으로 몸속의 진액성분이 고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되어 자꾸 나타난다면, 무조건 기침약만 먹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한의원으로 찾아가 근본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