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들어 올때 배띄워야 한다고....글쓰는데 필을 받았습니다...
오밤중까지 컴앞에앉자서 자판 둘긴다고 부인님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처다 보지만... 오늘도 한편더 갑니다~~
수평적 지휘가 뭐여??
걸프전은 미국 전쟁사상 참으로 기묘한 명령체제를 가지고 시작한 전쟁 되겠습니다. 2차대전 때나 한국전쟁, 월남전 등등에서 보여준 미군의 지휘체계 보면, 거기서 짱 먹는건 미군이고, 미군이 군대를 지휘하고 모든 전장을 통솔 하는 게 정답처럼 되어 있었습다.
근데 이 걸프전은 좀 요상하게 되었다 이겁니다.
일단 90년 8월 10일 날에 긴급 아랍 수뇌회의란걸 했는데, 여기서 아랍 합동군이란게 조직되어 이걸 사우디에 파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단 것인데요. 근데 웃기는 게 그 이후에 프랑스니, 벨기에, 파키스탄, 이탈리아 등등등 졸라 많은 국가들이 사우디에 파병을 했거덩요??
그런데 이 병력들이 어떤 동맹체제에 의한 파병이 아니거든... 그럼 UN 결의에 의해서 파견했냐고?? 또 이것도 아니거든?? 결국 동맹군이란 이름을 쓰기에도 그렇고, UN군이란 이름을 쓰기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법적으로다가 그래도 한나라에 군대를 파견하는데, 뭔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이놈들 방식이란 것이 사우디아라비아가 [파병요청]을 하고 거기에 대해 [우호적 견지]하에 파병을 한다는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자, 법적으로는 이렇게 되었다 치지만, 이 연합군이라 불러야 할지, 승냥이떼로 불러야 할지 뭐한 부대들의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가 문제였고, 더 나아가선 그놈의 지휘체제를 어케 잡아야 하는지 문제가 된 것이었습니다.
뭐 시시껄렁한 쿠데타를 한번 일으켜도 멋지게 [혁명군]이네 뭐네 하는 세상인데, 이름은 좀 폼나게 지어야 하지 않느냔 말입니다...
결국 [떼로 몰려온 군대]란 표현으로 낙찰... 다국적군, 즉 Multi National Forces란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는데, 말이 좋아 다국적군이지, 그 파병 목적이 다양하기 그지없기에 본 인은 앞으로 편의상 다목적군이라 부르겠습니다.(어? 다국적군으로 배웠는데 하시는분도 계시겠지만 내맘입니다~~~)
여하튼 이름은 글케 정해졌는데, 문제는 그놈의 지휘체계란 것이지 말입니다.
원래 이런 일 터지면 짱 먹는 게 미국이고, 미군 사령관이 대빵자리 차지하는 게 정석처럼 되어 있는 게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는데, 이번엔 미군 애들이 그 동안 놀던 곳과는 동네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월남이나 한국 같은데야, 미군이 재채기 한번 하면 애들이 독감 걸리네 폐렴 걸리네 하면서 벌벌 기던 동네였고, 유럽 같은 데야, 걍 네가 짱 먹어라 하고 순순히 물러나 앉아주는 대신에 발언권 얻어서 한마디씩 던지는 걸로 낙찰을 봤다 치지만, 이 중동이란 동네는 동네 노는 수준이 달랐던 것이지 말입니다.
일단 이슬람 세계의 정서란 것이 문제였는데, 일단 <이스라엘 = 개새끼> 란 공식에다가 미국은 이스라엘 편이란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 거기다가 이슬람 사람들, 특히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자존심이 좀 쎄던가.
- 비록 우리가 후세인 때문에 미군애들한테 삥은 좀 뜯겨도...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냐!!
그러타...사우디 자존심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기에서 미군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지휘권(Parallel command)이란 게 등장합니다.
본 필자 예상하건대, 앞으로 역사가 어찌될지 몰라도 미군이 이런 [수평적 지휘권]을 허락한 경우는 이 걸프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슴다. 그럼 이 수평적 지휘권이 뭐냐??
간단히 말해서 미군 대빵인 슈워츠코프 대장과 사우디아라비아 대빵인 칼레드 빈 술탄 중장의 지휘권을 동일 선상 하에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지휘권이란걸 보면, 사우디 정부의 직속 명령을 받는 칼레드 빈 술탄 중장 휘하에 사우디 군 118,000명,
이집트군 30,000명,
프랑스군 15,000명,
파키스탄군 11,000명,
시리아군 7,500명,
쿠웨이트군 7,000명,
모로코군 5,000명,
걸프군 10,000명(걸프군이란 아랍에미레이트, 오만, 카타르, 바레인 애들이 병력을 쬐끔씩 추렴해서 만든거임다)
등등을 칼레드 휘하의 지휘병력으로 짱박아 두어 당시 표현으로 아랍군 혹은 이슬람군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 직속으로 노만 슈워츠코프 대장 휘하에 미군과 영국군을 둔 것이었습니다
병력상으로 보면, 지상군은 3:1, 공군은 5:1 정도로 미군의 비율이 압도적이었고, 해군은 비교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 있는 상태였는데도, 수평적 지휘가 이루어진 것이지 말입니다.
즉, 간단히 말해서 하나의 군대에 사령관이 두 명이었던 것인데요. 자 문제는 55만 명이나 병력을 때려 부은 미군 애들이 눈치봐가면서 군대를 운용해야 한다는 것인데...실제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칼레드 빈 술탄 장군은 미군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파병을 했으면서도 주둔한 나라의 사령관 눈치를 봐가며 작전을 하게 만들어 버린 “최초의 다른 나라 장군”으로 역사에 기록이 된 것이었습니다!! 두둥!! 대단하지 않은가들??
결국 이 두명의 장군은 수평적 지휘 체계 하에서 합동군 사령관(Joint Forces Commander)이라 불리며, 아랍군, 혹은 이슬람군이라 불리는 칼레드 부대와 미군부대로 양분되어 각자 따로 자기 휘하의 부대를 이동, 배치, 훈련시키는 것에 대해 상대방에게 [통보]를 해야 했습니다.
웃기는 것이 미군 애들이 대규모 군사 연습을 할 때, 그걸 통보 받지 못한 칼레드 장군이 일언지하에 훈련을 중지 해 달랄 것을 통보 했고, 미군은 그걸 지켰다는것 ....음 뭐 미군애들도 눈치를 봐야 할 때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칼레드 장군이 의식적으로 슈워츠코프 장군의 [부하처럼] 보여지기를 꺼려했던 것도 이런 미군의 눈치 보기에 한몫을 거들었슴다.
후세인이 자살폭탄테러를 할까봐 슈워츠코프 장군의 주변엔 1개 소대 병력 정도의 경호원들이 따라 붙었는데, 누군 경호원이 1개 소대고 누군 경호원이 두세명이면 안 된다고 칼레드 장군 자신도 경호원을 증원했었습니다(칼레드 장군은 슈워츠코프의 경호원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기 위해 자기 휘하의 부하 몇 명을 외국에 보내 훈련시키기도 하였다). 합동 참모본부 지하 벙커의 경비도 한 구역당 미군 3명, 사우디군 3명씩으로 일괄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역시...자존심에 죽고 사는 군인의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칼레드 장군이 말했듯이 자신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보급].
미군애들과 연합군 애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총을 들려주는 모든 것이 칼레드 장군의 임무였습니다...즉, 삥 뜯기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지요...으음...슈워츠코프의 회고담답게 자기는 전쟁 전 가장 신경 쓰였던 게 바로 [돈문제]였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서명이 들어가 있는 수표가 결재되어 워싱턴으로 날아 갈 때가 가장 편안했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듯이 이 두명의 사령관은 전략회의를 위해 만날 때마다,
- 수표 언제 보내줄껴??
- 이런! 너네가 사기 치니까 못주는 거잖아?? 제발 가라로 계산해서 올리지 마 임마!!
- 나도 위에서 씹힌다니까!! 걍 보내주라...너네 도와주러 왔잖아 임마...
- 이게 도와주러 온 거야?? 삥 뜯으러 온 거지!!
대충 이런 분위기로 전략회의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슈워츠코프 참 힘들었겠다....
쳐들어가자!!
9월말이 되자 미국애들은 슬슬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미국애들은 워싱턴의 부시와 그 똘마니들입니다. 불과 한 달 전 후세인이 밀고 내려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워싱턴은 이제 슬슬 후세인네로 쳐들어가야 하지 않는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슈워츠코프는 환장하실 노릇이었습니다.
당장 사우디아라비아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산넘고 바다건너 이 모래사막 으로까진 왔는데, 자기들이 여기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단 것이었습니다.
이게 뭔 소리냐? 간단하게 말해서. 미군애들이 여기 왜 왔는지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사우디아라비아를 지키는 선에서 미군이 왔는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러 왔는지, 아니면 이라크까지 밀고 올라가 후세인 이란 동네깡패를 부셔 버릴 것인지 아직 아무런 결정이 안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 아주 중요한 부분 되겄습니다.
9월말...그러니까 9월 28일날 쿠웨이트 망명 정부의 수반인 쿠웨이트 국왕이랑 부시랑 만나서 이야기 할 때까지 부시네는 이노무 이라크 사태를 어케 해결해야 할지 결정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날 쿠웨이트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이 망명 국왕이 존심 굽히고...
- 돈 대주께 후세인 좀 패주라... 좀 도와주라 부시야...엉??
이런식으로 저자세로 나와서 부시를 살살 긁어줬다면 또 모를까, 이 쿠웨이트 국왕은 걍 뉘앙스만 풍기며,
- 도와주던가 말던가...걍 뭐 후세인 좀 패주면...나야 좋지 뭐...
쿠웨이트 자비르 국왕
대충 그런식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나라 잃은 국왕의 모습이 아니었던 거지요 ...아주 담담하게이야기를 했다는. 호 이것이 이슬람 세계의 자존심이었던가??
당시 분위기는 쿠웨이트 국왕은 은연중에 미국이 후세인을 패주기를 바랬고, 그런 뉘앙스로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 부시한테 매달리는 짓을 하지 않았단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부시는 일단 이노무 망명국왕이 열라 불쌍하게 보였는지,
- 그래, 후세인 내가 패주께...너네 나와바리도 다시 찾아주께...
이런 분위기로 향했습니다...이노무쉐이 지 아들내미가 이거 보고 배웠나 부다.
하여튼 워싱턴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노무 걸프전이 터지긴 터졌는데, 어케 좀 수습을 해야겠다는 것이지요. 급한불은 껐고, 한숨 돌릴라 하니까, 이 커져버린 사태를 어케 수습해야 하는지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경제제재의 효과란 게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아니지요.
이라크 수입의 95%와 수출의 대부분을 막아버린 현 상태에서 이라크 애네들이 손가락 쪽쪽빨며 먹을 거 찾기까지는 앞으로도 짧게는 한달, 길게는 6주정도 걸린다는 계산이 나와 있었습니다.
거기에 계속되는 미군의 주둔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우디에 삥 뜯고, 쿠웨이트에 삥 뜯고 해도, 애네들이 언제까지 삥 뜯기며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말입니다.
일단 전쟁의 목적부터 정해야 한단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시점에 슈워츠코프는 돌아버릴 지경에 이릅니다. 지상군하고 공군, 해군 포함해서 한 18만명 끌고 가면 어쨌든 쿠웨이트 탈환은 할 거란 생각이었는데,
이런, CIA에서 준 정보랑 너무 상황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첨에 슈워츠코프가 판단 한 병력보다 이라크 애네들이 탱크는 1천대, 장갑차는 2천대, 전투기는 250대나 더 보유하고 있고, 문제는 이 놈들이 계속 쿠웨이트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이란 것이었습니다.
*꾸역꾸역 쿠웨이트로 들어오는 이라크군 T-72들
이런식으로 10월말이면 쿠웨이트에 주둔하는 이라크 병력은 43만명으로 늘어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 우이씨!!! 밀고 올라가기는커녕 여기 나와바리 지키기에도 부족하겠다...
여기에 슈워츠코프를 더 불안하게 한 것이 작계 90-1002를 가지고 이라크가 쿠웨이트 밀고 들어가기 한달전에 인터널 룩(Internal Look)이라 불리우는 사령부 수준의 워게임을 했는데....져 버렸다는.
문제는 이 게임이 중동의 한 국가가 다른 한국가를 침공한 상태에서 미군이 이 전쟁에 개입하는 시나리오 였던 것인데...놀랍도록 걸프전 사태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는.
이 상태에서 워싱턴은 전쟁 분위기로 완전 돌아서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본지 특종이라믄서 10월 15일날 쳐들어 갈거라면서 떠들었고, 워싱턴 정가에선 두달동안 부지런히 병력 보냈으니까, 이젠 두어달 때려부시고 두어달 놀다가 오면 전쟁 끝나겄지 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꼴통 부시가
- 당장 10월달에 이라크로 쳐들어갈 계획 가지고 와!!
이랗게 말하며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때 슈워츠코프는, 아무리 군바리들도 계속 굴리면 들고 일날지도 모르니까 한 6개월 근무 시키고, 후방으로 돌리고 하는 순환근무계획을 짜서 미군애들 좀 쉬게 하려는 방법을 짜고 순환근무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으니.....우와 완전 동상이몽 하고들 계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슈워츠코프는 당장 이라크로 쳐들어가 쿠웨이트 해방시키는 계획을 들고 오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환장할 노릇 되겄지요..
- 미치겄네...부시 저쉐이 꼴통 아냐?? 두달 전에 이라크 쳐들어갈 병력 모을라면 못잡아도 8개월은 걸린다고 했는디...꼴통노무시키..두달전에 해 준말을 까묵나??
그래도 어쩌랴 까라믄 까야지...여기서 슈워츠코프 좀 짜증나서 만든 [이라크 공격계획]을 워싱턴에 들이밀었다. 뭐 나중에 보믄 여기서 바뀐건 마지막 4단계 하나 뿐인데...
그 계획을 보믄,
1단계 - 때려잡자 후세인 작전.
중공격으로 바그다드와 이라크의 군 지휘시설, 통신 시설, 이라크 공군, 생화학 공장, 핵무기 시설 폭격(여기서 웃기는 것이 생화학 공장하고 핵무기 시설 때려부시라고 이스라엘 애들이 열나게 미국 옆구리를 찌른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합동군 사령관인 칼레드 장군도 졸라 짜증냈었습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스라엘 이 시키들이 남에 나라 때려부시는데 협박질 하다니...)
2단계 - 굶겨 죽이기 작전
역시 공중공격으로 이라크의 군수품 기지, 수송시설 등등을 때려부수잔 작전
3단계 - 나머지 때려죽이기 작전
쿠웨이트에 짱박혀 있는 놈들하고, 이라크 지상군들을 폭격으로 때려잡잔 작전
4단계 - 걍 밀고 들어가 나머지 쓸어버리기 작전
그냥 중앙돌파해서 밀어 붙혀서 이라크군 나머지 쓸어버리잔 작전....이 작전은 우회나 회피기동 같은 거 없이 단순무식하게 선 세 개 찍찍 그려서 밀고 올라가는 작전이었는데, 평소 한니발의 칸네 전투를 가장 좋아한다믄서 망치니 모루니 하는(이거 낭중에 설명해 주께 기둘려주세요~~) 그런거 찾던 슈워츠코프가 걍 돌격 한다는 단순한 작전을 입안한 건 슈워츠코프가 "삐졌다"란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뭐, 앞의 3단계 공중전은 공군 애네들이 입안한 것이지만, 이 마지막 4단계는 슈워츠코프의 생각이었으니까 말이지요...
여기에 대해서 부시 옆에 있던 똘마니들도 슬슬 슈워츠코프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저시키 삐졌구나...”“쫌 달래줘야겠는걸??”그런 생각을 했던지, 이 작전에 대해서“당장 폐기 할 순 없어도 천천히 검토하믄서 문제점을 보완 합시다” 정도로 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 무모한 작전이 슈워츠코프가 삐졌다는 걸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애네들도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미국 사막이랑 달라서 중동지역 사막은 너무 부드러워서 사막을 가로 질러 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보급이나 수송이 아예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중앙 돌격은 전혀 소용이 없단 걸 워싱턴에 앉아 있는 것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슈워츠코프가 삐진 걸 안 워싱턴에선 이 [곰]을 달래기 시작했다.
- 에이 씨, 시골에 짱박아 둬서 삐진겨?? 에이, 그러지 말고...그래 어려운 거 있음 탁 까놓고 말해, 뭐 필요한거 있음 말해, 엉아가 다 구해줄께...응??
슈워츠코프 삐진 게 좀 풀렸는지...
- 에이 , 그래도 애들은 좀 보내주고 싸우라고 등 떠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슈워츠코프는 여기서 슬그머니 자기 요구를 했습니다.
- 7군단 나 주쇼.
순간 정적....오호 통제라...제7군단이 어떤 군단이던가?? 지금 사우디에 달려온 18공수 군단이야 뭔일 터질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오는 미군의 단골메뉴라면...이 7군단...불과 1년전만 해도 이런 [개소리]를 할 수 있을까나??
이 7군단은 미국의 유럽방위에 있어서 그야말로 중핵이라 불리우는 놈들이었습니다.
냉전이 한참인 시절 바르샤바 조약군의 개떼처럼 밀려오는 “빨갱이 땅크”들을 막기 위해 기갑사단 2개에, 기계화 사단 1개를 모아서 만든 미국에 몇 안되는 완편 부대이고, 최정예로 분류되어 최신장비와 빡센 훈련으로 이름 높은 바로 그 부대....이걸 지금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슈와츠코프 심드렁하게 말을 잇습니다...
- 7군단하고...끌고 올수 있는 애들 있는데로 다 붙여 주소...그럼 함 맞짱 떠보께.
10월 31일 부시 아저씨 짱구를 굴리다 말고, 병력증강배치를 승인해 버렸슴다. 그리고 얼마뒤....사우디에서 슈와츠코프는 뻥진 눈으로 사우디로 날아온 부대들을 보게 됩니다.
유럽에서 날아온 완편의 7군단, 1개 해병사단, 미 육군 제 1 보병사단, 3개 항공모함 전단, 그리고 여분의 항공기 400대 등등...미국은 긁어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다닥다닥 긁어모아 슈와츠코프에게 건네줬습니다.
이때 슈와츠코프 칼레드에게 한마디 던진다...
- 이야 ~~~급하긴 급했나 봐...내가 달라는 거 이상으로 주는데??
D-day는 다가오고....
그 동안 유엔 애들이 안보리 열어서 이라크 후세인을 졸라 씹었겠지요...처음에 660결의안으로 이라크 애네들이 쿠웨이트 따묵은 건 개같은 짓이라고 쥐랄 떨더만, 다이렉트로 661결의안으로 경제 제재를 하던 것이 유엔이었는데, 그게 쌓이고 또 쌓여서 결국 90년 11월 29일날 678결의안에서 끝장을 보겠단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90년 11월 22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을 식판에 담아가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이 678결의안의 내용이 무엇이냐면...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1991년 1월 15일로 못박아 놓은 결의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때까지 후세인이 쿠웨이트에 비비고 앉아 있으면 다목적군, 정확히 말해 미국이 지지든 볶든 네 맘대로 조져라라고 세계시민의 이름으로 그 권한을 인정해 준 거였습니다... 맨날 남 줘 팰때만 세계시민 들먹이고 쥐랄들이야...
(이 결의안은 순전히 세계최강국 미국의 막대한 로비력의 승리였습니다. 걸프전 터지고 나서 10주간 베이커 국무장관이 지구를 16만킬로미터...지구 네바퀴를 돌며 각국 수뇌들을 협박하고, 얼르고 달래며 딴 맘 못 품게 쥐랄 떤 결과이기도 합니다...결의안은 미국의 압도적인 로비의 위력으로 12대2로 가결되었다)
하여튼 이 1월 15일은 다목적군과 미군에게 있어선 마지노선이라 할 수 밖에 엄따. 전쟁을 최소한 두달로 예상한다믄,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이라크를 쳐야 할지 날짜 잡기가 졸라 애매하다는 것이었습니다....왜 애매모호 할까??
일단 전쟁기간을 두달이라고 상정한다면, 최소한 두달 정도 전쟁 할 정도로 시간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당장 3월에는 전쟁하기가 힘들어 진다는 것인데여 . 왜?? 이때 이 동네에는 비가 열라 오는 계절이 되는데, 비만 오면 상관없는 데 비 오고 난 다음에 온도가 섭씨 42도 이상으로 치솟아 오른다는 것입니다...지금도 더워 죽겠구만, 만약 이때 이렇게 찜통더위 계속 되믄 이 동네 살던 애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미군이나 딴데서 온 애들은축축 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3월 넘어서 싸우면 어떤가?? 당장 3월 17일이부터 라마단이란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라마단은 한 달 동안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일출부터 일몰까지 단식하는 의식이죠...한마디로 다이어트 기간 되겄습니다.
그러면 4월 17일부터 싸우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또 여기서 6월달이 걸린단 것이다...6월이면 메카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즉 1월달을 놓치면, 91년 상반기 동안 제대로 싸우기가 힘들다는 것이 됩니다.
라마단 기간이 끝나고 이태원 모스크에 모여든 이슬람 신도들.
이슬람의 불모지 한국도 이정도인데 아랍에서 그때 전쟁 벌이면.... 답없다.
더 골때리는 것은 이슬람 세계가 지금 당장은 뭔가 좀 단결된 듯하고, 후세인 개새끼란데 대충 동의한 듯 하는데, 슬슬 분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딴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사우디는 자기 국경선 옆의 예맨 놈들이 넘어와 아시르(asir)에 있는 국경지역을 장악 할까 걱정했고,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은근히 메카를 노리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보태서 다른 아랍지역...뭐 병력을 보낸 나라든 아닌 나라든 후세인이란 노마가 걍 짜증나서 쌈질한 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아랍세계의 지도자란 이미지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이 상황에서 전쟁을 질질 끌다가는 이도저도 안된다는 의식이 다목적군 안에서 확고히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글타, 미군과 다목적군은 일단 1월 15일 지나면 맞짱을 떠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일케 되자 다시 워싱턴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대통령은 꼴통으로 뽑아도 거시기한 제도는 잘 꾸며놔서 그런지, 대통령 혼자 지멋대로 전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부시는 1월 8일날 의회에다가 군사력 사용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그래도 아버지 부시는 좀 굽히는 시늉이라도 했지...하긴 이 당시에도 반전 여론이 만만치 않았으니. 경제제재를 쫌 더 지켜보자는 넘들이 맞짱 뜨자는 넘들보다 많았으니까 부시도 좀 괴로웠을 것이었습니다...결국 아주아주 아슬아슬 하게 1월 12일날 미의회에서 전쟁수행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상원 표차가 52대 47이었으니 부시 가 바짝 타 들어갈만 했지 않았겠는가?? 흐흐흐....
뭐 어쨌든 미군애들도 바짝 긴장하고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나믄 첫 스무날 동안 미군만 한 3만명 죽을 거라 예상하고 국방부 넘들은 부지런히 비닐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무슨 백이냐고?? 사람 죽으면 넣을 백 말이다...모두 16,099개나 준비 하였다합니다...
뭐 다목적군이 걸프전 당시에 인명 피해래봤자 포로로 된 21명 포함해서 333명이었음을 확인하믄...좀 오바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이런 오바가 이런 거 하나로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M1A1 전차의 120미리 활강포탄의 소요량을 계산한 미군넘들은 이라크 놈들과의 치열한 격전을 예상하곤 무려 22만발의 포탄을 실어 날랐는데...걸프전 내내 쓴 120미리 포탄은 겨우 3,600발이었다는....뭐 예상과는 달리 이라크 군이 형편없이 무너져 내린 이유이긴 하지만...좀 허무하긴 하다...
마치며...
아 ...걸프전 원래 4회 연재만 하기루 했는데, 또 필자 고질병 도졌다...쓰다 보믄 엄청 길어지는 이 병...어쨌든 뭐 1,2,3.4회 해서 걸프전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대충 알아봤습니다.
하여튼 다음회 부터는 본격적인 전쟁이야기 임다...하지만, 걸프전 이란게 전쟁 단계에선 글케 재미있는게 엄따는게 본 필자의 생각이었습니다.
뭐 미드웨이 같은 화려한 결전이라든가
치밀한 전략전술의 묘수풀이 같은 게 있음 재미 있겄지만, 다들 아시겠지만 워낙에 일방적인 두들겨 패기였으니... 오죽하믄 월남전 이후로 미국의 구식 폭탄 재고떨이 겸 신형무기 시험장이라고들 말했을까...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재미 있군요. 노안이 왔는데 읽느라 눈이 빠져 버리겠네요.
이게 모바일로 보면 폰트가 더 작아지더라구여... 저도 노안이 와서 요즘 죽겠습니다... 가까이 있는게 안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핸폰으로 읽기 진징 힘드네요 그래도 잘 봤습니다 선생님 하셨으면 제자들이 만점 맞겠어요
워드에 써서 붙여 넣기를 하고 있는데... 컴에서는 괜찬은데 폰으로 보면 작게 보이는 문제가 있더라구요... 폰트를 좀더 키우면 해결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밌습니다... 걸프전하면 생각나는게 역시 CNN이죠...티비영상에서 전쟁하는 모습을 보게 될줄이야.. 그리고 미사일이 목표물을 포착해서 꽝 하고 터지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음편 기대됩니다...ㅎ
네네 다음편에 CNN 이야기가 와 미살 이야기가 나와요 ^^
굿~~ 이런 사연들이 있었군요... 잘봤습니다..^^
다~~~ 돈이 문제였지요
너무 재미있어요. 잘봤습니다.
역시 글빨이 재밌네.^^
자네 혹시 소설 안써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