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詩특집 - 印默 김형식 〈무릎을 탁 치고서야 빈 배인 줄 알았네〉 印默 김형식 시인의 불가의 인연 불교는 나의 모태 신앙이다. 어머니 김부업金富業(1907∽2001)씨는 수도암의 불보살이셨다. 1974년 금강경을 만난다. 용성 진종선사가 역경하고 도문이 발행한 《금강경》이 불씨가 되었다. 무불선학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부터 화두로 길을 닦고 있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下處. 그 사이에 해인총림‘고경총서’ 37권, 성철스님 법어집 11권과의 인연으로 성철스님 상좌, 원융스님을 만나고 성철스님의 몽중상좌가 되었다. 또 하나의 인연은 탄허스님의 흔적을 만났던 것. 유불선 동양철학에 심취, 장자의 《남화경》, 노자의 《도덕경》, 《시경》, 사마천의 《사기》 등을 곁에 두고 읽고 있다. 빈학貧學은 《한강문학》에서 선시禪詩 몇 편 내 놓으라 죽비를 들었을 때 망설였다. 혹여 깨달은 척 하는 것으로 비춰져 화탕지옥 업보를 짓지 않을까 걱정 이었다. 하여, ‘선’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고 나서 빙그레 웃었다. 선시란 선禪과 시詩가 합일화된 용어다. ‘선과 시’, ‘선적인 시’, ‘선의 시적 표현’, ‘시의 선적 표현’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원래 선은 사유수思惟修, 정려靜慮로 풀이 되는데, 이 사유수와 정려는 시의 내면적 소성素性과 부합되기 때문에 선과 시는 쉽게 결합될 수 있다. 또, 선이 불교의 한 유파이면서도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유思惟를 포용할 수 있는데, 이는 철학에 있어서 논리적 사고를 제거하고, 예술에 있어서 형식과 기교를 버리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빈학은 시를 쓰면서 선시라 생각하고 써본 적은 없다. 써 놓으니 독자분께서 “이것은 선시다” 라고 했다.
몇 편의 시
〈반갑다, 보름달〉
깊은 밤 옹달샘에 찾아오신 귀한 손님
표주박으로 건져 올려 내 안에 모셔 놓고
보름달 기다리니 곱게 곱게 자라시라
보름달 기다리니 곱게 곱게 자라시라.
-. 이 시는 2004년 시월 어느 날 밤, 포행 중에 뒷산 옹달샘에서 표주박으로 초승달을 건져 올려 목을 축이며 읊조렸던 시다. 2015년 백담사 세계명상대회에서 죽림선원 선혜스님께서 유포, 선방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금도 초승달을 키우고 있는 스님들이 들먹인다.
〈무엇을 쓸고 있는가〉
대숲에 이는 바람 가다가 멈춰 서서
뜨락을 쓸고 있는 그림자에게 묻는다
세월을 쓸고 있는가 번뇌를 쓸고 있는가.
-. 달 밝은 밤 포행 중에 마당을 쓸고 있는 소나무 그림자를 보며 내 자신에게 묻고 있다. “세월을 쓸고 있는가 번뇌를 쓸고 있는가” 하고.
〈어둠 그리고 나〉
거기 누구 없소 여인이 날 찾는다
이 세상 모든 흔적 지우개로 지워 버리고
뉘신데 나를 찾소 그곳에 어둠이 말없이 앉아 있다.
-. 여인으로 의인화한 ‘어둠’은 “이 세상/ 모든 흔적/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절망의 존재다. 그 ‘어둠’ 속에 지워지지 않는 ‘내’가 있다. 빛이 어둠과 마주 하고 있다.
〈빈 배〉
물속에 내린 뿌리 연꽃을 밀어올리고 바람이 졸고 지나 허물을 벗어 놓으니 어둠속에 몸과 마음 영혼을 내려놓았네
한 방울 깊은 먹물 연못 위에 퍼져가니 잠자리 연꽃 위를 스쳐가며 맴을 돌다 스멀스멀 평화롭게 수면 위를 나르네
연꽃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수련지는 요람에 다가가는 넉넉한 쉼터기에 삼라만상 온갖 것들 새롭게 준비하네
잠들고 깨고 보니 이것이 생사인데 몇 번을 자고 깨야 부처인줄 알겠는가 무릎을 탁 치고서야 빈 배인 줄 알았네.
-. 선정에서 나와 쓴 글로 선은 본래 글자를 내 세울 수 없고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선적인 예지를 표현한 글이다.
〈빙그레 웃자〉
유심히 바라보니 벽이 그 곳에 있더니 무심히 바라보니 벽은 어디로 갔는고 벽을 보고 앉아 있는 나는 또한 누구인가
한 순간 놓아버린 화두를 챙기다가 툭 터진 벽 너머로 바깥풍경을 바라보니 이런 일도 있는 걸까 어안이 벙벙하네
터진 벽 바라보니 세상이 거기에 있어 꿈인지 생시인지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벽은 없고 온지 사방 환하게 열려있네
걸릴 것 하나 없는 이것이 사실인데 사람들 알고 나면 고운 눈으로 보겠는가 침묵 속에 묻어두고 빙그레 웃고 살자.
-. 겨울 산속은 춥다. 겹겹으로 바람을 막고 움막에 들어앉는다. 2005년 겨울 어느 날 오후 양지를 깔고 앉아 면벽하고 있었다. 선정이 찾아 왔다. 반개한 시야에 자주색 점 하나 점점 커지고 커지며 엷어지는 환희가 계속된다. 나에게 선정은 이렇게 찾아오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얼마를 지났을까 벽이 툭 터지고, 터진 벽 너머로 보이는 낯익은 실상,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풀잎, 나무, 산, 마을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 기록한 글이다. 공부인들은 이 역시 마장魔障임을 안다.
〈중도는 부처〉
소중한 인연 하나 정금산과 맺은 사연 천하에 성철스님 백일 법문 때문이라 큰 스님은 몽중에서 상좌가 되어 달라고
내민 손 꼬옥 잡은 그 인연 어찌 잊을까 스님을 모셔놓고 법문을 듣는 환희 불법에 매료되어서 불철주야 매달려서 부처를 알고 나니 참 여래는 중도라.
-. 2002년이다. 철야 정진 중에 잠깐 눈을 붙였다. 덕숭문중 정혜사 마당이었다. ‘0019’번호판을 단 검정 승용차가 다가온다. 내 옆에 섰다. 호랑이 성철스님이 운전석에 웃으시며 앉아 계셨다. 깜짝 놀라 넙죽 절을 올리자 “타라” 하신다. 조수석에 앉는다. 스님께서 내손을 꼭 잡으신다. “내 상좌가 되어 주지 않겠나” 하신다. 몸 둘 바를 몰라 “예 고맙습니다”하자. “오늘부터 니는 내 상좌다” 하신다. 꿈이었다. 이 몽중 인연으로 성철스님의 몽중상좌가 된다.
번호판 숫자‘0019’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궁금했었다. 이 빈학의 머리로는 풀 수가 없었다. 그 후 월정사 탄허스님의 유불선 강의 내용 중 장자의 〈양생주〉 편, 포정과 문예군의 대화에서 옹색하나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탄허스님은 “포쟁이가 칼을 19년을 써도, 에서 ‘19’라는 숫자는 ‘무한지수’를 말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끊을 수 없는 법’의 상좌가 되어 달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생각 한다. 탄허스님께서는 “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밝히지 못했으나 내가 처음 주석 한다” 했다.
성철스님 철학은 중도中道다. 이 중도는 장자의 혼돈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혼돈에 말뚝을 박는다. 이것이 스님이 주장한 ‘돈오도수’다. 승용차 번호판 숫자를 놓고 너무 비약 했나 보다. 빈학은 제2시집 《五季의 대화》의 표제시를 이곳에 상재, 성철스님과의 중도의 인연을 말뚝에 매 두고자 한다.
〈五季의 대화〉
공空이 묻는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라?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요
중도中道 왈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알 수 있으니 한번 해 보시구려 마음도 이와 같음을 눈으로 볼 것이요
그렇다면 아궁이는 마음이고 불은 탐진치를 이름한다? 불을 지핌은 사계절이요 지피지 않음은 오계절로 보아도 되겠소?
그렇소, 눈으로 보는 계절을 색이라 이름하고 무심으로 보는 계절을 공이라 하니 색도 공도 아닌 중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오계절’이라 하오
친구야, 우리 중도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며 살아가자
- 〈五季의 대 화〉 全文
〈우리집 보살〉
가는 봄 오는 가을 마음이 하는 짓이라?
그래요 여보 당신 보살이 다 되었소 가고 옴이 여여하니 당신은 보살입니다.
-. 밭일을 하는 아내가 내 뱉는 소리, “가는 봄 오는 가을이 다 마음이 하는 짓”이라 한다. “이게 시방 무슨 소리여?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더니!”, “봄 가을 오간다고 땅이 변해? 하늘이 변해?” 마음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李 시인, 많이 컸다. 진짜 보살이네” 했다. 호미와 삽이 웃는다.
〈빈 밥그릇〉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한 그릇 내 앞에 앉는다
수저를 들 때 마다 쳐다본다
어서 먹으라
내 배를 채워 주고 다 비운다 빈 밥그릇
식사 때마다 부처님 법문을 듣는다.
-. 식사 때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법문을 듣는다. 한술 두술 밥을 비우는 밥그릇을 보며 빈 밥그릇을 대한다. 빈 밥그릇은 나의 스승이고 부처님이시다. 식사 때마다 부처님 법문을 듣는다.
〈이놈아, 아직도 중생심이〉
스님 불들어 갑니다 개원사 암자 터
안개 사이로 불타고 있는 저 홍도화
뻐꾹새 슬피 울고 벌 나비 염불소리
큰스님 다비茶毘 중인가
봄을 화장 하면 사리는 몇 섬일까
이놈아 아직도 중생심이.
-. 움막 뒷편에 780여 년 전 개원사開元寺 암자터가 있다. 봄 안개 속에 보일 듯 말듯 만개한 홍도화를 보면 마치 큰스님 다비하는 불꽃으로 착각 한다. 죽엄을 화장하고 떠나는 큰스님께 사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빈학 아직 공부가 덜 돼 사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언제 철들 것인가.
평론가의 촌평 한마디
(홍윤기 교수, 채수영 교수, 반경환 평론가)
◆ 홍윤기 교수(시인, 문학평론가, 일본 센슈대학 문학박사, 국제뇌과학대학교 국학과 석좌교수)
이 가을 나무 아래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갈잎 지는 소리
너는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하느냐 어디로 가느냐
침묵을 할퀴는 파문
누구의 법문인가
낙엽
낙엽
낙엽.
- 〈갈잎의 추회秋懷〉 全文
-. 이 시는 가을 벚나무 아래 앉아 선정에 들었다 나와 써 놓은 낙서다. 홍윤기 교수는, 시인은 ‘이 가을/ 나무 아래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고 제시한다. 그러더니 ‘갈잎 지는 소리’에 ‘너는/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하느냐/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있다. 그리고 ‘침묵을 할퀴는 파문/ 누구의 법문인가’로 이어간다. 여기서 홍윤기 교수는 이 시를 해석하기 전에 시인 김형식이 누구인가 알고 싶다고 하신다. 김형식의 필명은 인묵印默이다. 말이 없는 도장. 그 뜻을 묻는바 불가 문중에서 내린 법명인데 그냥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필명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시인 김형식은 출가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심산을 오가며 20여 년을 수행 정진한 재가불자로 깨달은 분이다. 언제 물어도 단지 “공부인工夫人일 뿐”이라 하지만, 반평생을 화두를 들고 살아온 인묵 김형식이기에 선승의 반열에 놓고 이 시를 읽어 내린다. 하여, “이 시를 인묵거사의 득도송으로 보고싶다” 하신다. 시인 김형식은 화두를 들고 나무 아래 앉아 선정에 든다. 선정에 들어 자연의 소리, 진리의 소리를 듣는 중에 갈잎 지는 소리에 이르러 화두를 깨부수고 그 환희를 “침묵을 할퀴는 파문”으로 메타포 했다. 대자유인이 된것이다. 깨닫고 나서 시인 김형식은 “누구의 법문인가” 하고 묻는다. 물론 부처님의 법문이다. 그리고 그 답을 “낙엽/ 낙엽/ 낙엽”이라 노래한다. 필자는 이 시詩 〈갈잎의 추회秋懷〉를 우리 모두 함께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만추晩秋 속에서 산문山門을 넘나들어 보자고 했다.
◆ 채수영 교수(시인,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비평가협회 회장)
물안개 속에 연꽃 한 송이 피워 올려놓고
청개구리 한 마리 연잎에 앉아 삼매에 들더니
햇살 한 움큼 달빛 서너가닥 비바람 회초리 물방게 두어마리 친견 하더니
연밥 한 숭아리 번쩍 들고 법문 하고 있다
연밥 속에는 여왕벌이 산다
세상은 향기롭다
이눔들아 알겠느냐.
- 〈가을법문〉 全文
-. 채수영 교수는 이 시를 “자연의 리법理法을 끌어와 전법륜의 말씀을 -가을의 변화 앞에서 무엇인가를 설득 하려는 시인의 뜻은 고귀한 법의를 걸치고 헌신하는 환상이 드러난다. 청개구리가 삼매의 깊이에 들어가는 비유는 불성의 차별이 아니라 모든 물상에도 불성이 들어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근거는 인간에게만 있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물상- 때문에 죽비를 들어 내리치는 “이눔들아/ 알겠느냐”를 포효하는 말이 울렁증을 가져온다. 세상은 향기롭고 따스하고 아름다움이 내재했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는 우둔한 인간들에게 ‘알겠느냐’는 깨달음의 전달에 답답증을 비유한 뜻일 게다. 김형식의 시는 정서가 불교의 가르침을 저변에 놓고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 뜻을 충만하게 한다.”
◆ 반경환 평론가(시인, 철학자, ‘애지’ 편집주간)
아이들 집 거실을 지키는 돌 물확
며느리 목소리
또르륵 연잎에 구른다
아버님 연꽃이 피었어요
기쁜 소식이구나 귀한 분 모셨으니 잘 보살피거라
아침에 피어 오른 기쁜 소식.
- 〈연꽃 피 는 소 리〉 全文
-. 시인이 사는 집은 더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연꽃처럼 부처님이 사는 집이다. 부처란 누구란 말인가? 부처란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입산속리入山俗離하여 이 세상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한 성자이며, 우리 인간들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러나 부처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 새로운 부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며, 이 부처의 마음으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은 물론, 민심과 국력을 결집시켜 이상적인 극락을 건설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도는 우리 마음속에 있고 부처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부처고 시인과 그 아내도 부처이고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도 부처다.
◆ 인묵印默 김형식 약력
전남 고흥(1946), 《불교문학》 시부문 등단, 詩聖 한하운문학회 주간, 《한강문학》 편집고문,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매헌윤봉길사업회 지도위원, 고흥문학회 초대회장, 수상 : 한국 청소년 문학대상, 시집 : 《그림자, 하늘을 품다》, 《五季의 대화》, 《광화문 솟대》, 《글, 그 씨앗의 노래》, 《인두금人頭琴의 소리》, 《질문》 외 주소: 강원 횡성군 정금리 1213 이메일 : hyeongsik260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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