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윤동주의 누이/ 곽예
나는 형제들과 함께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다. 정음사에서 나온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100편이 넘는 시 중에서 우리는 주로 재미있는 동시를 좋아했다. 초롱이 오빠는 <빗자루>를 좋아하고, 나는 <주머니>를 좋아하고, 동생은 <거짓부리>를 좋아하고, 막내 동생은 <만돌이>를 좋아해서 우리는 큰소리로 돌아가면서 읽곤 했다.
나는 윤동주 시집을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자라서 학교기숙사며 자취방에도 가지고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이사를 다닐 때에도 꼭 가지고 다녔다. 한번은 직장 상사가 후쿠오카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선물은 무얼 사다줄까 했을 때 나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진 윤동주 생각을 하고 후쿠오카의 나뭇잎을 따다 달라고 했다. 직장 상사는 새벽에 숙소 바깥으로 나가서 가로수의 나뭇잎을 땄다고 했다. 나는 동주가 숨 쉬고 거닐었을 그 길의 나뭇잎을 소중하게 받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에 고이 간직하였다.
윤동주가 해방되기 6개월 전에 안타까운 숨을 거두면서 남긴 주옥같은 시! 우리가 그 시를 볼 수 있는 것은 후배 정병욱과 친구 강처중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윤동주의 맑고 행복하고 재미난 동시들을 사랑하며 마음껏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것은 춥디추운 1948년 12월에 목숨을 걸고 보따리 속에 윤동주의 원고 노트 3권을 숨겨온 누이 혜원 덕분이다.
윤동주의 형제는 동주―혜원―일주―광주이다. 나는 이들 4형제에게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을 붙여준다. 누이 혜원은 여름이다. 나도 4형제가 있다. 초롱이―나―신이―지용이다. 우리에게도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을 붙여준다. 동주의 누이 혜원처럼 나도 여름이다.
윤동주가 방학을 맞아 고향에 오면 소를 몰고 농사일을 도우며 동생들과 구슬치기, 공치기 등을 함께 했다고 한다. 태극기·무궁화 이야기와 3·1운동, 광주 학생사건 등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자세히 들려주기도 했는데, 누이인 혜원과는 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1942년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북간도에 귀향했을 때 누이 혜원에게 말했다 한다. “우리 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도 사서 모으라”고.
작년 코로나19가 한참일 때에 나는 생애 첫 시집을 냈다. 시집 제목은 ≪북간도≫이다. 열일곱에서부터 쓴 시 100편을 모아 본문을 이루고, <동주야 놀자> 시 1편과 독후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부록을 이루었다. ≪북간도≫의 시편들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가 있고 서투르게나마 북간도 사투리도 들어있다.
나의 시 <동주야 놀자>는 북간도의 어린 동주네 집에 걸어서 놀러가는 행복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한달음에 바다를 뛰어 넘고 국경도 훌쩍 넘는다. 금강산의 나뭇잎도 한 장 따서 동주네 선물로 마련하고, 동주와 떡볶이·감자·도토리묵, 냉면·만두·찐빵도 먹을 생각이다. 동주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농구경기도 해보고…! 동주네 주소는 어떻게 알았냐고? 동주가 보낸 편지가 있다. 동주가 지난겨울에 생생하고 예쁜 눈을 넣어 보낸 편지…!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고 또 쓰는 이유는, 윤동주가 목숨 바쳐 지키려했던 우리말과 정신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어서이다. 나 자신에게 다짐하고 싶어서이다.
첫째, 우리의 삶에는 소박함이 있어야 한다.
둘째, 말에 앞서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 마음의 정서를 발전시켜 주는 것은 도덕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넷째,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다섯째,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다.
여섯째, 함께 살아가자.
일곱째, 나라의 광복을 위해서는 있는 것을 다 바쳐야 한다.
여덟째, 전통을 계승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발전의 길을 여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윤동주가 우리에게 주는 천진하고도 단단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 여덟 가지는 김수복의 책 ≪별의 노래≫에서 일본에서 검거된 26살의 윤동주 ‘시인의 삶’ 편에 나와 있다. 요사이는 이렇게 힘들게 찾은 우리말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문학에서건 방송에서건 일상에서건 영어 단어 섞어 쓰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크고 많고 높은 걸 좋아하며 남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이 대세인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가고 동시를 읽으며 생활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과 우리말을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사는 것이 좋다. 어린이의 상상력은 무한하며 자유롭게 날아올라 멈출 줄 모르고 세계를 탐색한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천진하고 소박한 기쁨을 되찾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