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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리핀 바기오의 모든 것 원문보기 글쓴이: 유노바교
[편집부주] 5월 3일 한국시간 오전 11시. 8체급을 석권한 전설 매니 파퀴아오와 47전 47승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쥬니어가 WBC, WBO, WBA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을 갖는다. 챔피언 대 도전자, 1인자와 2인자의 대결이 아닌 챔피언 대 챔피언, 1인자와 1인자의 대결, 즉 최강과 최강이 붙는 세기의 대결이라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한판 승부를 기대하고 있는 독자제위덜을 위해 준비한 각 분야별 세기의 대결! 부디 이 글이 세기의 대결을 기다리는 독자제위덜께 흥분보조제로써의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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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슈테피 그라프 Vs. 모니카 셀레스 - 너클볼러
1987년 8월 17일부터 1991년 3월 10일까지 무려 186주간의 세계 랭킹 1위. 1998년 4개의 메이저대회 뿌라스 서울 올림픽 금메달까지 휩쓸어 '골든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그녀는 바로 '슈테피 그라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독주에 제동을 건 여인은 바로 모니카 셀레스였다. 1989년 혜성처럼 등장한 모니카 셀레스는 그해 슈테피 그라프와 세 번 붙어 세 번 작살났지만 이듬해인 1990년엔 모니카 셀레스가 슈테피 그라프를 두 번 붙어 두 번 모두 박살냈으며, 1991년엔 반대로 슈테피 그라프가 모니카 셀레스에게 2전 전승, 1992년엔 서로 1승씩 주고 받았다. 이렇게 슈테피 그라프와 모니카 셀레스는 테니스 역사상 최강의 숨막히는 라이벌이 되었다.
1993년은 관록의 승리(슈테피 그라프)냐 세대교체(모니카 셀레스)냐를 결정지을 중요한 해였다. 첫 번째 경기였던 호주 오픈에서 모니카 셀레스가 슈테피 그라프를 골로 보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드디어 테니스 여제 인수인계가 확정적으로 점쳐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슈테피 그라프의 팬(특히 자국 팬)들은 이후 경기에서 다시 한 번 끝나지 않는 라이벌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3개월 뒤인 1993년 4월 독일 오픈. 코트에 입장한 슈테피 그라프와 모니카 셀레스에게 전세계 스포츠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모니카 셀레스가 승리하면 그야말로 '세대교체 인증', 슈테피 그라프가 승리하면 '노장의 역습'이 확인되는 슴가가 벌렁거리는 한 판.
하지만. 경기는 중단되었다. 코트 체인지를 위해 잠시 쉬고 있던 모니카 셀레스의 등을 독일인 군터 파쉬가 흉기로 찔렀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모니카 셀레스는 범인이 보스니아 테러범일 거라 생각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와 보스니아는 오랜 내전 중이었기 때문이다.(모니카 셀레스는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비행기를 수시로 갈아탔다고 한다) 하지만 군터 파쉬는 슈테피 그라프의 팬임을 시인했다.
이날의 사건으로 인해 코트를 떠난 모니카 셀레스가 다시 복귀하는데는 정확히 27개월이 걸렸고, 강력한 라이벌이 사라진 슈테피 그라프는 숨막히는 라이벌전 없이 전설이 되었다.
피습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여자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세기의 라이벌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군터 파쉬라는 쉬파 쉐이 땜시 애먼 우리가 피해를 본 것이다.
[축구] 지단 Vs. 부폰 - cocoa
2006년 7월 10일. 독일 월드컵 결승전. 세계 최고의 키커와 최고의 골키퍼가 페널티킥에서 맞붙었다. 키커는 프랑스의 지단. 골키퍼는 이탈리아의 부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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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당시 지단은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교한 킥과 볼터치는 말할 것도 없고, 시야가 어마무시하게 넓어, 천진반 눈이 3개라면 지단은 5개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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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폰은 월드컵 11경기 동안 1실점만 허용한 최고의 키퍼였다. 이탈리아 수비진이 탄탄한 것도 한몫 했지만 매 경기 부폰의 선방쇼가 펼쳐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기록이었다. 그때 골키퍼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런 유행어가 떠돌았다. ‘부폰처럼 날아서 부폰처럼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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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널티킥의 뽀인트는 두 선수가 서로 상대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폰은 지단이 대부분의 페널티킥을 왼쪽 구석으로 낮게 깔아 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실제로 지단은 바로 전 경기인 포르투갈전 페널티킥에서도 왼쪽 구석으로 찼었다), 이 점을 노린 부폰은 과감하게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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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단은 알고 있었다. 부폰이 자신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는 것을. 지단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찼다. 그냥 방향만 바꿔 찬 것도 아니고, 그 짧은 순간에 왼쪽으로 차는 훼이크를 넣고 오른쪽으로 찼다. 게다가 마치 부폰을 놀리려는 듯이 우아하게 찍어서 찼다(당시 이를 두고 지단이 일부러 크로스바를 맞춘 게 아니냐는 썰이 떠돌기도 했다).
우아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지단의 패널티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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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프랑스는 동점골을 허용하였고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이때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탄생한다. 경기가 풀리지 않아 짜증이 난 지단이 자신에게 옹알옹알하던 마테라치에게 회심의 박치기를 날린 것이다. 이른바 ‘지단 박치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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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단은 퇴장당하고 프랑스는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이탈리아에게 패배한다. 둘의 대결에서는 지단이 이겼지만, 팀 대결에서는 부폰이 이기게 된 셈이다.
난 야만스러운 투닥투닥 주먹싸움이나 애들마냥 공 갖고 뭘 하는 경기엔 그닥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승/패를 두고 싸우는 경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바둑에 대해선 뭐 아느냐. 그것도 아니다. 미생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그냥 어릴 땐 아버지께 조금 배워서 아다리, 단수 등의 표현만 기억날 뿐이고... 고등학생 시절 일본어 선생님이 시간이 남으면 애들한테 바둑 삼국지와 한국의 유명 바둑 기사에 대해 마치 무협지를 읽어주듯 재밌게 썰을 풀어주셨던 기억 때문에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장기나 체스와 다르게 마치 땅따먹기 하는 방식도 간지 난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이 세기의 대결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둑 경기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세기의 대결이 있었을까? 하는.
‘옥X땐X’라고 하는 신선놀음의 대가에게 전화를 걸어 '바둑 세기의 대결'에 뭐가 좋겠는지 물어보니. 2초의 망설임 끝에 "이세돌 vs 구리 10번기 검색해봐" 한 마디만 하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 밑으로는 바둑에 대해선 뭣도 몰라 검색한 내용을 정리(ctrl+c, ctrl+v) 해 보았습니다.
3월 2일생, 2월 3일생...
2014년 1월 26일, 세기의 대결 <이세돌 vs 구리 10번기> 1국이 시작됐다.
일단, 바둑의 ‘10번기’라는 건 프로바둑 세계대회 체계가 잡히기 전, 바둑 고수들의 캐삭빵(게임에서 졸라 열심히 키워놓은 자기 캐릭터 삭제를 걸고 맞장 뜨는 경기) 경기였다. 10번을 계속 한 상대와 싸워야 하는 10번기는 그만큼 육체적 정신적 데미지가 큰 경기인지라 1955년 이후 공식적으론 열리지 않은 뭔가 졸라 데인저러스해 보이는 데스매치다. 원래는 선수의 왼손 명예를 걸고 하는 거라 지는 쪽의 급수를 한 급수 깎는 거였는데 이세돌이나 구리나 한/중 원톱의 선수가 9단->8단으로 내려가는 건 말이 안되니까 이기는 쪽엔 상금 몰빵을(한화로 약 9억) 지는 쪽에겐 교통비 명목으로 3천 5백만 정도만 주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동갑내기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vs 구리의 캐삭빵 경기는 2012년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즈에서 맞붙은 게 계기가 됐다. 둘은 예선전에서 처음 대국을 갖는데, 이세돌이 지고 패자전으로 내려갔다가 부활해 결승 경기에서 다시 만나 접전 끝에, 구리의 통한의 실수 끝에, 이세돌이 우승을 한다. 이에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겠다는 중국의 한 가구회사가 “비록 이세돌이 우승하였으나 최고를 가리기 위해 10판은 붙어봐야 실력의 우위를 따질 수 있다”고 하여 전설 속 어둠의 다크한 10번기를 제안한다.
둘은 수락했고 이 10번기 캐삭빵을 수락했다는 건 그만큼 둘 사이에 자존심 경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론은 총 전적 6 : 2로 이세돌의 승리.
이 경기에 대해 중국 네티즌은
2014年9月29日 17:18有机天使[搜狐北京市网友]
구리도 슬럼프니 방법 없네. 이세돌이 신나게 복수했어.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야. 하지만 주위사람들이 모두 마귀들이지. 그들의 성격을 오염시키는…
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이 들려주던 바둑 삼국지 시절엔 한국이 짱짱맨이었지만 최근엔 세계대회 대부분을 중국이 싹쓸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바둑은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과 같은 네임드 기사들의 활약에 드러나 보이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국가에서 밀어주고 공동으로 바둑을 연구하는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IT] 아이폰6 Vs. 갤럭시S6 - trexx
월스트리트 한국어 판에서 삼성 1분기 매출 부진에 대해 다뤘다. 1분기 매출은 갤럭시 S6가 반영 되지 않아 2분기 매출 추이로 갤럭시 S6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재용의 갤럭시S6이 신종균의 갤럭시S6이 됩니다.
Galaxy S6는 이재용 부회장님의 심혈을 기울인 상품으로 발표 당시 연일 매체의 집중을 받았다. 디자인, 스펙 등 전반적인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디자인은 많은 언론에서도 '아름답다'고 표현했을 정도.
갤럭시S6이 아름답다는 건 플래그십폰으로서의 디자인이 훌륭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애플 팬들은 아이폰4에서 이미 유리판을 적용했기에 배낀거다라고 하고 삼성 팬들은 엣지 디자인은 기술적으로 삼성이 애플보다 월등하다 것을 보여준 것이라 말한다.
돈버는 자들(기업)의 싸움은 우리 주머니 사정에 도움 안되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스맛폰계의 양대산맥 애플과 삼성이 선보인 아이폰6(6+)와 갤럭시S6(S6 엣지)의 대결은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양산해 냈다. 스펙, 디자인등 많은 부분에서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명확히 판명이 났다. 바로 '정렬이다. (모든 사진은 본글이 개재된 iMore에서 참조했다 http://www.imore.com/difference-apple-samsung-industrial-design)
갤럭시S6의 윗부분과 사이드 모두 정렬(각 포트들)이 틀어져있다.
정렬이 틀어져 있는 갤럭시S6의 디자인은 아이폰6와 비교해보면 더욱 또렷해 진다.
두 제품 모두 더 나아진 스펙, 전작과는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많은 이들을 관심을 받았다. 애플은 과감히 화면을 키웠으며(아이폰6+), 삼성은 양측면까지 커버하는 디스플레이(갤럭시S6 엣지)을 선보였다. 여전히 시장에서는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팬들 사이에서는 연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대결. '정렬' 부분에서는 애플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이건 제조사가 '디테일'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애플은 늘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종종 '훌륭한 목수는 (보이지 않는) 장롱 뒤쪽에도 좋은 나무를 쓴다'고 강조했을 정도니 애플의 DNA라 말할 수도 있겠다.
어쨋든 이들의 대결을 관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애플에게 경쟁자 삼성이 있다는 게, 삼성에게 경쟁자 애플이 있다는 게 좋은 것임은 분명하다 할 수 있겠다.
[냉면] 평양냉면 VS 함흥냉면 - 박근홍
최근 몇 년간 커피나 와인마냥 평양냉면의 맛을 평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현대인의 기본 소양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요즘 ‘평양냉면하고 함흥냉면 주세요!’라고 했다가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지 의심받게 될 것이다. ‘평양냉면=물냉면’, ‘함흥냉면=비빔냉면’의 등식은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함흥냉면의 원래 이름은 ‘농마국수’. 그래서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함흥냉면은 아예 냉면으로 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평양냉면은 쇠고기 등을 오랜 시간 우려낸 육수에 비싼 메밀로 뽑은 면을 말아내는 일품요리인 반면, 함흥냉면은 인스턴트 육수와 구멍가게에서 파는 고구마 전분 면을 섞은 간식 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마니아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육수인지 맹물인지 알 수 없는 국물에서 내공의 깊이를 감지하고, 툭툭 끊어지는 찰기 없는 면발에서 메밀 함량을 산출해야 한다. 그날 사용한 재료의 수준에 따라 맛집의 순위도 실시간으로 바뀐다. 기껏 냉면 한 그릇에 만 원 돈 써가면서 이런 저런 걸 따지는 게 한 편으로는 우스울 지경이다.
그런 면에서 출출할 때 부담 없이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함흥냉면의 존재는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고추장과 식초, 그리고 참기름과 설탕이 버무려진 매콤·새콤·고소·달콤한 맛은 싸구려든 뭐든 간에 직접적으로 미뢰를 자극한다. 더군다나 맛집 간의 편차도 없다. 딱 기대한 만큼의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북녘 땅에서 원조를 맛 본 사람들은 평양냉면이든 함흥냉면이든 원래의 그 맛과는 전혀 다르다고들 한다. 결국 진짜니 가짜니를 따지느니보다 그 맛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냉면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간의 라이벌전을 우리의 눈앞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 변희재 Vs. 변희재 - 너클볼러
어제(29일) 있었던 관악을 재보선의 핵심뽀인트는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당선도, 국민모임 후보로 도전한 정동영의 낙선도 아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578표(득표율0.74%) 얻어낸 변희재의 거침없는 행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거침없는 행보'라 함은 '애국의 가시밭길을 홀로 묵묵히 한 스텝, 한 스텝 밟아나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여 변희재의 이번 관악을 재보선 출마는 상대 후보와의 치열한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의 애국심을 스스로 시험대에 올린 자발적이고도 순수한 자기성찰적 투쟁이라 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를 함께 보자.
변희재에게 애국은 첫째도 빨갱이 없는 나라요, 둘째도 빨갱이 없는 나라다. 그가 외친 '대박통일코리아' 역시 빨갱이 없는 나라라 할 수 있겠다. 승려복을 입은 지원유세자가 입에 걸레를 물고 유권자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리는데도 변희재는 그를 보듬기라도 하듯 소탈하게 웃어 보일 뿐이다. 반대편에서 야당의 대표가 등장하여 폭풍유세를 하고 있는데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격전지 한 복판에 선 후보자의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당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가슴에 애국을 품는 것이 부끄럽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변희재는 이번 관악을 재보선에서 무소속 후보자의 당선 도전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한판 싸움을 벌인 것이다. 말로만 애국이 아닌 실천적 애국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천을, 투쟁을 한바탕 펼친 것이다.
변희재는 오늘 후원자와 유권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좌절과 실망 대신 지속적인 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변희재가 보여줄 애국의 길에 필자 역시 박수와 웃음을 보낸다. 때론 더럽고, 때론 야비하고, 때론 치사한 선거판에서 그를 통해 웃음을 봤다.
단언컨대 변희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그리고 유권자 578명이 그의 승전보에 화답해주었다. 헌데 갑자기 필자의 머릿속에 그 옛날 춘심애비가 던졌던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그래서 나는 졌다"
머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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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 너클볼러, 박근홍, trexx, cocoa
편집: 딴지일보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