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홀로 있고 싶은 날은 부산 이기대길이 걷고 싶어진다.
그래서 훌쩍 떠난 이른 봄 여행...
이기대길은 해파랑길 1코스와 갈맷길 4코스가 겹치는 구간으로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동생말까지
4.7km로 두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나는 오늘 사부작 사부작 늑장부리며 4시간에 걸쳐 걸었지만...
두시간의 짧은 구간이지만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괴석과 바닷가로 내려서 휘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머릿속이 말끔히 정화되어 하루를 걸은들 그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멋진 풍광들이 펼쳐진다.
오륙도는 방패섬과 솔섬의 아랫부분이 가까이 붙어있어 조수간만의 차가 생길 때 썰물 때는 두 섬이 한개로 보였다가
밀물 때는 두개의 섬으로 보여 밀물, 썰물에 따라 대여섯 개의 섬으로 보인다 해서 유래되었다 한다.
2007년 10월 1일 명승 제 24호로 지정되었으며, 동해와 남해를 구분하는 분기점이 된다.
오륙도를 한바퀴 도는데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몸이 날라갈 지경이다.
어느새 바람에도 봄이 살포시 묻어있다.
이정도의 풍속이라면 꽤 추울법도한데 그래도 이젠 봄이 섞인 바람이라 아주 많이 매섭지는 않다...
이런 바람이 그리워 이 먼곳까지 왔다...
▲ 스카이워크로 간다.
▲ 아래서 올려다보는 스카이워크...
이젠 이기대길을 제대로 걸어보자...
이기대(二妓臺)... 조선시대 좌수영의 역사와 지리를 소개한 『동래 영지(東來營誌)』[1850]에는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있으며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이기대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경상 좌수사가 두 기생과 풍류를 즐기던 장소라 하여 이기대라고 하였다고도 전한다.
수영의 향토 사학자 최한복의 의견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수영성을 함락시킨 왜장이 벌인 잔치에 불려갔던
두 명의 의로운 기생이 왜장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후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
원래 의기대(義妓臺)가 옳은 명칭이나 후에 이기대가 되었다고 한다.
까치발하고 기다리지 않았어도 고대하던 봄은 길을 잃지 않고 올해도 여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양지에는 앙증맞은 개불알꽃이 여기저기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다.
▲ 오륙도 해맞이공원
파아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사람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오솔길...
이런 정겨운 자드락길이 가끔 섞여 있어 이기대길은 더 걷는 재미가 있다.
▲ 농바위
"농" 이라는 것은 버들채나 싸리 따위로 함처럼 만들어 종이를 바른 궤를 포개어 놓도록 된 가구로써
제주의 성산포 해녀들이 남천동 해안가에 자리를 틀어 물질을 하면서 이기대와 백운포 해안가의 특정바위 등을
기준으로 서로 연락하는 수단으로 농을 닮은 이 바위를 농바위로 불러왔다는 설이 있다.
한편, 2001년 발간된 '남구의 민속과 문화' 에는 부처가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배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돌부처상 바위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기대길의 기암괴석 중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바위는 치마바위다.
치마를 펼쳐놓은 듯해서 치마바위라 부른다. 전망대에는 오늘도 여전이 '하드~'를 외치는 사람이 서있었다.
거대한 너울이 하얀 메밀꽃 한아름 안고 와 바위에 내던지 듯 흩뿌리고 간다.
한참을 서서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뻘개지도록 얼굴을 세차게 때리고, 옷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소소리바람이 오리려 상쾌하다.
나는 왜 오늘 여기 서있는가...
잊어야 하는 기억을 모조리 꺼내보려해도 딱히 이렇다 할 답이 안나온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오래된 일상의 평화가 조금은 지루했었나보다...
그런 나를 웃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듯, 포말은 때론 돌고래가 되기도 하고, 때론 거대한 몸집의 백곰이 되기도 하면서
폴짝 폴짝 내 앞에서 묘기를 부린다.
그 자리를 뜨고 한참을 걸어와 뒤를 돌아보았을 때까지도 ...
연이어 밀려오는 파도가 자드락자드락 귀찮게 하니 몽돌은 데굴데굴 몸을 비틀면서 싫지 않은 비명을 지른다.
세찬 바람 덕에 오늘따라 그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리니 걷는 사람들의 귀가 호강이다.
요즘은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자연보호와 안전을 위해 설치한 나무데크 길이 이제는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간다.
▲ 솔밭쉼터
혹한을 견뎌낸 소나무들도 신이나 엉덩이 실룩실룩 봄바람을 마중하고...
▲ 어울마당
동백나무 몇 그루가 염염히(冉冉) 게으름 피우다 아직도 활짝 피우지 못하고 빨간 꽃망울을 몇 개 달고 있는 어울마당에 도착한다.
"야~ 경치 죽이네...여기 이름이 뭐라구요? " 하고 설경구가 물었던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를 촬영한 장소다.
부산의 명소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동백섬 등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오늘 동백섬도 걸을 계획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너무 게으름을 피워 틀린 것 같다.
오늘은 무슨일이 있어도 태종대의 신선바위를 꼭 봐야하기 때문에...
어울마당 위에 있는 매점으로 들어가 사발면(컵라면은 없다며 사발면 하나를 툭 내던진다.) 하나 골라 뜨거운 물을 붓는다.
"삶은 계란 하나에 얼마예요?" 내 뒤를 이어 들어온 청년이 묻는다.
"네개에 이천원, 두개에 천원..." 아주머니가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하나는 안팔아요?" 청년이 다시 묻는다.
"안팔아요..." 퉁명스러운 아주머니 대답이다.
청년은 말없이 사발면만 들고 나가고 나는 가방속에 있던 계란을 하나 꺼내 꾸역꾸역 삼킨다.
뜨거운 것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추워서 굳어진 몸이 사르르 풀리고 나는 걷던 길을 계속 이어간다.
아무리 독과점이라지만 매점 아주머니가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해안길을 따라 걷다보면 해녀막사도 만난다.
해녀들이 해산물 채취를 위해 어구보관, 잠수복, 탈의 및 조업 후 휴식장소로 40여년전에 만들어진 것을
2005년 이기대 해안산책로 조성사업을 하면서 정비복원하였다.
전체적인 형상은 거북이가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이고 머리 부분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갯바위이다.
멍게, 해삼 등을 늘여놓고 팔고 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다.
앞을 보아도 뒤를 되돌아봐도 너무 아름다운 그림같이 펼쳐지는 졀경들...
날씨가 조금 흐린 것이 조금 아쉽다...
▲ 광안대교
▲ 출렁다리
▲ 동생말에 도착...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절경에 빠져 넋 놓고 다니다가 동생말에 도착해서야 다음 행선지가
있기에 서둘러야 함을 깨닫는다.
두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네시간을 걸려 걸었음에도 아쉬워하면서...
ㅋㅋㅋ...
여행은 늘 아쉬움을 달고 다닌다...
그래도 오늘 정도면 대 만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