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광주시청각자료실
이틀전 병원에 의뢰한 아내의 대장암 검사
결과가 양성이란 전화를 받고 오늘 오전
일찍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결과는 구름 한점 없는 깨끗한 가을 하늘이다.
그제 병원으로부터의 전화 이후 종일
본인인 아내보다 내가 더 두려워했다.
오늘은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원고 마감일,
공교롭게도 시의 주제가 病에 관한 것이다.
뭘 보낼까 망설이던 차에
오래 전에 썼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 - - - - - -
늙은 의사가 힐책하듯 흉부 사진을 내걸었다
검은 골짜기마다 달이 뜬 흔적
달이 지면 깜깜한 골짜기는 훤히 보일 것이고
달빛이 내다버린 몇 년이 거기 얼룩졌을 것이고
얼룩 아래는 남은 몇 년이 더 텅 비었을 것이니
그림자로 기척 없이 진찰실을 나왔다
더 이상 낯설지 않게 풀풀 걸음은 날려서
발자국이 찍히지 않는 나는
살아서 바람이었을까
의사의 처방처럼 알 수 없는 시간표 안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호, 그땐
완행열차에서 왜 상한 눈물냄새가 났을까
채 마르기도 전에 남겨진 것은 얼룩진 세월과
텅 빈 시간의 틈새,
아득히 비둘기 떼 나부끼는 온몸
그리운 하루일 때
가슴까지 흘러온 것은 다시 만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만큼의 깊숙한 달빛에
퉁퉁 불은 몸뚱이를 여러 겹 벗겨내어
그곳에 아직 나는 연서를 쓰고 있었다.
두근두근, 흰 알약 같은 달이 유혹하는 것 같아서
-배홍배 시집<바람의 색깔> 경전선
X선 사진 속 나의 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나의 20 대 젊은 시절은 지친 삶의 연속이었다.
잠자리에 들면 늘 아침에 깨어나지 않기를,
꿈속을 헤매던 영혼이 내 얼굴을 다시 찾지
못하기를 빌었다.
병원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바람이 등을 밀었다.
죽은 시대가 다시 밀었다.
누군 콩알 만한 가슴의 구멍 하나로
청춘이 졌는데
나는 목구멍 하나로
새빨간 동백꽃들을 피우고있었다.
발걸음 향한 곳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자주 다니던 도청 옆 고전 음악 감상실,
시간이 이른 감상실 안은 오전 청소중이었다.
나의 얼굴을 살피던 종업원은 음반을 하나 꺼내
턴테이블에 올렸다.
지하 깊숙한 곳으로부터 각혈하듯 우울한
탄식의 덩어리가 솟아나오고
나의 창백한 볼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데카 음반이었다.
음악실에서 나와 남광주역을 향해 걸었다.
호주머니의 약봉지를 만지작거리는 기분으로
정처없이 오른 부산행 경전선 비둘기호
차가운 차창엔 하얀 낮달이 꾸벅꾸벅 따라오고
열차의 심장은 사람의 동그란 박동 하나로 끊임없이 뛰고 있었다.
-글 배홍배
https://youtu.be/bp2hHNDtCq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