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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주야간 겸행하는 불립강)스이텐궁(水天宮) 앞 야마다야주점의 노주인. 연구소에서 가까운 카타오카 유리점의 노부인도 관절염이 낫지 않아서 불립강에 가입하여 신심을 하고 있었던 관계로 마찬가지로 불립강을 믿고 있던 야마다야(山田屋)주점의 노주인이 치료를 의뢰하였다. 환자는 79세로 6개월 전에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다른 곳에도 전이 되었고 특히 고령이라 위를 적출할 수가 없어서 어디에서 진찰을 받아도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자택에서 요양을 하도록 권유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랬던 것이 2개월 전부터 맹렬한 경련이 일게 되었으나 의사는 진통주사를 놓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통증은 밤낮으로 계속되어서 가족들도 병구완을 바라며 불립강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자 4명이 8시간씩 밤낮 3교대로 절을 계속 해주고 있었다. 「나무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経)의 소리와 딱딱이의 음이, 잠시라도 멈추기만 하면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괴로워서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염불과 딱딱이의 소리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넓은 2층(계단 아래는 술통이 놓여있고 술을 마시는 곳이 되어있어서 가족들은 2층에 있었다.)은 모두 노주인 혼자서 차지했고 다른 사람들은 크게 합창하는 염불 소리와 딱딱이의 소리에 눌려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밤에는 2층에서는 절대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 뿐만 아니라, 이웃에서도 불평을 해서 곤란합니다.」라는 것이었다. 환자를 만나보니 생각보다는 건강했으나 아파서 눈을 감고 염불을 계속하고 있었다. 부인은 환자의 머리맡에서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앞으로 1개월 이상은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해서, 본인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해서 목숨이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하루만이라도 아프지 않게 되어서 극락왕생을 하고 싶다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당신의 광선치료로 하루라도 좋으니 아프지 않게 해주십시요. 경우에 따라서는 1, 2시간이라도 이 딱딱이를 치는 손을 쉬게 하고 싶습니다.」 내가 광선조사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 가족과 친족인 것 같은 사람이 3, 4명 와서 큰 목소리로 「거금을 들여도 낫지 않았던 것이 그런걸로 낫는 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며 염불에 방해가 되는 것 인양 말을 했다. 나는 누워있는 환자에게 편안한 자세로 옆으로 눞게 한다음 양쪽 발바닥과 양쪽 무릎을 5분 동안 조사했다. 환자는 배가 아프니 발은 아무래도 좋으니까 어서 배를 치료해 달라고 움푹 들어간 눈을 반짝이며 호소를 했다. 그 다음에 1호 집광기를 사용하여 배꼽을 중심으로 복부를 5분간 조사를 하자 「조금 편해졌습니다.」라며 약간 신뢰가 회복된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견갑골 사이를 5분간, 허리를 5분간, 합계 25분간 조사를 하자, 환자는 침상위에 일어나 앉아서「염불을 하고 있는 여러분, 조금 쉬십시요. 기분탓인지 조금 통증이 가벼워졌습니다.」라고 말하여 염불이 중지되었다. 행자 4명은 신기하게 광선기를 바라보며 「특이한 기계라서 정신적으로도 문안이 되는 것이겠지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찾아가서 전날 광선조사를 받은 후의 경과를 물어보니 그때부터 3시간 정도는 아프지 않았으나 그 후에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며 그날도 왕성하게 제목을 하고 있었다. 전날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광선조사를 했더니 환자는「편해졌습니다. 염불을 하고 있는 여러분, 조금 쉬십시요.」라고 말을 하여 염불이 멈췄다. 그리하여 3회의 치료로 밤낮으로 계속되던 고통이 사라졌다. 15회째의 치료를 하러 갔더니 야마다씨는 부인을 데리고 내일 출발하여 미노부산(身延山)에 참배를 하러 간다고 해서 나는 매우 반대를 했으나 말을 듣지 않고 결행했다. 야마다씨는「위의 통증이 사라진것은 일련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야마다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몸으로 산에는 올라갈 수 없으니, 하다못해 미노부산의 산기슭까지는 가서 절을하고 오겠습니다.」 걱정했던 야마다씨는 일주일간의 여행을 하고는 무사히 도쿄로 돌아왔으나 부인의 말에 의하면 「미노부산 기슭에서 고민을 하더니 결국에는 정상까지 올라간 것이 무리였지요. 참배도 하지 않았는데 기절해서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치료를 받아서 기운을 차리고 돌아왔습니다.」라고 했고, 그 후로 1개월 동안 광선조사를 계속했더니 매우 좋아져서, 통증이 전혀 사라지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버에는 다른 산에 참배를 갔다. 15일 동안 여행을 계속하고는 도쿄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극도로 피로했으나 위통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할 무렵에 시로카와역(白川駅) 부근에서 아프기 시작하여 차안에서 너무 아파서 우에노(上野)에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려서 집에 돌아와서 광선을 조사했으나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광선조사를 했지만 결국 극도로 쇠약해져서 그날 밤 사망했다. 부인은 죽은 남편의 머리맡에서「미노부에 갔을 때라도 하다 못에 다른 산에 갔을 때라도 광선을 2, 3개월 계속해서 체력이 생기고 나서 참배를 다녔어야 했어요. 그 정도로 오랫동안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몸으로 아프지 않게 되었다고 보름을 미노부에 오르고, 그 후에 1개월 만에 오오슈(奥州)에 가고 정말이지 무모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말을 하면 듣지 않는 성격이라서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만족하고 저세상으로 갔겠지요.」부인은 그 후 몇 번을 찾아가도 똑같은 말만 했다.(구로다저 광선치료이야기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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