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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소설가 나림 이병주 문학관 경남 하동군 북천면
1. 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곳이 고향인 이병주 문인의 문학관이 세워졌다. (2008)
2. 이병주 흉상
3. -국제신보 편집국장 및 주필로 1961년 5.16 혁명이 일어나자 필화사건으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2년 7개월만에 출감하였다. -80여 편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역사의 성긴 그물이 놓쳐버린 인간군상의 삶을 소설로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승자들의 기록인 역사가 빠뜨린 패자들의 사연과 곡절을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
3-1. 이병주 선생 약력
4. 대표작 대하소설 <지리산> 에서
4-1 지리산 세석평전의 가을 이 아름다운 지리산 세석평전이 공비들의 준동으로 피로 얼룩진 슬픈 역사가 있었다.
이병주 선생 어록
5. 경남 하동군 북천면 적전리엔 나림 이병주 문학관이 있다. 하동에서 코스모스 메밀 축제로 유명한 곳. 80여 종 많은 책을 출판한 소설가. 특히 유명한 것은 장편 <지리산>.
"어떤 주의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주의 그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 -이병주-
6.
7. 문학관 최중수 관장 특강,
8. 이병주 문학관 사무국장 유홍준 시인(전 문화재청장 유홍준과는 동명 이인)
9. 시인 유홍준 이병주 문학관 사무국장과 함께한 이재익 시인
10.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병주 문학관이 있는 이 마을은 밭에 곡식을 심는 대신 코스모스와 메밀을 심어 관광자원으로 삼는다. 물론 농민들은 보상을 받는다. 10월엔 코스모스와 메밀축제 성황을 이룬다. 혼잡하기도 하고.....
11.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
12. 이 섬진강변 평사리 공원에는 노래비가 많다.
13.평사리 섬진강 섬진강은 노령산맥 동쪽 경사면과 소백산맥 서쪽 경사면 사이인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하여 남해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강길이는 212.3km, 우리나라 9번째 강 길이 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 부터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도경계를 이룬다.
14. 평사리, 섬진강의 전설 蟾津江어원 : 두꺼비 섬 자, 나루터 진 자이다. 1385년 고려말 우왕 때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들이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어서 이 때부터 섬진강이라고 불렀다 한다.
15. 섬진강 탄곡 노래비를 세우며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하여 12개 시군을 거쳐 육백리를 물길따라 흐르면서 수없는 남도의 한을 노래로써 담아냈다. 순창 남원에 이르러서는 판소리의 동편제가 생겨나고 보성강을 끼고서는 서편제를 낳았으며, 고을과 골짜기마다 낭만과 추억을 아로새긴 음율이 흘러나오게 했다.
또 섬진강은 수많은 이름(성수천, 원수천, 오음천, 운암강, 적성강, 순자강)을 가지고 흐르며 지류인 요천강 보성강을 압록에서 만난다. 남원 곡성 구례를 지나 화개장터에 이르러 전남과 경남이 합하여지는 팔십리 포구를 형성하며 하동과 광양이 만난다.
섬진강 이곳이 바로 영호남이 함께 만나 하나가 되는 터전인 것이다. 정취가 어우러진 섬진강변 이곳에 끝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한 동서화합을 기리고자 전남 광양(청매실 농원) 김민수씨의 건립 협조로 화합의 노래비를 세운다.
2001. 간립자 이명화
16. 섬진강 탄곡 작사 김태수 / 작곡 김영숙 / 노래 이승용
아 바람 품은 돛밑에 쓰러진 몸이 헤어가신 옛님의 추억을 품고 섬진강물 따라서 흘러가려마 아 이몸 둘곳 어디냐 흘러가련다.
아 울어볼까 웃어라 울어도 보자 기약없는 나그네 추억을 품고 섬진강물 따라서 흘러가련다 아 슬픔속에 쓰러저 흘러가련다
아 조각배야 흘러라 사랑을 안고 헤어가신 옛님의 추억을 품고 섬진강물 따라서 흘러가련다 아 꿈길 속에 헤매며 흘러가련다
토의 전정구 씀 / 우석 이회인 새김
* 嘆曲 : 탄곡, 탄은 '탄식할 탄' 자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함. * 헤어가신 = 헤어져 따나가신 (학정)
17. 평사리 공원
18. 사상의 내 하동 김동현 작사 / 이성옥 작곡
하동아 하동아 사상의 내 하동아 섬진다리 난간 위에 백사청송 그늘밑에 님떠난 아가씨야 너 우는 그 심사 삼춘추 타향살이 내맘같구나
하동아 하동아 사상의 내 하동아 강곡등에 다듬소리 섬호정에 피리소리 흰돛대 오가는 섬진강 그 달밤 내고장 그 정서 잊을길 없네.
하동아 하동아 사상의 내 하동아 수륙천리 떠나온길 사상천리 달려가고 앞뜰에 뒷마을에 꽃피고 새우는 내고향 그 소식을 들을 길 없네. 김진권 근서 이화인 새김
19. 섬진강 작사 이화영 / 작곡 이충재 / 노래 하동진
그토록 사랑했던 섬진강물은 / 오늘도 변함없이 흘러가는데 옛님은 어디가고 소식도 없고 / 님들의 가슴속엔 잊혀지겠지 섬진강 물결 위에 가을이 오면 / 구만리 기러기떼 울고 나는데 떠나가신 우리 님은 소식이 없어 / 오늘도 홀로서서 옛님을 기다리네.
별들은 어우러져 밤은 깊은데 / 섬호정에 달빛만이 처량하구나 이름도 아름다운 섬진강이라 / 순자강 처녀강이 섬진강이라 천만년 역사 속에 흘러갔어도 / 그 이름 변함없는 섬진강이여 떠나가신 우리님은 소식이 없고 / 가슴속에 고향이여 아름다운 섬진강.
서 전종구 / 각 이화인
* 섬진강을 일명 순자강이라고도 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한 효자가 살았는데, 병환중인 아버지가 메추리를 먹고싶다고 했다. 메추리는 겨울새라 여름에 없어 고민하며 섬진강가를 헤맸는데. 뜻밖에 매추리가 떨어져 아버지를 구완했다한다. 순은 메추리 순자. 메추리를 얻은 효성스런 아들의 강이라는 뜻.
20. 겨울 보리밭
21. 평사리 들판 부부송
22. 부부송 앞에 세워진 안내글
23. 평사리 들판 부부송, 어느 각도에서는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듯이 기울어진 각도까지 같아서, 두 소나무가 겹쳐서 한나무 처럼 보인다.
24. 평사리 들판 부부송
25. 평사리 들판 부부송
26. 소나무 숲 뒷쪽이 평사리문학관이 있는 동네.
27. 드라마 토지의 최참판댁 등 세트장이 있는 마을
28. 이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놀이를 할 때는 돼지를 잡아서 구워먹는 마을 잔치를 하는데, 관광객 등 누구나 다 함께 나눠 먹는다고 한다.
29. 나무에 걸린 달 같은 모과
30. 마을의 제일 위쪽에 있는 평사리문학관 올라가는 길
31. 대나무와 시든 국화. 올해 마지막 국화가 시들었다.
32. 박경리 유적은 세군데 있다. 출생지 통영에 유택과 박경리기념관, 오래 살았던 원주에는 토지문학관, 토지의 작품 무대였던 하동 평사리문학관 등
33. 평사리문학관 윗쪽에 문인들 집필실에서
34. 평사리문학관 윗쪽 문인들 집필실에서, 안내하는 최영욱 시인(평사리문학관장)
34-1. 평사리의 봄 / 최영욱 시
35. 박경리 그래픽, 박경리의 스승은 김동리 선생인데.박경리가 만년에 회고하기를 스승이 돌아가시자 생전에 따뜻한 식사한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칫 스캔들 소문에 휩쓸릴까 두려워 했던 것)
36. 박경리의 사위는 김지하 시인인데. 김지하가 쫓길 때 숨겨준 까닭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박경리는 사위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듯~ 생전에 사위 김지하를 '김서방' 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김씨~, 누구 애비~ 이런 식으로만 불렀다 한다. 숨겨줬더니, 김지하가 박경리 딸을 낚아 챈 모양이다. 인연이란 묘한 것.
37. 평사리 문학관의 소설 '토지' 안내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한 박경리는 1946년 김행도 씨와 중매 결혼해 1남1녀를 얻었지만, 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남편은 6.25 나던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이감되던 중 행방불명됐다. '공산주의자라고 말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용공으로 몰려 사라졌어요.'라고 생전에 박경리는 짧게 언급한 뒤 말을 아꼈다.
홀로 키운 딸 (김영주)은 70년대 초에 김지하 시인과 결혼했고, 박경리는 사위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옥고를 치르는 동안 딸의 가족 뒷바라지를 하면서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38. 평사리 문학관의 소설 '토지' 안내
토지는 1969년 월간 현대문학 9월호에 연재하기 시작해서 무려 25년 동안 집필했다. 1994년 21권으로 완간했다. 토지 집필 초기에 유방암 판정을 받아 가슴에 붕대를 감은채 밤새워 원고지를 메웠다. " 내가 행복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 데리고 부모 모시고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불행을 탈출하려는 소망 때문에 글을 썼습니다."
39. 평사리 문학관의 소설 '토지' 안내 하동을 문학의 수도라고 까지 했네요.
39-1. 박경리의 작품세계 "토지는 강 같이 흐르는 모든 생명의 흐름이에요. 한 인간의 비극이 아니라 600~700명이 등장하는 이 집단적 생명 자체가 뭉뚱거려진 숙명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땅, 대지 등의 단어를 놔두고 토지라고 명명한 것은 토지라는 말 속에 땅문서라는 인간의 사유재산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유재산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자연의 순수한 존재와 결별하고 역사의 단계에 들어갔어요"
39-2. 박경리의 시 ㅇ <옛날의 그 집>은 박경리 타계하기 직전의 신작시. 생의 말년에 얻은 무욕과 달관의 철학을 홀가분하게 노래했다. '옛날의 그 집' 이란 1994년 8월 15일에 대하소설 <<토지>>를 탈고한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집(현재 박경리문학공원)을 가리킨다.
40. 토지 세트장에서 바라본,저무는 평사리 들판
41. 평사리 마을입구 안내판 변한시대 이 지역에 변한 12국중에 낙노국이 있었다 한다.
42. 평사리 박경리비
화개 장터
43. 조영남의 노래가 들리는 듯 하다. 여기는 벗꽃필 때라야 제격이다. 추위로 상인도 손님도 움추려 들었다.
44. 화개 장터에서 조금 지리산쪽으로 올라가면 쌍계사가 있다. 화개장터는 김동리 소설 '역마' 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옛 장터를 1997년에 부활 시켰다.
45. 날저무는 화개장터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능선 좌측 노고단에서 오른쪽 뾰족봉이 촛대봉까지 보인다. 천왕봉은 더 오른 쪽인데 여기서는 안보인다. 저 지리산 능선을 종주했던 추억의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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