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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사랑
요한복음 15:9-15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1.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요한복음 15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에, 그리고 성도들을 포도나무 가지에, 하나님을 포도원 농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는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먼저 거짓 포도나무와 참 포도나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량한 ‘들 포도나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야 5장 2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임은 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 한가운데 망대를 쌓고 즙을 짜는 술 틀까지도 마련해 놓았네.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들포도가 웬 말인가?” 또 예레미야 2장 21절에는 “특종 포도나무를 진종으로 골라 심었는데 너는 품질이 나쁜 잡종으로 변하였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좋은 나무로 심었지만 변질되어 나쁜 나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심으로써, 불순종과 타락에 빠진 이스라엘과는 달리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하나님께 바칠 새 이스라엘의 모범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가 참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하고, 또 가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만 제 몫을 다 하지 못한다면 농부에 의해 가지치기를 당할 것입니다. 예수의 삶을 본받아 희생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의 비유 뒤에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시죠. 오늘 본문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된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데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평화롭고 안전한 시기에 목숨을 내줄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회변혁의 격동기에 진리를 위한 싸움에 나설수 밖에 없을 때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 두 가지는 구약의 어떤 예언자도 하지 않았던 선언으로 주님이 주시는 완덕에 이르는 새 계명인 것입니다. 이 선언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며, 그 사랑의 완성은 벗을 위해 기꺼이 제 목숨을 내어주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하느님의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필리아의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제가 사랑의 오른손 법칙이라 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사랑에는 5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자 저를 따라 오른손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손가락을 수평 되게 펴 보면 엄지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수직이 되는 엄지손가락은 아가페(Agape), 즉. 신적인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입니다. 수평 되는 넷째 손가락은 에로스(Eros)라는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기준선이 되는데, 선과 악, 이타와 이기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랑인거죠.
그 아래로 새끼손가락은 에피투미아(Ephitumia)인데, 육체적 쾌락만 쫓는 사랑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남을 없신여기는 교만, 성범죄를 포함한 왜곡된 사랑들입니다.
에로스 위로 가운데 손가락은 스톨게(Storge)라는 가족 간의 사랑입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맹목적 사랑을 말합니다.
둘째 손가락은 필리아(Philia)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동지적 사랑입니다. 스승과 제자, 뜻을 함께하는 길벗 간의 사랑인거죠.
자 이제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는 선언에 대해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뜻은 다른 사람들의 벗이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벗 삼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재물로 온전히 드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따르고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타인의 벗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벗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우리와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과연 타인의 벗이 되어주고 있나요?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스스로를 퓨리턴(청교도)라 칭했고 필그림(순례자)라고 불렀던 아메리카 정복자들이 지켰던 추수감사절은 과연 타인을 위해 벗이 되어주는 날이었을까요?
1789년 워싱턴 대통령이 국가적 기념일로 선포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루즈벨트 대통령 때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정해졌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최대명절입니다. 축제 시작일인 목요일로부터 일요일까지는 대개 4일간의 연휴가 주어집니다. 이 명절에는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만찬을 즐기며 재회의 시간을 보냅니다. 또 추수감사절은 쇼핑하는 시기로도 유명합니다. 명절 다음날인 금요일은 주요 소매점들이 큰 폭의 할인행사를 하는 이른바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입니다.
추수감사절에 감추어져 있는 역사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문제로 로마교회와 갈등을 겪던 헨리 8세는 영국교회의 머리는 왕이라는 수장령 반포로 종교적 독립을 시도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영국국교회인 성공회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58~1603) 때 꽃을 피우게 되죠.
하지만 성공회와 가톨릭교회가 별 차이가 없다고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공회에서 가톨릭 색채를 완전히 지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때문에 퓨리턴(Puritan), 즉 청교도라고 불렸습니다. 이들 중 과격파들은 국법으로 규정된 성공회 참석을 거부하고 독립된 종교 집회를 가져 왕과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샀습니다.
여왕이 죽고 나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죠. 뒤이어 즉위한 제임스 1세(1566-1625)는 왕권신수설(the divine right of kings)을 주장하면서 국교회를 거부하는 청교도들을 탄압했습니다. 탄압을 피해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계속된 탄압으로 네덜란드에서도, 영국에서도 살 수 없게 된 이들은 1620년 9월 35명의 청교도와 67명의 이방인을 태운 메이플라워호를 탑니다. 66일간의 항해 끝에 11월 11일 이들은 미국 북부의 플리머스, 현재의 케이프커드(Cape Cod) 해안에 상륙하게 되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이주민들은 스스로 순례자를 뜻하는 필그림(Pilgrim)이라고 불렀습니다. 플리머스에 정착한 필그림들은 낮선 환경과 추위, 굶주림 등으로 그해 겨울에 절반이 죽어 나갑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은 근처에 살던 왐파노아그족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왐파노아그족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스콴토(Squanto, 1585-1622)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통해 필그림들은 부족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왐파노아그족 인디언들은 이주민들에게 땅을 제공하고 물고기를 잡고 옥수수를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필그림들은 비로소 죽음과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죠. 1621년 10월, 첫 번째 추수 후 이주민들은 추수감사절 파티를 열고 원주민들을 초대했습니다. 참석자는 이주민 53명, 원주민 90명이었죠. 이주민들은 이날을 ‘감사의 날(thanksgiving day)’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첫 추수감사절 이후 54년이 지난 1675년 필그림들은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싸움에서 600명의 필그림들과 4,000명의 왐파노아그족이 희생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계속되죠. 서부개척시대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끔찍한 지옥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디언들은 이민자들이 가져온 전염병과 알콜중독, 학살로 죽어갑니다. 1890년 마지막 전투였던 ‘운디드 니’ 학살 이후 많게는 1억 명으로 추산되었던 원주민들의 수가 25만 명으로 급감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선조들의 땅에서 쫓겨나 황무지로 내몰렸습니다.
지금 남은 인디언들은 1860년대부터 만들어진 310개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강제이주 당해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 국토의 1.5%에 해당하는 보호구역 안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역사와 문화, 언어와 전통을 잃어버린 채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들과 교회는 1621년의 추수감사절이 인디언과 필그림 이민자들 사이의 평화로운 만남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조상들이 학살당한 역사를 기억하는 원주민들은 모두가 환호하는 추수감사절 축제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사'보다는 '혐오와 전쟁, 상처'만을 떠올리게 하는 이날을 기억하기 위해 원주민들은 추수감사절을 '북미 원주민 애도의 날'로 정하고 추도식을 거행합니다. 뉴잉글랜드 원주민연합(UAINE)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 죽어간 북미 원주민들을 기리고, 빼앗긴 땅과 역사, 언어와 문화를 일깨우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이 행사는 단지 추도의 의미뿐 아니라 미국 내에 존재하는 인종차별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 유색 인종, 장애인 등 소수 집단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재조명하는 것도 이 행사의 목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부개척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 이 순간에도 교회와 교회의 권력자들은 타인의 벗이 되기는 켜녕 타인을 적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사랑인 벗을 위해 죽는 필리아의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런 사랑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엊그제 11월 13일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효시격인 전태일 열사의 서거 5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를 외치며 자신이 일하던 평화시장에서 분신으로 항거하였습니다.
당시 전태일 열사의 나이는 22세였고,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열사가 일하던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은 너무도 열악하였습니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 작업 환경 또한 폐병이 걸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던 2만여 명의 피복 노동자들 중 90%는 평균 18세 이하의 여성들이었는데 화장실도 없는 먼지 구덩이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평화시장을 비롯한 중소기업에서는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인 근로기준법조차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노동의 대가는 기업주에게 돌아갔고, 노동자들은 기계와 다름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의 노동으로 만든 잉여가치는 고스란히 자본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1968년에 우연히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열사는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를 느낍니다. 이듬해 6월 그는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을 모아 바보회를 결성하고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며,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죠. 7월부터는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근로감독관, 노동청을 찾아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합니다. 급기야는 박정희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박정희에게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요구 사항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1일 10시간-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요구조차도 외면당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죠. 아무리 노력해도 반향이 없는 정부와 자본가들을 향해 열사는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합니다. 열사가 분신할 때, 그의 손에는 근로기준법 책이 함께 쥐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한국사회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도 살인적인 근로 환경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죠.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일대 각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1년 9월 도시빈민운동을 위한 수도권도시선교회가 발족되어 교회가 민중 현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민중신학도 태동되었고, 본격적인 산업선교도 막을 열게 되었죠.
전태일 열사가 50년 전,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외쳤지만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빈부격차와 계층 간의 분열은 더욱더 심해졌습니다.
아직도 재벌과 기업 우선 경제구조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노동자의 인간 선언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들의 삶은 날마다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12일 전태일 열사의 50주기 기일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열사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기념식을 개최하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의원과 전태삼, 전태리씨를 청와대로 초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대리 수여케 했습니다. 노동계 인사에게 국민훈장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이 수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이 땅의 민중 계급이 얼마나 천대당해 왔는가를 가늠케 합니다.
지금 이시간도 2,200만 노동자 중 5인 이하 사업장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360만 명이라고 합니다. 노동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국회에는 전태일 3법인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안과 근로기준법 11조, 노동조합법 2조 개정안이 올라와 있습니다. 속히 처리되어 민중을 벗으로 삼는 세상으로 성큼 한 걸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입니다. 노동자, 빈민들의 뼈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로 잡고자 그들을 대신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민중신학에서는 전태일의 분신 사건을 하나의 예수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예수의 정신을 구현한, 벗을 위해 목숨을 내주는 큰사랑을 실천한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은 우리와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길벗으로, 어렵고 암담한 우리 이웃들의 벗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것을 아낌없이 내주어, 벗이 되는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꺼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0. 11. 15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