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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은 오후 2시가 넘어 향일암으로 향하게 되어 남은 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날씨가 맑아 다행이었고, 흥국사에서 여수시내를 통과하여 돌산도까지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 순조로웠습니다. 돌산대교를 지날 때는 10년 전 겨울에 당항포에서 시작하여 이순신 장군의 행적지를 돌면서 이곳에 들러 바다에 띄워져 있는 거북선에 탔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돌산대교로부터 향일암까지도 20여 km의 거리여서 30분은 족히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산섬을 가로지르면서 곳곳에 갓김치직판장 간판과 들판에 파릇파릇 돋고 있는 봄기운을 바라보는 마음은 들뜰 대로 들떠서 봄바람을 따라 훨훨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멀리서 넘실거리는 쪽빛 바다와 굴을 양식하는 양식장의 어촌 풍경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만큼이나 낯설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리 연락을 해서인지 향일암 주차장에서 향일암에 오르는 곳까지 우리가 탄 버스를 들여보내 줘서 조금은 쉽게 향일암으로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돌아갈 때는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약 500m 정도 걸어 나간 위치에 있는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을 걸어 올라가는데, 뒤돌아보니 확 트인 남쪽 바다가 시원스레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 양쪽에는 갓김치는 물론이고 말린 새우며, 미역이며, 굴이며, 홍합이며 심지어 봄나물과 우리밀빵까지 늘어서서 관람객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은 단순히 그냥 올라가는 산길이 아니라 돌계단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조금 올라가니까 일주문이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몇 개의 계단에 이어 돌로 포장한 길이 이어지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올라갈 때, 향일암은 1시간 정도면 돌아보고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어림잡아 올라가는데 20여분, 둘러보는데 30여분, 내려오는데 10여분으로 작정을 했습니다. 흥국사에서 사시 예불을 드릴 때 108배 이상을 해서 그런지 다리가 뻑지근했지만 향일암까지 오르는 데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보니 길양옆으로 동백나무들이 많이 서 있었고, 한참 고운 꽃잎을 피우고 있어 아름다웠습니다. 향일암에는 7개의 돌문(일명 해탈문)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웅전으로 통하는 첫 번 돌문은 겨우 사람 몸 하나 비켜갈 정도의 너비였습니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는 왔지만, 지난 해(2009년) 12월 20일 원인 모를 화재로 대웅전, 종무실, 종각 등 건물 3동이 전소되었는데, 와서 보니 대웅전(지금은 원통보전)은 가건물로 세워져 있었고, 종각은 자취도 없고 범종만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어 몇 달 전의 화재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대웅전에 들러 예불을 드리고, 관음전으로 향했는데, 대웅전의 뒷모습과 남쪽 바다 그리고 여기저기 바다를 향하고 있는 수많은 돌거북들의 형상이 아직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있는 원통보전처럼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향일암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와서 돌계단에서 바라본 멀리 남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일주문의 뒷모습>
<양식장이 보이는 포구>
<한 사람이 겨우 지나칠 수 있는 첫 번째 돌문>
<두 번째 돌문을 들어와서 본 모습>
<원통보전 앞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
<역광을 받고 있는 원통보전>
<원통보전에 모신 부처님>
<종각이 전소되어 범종만 있는 모습>
<가건물로 된 원통보전의 뒷모습>
향일암(向日庵, http://www.hyangiram.org/)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산7번지 금오산 중턱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 말사로,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향일암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신라 선덕여왕 8년(659년, 644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는 내용이 "여수군지"와 "여산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려 광종 9년(950년)에 윤필(允弼)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인 숙종 39년(1713년)에는 당시 돌산 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한 지 3년 뒤인 1715년에 인묵(仁默)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 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향일암은 왼쪽에는 중생이 서원에 감응했다는 감응도, 앞바다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가 있습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인데, 이중 2009년 12월 20일에 화재로 대웅전, 종무실, 종각 등 건물 3동이 전소되었고, 지금의 원통보전은 가건물 형태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소실되기 전의 향일암 모습이 그대로 인 주차장에 있는 안내도인데,
맨 위쪽이 관음전, 아래쪽은 순서대로 관음전(용왕전), 종각, 대웅전, 칠성각>
이전에 있던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昌枋)이 얹혀져 있으며 헛첨차를 결구하였습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주심포계이며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었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1987년에 조성한 청동석가모니불과 관음·지장보살이 있었습니다. 또한 1988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와 금니(金泥)로 채색한 신중탱화, 1983년에 만든 소형 범종 등도 봉안되어 있었다는데, 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대웅전의 옛모습은 복원 중이었고, 가건물로 서 있는 원통보전 뒤쪽으로 50m 떨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는 관음전이 있었습니다. 관음전으로 가는 길에도 돌문 두 개와 돌계단이 있었습니다. 관음전은 원효대사가 수도 도중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곳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계이며, 바람막이판이 달린 맞배지붕이었습니다. 또한 1991년에 조성한 관음보살상과 관음탱화가 있고, 관음전 옆에는 석조관음보살입상과 동자상이 있으며, 그 앞은 바로 바다로 낭떠러지였고, 널따란 바위 위에는 원효스님 좌선대라는 표지석이 서 놓여져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에 듣던대로 동백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붉은 동백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있었고, 여기도 돌거북들이 남쪽바다를 향해 줄을 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대웅전 뒤에 있는 일명 흔들바위는 경전을 펼쳐 놓은 듯한 형상인데, 이 바위를 한 번 흔들면 경전을 사경한 공덕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바위는 한 사람이 흔드나 열 사람이 흔드나 똑같이 흔들린다고 하리며, 현재는 험난한 산새 때문에 위험하여 출입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이 바위는 달리 경전바위 또는 불경바위라고 하는데, 이것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끝내고 향일암을 떠날 때, 그 많은 불경책을 가져갈 수 없어 공중에 날려보낸 것이 멀리가지 못하고 이곳에 경전바위로 변했다고 전합니다.
<관음전으로 가는 첫 번째 돌문>
<관음전으로 향하는 두 번째 돌문>
<돌문을 들어서서 보이는 관음전 전경과 돌거북이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석조관음보살 입상과 동자상>
<원효스님 좌선대 표지석>
<원효대사 좌선대 아래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
<관음전의 앞에 피어 있는 동백꽃>
<관음전 앞에서 남해 바다를 향하고 있는 돌거북이들>
또한 향일암은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로도 유명합니다. 이 사찰은 기암절벽 위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주위의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되어 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평일은 물론,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 사이에는 일출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곳 “해맞이 명소”에 몰려든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향일암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네 종류가 있는데, 책육암(策六庵), 금오암(金鰲庵), 영구암(靈龜庵), 원통암(圓通庵)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전국의 불교 사찰을 통틀어 매우 이채로운 사실로, 신앙 및 입지 양면에서 향일암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만큼 독보적임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향일암의 어느 위치에서나 내려다보이는 남해 바다의 푸른 물결은 세상살이에 찌들고 때묻은 마음속의 근심과 걱정, 번뇌와 망념을 말끔하게 씻어주고도 남을 정도로 맑고 고왔습니다. 그냥 이대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포근한 날씨 때문인지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은 올라올 때부터 줄을 잇고 있었고, 나이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까지 함께 와서 정월 대보름날의 향일암을 추억에 담고 있었습니다.
향일암에 얽힌 4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에 금거북이에 관한 전설이 있습니다. 향일암이 있는 곳의 지형이 풍수상 바닷속으로 막 잠수해 들어가는 금거북이의 형상이라 합니다. 대웅전 앞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머리, 향일암이 선 곳이 거북의 몸체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이름은 금오산(金鰲山), 암자 이름은 영구암(靈龜庵)이라 했다고 전합니다. 금오산 정상에서 보면 거북의 머리와 목 그리고 몸체의 형상이 완연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거대한 거북이가 넓은 대양으로 헤엄쳐 가는 자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일암 이곳저곳에 돌거북이들이 남쪽 바다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유명한 지관들이 거북 혈에는 쇠붙이를 얹거나 등에 구멍을 뚫어서는 큰 재앙을 당하게 된다고 일러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향일암 난간에 안전을 위해 철주를 박고 철책을 친 후에, 향일암 아래 마을 주민들이 지하수 개발을 위해 땅을 뚫는 작업을 하던 굴착기가 부러지는 일이 일어났고, 강철로 만들어진 굴착기가 부러진 것을 보고 주민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작업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때부터 향일암 주지 스님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지 스님은 16년 전에 향일암에 부임해 와서 향일암의 부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얼마 후 주지 스님은 한쪽 다리가 마비가 되고 건강이 점차 악화되자,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은 풍수의 금기 사항을 건드린 탓이라 여겨서 그 철책을 제거하고 샘을 매몰하였더니 주지 스님의 건강이 호전되었다고 전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향일암과 경상남도 남해군의 보리암, 세존도를 선으로 연결해 이룬 삼각형의 한가운데 지점이 용궁이라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향일암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관음전이 두 곳인데, 앞에서 둘러본 대웅전 뒷편의 관음전과 대웅전의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있는 관음전(용궁전)이 그것입니다. 이 관음전(용궁전) 아래에는 공양간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고, 그쪽으로 통하는데도 돌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웅전에서 관음전(용궁전)으로 가는 길목과 관음전(용궁전) 앞쪽에도 붉은 입술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유혹하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푸른 남해 바다를 배경으로 더욱 진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해경의 순찰선(?)이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대웅전 앞으로 돌아오니 이미 많은 일행들이 버스가 기다리는 주자창으로 내려갔고, 그래서 단체 사진도 단촐하게 찍고 서둘러 뒤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먼 향일암까지 왔고, 지난 해 말 화재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을 그냥 보고 갈 수가 없어 기와불사를 하고 하루빨리 원래의 향일암의 모습을 되찾기를 기원했습니다. 이제 주위에는 함께 온 일행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칠성각이 눈에 들어와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빠른 걸음으로 들러 예불을 드리고는 뜀박질을 하여 비탈길을 내려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따로 있었습니다. 급하게 내려오면서도 주위를 살펴보니 완연한 봄날씨에 시골다운 풍경과 내음이 물씬 풍겼고, 거기에다 갈매기들이 날고 배들이 오가는 해변의 경관까지 겹쳐지는 여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마님은 시장기가 도는지 우리밀빵에 눈이 갔고, 결국 내려오는 길에 반쯤 말린 홍합과 굴에다 말린 새우를 조금 사서 잰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다보이는 향일암은 금오산의 중턱 비탈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형상이었습니다. 일정이 빠듯하기는 했지만 향일암 역시 순례지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이내 피곤이 몰려왔습니다. 이제 남은 다솔사로 향해 버스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관음전(용왕전)쪽으로 가는 길에 핀 동백꽃>
<관음전(용궁전) 전경>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공양하는 곳으로 이어지는 외부인 출입금지인 곳의 돌문>
<남해를 배경으로 피어 있는 동백꽃의 아름다운 자태>
<때마침 지나가는 해경 순찰선(?)>
<금오산 정상과 경전바위를 배경으로 한 원통보전>
<칠성각 아래쪽에 있는 돌문>
<향일암을 내려와서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본 평화로운 양식장과 어선들>
<멀리 주차장에서 바라본 금오산 중턱에 자리하고 남해를 향하고 있는 향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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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에 올라
언제나 빛을 품고 산다는 향일암에 올라
천년을 넘어 전해오는 전설을 떠올리면서
눈이 시게 푸른 남해를 내려다 보며
어디 쯤이 용궁일까
어림하면서 바다속으로 자맥질을 시도해봅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금거북이 등을 빌어 타고
한참을 찾아 헤매었지만 이내 날이 밝아오기에
문득 일출이 장관이라는 말이 생각 나서
원효스님의 자선대에 뛰어올라
지그시 눈을 감고 선정(禪定)에 들어봅니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텅 빈 허공에 가득 찬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 서서
한바탕 신명나게 춤사위를 벌이고 있는데
여기서 뭘 하느냐며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거듭니다.
춤판이 벌어지면 함께 어울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혀만 차서야
살맛 나는 곳은 어디이며 아름다운 세상은 누가 만들겠냐며
붉은 입술로 매달리는 동백을 뿌리치고
다시 가던 길을 떠나야겠다고 채비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