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맥문학가협회사화집 제7호(2011)에 실었습니다*
강아지 미용 중에 생각하는 애견문화
심양섭
강아지 ‘미용’ 이야기로 수필을 쓰려고 강아지 ‘목욕’부터 쓰기 시작하다가 그만 ‘목욕’ 이야기로 수필 한 편 분량이 차버렸다. 강아지 ‘미용’ 이야기는 별도의 수필 한 편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에 ‘화장하는 남자’ 이야기를 쓰면서 헤어스타일부터 쓰다가 그 이야기만으로 한 편을 쓰고 남자 화장은 따로 한 편을 썼던 것과 비슷하다.
나는 3년째 집에서 강아지 털을 손수 밀고 자른다. 그러나 나의 강아지 미용은 실용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털이 길면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깎을 뿐이다. 내 실력으로 견공(犬公) 특유의 멋과 아름다움을 창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내 강아지 ‘또또’는 종(種)이 말티즈(Maltese)인데 하얀 털 사이에 있는 까만 눈과 코, 입이 정말 귀엽다. 이런 깜찍함을 유지하려면 눈과 코, 입 주변의 털을 잘 살려야 한다. 나는 수년 동안 ‘또또’의 귀털과 꼬리털을 제외하고는 싹 밀거나 깎아버렸다. 강아지의 입장이 아니라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미용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야 또또 입 주변의 수염만 제거하고 얼굴의 나머지 털은 남겨둠으로써 말티즈 특유의 귀여움을 살리려고 하지만 아직은 여의치가 않다.
애견 전문 미용사(trimmer)는 사용하는 용어부터가 나와 다르다. ‘강아지’라고 하지 않고 ‘아가’라고 부른다. 강아지의 주인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된다. ‘발톱’이라고 하지 않고 ‘손톱’이라고 한다.
내가 강아지 미용을 애견센터에 맡기지 않고 손수 하게 된 것은 재작년 미국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부터이다. 미국 애견센터에 맡겼더니 미용비도 40달러 수준으로 만만치 않은데다가 한국처럼 바싹 밀어주지 않고 듬성듬성 가위질만 해 줘서 맘에 들지 않았다. 그 때부터 애견 미용기기를 구입해서 내가 집에서 강아지 털을 깎고 자른다.
강아지 미용비는 한국이 미국에 비해 싸다. 애견센터에서 말티즈 강아지의 몸 전체를 이발기(clipper)로 미는 소위 전체미용의 경우 목욕비를 포함하여 2만5천원 내지 3만 원을 받는다. 미용사가 집에 와서 해 주는 출장미용의 경우 4만5천 원까지 받는다. 거기다가 다리털을 길러 솜방망이처럼 만들어 놓은 아톰다리, 발 부분의 털만 길러 꼭 장화를 신겨놓은 것처럼 보이는 부츠컷, 나팔 모양의 판타롱으로 멋을 내게 되면 또 만 원 내지 만 오천원이 추가된다. 미용비가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 미용사가 기능성과 심미성을 잘 조화하여 미용해 주는 것을 생각하면, 애견센터에 맡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더욱이 나는 애완견 미용기기 중에서도 비싼 것을 장만했기 때문에 아직도 본전조차 뽑지 못했다.
아내가 내게 “‘또또’ 미용을 애견센터에 맡기라”고 하면 나는 “집에서 하는 게 ‘또또’ 고생 덜 시킨다”고 하면서 내가 미용하곤 한다. 집에서 하는 게 강아지로서도 편안한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내가 미용하다 보면 목욕시간을 빼고도 시간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강아지가 미용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긴 셈이다. 미용을 하는 나도 땀이 나고 허리가 아프다. 한 여름에는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고 미용을 한다.
솔직히 나의 강아지 미용은 다분히 자족적(自足的)이다. 분업화와 전문화의 시대풍조에 역행하여 작은 것 하나라도 내가 직접 한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생산성이나 효율성만 따진다면 나의 강아지 미용은 시간낭비일 수 있다. 그 시간에 나의 전문분야인 두뇌노동을 한다면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도시인들이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보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강아지 미용에서 남모르는 위안을 얻는다. 비록 가위질이 서툴러 층이 지고 때로는 강아지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것’의 가치는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애견관리에는 미용 외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사람 의료비보다 애완견 의료비가 훨씬 더 비싸다. 강아지 옷도 갖가지여서 계절마다 신상품이 출시된다.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강아지 사랑 카페는 회원 수가 53만 명을 넘는다. 이러한 애견문화의 급속한 확산에 “가난한 이웃은 생각지 않고 엉뚱한 데 돈을 쏟아 붓는다”는 비난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심지어는 강아지 혐오증마저 감지되기도 한다.
개 키우는 것이 과연 사치인가? 애견문화와 기부문화는 별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자만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버려진 개를 여러 마리 데려다 키우기도 한다. 애견문화가 일부 계층적 위화감을 형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이 동물과 공존하는 것 자체는 극히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도시의 동네마다 몇 개씩 생겨나는 애견센터나 동물병원을 나쁘게 볼 까닭이 없다. 부동산 가게 많은 것은 괜찮고 동물병원 많은 것은 안 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애견센터나 동물병원이 많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고 내수(內需)가 증가한다는 이야기이다.
동물과 더불어 사는 것이 공동체의 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목줄도 매지 않고 채변봉투도 구비하지 않은 채 집 밖으로 개를 데리고 나오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 ‘몰염치족’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애완견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요즘은 애견문화의 확산으로 그런 생각도 바뀌었다. 아파트규약에도 애완견 금지규정은 없고, 다만 애완견으로 인하여 이웃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만 돼 있다. 미국에서는 아파트에서 애완견을 키울 경우 2백~3백 달러의 보증금에 매달 5달러 정도의 관리비를 더 내게 한다. 보증금은 애완견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사용한다. 미국에는 호텔 중에도 애완견 반입을 허용하는 호텔이 많고, 개의 목줄을 풀어놓아 개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자유공원’도 있다. 혹시라도 한국사람 중에서 아직도 애완견이나 애완견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기회에 생각을 바꿔 보는 게 어떨까.
첫댓글 심양섭 교수님, 설거지 하랴, 애완견 털 깎으랴,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하하. 언제 또또 사진 한 번 올리십시오. 잊지않고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이고 독거노인이나 싱글들은 애완견을 갖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애완견 놀이터가 따로 있습니다. 넓다란 잔디밭에 팬스를 치고 개들이 마음껏 놀 수있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동네 공원에는 채변봉투와 수거 바스켓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애완견이 없는 사람도 동네 관리비를 부담해야 한답니다.
'또또' 처럼 예쁜 강아지 한마리 길르고 싶네요. 강아지 미용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역시 작품으로 새해 인사를 해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뉴욕의 NBC TV 엔 애견들의 미용을 자랑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기회 닿으시면 독창적인 미용으로 한번 참가해 보시죠. 두뇌 노동의 휴식으로 좋지 않을까요?ㅎㅎ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김윤선 회장님, 이경자 선생님, 공순해 선생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