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금. 까마귀와 살모사
간밤에 비바람이 심했다. 밤새 창문이 덜컹거렸다. 그런데 물도 안 나왔다. 도로엔 벚꽃잎과 부러지 가지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숲은 어제처럼 안개 자욱하다. 숲길에 어지럽게 뿌려진 나뭇가지들은 대부분 썩거나 죽은 가지들이었다. 한 바탕 이런 소란은 봄맞이의 의례인 것 같다. 숲은 물에 흠뻑 젖었고 골짜기는 물소리도 우렁차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됐다. 키큰 나무들도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듯 연두빛 싹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제의 비바람은 시련도 시련이지만 은혜롭기도 한 비였다. 산을 오르는 내게도 습도가 높아 허파에는 산공기가 가득하는 느낌이 그대로 들었다. 안경은 자꾸 뿌옇게 변하고, 땀은 땀대로 났다.
입구에서는 때까치를 만났다. 수분을 끝낸 진달래들은 지난 비바람으로 송이째 바닥에 떨어졌고, 그 자리를 연둣빛 새잎들이 나오고 있다. 생강나무도 꽃 진 자리를 대신해 아기잎들이 돋아났다. 바닥엔 지네가 기어간다. 이제 오솔길에 누운 낙엽도 숨이 죽은 듯하다. 조금더 올라가니 보랏빛 딱정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니 각질의 등피에 항아리가 형체를 반사하듯 내가 반사되었다. 나름 옛날이었다면 진골의 보랏빛이라 했을 것이다. 이름이 보라금풍뎅이였다. 등피와 날개, 검은눈도 그렇지만, 삼지창 뿔같이 뻗은 더듬이도 일품이다. 용주사 갈림길 즈음에서 어제처럼 새들 10여 마리가 있었다. 어제는 멧비둘기인줄 알았는데 흐릿한 안개 속에 사진을 찍어보니 흰눈썹지빠귀같았다. 여름철새인 지빠귀가 날아와 지프네고개 부근에서 며칠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크기와 숫자였다.
이상하다. 어제 화엄벌 근처에서 본 꽃나무가 오늘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어제 비바람에 꽃송이들이 다 떨어진 것일까? 그 꽃들은 햇볕한번 보지 못하고 빗물에만 흠뻑 젖지 않았던가? 꽃잎이 물에 녹을 듯 이지러져 안타까웠다. 내일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길 위에는 두더지가 다닌 자국이 나있다. 사람들이 밝고 다녀 땅이 단단히 다져져 있는데 아무리 비가와 물러졌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다. 숨을 쉬러 땅주변으로 나오는 지렁이를 잡아먹으려고 산식구들도 바빴을 것이다. 길 위에는 산지렁이가 한 마리 나와 있었다. 유난히 가늘고 길다. 화엄벌에 올라섰을 때 갑자기 개구리매가 안개 속에서 확 날아왔다. 거의 3~4미터 앞에서 매도 놀라 날개짓을 하면서 뒤로 물러나더니 날아갔다. 시야가 어두운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저공비행을 하다가 날아온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모처럼 코앞에서 매를 보는 행운이었지만 매로서는 아이구야 했을 것이다.
어제처럼 안개 속 초소에서 책을 좀 읽었다. 오후에 안개가 걷히자 멧새가 초소 근처에 와 먹이를 찾았다. 모처럼 멧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멧새는 이곳 관목림 초원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서식한다.
까마귀 네 마리가 주위를 배회한다. 가족일까? 잘 다니는 무리다. 조상들은 까마귀를 자라 제 어미를 봉양하는 효성이 지극한 새로 여겼다. 까마귀는 나름 의리가 있는 새인 것 같다. 언젠가 하산을 하며 보니 까마귀가 헌식대에 올려놓은 밥 한 숟가락을 한 입씩 물고 날아가는 걸 보았다. 나름 이런 의리를 가지고 있기에 부모를 봉양하는 새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닷새전인가 만난 쇠살모사도 생각난다. 살모사는 까마귀와는 전혀 반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살모사라는 이름 자체가 부모를 죽이는 자식이다. 물론 살모사는 부모를 죽이지 않는다. 다만 살모사 어미가 알을 낳지 않고 제 몸 속에서 키워 새끼를 낳기 때문에 보통 뱀과 달리 어미를 찢고 나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의 눈으로 까마귀와 살모사의 생리를 왜곡해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늘은 헌식대에 올려놓을 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