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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군사저널 2008년 3월호 권두 에세이
마키아벨리즘과 대통령
박경석 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
과연 잃어버린 10년인가?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해도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은 좌파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그 두 정권에 대해 혹평하는 우파 쪽에서 마치 두 대통령 통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며 퇴락의 구덩이로 빠트렸다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그 두 정권에서 수행한 정책 하나하나를 분석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총론적으로 묻는다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 10년은 잃어버린 시기가 아니었으며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부족했거나 왜곡됐던 미진한 부분을 바로잡은 기간이었다."라고. 물론 부정적 과속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필히 겪어야 했던 과정의 10년으로 나는 정의하고 싶다. 우파 쪽에서는 스스로 잘못은 없는 것처럼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터무니없는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좌파 못지 않은 과오가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출현의 긍정적 측면 하나씩만 예로 들어보겠다.
먼저 호남출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 가운데 망국적인 한을 심은 조항이 있다. 상세 설명은 여기서 생략하지만 한마디로 ‘호남인에 대한 모독’이 기술되어 있다. 왕건이 무엇을 근거로 호남인을 배역자로 낙인찍었는지 몰라도 그로 말미암아 김대중 대통령 이전까지 약 1,000년간 호남인이 불이익을 당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엔 극에 달했다. 김대중의 등장은 호남인도 차별 없는 대한민국의 시민임이 만천하에 밝혀진 것이다. 호남인 옹호해서 일각에서 뭐라 할지 모르지만 나의 선친은 충청도이며 어머니는 경상도다. 그리고 나는 충남 조치원 토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역대 대통령 시절의 정치적 부패는 망국적이다. 정치인은 물론 위로 대통령까지 그 부패는 극심했다. 그러고도 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특히 전두환·노태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죄인이 아닌가.
바로 노무현은 정글의 하이에나처럼 썩은 정치계의 정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게 어딘가. 차떼기로 천문학적 뇌물을 받은 이회창이 노무현 발밑에 얼씬거릴 수 있겠는가. 혹자는 노무현 측근이 부정으로 줄줄이 걸려든 것을 가지고 노무현 청소작업을 폄하하지만 과거 그만한 금액이면 그전 정권에서는 어린이 비스킷 값이고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교훈을 일깨운 하느님의 계시로 정의하고 싶다.
마키아벨리즘과 대통령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는 이탈리아의 역사가이며 정치학자이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자는 『군주론(君主論)』이다. 흔히 약육강식의 폭군지상주의자로 낙인 찍혀 세상에서는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그 저서 또한 부정적 의미로 인용된다.
마키아벨리가 저술활동을 하는 동안 전 유럽에는 역사적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마틴 루터의 종교혁명으로 유럽은 역사상 유례없는 혼란이 빠져 이탈리아는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변하여 마키아벨리는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 무렵에 쓰여진 『군주론』은 솔직담백하고 수식어도 없이 직설적인 문체로 이루어진 마키아벨리 자신이 팜플렛이라 부를 만큼 작은 저서였다. 당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문제의 『군주론』이 처음 출간된 것은 그가 죽은 뒤인 1532년이었다. 결국, 그가 죽은 뒤 『군주론』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키아벨리즘은 ‘정치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반도덕적 비윤리적 수단이라도 허용된다.’라는 주의, 파렴치한 권력정치, 추악한 현실정책, 또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주의를 가리키며 이러한 주의를 취하여 행동하는 자를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취할 술책으로서 힘있는 사자와 약은 여우의 두 역할을 해야 하며 모든 덕성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있는 것처럼 꾸밀 필요가 있고 필요하다면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등 당시의 기독교적 윤리와는 전적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폈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놀랍게도 근대의 일부 정치가나 권력자에게는 성서와 같은 역할이 되어왔다는 데서 주의를 기울 필요가 있다.
쿠데타의 주동자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에 자위하며 『군주론』을 마치 쿠데타 합리화를 위한 교범으로 삼아온 결과 그 폐해가 근대 독재정치의 비극으로 나타났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 불모지나 다름없는 상황하에서 살아왔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사상의 혼돈 속에서 홀연히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미국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 국가건설에 전념했다. 그러는 동안 여순반란사건을 비롯한 이어지는 공산주의자와의 투쟁과 함께 국내정치의 소용돌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다가 6·25동란을 맞았다.
이승만 정치사상은 마키아벨리즘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과 독선으로 정권욕의 화신이 되면서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이면서, 유사 마키아벨리즘의 덫에 걸린 꼴이 되었다.
4·19 이후의 내각책임제하 대통령인 윤보선은 실권 쥔 장면 국무총리파와의 정쟁에 휘말리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맞았다.
박정희는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마키아벨리즘의 실천자로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힘있는 사자가 되어 유감없이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그의 권력과 집념으로 혼돈에 빠져있던 정국과 사회를 수습하고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성공적인 치적에도 불구하고 집권 연장을 위하여 유신헌법을 만들어 자기 도취에 빠지다가 마침내 마키아벨리즘의 덫에 걸려 비운에 갔다.
과도기적인 정치상황에서 엉겁결에 대통령이 된 최규하는 군부 정치군인들의 마키아벨리즘에 짓눌리어 군통수권자의 권위를 잃고 마침내 마키아벨리즘의 희생자가 되었다.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정란을 통하여 강제 집권 후 박정희식 마키아벨리즘을 답습하려고 발버둥쳤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해 서툰 솜씨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국가발전의 업적도 남기지 못한 채 ‘광주의 한’과 천문학적 숫자의 부정축재의 중범을 안고 마키아벨리즘의 부정적 모반자로 역사를 더럽혔다.
노태우는 전두환의 마키아벨리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약은 여우처럼 이 눈치 저 눈치만 살피다가 자유가 아닌 방종만 확산하고 우유부단한 국가정책과 핵주권 상실을 자초함으로써 약한 여우의 흉내도 못 낸 채 실패한 지도자로 전락하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같이 다수 국민의 성원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초기 90%에 가까운 국민의 절대 지지에 힘입어 세찬 출범을 했고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정치군인 척결, 전·노 전직 대통령의 구속 등 상당한 용단을 발휘했지만 용인의 미숙, 경제정책의 실패 등으로 IMF사태로 경제 위기로까지 이르게 하여 국민 지지도가 10%대까지 추락하는 곤욕을 치렀다.
지금까지 열거한 김영삼 대통령까지의 역정은 우리 국민에게 뜨거운 감정을 안겨줄 만한 훌륭한 대통령이 없었다는데 그 의미가 모아진다.
대부분 마키아벨리가 설파한 권력의 속성 탓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혼돈을 기록한 결과가 되었다. 이들 우파 대통령에 이은 김대중 노무현 두 좌파 대통령 역시 전자에 버금가는 과오와 실책이 있었다. 그러나 두 좌파 정권은 정책의 실패와 함께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교훈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과 그와 함께 하는 정치 당사자들은 우파.좌파 집권에서 얻은 교훈을 거울삼아 시대 착각적 권력 논리인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닌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이 되어 침체 국면에 빠진 우리나라를 우리가 염원하는 선진국으로 진입시켜주기 바란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 바로 이명박은 마키아벨리스트와는 거리가 먼 발로 뛰고 손으로 만들고 머리로 생각해 내는 산업화 성공 신화의 주역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 자세도 변해야 한다
근간 일본인 저명 문화인과 교류를 가진 일이 있다. 그는 스스로 백제인의 피를 가졌다고 말할 정도로 친한 인사다. 그는 참으로 한국인은 이상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식당이건 술집이건 대화의 주조가 대통령 욕하는 것인데 아마 그렇게 자기 나라 국가원수를 죽일 놈 살릴 놈하며 험담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대꾸 못하고 얼굴을 붉혔지만 그의 말은 나의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어디 식당과 술집뿐이랴. 택시를 타면 묻지도 않았는데 대통령 욕이다. 어느 시대 어느 대통령이나 그 말대로라면 살아남을 대통령은 하나도 없다. 왜 그렇게 우리는 정치에 민감할까.
자기 마음에 꼭 맞는 대통령은 이 세상에 있을 수도 없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금방 ‘죽일 놈’으로 후려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선거 공약에도 넣고 추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정책을 당시 바로 주관했던 국방장관이 반대 성명 대열에 앞장선다. 줄줄이 전직 국방장관은 부끄러운 얼굴뿐이다. 별의별 일로 국민이 다 알고 있고 네티즌들이 댓글에서 그들 죄상이 하나하나 뜨는 데도 반정부 선언 자리에서 애국자 연 한다. 성한 전직 국방장관은 몇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열기를 뿜었어도 뜻을 이루지도 못한다.
그래서 손해 보는 측은 한국전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다. 장군이나 고급장교들은 무공훈장이나 보국훈장이 있어 전원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지만 진작 그들을 위해 죽음의 위험 속에서 직접 적과 싸운 병들은 훈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 대우에서 제외되어 있다. 국회의원·청와대 당국자들과 겨우 합의점에 도달할 때쯤이면 향군이나 성우회에서 반정부 기치를 든다. 그래서 또 무산된다. 참전 전우들은 저 국방장관 전직자와 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들은 한통속으로 본다.
원래 향군이나 성우회는 친목과 복지 증진이 설립 기조다. 여하간 앞으로는 설립 취지대로 친목과 복지 증진에 두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장군)를 위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참전 부하들에게 국가유공자의 별을 달아 주자.
나는 무공훈장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훈장을 볼 때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 훈장을 타게 했던 전사한 부하와 겨우 살아남은 참전 전우를 생각하면서.
이번 3월호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93년 3월호로 월간 군사저널이 창간이래 계속 이어지다가 한 때 휴간기를 거쳐 재창간하게 된 것도 2008년 3월호로 4주년을 맞이한다. 3월은 봄 새싹 움트는 설레는 계절이 아닌가. 월간 군사저널도 새싹 움트듯 생기를 더하여 명실 공히 동북아 최고 권위 군사전문지로 발돋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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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 헌법 제37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지도층 인사들들에 특히 해당되나 경제입국,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더 이상 아마추어에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 라는 말씀에 동의 합니다.. 이명박의 천계천 사업을 보면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상천외의 결과를 보고서 병역을 미필했으나 우리의 국가 장례를 생각하여 지지한것이 선배님과 같은 맹락이였습니다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교훈을 일깨운 지긋지긋한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좌향좌의 정권에 신물이 난것도 또한 이유였습니다.
자기 마음에 꼭 맞는 대통령은 이 세상에 있을 수도 없다는 말씀에 동의하고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나라의 대통령을 그렇게 비하하는 발언에 하도 들어 이제 웃슴만나오나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선배님의 말씀중에 원남 참전용사의 푸대접은 당연히 시정하여야하고 김대중 노무현 시절 해결 할문제인데 광주 폭거 희생자를 국가 유공자로 몇억씩 주고 원남 장병들를 홀대 하였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이 글은 너무 직설적으로 쓴 글이라 많은 욕도 먹었습니다.
그래서 폐기하려고 하였으나 숙고끝에 다시 게재합니다.
왜냐하면 내 솔직한 시평(時評)이기에 그 시절의 생각을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최단 박사께서 지적하신대로 좌파 대통령 시절 엉뚱한 사람들에게 국가유공자 대접을 한데 대해서는 분노합니다.
채명신 장군과 나를 비롯한 뜻있는 전우들의 노력에 의해 한국전쟁,베트남전쟁 참전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이름만의 유공자일뿐, 실질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국가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문명국가에서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독후 독후평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