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0大기업 매출 분석해보니
주력기업 총매출 2년연속 감소
-"영업이익은 개선될 수 있지만 매출은 한번 꺾이면 반등 힘들어
-기존 산업 성장판 닫혔는데 새 성장산업은 싹트지도 못해
-우리가 혁신 대신 방어 집중할 때 히타치. GE등 해외 대기업들은 기존 사업 매각후 첨단분야 육성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최초로 2012년 '연간 매출 2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당시 애녈리스트 앞에서 "2020년 전에 매출 4000억달러(480조원)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매출은 2013년 228조7000억원을 기록한 후, 2014년 (206조2000억원)내림새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200조6000억원까지 줄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올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4년 만에 다시 100조원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감소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상위 20대그룹 가운데 13대 그룹 주력사의 매출이 2014년보다 줄었다. 전자.조선.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가 20년 이상 유지되면서 기존 주력 산업의 성장판은 닫혀 버렸고, 새 성장 산업은 싹트지 못한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IMF 외환위기 때도 우리나라 주력 기업들의 이익은 감소했지만 매출은 대부분 줄지 않았다."며 "지금처럼 매출이 대거 감소한 것은 1960년대 초 우리나라 산업화 개시 후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력 기업 총매출 2년 연속 감소
특히 주목할 것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17대 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매출 총합이 2년 연속 감소한 점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전자 업종의 대표주자인 LG전자와 , 1.2위 정유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가 이에 해당한다. 세계 1위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의 매출액은 1년 사이 12%넘게 뒷걸음질했다.
최근 기업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비용 절감 등에 나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익 하락보다 매출 감소가 더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한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영업이익은 비용절감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전자.조선 등 성숙한 산업의 매출은 한번 꺾이면 반등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김주훈KDI(한국개발연구원)박사는 "주력 산업을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전환하지 못하면 우리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 빠질 수 있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역동성 잃고 '정체된 코리아'
우리 주력 기업들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것은 중국의 맹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역동성을 잃고 선제적 구조조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나라 산업계는 그동안 5~10년 단위로 반도체와 자동차. 해양플랜트, 휴대전화 등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잇따라 내놓는 역동성을 보였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엔 이런 상품을 이을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나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미국.일본 등에 뒤처져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세계 순위는 2010년 3위에서 2013년 5위로 떨어졌고, 2018년엔 6위로까지 하락할 것으로 컨설팅회사 딜로이트는 분석했다.
김도훈 산업연구원(KIEF)원장은 "한국 기업들이 혁신을 두려워하고 이미 가진 것을 지키려는 방어적 자세로 변했다"며 "우리는 '역동적(dynamic)코리아'에서 '정체된(static)코리아'로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현재 공기업을 제외한 상위 10대 그룹 구성이 KT가 빠지고 현대중공업이 새로 들어간 것 이외에는 10년 전과 똑같은 것도 그 방증으로 꼽힌다.
한국 산업계의 현주소는 산업 융,복합을 통한 사업 고도화와 인수.합병(M&A)을 통해 매출액 정체를 탈피한 미국.일본같은 선진국 경쟁 기업과도 대비된다. 미국 GE는 에너지.항공.생명공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달 그룹 모태이던 가전 부문을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2000년대 말 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일본 히타치는 디스플레이.TV등 사업을 매각하는 대신 IT(정보통신 기술)를 적용한 첨단 전력망과 공장 자동화 등에 집중, 2014년부터 대규모 흑자를 내고 있다. 세계 1.2위 화학 기업인 다우케미컬과 듀폰처럼 합병을 통해 선제적인 사업 재편에 나선 경우도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선제적으로 산업 재편에 나선 미국,유럽.일본 등의 기업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출액이 대거 줄지는 않았다"며 "우리 주력 기업은 지금 성장과 도태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