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KMU-rGbr6s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가정이란 것이 있었지만, 가정과 현장을 양립시키기 벅찬 나는 그저 인연이라는 끈 하나만을 남겨놓은 채, 오래전에 가정을 탈출했다. 두 주일 동안 과로한 몸으로도 답답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차를 몰아 숙소 앞 호숫가를 달려 읍내까지 가서 생필품을 사고,
숙소에 와서 휴대전화기를 열어 얼마 전에 막 끝난 공사의 작업자들 리스트에서 이번 공사를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운다. 무수한 공사를 하다 보면 이렇게 매번 생존자를 정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이 지금 하는 공사에 살아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방식으로 나의 세상에는 매번 내가 누릴 안위가 없다.
이 세상의 구조는 곳곳에 널린 게 절벽이며 절벽 사이사이에는 약간의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가끔 구정물이 고여 함몰된, 오래되어 관리하지 않는 도로가 있다.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 도로는, 세상의 관리를 그런 식으로 받는 대표적인 도로인지도 모른다.
턱없이 알랑방귀를 뀌는 개 보다는 굶어도 도도한 고양이를 기르고 싶었으나, 나 먹는 것만 해도 이토록 나 스스로 벅찬데 그 아이의 밥을 어찌 하랴. 더군다나 비염으로 환절기마다 나 스스로가 고행의 연속인데, 그 녀석의 털은 그 때마다 나를 밀어낼 것이니 아마 한 달 내 게으른 나를 이기지 못하는 그 아이는, 들고양이로 변신하지 않고는 아마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내용을 잘 모르므로 제목이 그럴듯한 책을 한 권 샀다. 밤이면 적적함의 극치를 달리는 숙소에 나 혼자인 게 믿기지 않아 글을 조용히 읽어보지만, 나는 원초적으로 낭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 이전에 말로써 무엇을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사족인 일인가를 생각해 보면, 목소리는 저절로 잦아든다.
고통과 슬픔이 멀리 있지 않아 그것들과 자주 맞닥트리는 사람은, 그래도 살아남아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도 일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듯, 한적할 때는 살아남은 우리들도 우리들 주변을 이야기할 뿐,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한 해가 새로 왔다고 사람들이 그랬지만 나에게서 오고 간 것은 없었다.
창밖에 오고 가는 바람은 다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두서없이 오고가고 있었다. 말을 삼가고 그 두서없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는, 나는 늙은 것이 아니고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제야 사람들이 말하는 그 새해에 오래된 나를 슬며시 밀어 넣어본다.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 낯선 풍경에 어울리려면 이렇게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 音 엘레니 카라인드루 ‘갈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