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의 표면>
캠퍼스라는 딱딱하고 기능적인 공간 안에서, 내가 통제하지 않아도 생기는 것들(빛, 그림자)을 찾아다녔다.
그게 결국 사람 얘기인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 놓였냐, 뭘 마주쳤냐, 어떤 표면을 지나왔냐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 류인이 인체를 비틀어서 내면을 꺼냈듯이, 건물 표면을 통해서 그 안에 담긴 뭔가를 꺼내려 했던 것 같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보이는 방식이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
*참고 사진집: My Husband by Tokuko Ushioda
우시오다 토쿠코(Tokuko Ushioda)는 1940년 일본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사진가로, 자국 내에서는 이미 굵직한 수상과 전시 경험이 다수인 작가다. 다양한 가족 형태의 냉장고를 촬영한 ‘冷蔵庫’ 시리즈가 유명하다. 알렉 소스가 추천한 ‘My Husband’는 2022년 파리 포토-아퍼쳐 포토 북 어워드(The Paris Photo-Aperture Foundation PhotoBook Awards) 수상작이기도 하다.
https://m.your-mind.com/product/my-husband-%C2%B7-tokuko-ushioda/5524/
사람이 있어야 할 공간에 빛만 가득하다. 무언가 빠진 것 같은데, 그래서 오히려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네모난 창틀이 바깥 숲을 잘라서 담고 있다. 자연은 원래 경계가 없는데, 건물이 그걸 구획 안에 가뒀다.
공사 가림막 뒤에서 나무들은 그냥 자라고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동안 자연은 멈추지 않는다.
계단은 질서 있게 쌓여 있는데 그림자는 제멋대로 흘러내린다. 정해진 구조 위에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얹혀 있다.
창문이 거울처럼 바깥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건물을 찍었는데 나무가 더 눈에 들어오는,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사진.
같은 나무를 보고 있는데 창문마다 다르게 담겨 있다. 같은 걸 봐도 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누가 뭐라 하면 그게 맞는 것 같고, 분위기가 이러면 나도 이렇게 된다. 내 모습인데 내가 만든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유리가 그냥 앞에 있는 걸 비추듯이.
나는 표면없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