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_ 베트남을 대표하는 시인, 반레와의 대담. 그의 자택에서 열렸다.
[ 베트남 평화기행 이야기 ② ]
2013 베트남 평화기행
2013. 3.1~7 베트남 호치민시, 꽝아이성, 꽝남성
② 반레 시인과의 대담(3.1 호치민)
"사람들의 사회는 복잡하고, 이기적이고, 질투가 넘쳐 있어. 큰 나라들은 언제나 국제사회의 헌병을 자처하고 나서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일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고 있어. 그게 바로 전쟁이야. 전쟁은 인류를 가장 비인간적으로 세상을 떠돌게 하는 것이지. 젊은 친구, 그것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네. 또한 모든 기반을 뒤엎고, 모든 진보를 뒤로 물러나게 밀어붙이지. 더욱 나쁜 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성과물을 완전히 깔아뭉개고, 다른 사람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일에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이야..."
-- 반레 시인의 책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에서
어제 오후에 호치민에 도착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 이미 낯익은 풍경입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반레(본명:레 지 투이) 시인을 만나러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집 앞에서 우리 일행을 반겼습니다.
반레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로 활동했고, 전쟁 후에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 쓰는 걸 넘어 소설도 쓰고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있습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는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시인으로 불리기를 더 바란다고 합니다.
근데 그는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요?
사진 2 _ 반레 시인의 책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실천문학사)
사진 3 _ 시인은 하미마을 위령제에 참석하는 우리 일행에게 "당신들의 행동은 고귀한 의거"라고 치켜 세웠다.
사진 4 _ "아픈 역사가 쉬이 잊히진 않을 거다. 하지만 당신들의 꾸준한 노력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그는 17세 때 스스로 군대에 들어갑니다.
혁명전사들이 북부 베트남에서 남부베트남으로 가는 길, 호치민 루트 그 길에 함께했던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밤마다 미군의 폭격이 있었는데 그들은 폭격을 하기 전에 목표물을 찾기 위해 조명탄을 쏘았어요. 당연히 우리들은 나무에 숨고 바위에 숨느라 바빴지요. 하지만 내 친구는 숨지 않고 시집을 들고 나가 시를 읽었어요. 결국 그는 남부 베트남까지 오지 못하고 폭격에 목숨을 잃었지요. 시인이 되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시를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 친구와의 만남, 그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어요. 그 뒤 내가 낸 첫 시집에 그 친구의 이름 '반레'를 필명으로 사용했는데 아직도 그 이름을 쓰고 있어요.”
그는 한국인 15명, 일본인 9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이 하미마을 45주기 위령제에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당신들의 행동을 '고귀한 의거'라고 이름 짓고 싶다"며 우리를 치켜세웠습니다.
"물론 당신들의 그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 아픈 역사가 쉽게 잊히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10년이 넘게 이어진 베트남 전쟁의 아픔을 나누고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노력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베트남 사회의 새로운 노력으로 이어질 거예요."
사진 5 _ 반레 시인과의 대담에서 시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평화기행 참가자들.
사진 6 _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반레 시인의 친필 사인을 받고 있다.
사진 7 _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반레 시인의 친필 사인을 받고 있다.
반레 시인은 베트남이 현대에 들어 4번의 전쟁을 치렀는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문화의 상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전쟁 당시 고통 아니 그 이상의 고통이 전쟁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큰 상실은 동료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 앞에서도 슬픔과 아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시인과 나눈 2시간의 대화를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내내 차분하게 때론 유머 있게 들려준 시인의 말씀은 내 가슴 깊이 남을 것 같습니다.
2013. 3. 2 호치민에서
사진 8 _ 반레 시인의 제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특별하다.
사진 9 _ 대담이 모두 끝난 뒤 시인의 자택을 나온 일행을 반레 시인이 배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