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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이 있던 골목길, 당주동의 한 5층 건물에는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민족혼을 되찾자는 취지로 결성된 이 모임에서는 ‘민족혼’이라는 회지를 발간했고, 일제가 한국 사람들의 독립의지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명산의 정수리에다가 박은 쇠말뚝을 뽑아내는 운동을 펼쳤다. 이 모임에서 뽑아낸 서울 삼각산 백운대의 쇠말뚝 15점과 대구 팔공산에서 뽑은 쇠말뚝 1점은 지금 흑성산 자락 독립기념관에 가 있다.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 독립은 막을 수 없다”며 일제에 항거했고, 결국은 꽃다운 열여덟 나이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아우내 장터는 독립기념관에서 멀지 않는 천안시 병천면에 있다. 이곳 병천에는 독립만세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봉화를 올렸던 매봉산이 솟아 있고, 1977년 10월12일에는 봉화대와 봉화탑을 건립, 사적 제230호로 지정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일본헌병들에 의해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된 열사의 생가터에는 1991년 말 본채와 부속건물이 복원됐는데, 바로 얼마 전인 지난 6월16일에는 본채 방안에다가 열사께서 태극기를 그리던 모습을 모형으로 제작, 설치했다. 천안사람들이 천안을 ‘충절의 고장’으로 부르는 생생한 현장을 흑성산 자락 멀지않는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로 느껴졌다.
유관순 열사가 자신이 그린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주도했던 거리,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큰 변화가 없는 재래 장터로
병천이 순대로 유명하게 된 것은 약 50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가까운 곳에 돈육을 취급하는 햄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잡채 대신 야채와 선지가 많이 들어가는 순대를 개발하게 됐다. 이 순대가 맛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처음 몇 집으로 시작된 업소들이 늘어나면서 순대로 유명한 고을이 됐고, 그 명성으로 전국 각지에는 병천이라는 지명이 붙은 많은 순대집들이 영업 중이다.
병천 현지에서는 업소 이름들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리기 딱 좋은 간판들로 성업 중인데, 외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는 소문의 업소가 ‘박순자 아우내순대(041-564-1242)’다. 실명을 간판에 내걸만큼 자신이 있다는 집으로, 그만큼 손님들도 많다. 손맛을 자랑하던 시어머니의 솜씨를 빼닮았다는 안주인 박순자씨(50)가 업소를 진두지휘하는데, 아침에는 문을 늦게 열고 저녁에는 문을 일찍 닿는 집으로도 유명했다. 이웃 업소 30여 곳과 균형을 맞추어 손님을 나누어 받겠다는 배려란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집주인의 착한 마음씨가 배어 있다. 순대국밥(4,000원)과 순대안주(7,000원) 두 가지만 차려낸다.
식당 건너편에 넉넉한 주차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토박이인 주인 손상기씨는 50대 나이로 중학을 진학했고, 지금은 고3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대학은 사회복지 분야로 진학, 열심히 번 돈을 사회로 환원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7년 8월15일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흑성산 자락 120여만 평의 부지에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정립하기 위해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온 국민의 성금으로 세운 독립기념관에서는 외침(外侵)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연구, 전시하고 있다.
태조봉 가는 길가의 먹거리집들
넓은 잔디운동장에 야외공연장과 체육관 등의 시설을 갖춘 태조산공원(관리사업소 041-521-2861)은 천안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등산로 제1코스의 나들목이다. 이곳에서 오룡정을 거쳐 태조봉까지는 1.8km 거리, 1시간이면 충분한 가벼운 코스다.
정보통신교육원과 인접해 있는 유량동에는 깔끔한 시설의 식당들이 즐비하다. 태조봉을 오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천안의 식도락가들이 단골집으로 찾는 식당들이다.
그래서 전국 여러 곳에서 무교동명이 접두어가 된 낙지음식업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태조봉 가는 길에서 만나는 ‘무교동낙지’에 들어서면 산뜻하고 단정한 실내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종사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식탁 에 앉아 맛보는 쫄깃쫄깃하고 향긋한 낙지의 맛은 산행의 피로를 확 가시게 했다. 낙지볶음 13,000원. 산낙지전골·산낙지철판·산낙지연포탕 각 35,000원, 조개탕 7,000원.
단비(041-564-9282) 태조산공원 일대 음식점들 중에서 외지에 가장 많이 알려진 업소로 명품한우의 숙성생고기를 차려낸다. 자연에 둘러싸인 주위경관이 아름다워 즐거움을 더해 주는데, 하산길 넓은 옥외공간의 탁자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마시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생등심 외에 간장게장을 차려내고 제주은갈치조림을 잘한다는 소문이다. 주일에는 쉰다.
‘원조유량생태전문(041-565-5594)’은 정말 허름했다. 규모도 작았다. 작은 방에 식탁 2개, 좁은 홀에 식탁 5개가 전부다. 점저(점심과 저녁 사이) 시간인데 앉을 식탁이 없었다. 앞 손님이 식사를 끝내고 떠나 식탁을 치우는 그 자리를 잡았다. 2인분 14,000원, 생선찌개 한 가지만 차려낸다. 주문을 받고는 양은냄비에 밥을 지어낸다. 밥을 그릇에 퍼내고는 그 냄비에 슝늉을 끓인다.
생선찌개맛이 시쳇말로 ‘끝내 주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집주인 조옥순씨(54)는 생선장사 15년, 생선찌개 끓이기 15년 경력의 소유자다. 실로 생선 다루기 30년! 보통이 아니다. 실례된 표현으로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하지 않던가. 그 3년의 10배가 되는 세월이다.
음식공부를 어디서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먹는 것도 공부를 하느냐”고 되물었다. 선문답(禪問答) 같은 짧은 대화였지만 한 마디 꺼냈다가 단단히 당한 기분이었다. 어릴 때 어디서 자랐느냐고 물었더니 별 것을 다 물으신다며 전남 강진이라고 했다. 그곳은 남도의 바닷가다. 15년 전 문을 연 바로 같은 장소임을 강조했다. 충남 천안시 유량동 129-2. 영수증에 찍혀 나온 영업장 주소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행하는 길, 입장휴게소 근방에서 왼쪽 차창 밖을 내다보면 긴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산 정상에 어떤 시설물이 보이는 봉우리가 해발 579m의 성거산이고, 남쪽 끝부분이 되는 봉우리가 독립기념관 뒷산이라는 흑성산(519m)이다. 눈에 들어오는 산들은 모두 오르고 싶어하는 것이 골수 산꾼들의 욕망인데, 아직은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성거산을 한 번 올라 보는 것은 어떨까.
경부고속국도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가 한 번쯤은 달려본 길일 것이다. 천안시에서 펴낸 관광안내도를 보면 고속국도와 나란히 뻗은 이 산줄기를 일목요연하게 잘 그려 놓았다. 성거산 자락인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는 작고 아담한 천흥저수지가 있다. 천안 나들목에서 입장·성거 방향으로 15분 정도 거리인 성거읍에서 택시요금 2,500원으로 닿을 수 있다.
저수지 가까운 곳에 먹거리집 몇 곳이 영업 중인데, 저수지 위쪽에 있는‘별난매운탕(041-557-9933)’은 이 지역을 대표할 만한 업소다. 입구에서 식탁까지 작고 아담한 잔디정원이 매우 인상적이다. 맑고 시원한 계곡물가에 평상을 펼쳐 놓고 손님들을 받고 있는데, 식탁에 앉아 있노라면 삼복 더위에도 한기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 업소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한다. 온화한 인상에 후덕한 인정의 안주인 김화영씨(58)는 찾아오는 젊은 손님들을 친자식들처럼 대한다는 소문이었다.
빠가사리와 메기로 매운탕을 끓여내고 버섯생불고기와 '숫총각버섯탕’이라는 별난 이름의 버섯 요리도 차려낸다. 삼복 때는 한여름 보양식으로 이름 높은 삼계탕과 주문에 의한 보신탕도 장만한다고 했다. 15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주차공간이 넉넉하고 승합차로 교통편의도 제공해 주고 있다.
‘동굴가든(041-622-9013·주인 김영숙)’은 산자락의 전형적인 음식업소로 천안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토종닭·오리한방백숙(각 30,000원), 오골계(38,000원)가 주메뉴다. 닭과 오리는 집에서 직접 기른 것이다.
천안 하면 떠오르는 호도과자
지명에 따라 붙는 음식이름들을 들추어 본다. 전주 비빔밥, 평양 냉면, 남원 추어탕, 동래 파전, 대구 따로국밥, 언양 불고기 등등. 이제 천안의 병천도 병천 순대로 이 반열에 올라가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천안 호도과자는 그 지명도에서 단연 최상위급에 올라 있다. 기찻길로 천안에 가면 승객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이 호도과자다.
천안역에 내리면 고소한 냄새가 코를 먼저 자극한다. 역 구내만이 아니다. 역 마당으로 나가 보면 곳곳에 호두과자 간판이 시각을 자극한다. 부드러운 속살 속에 진짜배기 호두가 콕 박힌 호두과자를 본 바닥에서 먹을 수 있다.
천안의 산 광덕산 기슭 광덕사 대웅전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된 수령 400년의 호두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이곳이 천안의 명물 호두의 원산지임을 알려준다. 호두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고려 말 충렬왕 12년에 영밀공 유청신(柳淸臣)이 원나라에 왕을 따라 사신으로 갔다가 다음해 귀국할 때 묘목 3그루와 종자 5개를 얻어와 고향인 천안 봉화산(광덕)에 심은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 과실의 이름을 몰라 이름 짓기를 호지(원나라)에서 가져왔고 과실 모양이 복숭아와 같다하여 호(胡)와 도(桃) 자를 따서 호도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호두과자는 1934년 지금의 학화할머니 호두과자의 대표 심복순 할머니의 부군 조귀금 선생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학화호도과자(041-552-8596)는 천안역 앞에서 오늘도 70년 전 모습 그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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