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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래시조시인협회(공식 홈페이지) 원문보기 글쓴이: 나래시조
31. 무엇이 변화하였나
제38호 동인지를 상재하면서 ’80년대를 마감한다. ’80년 2월 1일 긴 휴면에서 깨어나 동인지 창간의 돛을 올린 이후, 그야말로 숨 가쁘게 달려온 10년! 그 동안 나래는 헛되이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서른여덟 권의 동인지 발간과 일곱 번의 동인 작품전, 적지 않은 동인의 출입과 그에 버금가는 동인들의 등단, 무엇보다 긍지를 가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조의 텃밭 가꾸기에 적지 않은 족적(足炙)을 남겼다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80년대라는 한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사회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나라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내 주변의 지인(知人)들은 또 어떻게 변하였는가? 그러는 동안에 우리 나래의 모습은 어떤 변화를 거듭해 왔는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의 굽이굽이를 이제 한 번쯤 되돌아볼 시간 앞에 서게 되었다. 동인지의 지질(紙質)이 더 좋아지고, 책의 형이 더 세련되고, 동인의 등단이 거의 100%에 가깝게 이루어지는 등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소프트웨어적인 면, 즉 작품의 질적 성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인지를 차례대로 펼쳐놓고 한 시인의 변모의 모습을 읽어보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십년 전 패기만만한 아마추어 시절,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던 모습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개척하여 안주(安住)하기까지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참 즐거운 작업이다. 그 동안에 우리는 자신의 영역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지마는 그만큼 독자의 곁으로 다가간 시간도 적지 않았다는 면에서 이 나라 시조의 텃밭 가꾸기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고 보고자 하는 것이다.
1989년 나래에서 특기할 사실은 아무래도 창회 이래 회칙에 올려만 놓고 풀지 못할 과제로 고민해 오던 나래시조문학상을 시상하기 시작한 일과 역시 창회 이래 처음으로 회갑 기념 특집(림혜미 부회장)을 묶어 축하한 일일 것이다. 그 외에도 림혜미 동인의 『시조문학』지 천료, 강호인, 김선국 동인의《시대문학》지 신인상 당선, 강호인 동인의《월간문학》지 신인상 당선 김선국 동인의 시조집『천상의 노래』 상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9월 30일 9시~ 9시 45분까지 방송된 KBS 제1라디오의 영남 시조의 맥을 찾는 프로그램에서「나래의 위상」정립에 관하여 몇 가지를 언급한 사실도 기록해 둘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제38호 동인지는 공동 주제를「장벽을 넘어」로 선정하여 17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동인 신작에는 20명의 동인이, 민병찬 동인을 비롯한 6명의 동인이 송년 수필을 싣고 있고, 후원 회원 김학모님의 작품이 한 수 실려 있다. 표지화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 한 더미를 올렸는데 그 선정자가 누구였던지 기록이 없어 아슴아슴하다.
그리고 여백의 이야기도 있다. 나래 초창기에 대학생으로 시조단에서 반짝이다 세상으로 나갔다가 컴백하여 창작에 열중하던 나래의 막내 신진식의 혼례 이야기이다.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 그 때 혼인 특집을 내지 못한 것이 다시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그것은 동인의 무관심 때문은 아님을 후기를 잠시 인용하여 발뺌하고자 한다.
《신진식 동인의 결혼 특집을 꾸미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동인은 몇 달 전에 편집실로 알려 주시면 특집으로 꾸며 함께 축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후기와, 필자의 책 머리글 중 한 해를 돌아보는 글에서《아, 그리고 나래의 막내 신진식 동인의 혼례가 있었습니다. 새 출발을 하는 막내 신 동인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영광의 날들이 이어질 것을 전 나래인의 이름으로 빌어마지 않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벌써 만 11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날의 새신랑이 의젓한 학부모가 되었다. 무정한 것은 시간인가 보다.
조용한 산여울 물에 뜬 선명한 단풍 한 잎의 그리움을 음미하면서 숨 가쁘게 달려온 ’80년대를 마감하고자 한다.
비비새 떨궈놓은/빠알간 울음 몇 알
그 눈빛 받아내어/산이 온통 물들었다
여울에 손을 담그면/세상 가만 흔들리고
- 정광영,「단풍」전문 -
32. 창밖을 바라보면
1990년 3월 1일, 새 봄을 맞으면서 동인지 제 39호를 상재한다. 지금까지 우리 동인지를 발간해 온 출판사는 석주 시절에는 주로 문경에 있는 모 인쇄소에서 담당하였고, 필자가 회장을 맡으면서부터 대구 「그루」출판사와, 삼광인쇄소에서 발간해 오다가 1990년에 들어오면서 우리 동인 가운데 아정 허민홍이 인쇄업을 경영하게 됨에 따라 동인지를 출판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 가지 달라진 사실이 있다면 우리 동인지를 일본, 중국 등에 거주하는 해외 동포들에게도 보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70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시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세상에 크게 자랑할 만한 사실이다. 지구상에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존재하지만 자기네 고유의 전통시를 보유하고 향유하는 이는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과문한 탓이겠지만 영어권의 소네트, 일본의 단가와 하이꾸, 중국의 절구와 율시 등을 제외하면 별로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의 시조를 자랑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조시인협회의 차원에서, 그리고 뜻있는 개인이 시조의 일역(日譯), 영역(英譯)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너무나도 미소(微少)하기만 한 현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나래가 동인지를 해외로 보내어 시조의 국제화, 세계화에 일점의 기여를 도모하기를 시도한 점은 의미 있는 몸짓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눈을 크게 떠서 창밖을 바라보면 그냥 통째로 버려진 황무지가 끝없이 널려 있다. 이 불모의 너른 땅을 개간하여 시조가 자라는 옥토로 만드는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 시조시인들에게 지워진 책무라고 감히 주제넘은 고언(苦言)을 드려 본다.
회답이 온 서신 가운데 일본 名古屋市의 한일문화연구소 金渙 소장으로부터 배달된 격려의 글 중에서 후기에 실린 몇 줄을 인용하기로 한다.
(앞부분 생략)---새로운 한 해가 밝아오는 이 때 감명깊게 처음으로 펼쳐보는 것은 귀중한 나래시조집입니다. 우리 민족의 얼을 살려가는 24년의 세월 속에 민족시의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나래시조문학회 여러 선생님들은 많은 수고를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뒷부분 생략)
표지화는 이제 막 해가 떠오른 싱그러운 봄 바다에 고기잡이 떠나는 배 한 척을 띄워놓았다. 속표지에는, /바다는 아직 노란 바다/속속들이 꽃물 배어//태풍 품어보지 못한/그 여린 해조음에//기슭의 꽃그림자도/나장되어 흔들린다// 라는 예쁜 작품도 실려 있으나 선정인의 방명이 보이지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할 수 밖에 없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인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동인 신작에는 24명이, 공동 제재 작품「창(窓)」에는 19명의 동인이 참여하여 비교적 많은 수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후원회원의 작품도 김은주 님을 비롯하여 4명이 참여하였다. 동인지 발간을 맡으면서 참 오랜만에 선보인 허민홍의 작품을 한 수 보기로 하자.
천방에 돌부리처럼 앉은 활자들의
관절을 뽑아 어쩌면 갇혀 영원 속으로,
혹은 일렬횡대의 하류로 거슬러 오는
송사리 떼의 순결한 언어로 황홀하고 쓸쓸한
빛을 뿌리는 오후, 까치발 세워
만상을 기다리는 생각들이 내출혈(內出血) 중인
활판 인쇄기에 탱자꽃처럼 하얗게
가슴이 쌓이고
서로가 서로의 어깨너머
만삭이 되는 그리움이여.
- 허민홍,「봄날」전문 -
사설 한 수를 내어놓았다. 그 동안 절필 했던 탓이 역력한, 꽤나 비틀거리는 리듬을 타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취하여 비틀거리는 중에도 날카로운 안광은 군데군데 번뜩이고 있음을 읽을 수가 있다.
6월 20일에는 동인지 제40호를 이대영 부회장의 회갑 특집으로 마련한다. 작년의 림혜미 부회장 회갑 특집에 이어 두 번째 묶어보는 경사스런 특집호이다. 화보 2쪽과 연보, 작품 선, 외부인의 축하 휘호와 시, 동인의 축하 시와 산문 순으로 54쪽 분량을 할애하였다.
달빛 밟는 귀가라서/홀로 받는 저녁상에
어머님 즐기시던/고들빼기 달래 무침
겸상턴 당신 생각에/눈물 떨군 냉이국
어젯밤 꿈에 오신/홑홑하신 수의자락
이승이 삼동이니 북망 오죽하오리까
햇솜 둔 겨우살이를/꿈길 빌어 바치리다.
- 이대영,「사모곡」전문 -
이 부회장님은 한국전쟁 당시 법과대학 3학년생으로 학도병 참전을 하셨다가 육군 중위로 예편된 뒤 납세조합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시기도 했지만 대체로 전공을 외면하고 무술 내지 태권도 사범으로 나가 활동하셨다. 종전(終戰)과 함께 전공하신 길로 곧장 나가셨더라면 세속적인 면에서는 오늘보다 훨씬 좋은 생활을 하실 수도 있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옆에서 보는 후진들에게는 다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인용한 작품 ‘사모곡’은 이 부회장님의 살아오신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꼭 이 작품만이 아니라 이 부회장님의 작품을 들추면 사모(思母)의 노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많다. 그만큼 이 부회장님은 천출의 효자이셨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윤길 선생의 축하 휘호를 비롯하여 김경자, 유승식, 경철, 박영식, 류선, 정공량, 김문억 등 17명 시인의 축하 작품, 20명 동인의 축하 작품을 실었다.
공동 제재 작품은 “길”을 선정하여 17명 동인이 참여하였고, 동인 신작은 20명이 발표하였다. 후원회원의 작품 발표도 꾸준하여 최원효 외 1명의 회원이 3편의 작품을 선뵈고 있다.
눈에 띄는 작품 한 수를 들고 여름을 보내려 한다.
흐르는 것이라면 모두가 물인 것을
청산 도는 물이라야 이름 지어 보내는가
허드레 개숫물 흘러도 그 노래가 즐겁다
꽃 피고 열매 맺는 계절이야 없지마는
실바람 불어오면 피리소리 흘리면서
구정물 성긴 채로 받으며 낮은 곳에 앉았다
- 윤신근,「수채」전문 -
사물의 근본을 바라보는 윤신근의 혜안이 번뜩이는 작품이다. 호의호식하며 고대광실에 사는 사람이라야 사람이던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는 줄 아는가. 아니 노래부를 자유도 없는 줄 아는가. 낮은 곳에 앉아서 구정물, 흙물 가리지 않고 받아 주는 수채가 없다면 고대광실 높은 집이 성할 줄 아는가. 그 말고 으리으리한 집이 유지될 줄 아는가. 우리는 수채가 더러운 줄은 알아도 고맙고 귀중한 줄은 잘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해 봐야 비로소 수채가 귀한 줄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되나 뚫리고 나면 곧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수채」를 통한 윤신근의 강력한 항변을 듣는 것 같다. 특유의 유머 속에서도 칼 같은 재치를 쏟아놓는 그의 언어처럼, 후련하면서도 어딘가 풀리지 않는 답답한 현실 때문에 뒷맛이 깨운치 아니하다. 아무튼 전혀 시(詩)가 앉을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개숫물 흐르는「수채」구멍에서 어쩌면 시니컬하기도 한 가작 한 수를 재단해 낸 작자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33. 제2회 나래시조문학상 시상
1990년 8월 18일은 총회의 전야제 행사를 서울「서림HOTEL」에서 가졌다. 1년만에 만나는 우리의 전통은 항상 시끌벅적하고 자정 전에 끝나는 법이 없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2차, 3차 자리를 옮기다가 자정을 넘겼던 기억이다. 이튿날 8월 19일에는 제1부에서 제2회 나래시조문학상을 시상하고, 제2부에는 김주석, 김선국, 김선영 동인에게 등단 기념패 전달과 동인지 발간에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허민홍 동인에 대하여 감사패 전달 순서를 가졌으며, 제3부 여흥 순서에서는문학 이야기, 인생 이야기, 백수 선생님의 즉석 문학 강연 등으로 흥겹고도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이제 제2회 나래시조문학상 시상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려 한다. 수상자 민병찬 동인, 수상 작품 “봄나무”이다. 시상식 모습의 스케치는 필자가 쓴 동인지 41호의 책 머리글을 인용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하목(夏木)은 여름을 만나야 번무(繁茂)하듯이, 성하(盛夏)의 폭양(曝陽)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조의 텃밭을 일구어 가는「나래인」의 잔치, 「제2회 나래시조문학상」시상식을 겸한 총회를 白水, 박재삼 양(兩) 고문(顧問)선생님을 비롯한 동도(同道)의 문인, 후원회원님, 그리고 내빈을 모신 가운데 영등포 「트로이카」경양식집에서 조촐하게 거행하였습니다.
공사간의 바쁘신 일손들을 접으시고 참여해 주신 내외 귀빈 그리고 팔도에서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달려오신 동인 여러분께 지면을 통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시상식의 순서는 개회사와 국민의례에 이어 회장의 인사, 박재삼 선생님의 심사 경위 발표, 유윤희 동인의 수상 작품 낭송, 정광영 동인의 「수상자 민병찬 동인의 작품 세계 분석」이 있었으며, 이어 윤신근 동인의 수상자 소개가 있은 뒤, 백수 선생님의 축하의 말씀, 수상자 민병찬 동인의 수상 소감 발표로 시상식을 마쳤습니다.》
겨울숲 지나가는 희한한 손 보았네
스치는 손끝마다 물보라 아득 품어
수묵빛 한 자락에 초록 강이 흐르네
봄숲을 가만가만 건너오는 천수관음
옷자락 스칠 적마다 오색 등불 달더니
한 계절 빗장을 풀고 사월산(四月山)이 타오르네
- 수상작, 민병찬,「봄나무」전문 -
수상 작품이다. 박재삼 선생님이 이 작품에 대하여 “시조는 자수(字數)가 정해져 있어서 억지로 거기에 맞추려 하다 보면 그것이 누가 되어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기가 쉬운데 본 수상 작품은 거기서 완연히 벗어나 가락이 자연스럽게 빠지도록 다스리고 있는 점이 뛰어났다”고 언급하셨듯이 이 작품은 독자가 그 기지에 깜짝 놀라거나 기상천외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부담 없이 우리의 곁에 와서 소근소근 속삭이듯이 그렇게 친밀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수상자 민병찬 동인의 수상 소감을 일부 옮기면서 다시 한 번 그의 문운의 대성을 빈다.
《시조를 좋아하여 언제나 관심과 애정을 지닌 채, 고독할 때나 먼 길을 다닐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곁에 놓인 지팡이를 짚듯이 익숙히 손에 잡히던 시조-.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영향으로 시조 암송에 열 올리던 그 때부터 시조의 주위를 맴돌아 왔지만 ---(중간 부분 생략)--- 절간에는 가도 정작 부처를 경배할 줄 모르는 사이비 불자(佛子) 같다고나 할까요.--- “눈 뜨고 깨어나라” 는 대갈 일성의 꾸짖음으로 알고 --- 더욱 더 시조 그 본령에 다가서서 자기 성찰과 진지한 인간 탐구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이어서 1990년 9월 1일에는『나래』제41호를 상재한다. 표지에는 가을 산의 단풍 한 폭이 불타고 있다. 책을 펼쳐도 공동 제재의 “가을 산” 14편이 아름답게 불타고 있다. 18명 동인의 신작과 후원회원 최원호님의 작품이 실려 있고, 박필상 동인의 작품집 『나를 찾아서』의 작품을 해설한 류명선 시인의「자아를 통한 시의 구원」이라는 평설이 빛을 내고 있다.
34.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고
1990년대 초반까지 나래인들은 늘 부산하였다. ’90년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나래인의 족적을 살펴보면 박필상 동인이 시조집『나를 찾아서』를 출간하였고, 강호인 동인이『산천제에 신끈 풀고』라는 작품으로 남명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같은 이름으로 시조집을 출간하였고, 이철화 동인이 세 번째 시집 『울음 우는 사람아』를 출간하였으며, 김시현 동인이 두 번째 시집『신보릿고개』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는 장정애 동인이 신앙시집『하루에 몇 번씩 당신이 떠오르고』를 발간하고 커피숍 아트반에서 “장정애 시와 그림 나눔터”를 가졌다. 정광영, 김주석 동인이 작품 ‘거미’와 ‘창’, ‘회상’으로 각각《시조문학》지 가을호에 천료되었으며, 이상진 동인이 같은 책 겨울호에서 천료되어 문단에 들어섰다. 한 편 이상진 동인은《시조문학》지에 추천완료되기 전에 ‘제11회육사백일장’에 참여하여 장원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으며, 김주석 동인은 강릉에서 발간되는〈동녘신문〉에 시조 고정란 집필을 통하여 시조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였다. 박재숙 동인이 월간《한국시》에서 신인상에 당선되었고, 민병덕 동인이《월간문학》지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권갑하가《시조문학》봄호에 초회추천되었고, 민병찬 동인이 영광스런 제2회 나래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말미에는 필자가 경북중등문예연구회에서『중등문예』5집을 발간한 사실과 김천문화회관에서 김천여자고등학교 “명록문우회”의 시화전을 개최한 소식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여백의 사설로 김선영 동인의 결혼 이야기가 있다. 11월 11일 영월 계림 예시장에서 신부 고화숙 양과 행복한 새 출발의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늘상 한 해가 지날 즈음이면 우리 나래인의 족적(足炙) 챙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때 우리들은 참 부지런하고도 부산하였다.
1990년을 보내면서 『나래 제42호 겨울호』를 출간한다. 공동 제재 작품으로 「겨울江」을 선정하고 18명의 동인이 함께 흐르고 있다. 동인 신작에는 23명의 동인이 참여하였고, 시조와 관련된 수필 7편이 이채롭다. 민병찬의「나와 시조와 나래」, 김선국의「시조를 왜 쓰는가」, 김시현의「노동문학은 소외 의식의 탈피로부터」, 김영상의「글 쓰는 이의 양심」, 정광영의「원고를 보내며」, 이상진의「여유 있는 마음을 갖자」, 그리고 필자의「한 편의 작품이 되기까지」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작품 해설로 이철화의 시집『울음 우는 사람아』에 대한 문무학 시인의 평설이 전재되어 있다.
35. 새 봄과 새 출발
또 한 해를 보내고 1991년 새해 새 봄을 맞으며 나래 제43호를 상재한다. 표지 제자는 변함없이 호남의 西崗 정덕채 선생님의 휘호이고, 표지화는 경남 김영상 동인이 선정하여 옹기사진동우회 김영국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꾸몄다. 강(江)가에 도열한 소나무가 강물에 얼비쳐 대칭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강에는 아직 듬성듬성 얼음이 떠 있어 이른 봄의 정취를 잘 나타내고 있다.
’91년 새봄호에서 새로운 기획은 「’91 신춘문예 당선 작가 초대」의 란을 마련한 것과, 「’90년도에 작품집을 발간하거나 추천완료되어 문단에 등단한 동인의 작품을 실어 신예시인들의 기량을 선보일 자리」를 마련해 본 것과, 지방의 중진 시인에게 의뢰하여 「지난호 작품에 대한 평론」을 게재한 것이다.
책머리에서는 필자가「시인의 사명」이란 글을 통하여 난기류(亂氣流) 속을 헤쳐나가야 할 시인의 길에 대하여, 그리고 참여시의 바른 길에 대하여 소론(所論)을 펼쳐보았고, 초대시에는 백수 선생님의「조령관에 뜬 구름」과 박재삼 선생님의「섭리」를 초대하였다. 신춘문예 당선 작가 초대란에는 신현배(경향신문), 윤정숙(대전일보), 강문신(동아일보), 이문균(매일신문), 김현우(부산일보), 현춘식(서울신문), 채천수(조선일보), 양영길(중앙일보), 최진섭(충청일보) 제씨(諸氏)가 옥고(玉稿)를 보내 주었다. ’90나래인의 행진 란에는 1990년도에 수상, 작품집 발간, 천료된 동인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보이고 있다.「공동제재 작품」은 “봄여울”이란 제목을 선택하여 16명 동인의 봄노래가 엮어져 있고, 신작은 19명의 동인이 참여하고 있다. 간혹 기획하고 있는 전호의 작품 평설 란에는 향토의 중진 박영교 시인의 원고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김선국, 림혜미 동인이「시조가 있는 수필」을 기고하였고 후원회원 최원호님의 작품이 한 수 실려 있다.
봄호에도 두 분 동인의 활발한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권갑하 동인의《문학세계》지 봄호 신인상 당선, 김주석 동인의 ‘세종대왕숭모백일장’에서 장원 입상,《동양문학》지 신인상 당선, 그리고《시조문학》겨울호에서 논문이 1회 추천된 사실 등이 그것이다.
1991년 새 봄에 기뻐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1980년대 초반, 나래가 휴면(休眠)에서 깨어나 새 출발을 할 때부터 나래에 대하여 누구 못지않은 애정을 쏟으면서 후원회원으로 봉사해 온 안중식 님이 마침내 정식으로 동행에의 손길을 잡게 된 일이다. 안중식 동인은 시조보다는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어 칠서(七書)를 통람(通覽)함은 물론 한시(漢詩)의 해독과 작시에도 일가(一家)를 이룬 분이다. 그 동안 우리 나래의 주변에서 1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시조의 율을 익히고 시상을 다듬어 오다가 이제 동인으로서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을 축하한다.
첫 작품으로 공동 제재 작품에「계류(溪柳)」를, 신작으로「비구니」「개원사의 밤」등 세 수를 선보이고 있다.
가을날/낮닭 울제/고깔 쓴 한 비구니
반야바라/승무춤사위/눈이 부신 까까머리
아, 그대/연한 몸짓에/이승 한(恨)도 빛이 되네.
- 안중식,「비구니」전문 -
안중식 동인은 지금은 개원사의 신도회장으로, 그리고 관음암의 법사로 활동할 정도로 독실한 불도(佛徒)이다. 그런 연유이겠지만 첫 번째로 선보이는 신작 두 수 또한 불교와 관련된 종교시이다. 작품 /비구니/를 개괄하기로 한다. 춤사위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그 보다는 낮닭 우는 어느 한적한 배경과 거기 등장한 /한 비구니/의 /눈이 부신 까까머리/, /고깔 쓴/ 모습에 더 무게를 주고 있다. 연약한 여승이니 몸짓도 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여튼 그 승무를 보고나서 관객인 작자는 가슴에 맺힌 이승의 한(恨)도 한 줄기 빛으로 승화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약간은 서정주의 /승무/ 냄새가 젖어 있기도 하나 첫 작품으로는 무난하다. 특히 공동 제재 작품 /계류/의 초장 /머리 푼 가지마다/생각의 구슬을 달고/와 같은 표현은 벌써 기성 시인의 냄새가 나는 무르익은 표현이다. 이렇게 나래에 입회한 안중식 동인은 각고의 과정을 거쳐 다음해인 1992년에는 『문학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지금은 IMF 이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安 동인의 사업의 빠른 회복과 그 문운을 빌어마지 않는다.
36. 제3회 나래시조문학상 시상
『나래』제44호 여름호는 1991년 6월 1일에 발간한다. 표지화 및 공동 제재 “산울림”은 김인숙 동인이 선정하였다. 44호를 펼치면 제3회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대문에 빗장 걸고 외양간도 살폈는데
봉당 밑에 수런대는 기척은 누구신가
해묵은 청삽살이는 짖을 줄을 모른다
아침 밝은 창을 여니 앞마당은 간 데 없고
푸짐하게 내린 눈이 자 가웃은 됨직한데
긴 밤을 뒤척이면서도 손(客)이 온 줄 몰랐다.
- 수상작 윤신근,「눈」전문 -
백수, 박재삼 두 분 고문 선생님은 심사 소감에서 “이 작품은 밭을 일구되 두루 자연스럽게 일구었다. 한 군데는 잘 갈고 한 군데는 시원찮게 일군, 이지러진 곳이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을 하며, “가락은 자연스럽게 잘 앉혔는데 시상(詩想)이 보다 유니크하게, 자기가 아니면 아무도 쓸 수 없는 세계를 개척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백암 윤신근은 자신의 수상 소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시조를 일간지에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1966년이었고, 1968년에는 일간지에 동화로 당선도 될만큼 문재(文才)가 출중한 시인이다. 해를 짚어보면 25년. 그 정도의 연륜이라면 이 나라 시조단에 누구 못지않은 중진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더러는 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린 탓도 있기야 하겠지마는 그의 천성이 그 흔한 무슨 무슨 문학상이라는 것들과는 벽을 쌓고 오로지 나래 동인지에만 작품을 실으며 자신의 세계를 묵묵히 개척해 왔다. 심지어는 제2회 수상자인 민병찬 동인과 함께 등단의 관문인 추천까지도 마다하는 것을 옆에서 억지로 본인도 모르게 작품을 올려 등단의 과정을 거치게 할 정도로 바깥세상과는 무관하고자 하였다.
공동 제재 “산울림”에 17명 동인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고, 신작에는 20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나래」43호의 평설(評說)은 이색적으로 공동 제재 작품 평을 「이미지의 쇄신을」이란 제목으로 김주석 동인이, 신작의 평설을「快樂․敎示․諷刺의 美學」이란 제목으로 필자가 담당하였다. 당시의 기억을 살리면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한 것은 전혀 아닌데 김주석 동인의 기고가 안성맞춤으로 들어왔었다. 김주석 동인은「南嶺時調論」이란 논문도 함께 보내 주어 동인지의 무게를 더하였다. 김시현의 시조가 있는 수필과, 지금은 나래의 동인이 되어 네 권의 자유시집과 한 권의 시조집을 펴낸 임병기 동인이 후원회원으로서 최원호 후원회원과 함께 작품을 싣고 있다.
37. 김선국 소시집의 의미
1991년 10월 1일『나래』제45호 가을호를 상재한다. 책을 열면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김영상 동인의 회갑 특집이고, 또 하나는 김선국 동인의 소시집이다.
김영상 시인은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동아대학을 졸업하시고, 교직에 드셔서 줄곧 중등학교에서 봉직하다가 경남 안의고등학교에서 퇴임하시었다. 1982년 《시조문학》지에 작품「세월」로 천료되어 등단하셨으며, 시조집『용주곡』이 있다.
꽃으로 휘감아도/토라지는 너의 심술
한 맺힌 가슴 깊이/한숨 새겨 저며 두고
먼 하늘 비원의 아우성/낙화처럼 지운다.
- 김영상,「세월」중 ‘봄’ -
김영상 시인은 건강이 좀 안 좋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사유인지는 몰라도 미안하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동인 활동을 함께 하면서도, 작품은 거의 거르지 않고 대하면서도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는 열심히 보내시던 작품도 끊어지면서 동인 활동 내지 작품 활동 자체를 중단하신 것 같다. 동도(同道)를 걸어온 후진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김영상 시인의 작품은 그의 건강과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거의 전편에 걸쳐 눈물과 한(恨)이 비쳐 있다. 위에 한 수 예로 든 ‘봄’도 상당히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이다. 아무튼 지금 와서 김영상 시인의 안부를 다시 쓰자니 오가는 감회가 새롭다.
다음은 김선국 동인의 소시집을 보기로 한다. 김 동인은 중증 뇌성마비로 기동(起動)조차도 몹시 힘든 형편이었다. 그런 중에도 창작에의 열기는 너무 뜨거웠다. 필자에게 보내오는 작품들을 보면 타자기로 타이핑한 글자 한 자 한 자가 힘이 든 표시가 역력하게 나타나는 글들을 정상인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분량을 계속하여 보내오곤 하였다. 한 수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야 정상인과 별다를 바가 없겠지만, 타자기의 자모 키이에다 손가락을 맞추는 자체가 너무도 힘든 그에게는 그것을 활자화하는 데서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 수 한 수의 작품을 정리하여 드디어 그는 1989년에 『천상의 노래』라는 작품집을 발간한 바 있다. 따라서 김선국 동인에게 소시집의 지면을 할애한 것은, 그것도 나래 동인지 사상 첫 번째의 소시집으로 기획한 것은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전체 14수의 적지 않은 작품을 실어 놓은 바 그 중에서 세 수만 인용하여 면모를 잠시 살피려 한다.
㉮ 헤아릴 수 없는 부피/나눠도 줄지 않아
공간의 함수 위에/배 띄워 가는 곡선
사선을 거뜬히 넘어/거친 파도 등진다
유년의 지순함을/원뿔 위에 간직하고
회억으로 뿌듯해진/공식의 가슴 안에
골 깊은/정서로 남아/사철 푸른 정자나무
그대 나를 왜 못 믿나/불신의 높은 벽을
단숨에 뛰어넘어/도달한 미지의 차원
방정식/모두 풀어도/잴 수 없는 둘레여.
-「마음」전문 -
㉯ 끊어질 듯 이어지는/이승의 물빛 인연
반월의 한(恨)을 품어/찬물인 듯 끼얹는 밤
들꽃이/피었다 지듯/부침하는 장삼자락
-「탈춤」1/3 -
㉰ 있는 듯 없는 그대/없는 듯 있는 그대
야속한 모습으로/잡힐 듯 멀어지면
비로소/지친/두 어깨/짓누르는 산 그림자
온몸을 뒤덮고도/깊어지는 환상의 늪
흑장미 만발하는/쌍무지개 넝쿨 속에
그 누가/우러러보나/저 빛나는 별들을
있는 듯 없는 그대/없는 듯 있는 그대
따뜻한 시선 속에/온 가슴 푹 적시고
한 번쯤/떠 가는 거다/먼동이 틀 때까지
-「잠」전문 -
작품 ㉮는 추상적 제재 ‘마음’의 부피와 둘레를 수학 공식과 방정식을 활용하여 풀어보고자 한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러나 /나누어도 줄지 않/는 부피, 공간의 함수 위에/배 띄워 가는 곡선/의 길이, /원뿔 위에/ 앉아 있는 /유년의 지순함/의 잴 수 없는 높이 등등 이 작품 속에 널려 있는, 실체화한 수많은 제재들을 얄팍한 수학 공식으로 풀어내기에는 엄두 낼 일이 아님을 깨닫고 끝수 종장에서는 마침내 /방정식/모두 풀어도/잴 수 없는 둘레여/라고 토로하고 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발상을 하여 효과적으로 처리하였다. 하더라도 셋째 수 초장과 중장의 연결 문제는 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즉, 초장의 /불신의 높은 벽을/은 중장의 /단숨에 뛰어넘어/와 연결될 부분이지 초장의 /그대 날 왜 못 믿나/와 연결될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자유시에서 행 구분을 잘못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거니와, 3행 완경 정형시인 시조에서의 행 구분은 자유시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해지는 것이다.
작품 ㉯는 파계승의 탈춤을 형상화하였다. 둘째수와 셋째수를 읽어보면 이 승무는 조지훈의 승무처럼 유장한 가락에 맞추어 추는 경건한 무대가 아니다. /으쓱으쓱 어깨춤/도 있고, 모닥불 주위를 돌아가며 늘어놓는 궤변도 있는, 시끌벅적한 우리 평민들의 무대이다. 그들이 점지 받은 /물빛인연/이란 어떤 물빛일까. 분명 보잘 것 없는 맹물일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고운 반월도 한(恨)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부침하는 장삼자락/도 정원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는 화려한 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들꽃이 피었다 지듯/ 그렇게 떴다가 사라지는 것이라 읽혀진다.
작품 ㉰는 불면의 밤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은 /있는 듯 없는 그대/없는 듯 있는 그대/이다. /야속한 모습으로/잡힐 듯 멀어지/며 환상 늪에 부침하는 /그대/는 누구일까. 작품 속에서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따뜻한 시선 속에/온 가슴 푹 적시/면서 하소하고 싶은 상대이다. 불면의 잔인함 별빛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작자의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38. 「처용의 탈」
『나래』제46호를 상재하면서 1991년을 보낸다. 차례를 펼치면 우리를 기쁘게 하는 순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 나래의 젊은 시인 권갑하의 ’92〈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소식이다.
표지화는 갈매기가 하늘을 덮고 있는, 파도 부서지는 겨울바다 한 폭이 실려 있다. 림혜미 선생님이 선정한 사진이다. 공동 제재 작품으로 “겨울나무” 열네 그루가 낙목(落木)으로, 단풍으로, 또는 설화(雪花)를 이고 서 있다. 17명의 동인 신작이 실려 있고, 후원회원 두 분, 송년 수필 세 분의 참여하였고, 논단에는 필자가「시조에로 가는 길」을 싣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구미 카톨릭문화회관에서 1991년 9월에서 12월까지 실시한 문학강좌용 노트이다.
권갑하의 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보기로 한다.
돌아서 그림자 하나/짓이기듯 뭉개본다
미처 다 풀지 못해/추를 달아내린 목숨
벗어둔/허무한 자락/일어섰다 쓰러진다
말 없는 입술에도/사려담은 푸른 사연
한 생애 무게만큼/애증의 불은 밝아
슬픔도/미소를 물고/여운인 듯 물이 드네
웃지도 말 양이면/울어서는 무엇하리
눈물의 깊은 이랑/목이 메인 바람 속을
휘감아/장삼자락에/덩실대는 춤사위.
-「처용의 탈」전문 -
필자는 지난 여름호의 작품 평에서 권갑하 동인의 ‘박제’라는 작품을 들면서 “안목이 매우 단단한 시인”이라 언급하면서, “필자는 늘 권동인의 작품을 주의 깊게 진단하고 있다.”고 피력한 적이 있다. 이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권 동인은 곧 바로《문학세계》제5호에서 신인상에 당선되고, 이어서 새 봄 벽두에〈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의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한 편의 연극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렇다. 세상은 무대요 우리는 그 무대에 등장하여 한 바탕 연기를 하다가 막 뒤로 사라지는 배우인 것이다. 어떤 이는 주연으로 등장하여 제대로 연기를 수행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단역 배우로 등장하여서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은 탈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 자기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 분노와 질투심을 일체 감춘 처용, 그 덤덤한 탈바가지의 인상에서 작자는 /미처 다 풀지 못해/추를 달아 내린 목숨/과, /말 없는 입술에도/사려담은 푸른 사연/을 읽어내고 있다. 결국은 인생의 무거운 등짐에 눌려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눈물의 깊은 이랑/목이 메인 바람 속을/ 헤매듯 춤을 추고 있는 처용랑의 장삼자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현대인은 모두가 속 깊은 이야기들은 내밀한 곳에 감춰두고 눈 뜨면 가면을 쓰고, 정직한 자신의 감정은 일체 다 감춘 채 살아가는 가면극 배우가 아닐까. 둘째 수 중장에서 ‘생의 무게’와 ‘불의 밝기’와의 견줌, 종장에서 ‘슬픔’과 ‘여운’의 추상 직유 등이 약간의 떫은맛을 주는 채로, 깔끔한 결구, 견실한 상념 처리, 그런 가운데 신인으로서의 개성을 표출해 내는 데 성공하여 선자가 뽑아들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등단한 권갑하 동인은 등단한 지 10년 안에 대산문화재단 창작 지원금으로 『단 하루의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이란 사랑 시집을 출간하는가 하면, 제 17회 중앙시조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일약 우리 시조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대성을 기대한다.
39. 半年刊 첫 출발의 의미
1992년 6월 1일, 지금까지 계간(季刊)으로 발간해 오던 동인지를 1992년부터는 반년간(半年刊)으로 발간하기로 함에 따라 47집은 그 첫 호가 되는 셈이다. 돌아보면 지난 30여 년을 흘러오는 동안 동인의 입출 현황은 말할 것 없거니와 동인지 발간 형태도 그 동안 적지 않은 변신을 거듭해 왔다. 창간호와 제2호는 26면과 34면이라는, 지금 보면 팜플렛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러나 그 꿈은 원대하게 고고의 성을 울렸다. 이어 1980~’81년까지 2년간은 연간 3권씩 발간하였고, 1982~’91년까지 만 10년 동안은 줄기차게 계간으로 발간하여 40권의 동인지령을 가지게 되었다. 1992~2001년 현재까지 우연하게도 다시 또 만 10년째 반년 간으로 20권을 발간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돌아보면 그때 어떻게 그렇게 줄기차게 쉬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지, 그리고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던지 생각할수록 감개가 무량하다. 필자가 과문하여 국내 여러 도서관을 가 보지는 못하였지마는 지금 대구만 하여도 유수의 대학 도서관에 가 보면 국내의 다른 동인지는 그냥 낱권으로 정한 자리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천대를 받고 있지마는 우리『나래』는 도서관에서 따로 하드 보드를 만들고 금박 글자를 새겨 계속 합철해 놓은 것을 보고 가슴 뿌듯하였다. 그것은 동인지로서 우리의 위상을 외부에서도 인정을 해 주는 일단이 아닐까 조심스런 자평(自評)을 해 보게 된다.
박재숙 동인이《시조문학》’92년 봄호에 추천 완료되었고, 성덕제 동인이 제4시집『그 가을의 나무』 출간과 함께 세 번째 어린이 시조집『첫여름의 노래』를 출간한다. 그리고 활자 한 자 한 자 찍기도 그렇게 힘이 드는 김선국 동인이 첫 시집 『천상의 노래』에 이어 두 번째 시집『거울을 봅니다』를 출간한다.
47집의 체제는 먼저 필자가 책 머리글 “풍요(豊饒)의 이면성(二面性)”이란 제하에서, 실용 학문의 발달로 인한 물질의 풍요에 비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문과학의 경시, 그로 인한 인문학의 쇠퇴는 필연적으로 문학 경시의 길을 넓히게 되어 풍요의 이면성이 오게 되고 있음을 걱정하였다. 30명의 동인이 신작을 발표하였다. 동인지가 계간에서 반년 간으로 거듭나면서 31명의 동인 가운데, 오랫동안 세상으로 나갔다가 동인지를 자신이 경영하는 “시인사”에서 발간함에 따라 새로 동인의 반열에 오른 허민홍 동인을 제외하고 30명이 작품 발표에 참여하는 새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계간으로 발간할 때보다 많은 동인이 참여하거나, 다음의 48집에서 보듯이 동인 한 사람이 보내오는 원고의 분량이 많아지는 것 또한 달라진 모습의 하나이다. 그것은 동인지의 발간 회수가 반감하게 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47집의 볼륨은 207면이다.
참 오랜만에 부산 메리놀병원의 천사 장정애 동인의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을 되짚으면서 47집의 문을 닫는다.
언덕배기 흙더미 속/ 실낱같은 생명 보렴
얼키설키 황칠 같은/ 세살 박이 장난 같은
자연의 이런 줄서기/ 봄물 차는 풀뿌리를
그리 얽혀 태어나도/ 제 빛 제가 뽑아 올려
낱낱이 하늘 이고/ 햇살 쬐며 일어선다
봄비에 초롱히 젖어/ 꽃비 올 날 꼽고 있다.
- 장정애,「작은 것을 위하여」전문 -
『나래문학』 48집은 1992년 12월 1일에 발간한다. 안중식 동인이《詩世界》신인상에 당선됨으로 회원들을 전원 등단 시인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필자의 책머릿글 “시조, 그 의미 구조의 탐색”이 있고,〈제4회나래시조문학상〉을 발표하고 있다. 수상 작품 신후식 동인의「직지사」와 정완영, 박재삼 두 분 심사위원의 「심사소감」, 그리고 수상자의「수상소감」이 정리되어 있다.
수상작「직지사」를 보기로 한다.
사천왕 날랜 품세/ 벽화 주고 산문(山門) 들면
도천사 불탑(佛塔)들이/ 옮겨 펴는 무언설법
비로전/ 귀를 연 천불(千佛)/ 목어 울음 기다리고 …‥
산사(山寺)가 다 못 거두어/ 번져나간 황악(黃岳)하며
도리질치는 속세/ 담장으로 둘러두고
정화수/ 발자국 없이/ 돌홈 따라 가는 피안.
- 수상작 「직지사」전문 -
참여 동인은 47집보다 훨씬 적은 20명이나, 김선국 동인에게 소시집 분량의 작품 15수를 할애한 것을 비롯하여, 10수 이상의 작품을 보낸 동인이 6명이나 되어 동인지의 볼륨은 전 호보다 훨씬 더 많은 247면으로 발간하였다. 특집으로 권갑하의 시조시비 탐방 “현대 시조시단의 거목 이호우 시인의 고향을 찾아서”가 있고, 김시현, 림혜미 동인의 송년 수필, 후원회원 최원호 님의 작품이 실려 있다.
40. 不惑의 시대를 마감하며
해가 바뀌어 1993년 봄․여름호를 49집으로 발간하면서 동인지의 불혹의 시대를 마감한다. 지난 1987년 故 석주 회장의 비명(非命)의 타계와 함께 능력도 없는 필자가 회장 직을 물려받아 만 6년간에 걸쳐 동인지 제28집부터 49집까지 스물두 권을 발간하였다. 동인지의 지령까지 불혹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 知命의 바톤을 제3대 회장에게 넘기게 됨이 참으로 감개무량하였다. 만 6년간 능력도 없는 필자가 회무를 맡아 이끌어 오는 동안 협조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회원 여러분께 새삼스럽지만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특히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동인지 발간의 주간으로서, 책 발간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넉넉하지 않은 출판비까지 걱정해 온 신후식, 이상진 양(兩) 동인, 그리고 염가의 출판을 담당해 준 대구 ‘그루출판사’의 이은재 사장, 포항 ‘시인사’의 허민홍 동인 등 원고를 정리하자니 꽃 같은 이름들이 흐르는 물에 낙화 송이처럼 뇌리에 얼비치고 있다.
49집을 펼치니 정완영, 고(故) 박재삼 양(兩) 선생의 작품이 동인지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한 잔 술이 되시면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로 ‘홍도 오빠’를 즐겨 부르시던 고(故) 박재삼 고문의「강물에서」를 읊으면서 결코 짧지 않은 6년이란 세월 동안 능력 없는 필자에게 지워졌던 무거운 짐을 부리며 불혹의 시대를 마감하려 한다.
무거운 짐을 부리듯
강물에 마음을 풀다
오늘을 안타까이
말한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아지랑이가 솟아
아뜩하여지는가
물오른 풀잎처럼
새삼 느끼는 보람
꿈같은 그 세월을
아른아른 어찌 잊으랴
하도 한
햇살이 흘러
눈이 절로 감기는데…‥
그날을 돌아보는
마음은 너그럽다
반짝이는 강물이사
주름살도 아닌 것을
눈물이
아로새기는
내 눈부신 자국이여.
41. 지령 50호 기념 특집의 풍경
제3대 회장을 신후식 동인이 맡으면서 지령 제50호 기념호를 발간한다. 새로운 임원의 조직과 함께 동인지 제50호라는 의미가 있는 사화집이다. 우선 볼륨이 376면으로서 각계의 많은 원고를 모은 것이 눈에 뜨인다. 표지를 넘기면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것이 野靜 이상범 선생의 전아한「蘭」한 폭과 그 분위기에 걸맞게 한 수의 시조가 얹혀 있다. 계속하여 ’92 대한 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임종두 화백을 비롯하여 임무상, 안성원, 김지태 화백의 네 폭 액자가 조용히 앉아 있으며, 나래20년사 발간 기념식, 석주 시비 제막식, 제7회 대구 시화전, 나래시조문학상 제1회(1989년 8월 15일)부터 제5회 시상식까지의 사진들이 정리되어 있다.
차례를 훑어보면 정완영, 박재삼 두 분 선생의 격려사와 신후식 회장의 책머릿글이 있고, 첫 번째 특집에는 축시로 리태극 선생님을 비롯한 103명의 시인들의 작품이 빛나고 있으며, 김기석 님을 비롯한 다섯 분의 축사가 나래를 격려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집에는 시조시비 순례로서 필자의 글 “산새와 솔바람과 시와”라는 제목의 석주의「연가」이야기와 함께 예천 땅 어신리의 시비 이야기를 싣고 있다. 24명 동인의 신작이 있고, 특히 신입 동인으로 한재인, 윤영자, 장용복, 박주익, 네 분 동인이 처음으로 작품을 선뵈고 있다.
세 번째의 특집으로는〈제5회나래시조문학상〉수상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수상 작품은 권갑하의「바다 이미지4」, 약력, 수상소감 및 심사평, 그리고 정광영 동인의「권갑하의 문학 세계」가 수상자의 시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이어서 제1회부터 제4회까지의〈나래시조문학상〉수상 작품이 특집에 함께 실려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권갑하의 수상 작품을 보기로 한다.
욕망을 두레박질하는/ 그대 허망한 몸짓으로
구름에 실린 새떼/ 섬들마저 다 날려 보내고
어둠 속 꽈리를 불 듯/ 꿈의 색깔 시를 쓴다
쏴아쏴아 자꾸 밀리는/ 저잣거리의 어지럼증
은밀히 가슴 들추면/ 네 속살은 너무 여리다
버거운 우리들 등짐/ 혓바늘만 돋아나고
부서져 다시 물이 된다/ 제 멋에 겨운 결박 앞에
그 질긴 내성(內省)의 뿌리/ 파고드는 자맥질로
끈끈한 삶의 언저리/ 목을 매는 광란이다.
- 수상작「바다 이미지4」전문 -
네 번째 특집으로는 25명 동인이 자신의 아끼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후원회원 최원호 님의 작품이 실려 있고, 후원회원 방명록, 발자취, 시상 내역, 동인 저서, 역대 임원, 동정 등의 순으로 제50호 기념호를 엮고 있다.
이제 신입 회원 네 분의 면면을 보기로 한다.
가냘픈 모가지에 피자 쟁반 이고서는
곡예사 접시 돌리듯 이 가을을 돌린다.
맴돌던 고추잠자리 어지러워 내려앉고
- 한재인,「코스모스」1/3 -
당신을 만나는 날/ 내 모습이 저랬으면
다소곳 자연스레/ 무심한 듯 정을 품어
심중의/ 절실한 사연/ 들키지 말았으면
- 윤영자,「蘭」단수 -
툇마루 밑에서 양잿물 마신 누이
실신하던 그 집은 잠자리 챗밭이 되어
아버지 그림자를 만들어 나를 부르곤 한다
- 장용복,「귀소(歸巢)의 꿈」3/4 -
풀섶길 가로질러 두꺼비 집을 짓고
담쟁이 넝쿨 따라 수줍은 가을 햇살
돌담길 갈대 스러진 예스러운 토담집
- 박주익,「古家」단수 -
한재인은 경북 영일 출생으로 지금도 포항에서 사진 관계 업을 경영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나래에 입회할 때 벌써『악어새에게』라는 자유시집을 들고 나온 동인이며, 이후 열심히 시조 공부에 전념하여 1996년에 『시조문학』지에 추천완료되는가 하면〈매일신문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되어 시조문단에 등단하였다. 첫 작품으로「은퇴」「고향」「개천」「코스모스」「十蟲之敎」「多弟多情」등 다섯 수를 선뵈고 있다. 인용한 작품은「코스모스」세 수 가운데 첫 수이다. 꽃송이를 /피자 쟁반/으로, 꽃송이가 한들거리는 것을 /곡예사가 접시를 돌리/는 것으로 연상한 비유가 참신하고, 코스모스 꽃송이가 /가을을 돌린다/는 역설도 좋다. 거기다 잠자리가 코스모스에 왜 내려앉는가를,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송이들의 현란한 움직임이 /어지러워/서 내려앉는다고 본 것은 이미 성숙한 뮤즈의 신(神)이 지펴 있음을 보는 듯하다. 다만 뒷 수에 가서 /청초롭게/ 같은 부사어는 시어로 선택함에 있어 심사(深思)해 보아야 했었다.
윤영자 동인은 충남 아산 출생으로 중앙대를 졸업한 뒤 1991년《한국시》
신인상에 당선되고, 1996년에《현대시조》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지금 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視務)하고 있다. 지금은 중견 시인이 되어 좋은 작품을 열심히 발표하는 여류이다. 동인지 발간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 성실한 동인이지만 가정 형편과 교회의 일로 인하여 입회 이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하여 꼭 한 번 뵙고 싶은 동인이다. 첫 작품으로「방자 징」「50 비망록」「란(蘭)」「허(虛)한 날」등 네 수를 보이고 있다. 예로 보인「蘭」은 제재를 바라보며 한 차원 높은 삶을 희원(希願)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은이는 성실한 크리스천인 만큼 작품에도 구도적인 순결이 엿보인다. 경외하는 절대자 앞에 /다소곳 자연스레/ 서서 가슴속에는 /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무심한 듯/ 그 사랑의 정을 /들키지/ 말기를 바라는 여성스런 부끄럼이 한 촉의 난(蘭)의 속성처럼 은은하게 투영되어 있다. 작품 속의 /당신/ 역시 독자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이기보다는 /절대자/로 비치고 있다. /방자 징/이나 /50 비망록/ 등 작품 하나하나가 건실하고 탄탄하다. /방자 징/ 같은 작품도 전체가 징소리의 애절함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끝 수를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서리서리 재워 둔 한을 풀고 원을 맺어/ 서슬푸른 가슴마다 비문으로 새겨두고/ 훗날도/ 살아서 말하라/ 증언의 소리, 지잉 징.// 이처럼 지은이는 첫 선을 보인 작품에서부터 주제를 유감없이 살리는 데 성공하는 가작(佳作)들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은 장용복 동인이다.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93년《문예사조》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당시에는 대구 북구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자영업을 하며 대구시조시인협회와 “진각문학회”에도 활동을 하며 시작에 정열을 쏟고 있다. 첫 작품으로「夕城의 하루」「歸巢의 꿈」「고란초」「季菴先生」등 네 편을 선뵈고 있다. 인용한「귀소의 꿈」은 아마 지은이가 고향집을 찾아가서 전설 같은 옛일들을 떠올리며 쓴 것 같다. /할머니 무덤가에 핀 아카시아/, /만주벌에 흩어놓은/ 할머니의 삼 남매, /양잿물을 마신 누이/, /할머니를 피하여 이모 댁으로 간 어머니/ 등, 지은이의 가슴 아픈 눈물이 작품 전체에 절절이 배어 있다. 그런 뼈아픈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고향집에 돌아갔으니 거기에는 할머니가 서 있고, /아버지 그림자/가 보이고, /장독대 옆 토란 밭 가/에는 그리운 어머니가 /그림 같이 서 있/는 것이다. 첫 작품으로 내어놓은 장용복 동인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평범한 감정을 평범하지 않게 다스리는 데 노력을 더욱 기울여 주기를 부탁하고 싶은 점인 바, 장 동인은 이후 스스로 이 한 쪽 방면을 극복해 나가게 된다.
장송(長松)은 목을 놓아 홍학처럼 날아가고
빗소린 산문(山門) 열어 새재 계곡 물을 펼쳐
선유동 조령 구곡(九谷)을 석강(石江)으로 탄주한다.
-「조곡관」중에서 -
끝으로 박주익 동인이다.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전남대를 졸업하고 나주 소방서에 근무하고 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소방 공무원이란 특수성으로 인하여 앞의 윤영자 동인과 함께 입회 이래 한 번도 만나지 못하여 보고 싶은 동인의 한 사람이다. 1993년에《시세계》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동인이다. 첫 작품으로「일지암」「유달산 사계」「소나기」「산마을」「古家」등 다섯 수의 작품을 선뵈고 있다. 사람은 다 떠나고 적요(寂寥)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고가(古家)에 /두꺼비/, /담쟁이 넝쿨/, /햇살/, /갈대/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적막한 고가의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하더라도 이 환경에서 /가을 햇살/은 왜 수줍은가? 그 이유를 물어보게 된다. 박주익 동인이 첫선을 뵌 작품들에서는 작품들 모두가 외부 스케치에 치중하고 있는 것과, /병풍하고서/, /힘차게 질주하여/처럼 설명형 행 마침이 작품들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으나 이것은 차츰 박 동인 스스로 극복해 나가게 된다.
내일은 바람 타고 산자락 등성이 넘어
논두렁 강을 건너는 미지의 먼 세계로
새처럼 하늘거리며 마음대로 날고파.
-「엉겅퀴 소사」중에서 -
42.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하여
1994년 6월 1일, 쉰 한 권 째의 동인지를 발간한다. 정광영 부회장은 책 머리글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한 변(辯)을 펼치고 있다.
「동인지 50권을 상재했다는 것은 뿌듯한 기쁨이요 자랑스런 일이며,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이름에 값할 수 있을 만큼 질적인 성장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음이 또한 아픈 현실이라면서 그 원인을 ① 석주라는 큰 기둥을 잃은 일, ② 우수한 시인들이 등단을 거쳐 일정한 자기 위치를 찾자 나래라는 둥지를 떠난 일, ③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원 스스로 한 편의 명작을 남겨야 되겠다는 장인 정신이 부족했음」을 들고 있다. 시의 적절한 이야기요, 동인 제위에게 자극이 되는 일침이라 여겨진다.
동인지의 첫 순서에는 박주익 동인의 혼례 축하 특집이 나와 있다. 약력, 작품 선, 동인의 축시, 거기다 신부 박미옥 양의 작품도 실은 것은 특기할 일이다.
외부 시인 초대로 허일 시인 외 14명의 작품이 자리를 빛내고 있고, 26명의 동인이 신작을 밫표하고 있다. 작가 조명으로 두 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권갑하의 시조시비 순례로 「이호우의 개화 ― 꽃이 피네 한 잎 두 잎」과, 필자의 작가론으로「석주 정환론 ― 산하에 준 애정과 그 서정」이 실려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석주가 비명(非命)에 간 이후 시비를 세워 그 분의 공적을 기념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요절한 시인이 몸담고 있던 동인들이 할 일 중 큰 일의 하나가 그 시인이 이승 하늘 아래 잠시 출장 왔다가 돌아가기 전에, 남긴 작품을 정리하여 그 시인의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암 어린이 시조선양회의 작품, 회원 수필, 중국 조선족 시인 김철우의 작품, 동인의 시조집 중 작품을 가려서 실은 35수의 작품, 후원회원 최원호, 안남춘 님의 작품이 실려 있고, 표지화는 방금 새신랑이 된 박주익 동인의 사진 작품 「보리밭」이 향토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경북교원연수원의 사이버 연수 강좌를 비롯하여 몇 개의 원고 마감이 겹쳐 6월 한 달이 갈팡질팡이었다. 손을 털면서 바라보는 아자개의 산성(山城)과, 사벌국 고성(古城)이 손을 주면 다가설 듯 한결 정다운 모습이다.
51집의 동인 신작에서 단수 한 수를 가려 읊으면서 연필을 놓는다.
계절이 이운 길목
바람이 칼을 간다
파르르 떨어지는
거친 날 기억 몇 잎
그 속에
멀거니 서서
내가 나를 보낸다.
- 박필상,「길목에 서서」전문 -
43. 시간의 창가에 서서
나래시조문학 동인회를 창회한 지 30년 동안의 역사를 정리해 보려고 붓을 들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챙기지 못하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벌써 6년, 그 동안 열두 번의 연재를 마치고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남은 동인지 다섯 권을 앞에 두고 앉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1994년을 보내는 12.1, 동인 사화집 제52집 『연습 아닌 삶을』을 발간한다. 표지화는, 항상 다양한 재주와 ‘끼’를 주체하지 못하던 김시현 동인이 그 때 한창 또 사진에 미쳐 다니던 중 앵글을 맞춘 은행나무 한 컷을 올려놓았다. 김 동인은 결국 그 ‘끼’를 이기지 못하여 개인 시집을 두 권이나 상재(上梓)하고서도 시의 밭을 떠나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 한이 없다. 머리글은 오민필 부회장이 기고(寄稿)하였다. 정완영, 박재삼 두 고문 시인의 작품과 이기반, 정순량, 유승식 시인을 비롯한 열 분의 「전라시조문학회」 회원 작품이 동인지의 무게를 더해 주고 있고, 호암시조선양회의 중학생 작품들도 보인다. 「작가 조명」에는 필자가 지난 호에 이어 연재하는 “석주 정환론”「산하에 준 애정과 그 서정」마무리 편을 싣고 있다. 민병찬을 비롯한 24명의 동인 신작이 다소곳이 모여 빛을 발하고 있고, 〈제6회나래시조문학상〉수상 작품 정광영 동인의「밤의 명상록」이 심사평, 수상자의 약력과 소감, 수상자의 문학 세계를 곁들여 실어 놓았다. 수상자의 작품 세계 해설은 안동의 권혁모 시인이 쓰고 있다.
회원의 수필과 후원회원의 시조 작품, 각종 공지사항으로 192쪽의 볼륨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고운 시간을 재어
창가에 놓을 때는
몇 마리 감성의 새가
날아와 앉습니다
심어 둔
별의 씨앗이
파랗게 눈을 뜹니다
다친 우리 가슴
조금씩 아물어 가고
사랑 또는
눈물 같은 게
따스히 번져오고
어느덧
정원 나뭇가지에
등불 환히 켭니다.
- 수상작,「밤의 명상록3」전문 -
언제 보아도 정광영 동인의 작품은 그의 용모처럼, 인격처럼 단아하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어서 차분하고 단정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하는 가운데 얻어진 시적 모티브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간의 창가에는 /몇 마리 감성의 새/가 날아와 앉고, 작가가 마련한 한 채의 정원에는 /심어둔/별의 씨앗이/파랗게 눈을/ 뜨고, 거기에 관심을 기울일 때 사랑과 눈물이 있으며 그 나뭇가지에는 환하게 등불이 켜짐을 본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작품이다. 관념의 세계를 다룰 때 작가가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을 벗어나 창, 새, 별, 나무, 등불 등을 통하여 구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분명 우리는 고운 시간을 재어 창가에 놓고 몇 마리 감성의 새를 날리며, 밤이면 파랗게 눈을 뜨는 별의 씨앗을 심으며, 그 창가에는 등불도 환히 켜 놓고 명상의 나래를 펴는 가운데 보다 나은 세상을 갈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44. “사랑초”의 의미
특기할 사항의 하나로 그때까지 회칙 상에만 있던 신인상 제도가 제52집에서 비로소 시작된 점이다. 제1회 나래시조문학 신인상에는 임병기 시인이 당선되어 그의 「사랑초」외 4편을 선보이고 있다. 임 시인은 그 때 이미《죽순》지와《문학세계》신인상을 통하여 시단에 등단의 과정을 거친 바 있어 시적 능력은 인정받은 터였으나 시조에서 다시 우리 문학회의 신인상에 응모하여 와서 영예의 제1회 신인상 당선자가 되었다. 그는 그 뒤로 작품집도 부지런히 펴내는 한편 불교 문학인들의 모임인 진각문학회에 회장도 맡아 문학의 씨를 뿌리는 데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꽃대 수줍어서 잎 속에 우뚝 솟아
긴 여름 못다 이룬 단 꿈을 꾸고 나서
고귀한 향내 풍기며 개화하는 관음소심.
- 당선작 중「관음소심」3/3 -
자줏빛 고운 잎이 나비처럼 훠이 날아
님 계신 곳 향하여 소리 없이 가고파서
수줍어 작은 이파리 초롱불을 밝힌다
창 밖을 내다보며 기두리는 사랑초
해지면 별 향하여 승무처럼 고이 접고
말 없이 상사빛 사연 님에게로 보낸다
-「사랑초」전문 -
당선 작품 네 수 중 두 수를 골라 보았다. ‘관음소심’이라 이름한 난초와, ‘사랑초’의 속성을 잘 파악하여 시화하였다. 임 동인은 우리가 제1회 신인상 당선자로 뽑기는 하였지만 이미 자유시로 등단하여 시집까지 상재한 바 있는 기성시인으로 자신의 시의 세계를 확보하고 있는 분이다. 어쨌거나 그 동안 회칙 상에만 올려놓았던 제도 하나를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기쁘고 또 의미 있는 일이다.
45. 미로(迷路) 찾기
1995.6.1. 제53집『물오름이 잦더니만』을 펴낸다. 오민필 부회장의 회갑 축하연을 특집으로 엮고 있다. 약력과 축화, 휘호, 작품선, 축하의 글을 실었다. 이제 우리 나래 동인들도 림혜미 동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김영상, 이대영 동인에 이어 네 번째의 회갑 기념 특집을 내게 되었으니 이 또한 「나래」의 연륜을 헤아리는 한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머리글은 김은숙 부회장이 담당하였다. 작가 조명으로 신후식 회장의 ‘가람 시조비 순례’를, 또 하나 특기할 것은「강원시조문학회」시인들의 옥고를 모아 특집을 엮은 것이다. 우리 동인인 김은숙, 김선영, 성덕제를 비롯한 남진원, 정태모, 조규영 시인 등 19명의 방명(芳名)들이 보이고 있다.
1995년〈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자 한재인 동인의 작품과 이근배 시인의 심사평, 당선 소감이 지금도 우리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사실 한창 우리 동인들이 등단의 과정을 밟을 당시에는 새해가 되면 누가 신춘 벽두의 신문을 화려하게 장식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슴을 두근거렸으며, 그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거의 빠뜨리지 않고 우리 동인의 이름들이 지면에 나타나 우리를 흥분시키곤 했었다. 그러나 등단의 과정이 어지간히 정리된 후에는 잠시 공백 기간을 거쳐 1991년에 권갑하가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동인들은 “이제 새 동인이 입회하기 전에는 우리 동인 가운데 신춘문예와의 인연은 끝났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우리 동인들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한재인 동인의 가슴속에는 신춘문예를 향한 불이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숨가쁜 골짜기도 허허벌판 돌밭도
냇물은 희희낙락 자(尺)질 않는 처세술에
한겨울 굳건한 표정 가슴에도 노랠 품고
이 물 저 물 어우러진 물의 숲 속 돛배 한 척
순풍에 닻 내리고 나침 눈에 매달림은
한 바다 갈길 캐고서 어스름마저 꿰뚫는가
가을바람 경작한 새털구름 채마밭에
풍향 잊은 새 몇 마리 고즈넉이 선회한다
한 세상 고뇌의 텃밭 잡초떨기 쪼으면서
들숨에 달빛 머금고 날숨에 어둠 토하며
파도 뿌리 깨물고는 살 부비는 조가비 되어
한 밤중 자맥질하며 샛별 따는 꿈꾼다.
- 당선작「미로 여행」전문 -
신춘문예의 당선 작품은 그 해의 시조단에서 활동할 신인들의 무게를 달아보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선자(選者)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체로 기존의 율(律)에 충실하기보다는 그 틀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놓는 가운데 실험 의식이 강한 작품들이 당선되는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신춘문예는, 그만큼 뽑히는 신인들에게 거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한재인 동인의 「미로 찾기」는 자칫하면 관념의 미로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제재라 생각한다. 그러한 제재를 시로 형상화한 솜씨를 우선 높이 산 것 같고, 둘째, 넷째 수의 초장을 비롯하여 군데군데에 숨어 있는 가구(佳句)들도 시조단의 새로움을 기대하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한 동인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겉으로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나 늘 탄탄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비교적 젊은 동인이니 분명히 이 나라 시조단에 한 몫을 담당해 주리라 기대한다.
회원 신작은 신후식 회장 외 25명의 동인이 참여하였다. 후원회원 최원호님과 안남춘님의 작품과 공지사항의 순서로 205쪽 볼륨이다.
46. 사록(史錄)을 들추며
1995.11.15. 54집을 발간한다. 지난여름 총회에서 제4대 회장으로 정광영 동인이 피선. 첫 사업으로 펴낸 작품집이다. 제호를『꽃자리 아직 따슨』으로 잡았다. “왜 쓰며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회장의 머리글이 있고, 25명 동인의 신작, 그리고 필자의 “나래 30년”이 연재를 시작하고 있다.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힘이 드는 작업이 되리라 짐작은 했었지만 이제 6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열세 번째의 연재를 끝으로 마감하자니 그 동안의 지나온 구석구석에 숨었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뛰쳐나와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제7회나래시조문학상〉으로 박필상 동인의「사록(史錄)을 들추며」가 작품 소개와 당선 소감, 그리고 백승수, 류준형 시인의 작품 세계와 함께 빛을 내고 있다.
1.
조선의 그 선비가
뜻을 접고 쏟은 눈물
얼룩진 굽이마다
풀꽃들이 돋아나서
무심히 지나는 길손
발길 멎게 하거니
2.
앞서 간 님의 숨결
산맥으로 앉은 길섶
고난의 세월은 죽어
눈을 뜬 채 묻혀 있고
뻐꾸기 목청을 빌어
피를 뿜는 저 소리
3.
무명옷 깁고 기워
대물리던 잿빛 산하
웃자란 천 년 허기
밑둥치 베어내고
태워도 되살던 어둠
밝혀 가라 이르네
- 수상작「사록을 들추며」전문 -
박필상 동인은 1982년 창주문학상 동시 부문 수상으로 문단에 나와 다시 1984년《시조문학》에 천료의 과정을 거치고, 그 동안에 작품집도 세 권을 상재하였으니 이제 명실 공히 우리 시조단에 중견 시인이다. 특히 올해(2001년)는 부산에서 수여하는 “성파시조문학상”도 수상하게 되었으니 본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회에도 큰 경사이다. 박 동인은 평소에 치열하고도 묵직한 시풍을 보이는 시인인 바 여기 수상 작품「사록을 들추며」또한 역사 앞에 선 우리들의 갈 길이 어디인지를 제시하고 있는, 무게 있는 작품이다. 누구나 사록을 뒤적일 수는 있으되, 사록 앞에 서서 그 /얼룩진 굽이마다/돋아나는 풀꽃과, /눈을 뜬 채 묻혀 있/는 고난의 세월을 보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뻐꾸기 목청을 빌어/피를 뿜는 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래서 허기의 /밑둥치/를 베어내고 /태워도 되살/아나던 그 어둠을 밝혀갈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는 역사로만 남아 있음으로 그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하나의 거울이 되어 그 속에서 끝없는 교훈을 캐어내어야 하는 생물 그 자체임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시비 순례는 강원도의 김선영 동인이「흐르는 물은 말이 없고」라는 제목으로 왕방연의 시조시비를 소개하고 있다. 서평(書評)이 하나 있다. 신후식 동인이 임병기 시인의 시집『밤바다의 그리움』에 대하여「일상생활에서 느낀 자연과 이웃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해설을 하고 있다. 후원회원의 작품과 공지사항을 끝으로 198쪽의 사화집을 깔끔하게 상재(上梓)하고 있다.
47. 세월의 빛깔
다시 해가 바뀌어 1996년, 이제 마침내 창회 30년의 해를 밝힌다. 제55집의 제(題)는 창회 30년을 맞는 동인의 이름에 걸맞게 『세월의 빛깔』이다. 차례를 본다. 정광영 회장의 “끈질긴 생명력”이란 머리글이 있고, 첫 번째의 특집으로 “창회 동인 민병찬과의 만남”을 권갑하 동인이 인터뷰를 통하여 1966년 그 황량하던 시대를 되짚어 보고 있다. 22명 회원의 신작을 모아 놓았고, 두 번째의 특집으로 시조동인 작품을 초대하였다. 지금까지 우리 문학회에서 통상적으로 초대하던 어느 한 동인회의 초대가 아니라 전국의 시조동인회를 한꺼번에 초대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초대된 면모를 보면 가람시조문학회, 강원시조문학회, 경인시조문학회, 비화시조문학회, 씨얼문학회, 전라시조문학회, 차돌곶이문학회, 호남시조문학회 등이다. 모르면 몰라도 한 동인회의 사화집에서 이렇게 많은 시조동인회에 지면을 할애하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조 동인회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기획한 모습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이어서 필자가 연재를 시작한「나래 30년」두 번째의 이야기가 보이고, 시조시비 순례는 박필상 시인이 정운 이영도의 시비를「슬프도록 투명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란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필자의 서평(書評)이 하나 눈에 뜨인다. 민병찬 동인의 첫 시조집『가을비 그 뒤』를 읽고 해설과 함께 민병찬 동인의 시의 세계에 사족(蛇足)을 달아 본 것이다. 제목은「관조(觀照)와 별리(別離) 그리고 진솔(眞率)의 미학」이다. 민병찬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나래」의 창회 동인이면서도 등단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자신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옆의 사람들이《시조문학》지에 작품을 제출하여 1986년에 등단의 문을 통과하게 되었고 등단한지 10년만에야 첫 시조집을 펴내게 되었으니 등단과 함께 작품집을 들고 나오는 세태(世態)에 무언의 경종을 울리고 있어, 상당한 연륜을 옆에서 함께 살며 생각하며 보아온 필자가 그의 ‘인간됨과 시’에 관하여 몇 줄 글을 써 본 것이다. 후원회원의 작품과 공지사항이 실려 있다. 240쪽의 적지 않은 분량을 한 권에 묶었다.
지금 보아도 가슴을 무겁게 하는 회고(會告) 한 줄이 보인다. 오래도록 백수 정완영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동인회의 고문을 맡아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던 박재삼 선생의 위중(危重)하심에 관한 공고이다. 모이면 약간은 어둔한 발음이지만 시에 관하여, 인생에 관하여 담론하시다가 약주라도 한 잔 드시는 날에는 ‘홍도야 울지 마라’를 즐겨 노래하시던 천출의 시인이셨다. 이제 그는 가시고 산 자가 남아 가신 분을 추모하고 문학을 논하고 있다. 살아 호흡할 수 있을 때 영혼 구원의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만인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한 줄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살아 있는 시인에게 남겨진 사명일 것이다.
48. 안개는 걷힐 것인가
이제 나래 30년의 종착역에 정거한 동인 사화집 제56집『달빛촌』을 넘겨보기로 한다. 발행일은 1996년 12월 20일. 정광영 회장의 “정 나누기”라는 머리글과 특집으로 전 호에 이어 “창회 동인과의 만남”으로 윤신근 동인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동인 24명이 신작을 발표하였고,〈제8회나래시조문학상〉을 수상한 박재숙 동인의「안개3」과 수상자의 약력, 수상 소감, 심사평, 그리고 필자가 쓴 ‘작품 세계’ 「댓잎차를 마시는 맛」이 실려 있다.
어머님
구천이 어딘지 알고 가셨습니까
이승과 저승 사이
빗금 하나 차이 아닙니까
말없이 뜻만 커지니
가슴이 무게를 더합니다
몸은 이리 갈라져서
볼 수조차 없는데도
마음은 어이 더 가까이
설왕설래하옵니까
지금도
품어 살라고
일러 말씀이옵니까
며느리로 기둥으로 자식으로 아끼시며
좋은 말만 좋은 뜻만 좋은 일만 시키시며
치하만 모아 모아서
염불처럼 하셨습니다
- 수상작「안개3」1-3/5 -
충청도 한적한 마을, 이름까지도 참 은은한 ‘달빛촌’에서 가졌던 〈제8회나래시조문학상〉시상식의 한 풍경을 필자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날 수상 작품을 낭독하고 필자가 박 동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해 가던 중, 수상 작품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박 동인은 끝없이 손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인 ‘사별한 시어머니’가 박 동인의 가슴에 너무도 절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 작품은 그분에 대한 절절한 사모의 정의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날도 언급한 바 있지만 시가 존재하는 두 가지 이유가 쾌락과 교훈이라면 이 작품은 교훈 쪽에 서 있다. 교훈 쪽에 선 시일수록 시의 기법적인 면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본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작품 역시 작자의 다른 작품보다 오히려 반짝이는 기교는 보이지 않고 있다. 어쨌든 시를 읽는 이유와 소득이 카타르시스를 체험함에 있다면, 작품이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시에 관한 온갖 이론과 기법의 장비들을 총 동원해 놓고 ready go를 외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조시비 순례」는 장용복 동인이 “영혼의 가락을 짜던 시인 이우출”이란 제목으로 문경새재 입구에 서 있는 이우출 시인의 시비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가 세 번째 연재하고 있는「나래 30년」이 실려 있고, 후원회원 작품에는 그 때 후원 회원으로 있으면서 한창 시조 창작에도 열을 올리던 경기 명창 안남춘 시인이 전 호 그 전 호부터 계속하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나래 30년의 원고에서는 다시 언급할 기회가 없어 안남춘 시인에 대하여 잠시 짚어놓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때 열심히 시조 창작의 문턱을 넘나들던 안 시인은 그 뒤 우리 문학회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었고,〈제35회현대시조신인상〉에 당선되어 시조단에 등단하였으며, 2001년에는『소리야 한 맺힌 소리야』라는 첫 시조집을 발간하였다. 안 동인은 시조단에 등단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오히려 주된 활동의 범위는 ‘소리’여서 창작은 그 틈틈이 짬을 내어야 할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해 가고 있다. 우리의 모임에서 구성진 시조창을 곁들이어 분위기를 조성하고, 우리 회원들의 작품을 창(唱)으로 불러 테이프에 담아 보내는 열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공지사항을 끝으로 200쪽을 채우고 있다.
이 원고를 실을 2001년 가을․겨울호는 나래 동인 사화집 66집이다. 이제 여기까지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 땅과 같이 동인지가 自生하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던 시절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우리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 동인 모두의 응집된 힘과 문학을 향한-시조를 향한- 열정의 결과라고 자부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앞에 늘어선 짙은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평생을 두고 걷히지 않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렇게 걸어왔듯이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안개를 걷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안개는 해가 뜨면 저절로 걷히는 법이기에.
49. 다시 불러 보는 연가(戀歌)
나래 30년의 원고에 마침표를 찍기 전에 미리 언급해 둘 것이 하나 있다. 고(故) 석주 정 환 회장이 생전에 회칙 상에서 이루지 못했던〈나래시조문학상〉과〈나래신인문학상〉을 이제 모두 시행하게 되었음을 의미 있게 생각하며, 그래도 갑자기 타계한 그에 대하여 남은 일은 유작(遺作)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는 일과, 문경 땅 그가 기거하던 집에 그대로 쌓여 있는 적지 않은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 사업은 〈30년사〉의 범위 밖의 일이나 이미 이 때에 잉태해 있었던 일이고 책은 해가 바뀌어 이듬해인 1997년 2월에 곧장 발간되었던 것이기에 여기에서 언급해 두고자 하는 바이다.
우선 그의 유작을 모아 책을 내는 일에 대하여 논의를 거듭하던 중, 발간비 일체를 민병찬 동인이 부담하겠다고 나서게 되어 동인회의 부담 없이 진행되게 되었으니 민 동인의 우정도 우정이려니와 그의 동인회에 대한 애정에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는 바이다. 제호는 예천 땅 어신리 그의 시비(詩碑)에 음각(陰刻)된 작품「연가(戀歌)」로 하기로 하고, 본문은 생전에 고인이 한지(韓紙)에 써둔 그 달필(達筆)을 그대로 영인(影印)하기로 하였다. 앞에 화보 몇 장, 말미에는 작품론(作品論)과 연보 그리고 발문(跋文)의 체제로 발간하기로 하였다.
책의 면모를 보기로 하자. 체제는 남겨둔 육필(肉筆)에 따라 종서(縱書)하고 고인의 진영(眞影)과 시비(詩碑) 그리고 동인들과의 기념이 될 만한 몇 장의 사진을 여섯 쪽에 나누어 싣고, 정광영 회장의 간행사와, 정완영 선생의「새재 아래 정석주는」이라는 작품 하나, 본문은 4부로 나눈 바 제1부 꽃 이야기(목련 외 13수), 제2부 연가(연가 외 19수), 제3부 시절가조(봄 외 14수), 제4부 산하(새재 외 48수) 등이다. 말미에는 필자가「산하에 준 애정과 그 서정」을 32쪽의 분량으로 작품에 해설을 달았고, 연보, 민병찬의 추모 시조, 신후식의 발문(跋文)으로 끝을 맺고 있다.
둘째로 남은 일은 그가 생전에 기거하던 문경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책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필자가 우연찮게 1998년에 점촌고등학교로 부임하면서 열쇠가 생기게 되었다. 그가 살던 집은 대를 이어 살 후손이 없어 그냥 퇴락한 빈집으로 버려져 있었고, 생전에 그가 거처하던 방에 적지 않은 책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곰팡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선 유족(미망인과 따님)의 허락을 얻은 뒤 그곳 문경 시립도서관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향토 문인 코너’를 만들어 따로 장서를 보관하는 방법을 강구해 본 결과 드디어 몇 개의 책장이 마련되고 “향토 시인 정석주 기증 도서”라는 라벨을 붙여 보관하게 되었다.
이제 아쉬운 대로 남은 동인이 고(故) 석주 회장을 위하여 할 일은 대략 마무리 지은 셈이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빌고,「나래」를 위하여 발분망식(發憤忘食)한 그 노고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50. 에필로그
나래史의 원고를 뒤적이며 지나온 6년! 그 동안 바쁜 일상과 원고 마감의 틈바구니에서 숨 가쁠 때마다 “이번 호 한 번쯤은 걸러 볼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제 열세 번의 연재를 끝으로 창회 30년(1966~1996) 동안의 나래, 나래인, 나래 동인지의 걸어온 길을 더듬는 작업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그 동안에도 우리는 쉬지 않고 흐름을 계속하여 지금은 한국 동인지 사상(史上) 전인미답(前人未踏)(?)의 66집이란 나이테를 헤아리고 있다. 56집 이후(1997년 이후)의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의 일들이어서 동인 모두의 뇌리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제 우리 동인 가운데서도 필자보다 뛰어난 문장력과 작품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도 적지 않으므로 이 후의 이야기는 그 분들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흘러오는 중간 중간에서 성근 부분들 -특히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인간적인 교유의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미력(微力)이지만 동인회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었음을 기뻐하면서, 창회로부터 30년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필자의 소임을 마치고자 한다.
시원섭섭하다. 그리고 흘러온 굽이굽이의 이야기를 상론(詳論)하지 못한 점이 부끄럽다. 어쨌거나 필을 놓고 바라보는 사벌국(沙伐國) 고성(古城) 기슭,「바람밭고개」의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도 한결 상쾌하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그 동안 아둔한 머리에서 사라진 기억들을 되살려 주신 동인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