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던 2015년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일이 국내에서는 안철수 탈당 등의 정치문제에 휩싸여 무관심 속에서 지나갔다. 몸살감기로 거의 녹초가 된 몸으로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파리로 날아갔던 박근혜 대통령도‘지구의 생존이 달린 중요한 사안’이어서 무리해서라도 참석했다. 프랑스가 파리 IS 테러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에 길이 남을 지구 살리기 협약인 ‘제21차 파리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를 개최한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현 인류에겐 없기 때문이었다.
세계 195개국이 참여했고, 정상들만 150여 명이 참석한 규모만으로도 이 회의의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머지않아 공멸하게 된다. 인류는 그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자기들이 살아갈 터전인 지구를 스스로 지킬 정도로 진화한 것이다. 세계 195개국 정상들은 이 온난화로 죽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의 온도를 낮추자는 데 모두 합의했다. 그리고 이 합의의 중심에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있었다.
2015년 12월 12일 반기문 총장 파리기후변화협정 체결 성공 축하 세레모니 |
온실가스에서 지구를 구할 것인가?
정상들은 2100년까지 2015년 기준 지구 온도에서 1.15°C 상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인류는 핵전쟁이 아니라도 온실가스로 멸망할 수 있다. 유엔 산하 IPCC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보다 기온이 1.6°C 상승하면 생물의 18%가 멸종위기에 놓이고, 2.2°C 상승하면 24%, 2.9도 높아지면 35%의 생물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133년 동안(1880~2012년) 지구 평균기온은 0.85°C 상승했다. 지구평균온도상승으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대로 진행하다보면 2100년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3.7°C가 올라 북극도 사라지고 인간은 물론 동물도 살 수 없는 지구로 변하게 된다고 예측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 세계 195개 국가가 모여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를 매년 열고 있다. 올해가 21번째 회의이다. 핵심은 각국이 얼마나, 어떻게, 언제까지 온실가스를 줄일 것인가에 있다. 온실가스 대부분은 석유, 석탄, 가스를 태워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이기 때문에 결국 화석에너지 소비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1997년에 채택한 교토의정서에 의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온 선진국 38개 국가가 1990년 수준인 5.2%를 줄이기로 합의했는데 중국, 인도같은 개발도상국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의정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기후협약에서는 지구상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도록 했다. UN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이번 파리회의에는 전 세계 195개국이 참여하여 각 나라가 감축목표를 스스로 설정·제시하고 자국 내 준비 절차를 거쳐 2020년부터 본격 시작하도록 했다. 반기문 총장, 전 세계 상대로 협상력 발휘 감축방법은 각 나라가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에 자발적감축기여량(INDC)을 제출하는 방식이다. 195개 국가가 일률적으로 감축기준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각국이 스스로 감축 목표량을 결정해서 제출하도록 했다.
감축목표는 각국의 경제적 수준, 누적 배출한 온실가스량, 기후변화 위기의 급박성 등을 고려해 양심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제출하도록 했는데 이것은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위상을 고려해 부끄럽지 않을 목표치를 자발적으로 제시하는 성숙하고 신사적인 방식이다. 그러므로 각 나라가 지구의 위기를 구한다는 사명감으로 양심껏 적어내야 하는데 국제사회가 정한 억제 목표는 1.5~2°C이므로 이 범위에서 알아서 정하는 것이다.
지구 온도가 2°C 이상 오르지 않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한도는 2900GCO2톤이다. 그런데 인류는 이미 1900GCO2톤을 배출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한도는 1000GCO2톤이다. 그러므로 이번 파리기후총회에서 1000GCO2톤을 196개 국가가 사이좋게 나누는 협상과 조율을 해야 했다. 1000GCO2톤 한계 안에서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을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맡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5%를 차지했던 선진국들에게 감축목표량을 제시하라 했더니 그 목표를 다 달성한다 해도 지구온도는 2.7°C까지 상승하게 되었다. 지구 멸망수준이었다. 클라이메이트액션트래커(CAT)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EU·중국·인도는 중간 정도, 한국·일본·러시아는 부적합 판결이었다. 한국은 2030년 BAU 대비 3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만약 세계 국가들이 한국 수준으로 목표치를 제시하면 지구 평균온도는 3~4°C나 상승하게 된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염치가 없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들이 미온적 경향을 보이고 있으므로 세밀한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미국 오바마와 중국 시진핑의 협조가 절대 필요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공식포스터 |
파멸보다 생존 택한 파리협정 채택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의장인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이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되었다”고 선언하자 총회장에 있던 참석자 수천 명이 발을 구르며 3분 동안이나 박수를 쳤다. 마치 지구구조대의 발대식 같은 분위기였다.
연단엔 반기문 UN사무총장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올랐고 둘은 깊은 포옹을 나눴다. 파비우스 장관은 이번 협상 타결은 ‘야심차고, 구속력 있으며, 보편적인 협상’이라고 선언했다. 이번 협상은 2100년까지의 지구 온도 상승 억제치를 1880년대인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기온 상승폭을 1.5°C 이내로 제한한 획기적인 것이다.
세계의 환경단체들은 “세계가 파국 아닌 생존을 선택했다”고 호평했다. 이것은 인류가 탈탄소경제로의 길로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 개발 기회 대한민국도 2021년부터 정부·기업·가정 등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각종 법규 제정·강화가 예상되고 에너지 비중이 풍력·조력 등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될 것이다. 자동차도 전기차·하이브리드차엔 인센티브가 주어질 것이고, 한마디로 엄청난 산업구조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선진 기술이 파고들 여지가 많을 것이며 그것이 곧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세계195개국이 참여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시장 규모도 무한대인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2023년부터 전 세계 국가가 의무적으로 UN에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을 담은 ‘자발적 기여방안(NDC)’를 5년 단위로 내야 한다. 그리고 방안을 갱신할 때 목표를 상향조정도 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개별국의 이행 점검 실태를 검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각국의 의무에 대한 구속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3년부터 5년마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지키는지 검토하는 일은 유엔의 몫이다. 당장 내년 4월부터 각국의 협정 비준안을 받는 주체도 유엔 사무총장이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반기문 총장의 공로
파리협정은 사상 유례 없는 국제 협력의 산물이다. 전 세계 195개국 모두에게 각자 의무와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국제 협약은 UN 창설 이후 처음이다. UN은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파리협정채택을 위해 총력을 경주했다. 그 중심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있었다. 세계 언론도 반기문 총장이 합의문 도출의 최고 공로자라고 평가했다. 반 총장 스스로도 “새 기후변화협정은 사무총장 임기 동안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반 총장은 이 협정을 위해 2006년 취임 후 9년 간 북극에서 남극까지, 아마존과 중앙아시아 아랄해, 가라앉은 태평양 도서 국가 등 기후변화의 최전선을 누비고 다녔다.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것이 미래 지구를 구하기 위한 UN의 가장 큰 과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의 특유의 지도력인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리더십’이 발휘되었다고 언론들은 평가한다. 그는 한 나라 한 나라 지치지 않고 설득해 나갔다.
반 총장은 협정 채택 후 연단에 올라 “195개국 중 187개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해 주었다. 나머지 8개국도 조속히 제출해 주리라 믿는다”고 하여 박수를 받았다.
파리협정은 유엔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유엔의 존재 이유를 미래로 확장한업적이기도 한 것이다. 유엔은 전쟁 방지와 빈곤 퇴치에 이어 기후변화 방지라는 우주적 목표까지 기간 사업으로 추가한 것이다. 그러 의미에서 파리협정은 반 총장의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사무총장 연임에도 불구하고 별 내세울 업적이 없었다는 비판을 넘어서 유엔 창설 이후 최고의 업적을 얻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하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에도 큰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