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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서울과학고 입학 이야기 3탄
서울과학고 이야기
2009/04/21 01:26 http://blog.naver.com/kimjklmn1/100065676925 |
- "엄마, 저 자살하고 싶어요.."
너무나도 꿈결같은 서울과학고 생활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고 고된
하루하루였습니다. 특히 저희 때부터 아직까지 혜택을 받고 있던 비교내신제가
폐지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리면서 시험때가 되면 아이들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쟁자로 의식하면서, 서울시내의 전교 1, 2등짜리 학생 180명을
모아놓고 1등급부터 9등급까지 기계적으로 구분지어놓는 불합리한 내신제도
하에서 점점 저희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모두들 친구에서 경쟁자로
변해가는 답답한 분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과학고에 입학한 것을 후회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도 많았고 그 후 결국 비교내신은 폐지되고 사상 초유의
자퇴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그때 자퇴한 친구들은 대부분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여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정치 논리에 의해 학생들의 미래가 난도질당하고 결국은 학교를
그만둘수밖에 없는 현실.. 작금의 올림피아드 폐지 논쟁을 보면서 그때의 재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갑자기 키가 크다가 멈춘 것은 그러려니 했었지만, 새벽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밤늦게 귀가하는 힘든 하루하루속에 (저희때는 1학년은
기숙사에 입사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의자에 앉아있기 힘들어지고 다리가 저리고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의 병은 섬유근육통증후군이라는 정체불명의 질환으로
근육이 점점 굳어지면서 저리고 아픈,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그러한 병이었습니다. (아직도 원인은 모릅니다.. 다만 고등학교 입학 후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점점 건강이 악화되면서 저도 통증을 느꼈었지만 갑자기 진행되는 병이 아니라
서서히 근육이 굳는 그런 질환이다 보니 저는 조금만 더 참자, 대학갈때까지만
참자 하면서 혼자서 계속 버텼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물론 까맣게 모르고 계셨죠..
1학년때 전교 2등도 해보고 탄탄하게 다져왔던 내신 덕에 카이스트 입학은
따논 당상이라고 담임선생님께 말씀은 들었지만, 2학년 초부터 저의 성적은
건강과 함께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났을
즈음에 저는 폭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정말 10분
이상 의자에 앉아있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버려서 그때서야 병원을
전전하면서 온갖 검사를 해보았지만 이상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저의 의학과 의사 선생님에 대한 불신은 이때부터 시작된 듯 합니다.
결국 어쩔수없이 한의원을 돌아다니면서 침을 맞아야 했는데 이러한 일들이
대학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남들이 연애하고 놀러다닐때 저는 병원을 계속
전전하면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틈만 나면 전화기를 집어들고 자살하고 싶다느니 왜태어나게 했냐느니
계속 이런 소리만 어머니께 해댔으니 제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셨을까요..
중학교때까지는 시험만 보면 전교 1등에 눈에넣어도 안아플 것 같던 귀여운
아들이었던 저는 이때부터 악마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사춘기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모님 말씀 잘듣는 착한 아들이었지요) 틈만 나면 집에
전화해서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주위 모든 것을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에서 한방을 쓰는 친구들에게도 짜증을 부렸고 급기야 하루는 기숙사에서
일어났더니 몸 전체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어서 결국 기숙사도 퇴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학교 수업도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계속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있던
와중에 저는 카이스트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신은 1학년 때 워낙
잘해놔서 문제없었지만 면접관 교수님께서 건강이 안좋아보인다며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셔서 뜨끔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전혀
이상없다면서 거짓말을 했었지요.. 그후 저는 카이스트에 입학해서도 어머님께
기숙사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느니 자살하고 싶다느니 협박 전화를 해대며
대전 지역에서 용하다는 한의원을 모두 순례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많이 힘들었고 건강을 되찾고 제대로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최근에 들어서지만 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이때는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과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께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유는 아이들의
건강의 중요성에 관해서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2학년때, 1998년 초(IMF위기가 있었던 때지요)였는데
용하다는 곳을 다 돌아다니면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겨우 건강을
되찾은 것이 2007년말에나 되어서였습니다.. (그 전에는 회사에 들어가거나
이렇게 학원강사를 하는 것은 꿈도 못꾸었었죠) 나름 부모님 가슴을 찢어지게
한 못된 아들이었고 가족들을 모두 불운에 빠뜨린 주범이기도 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아픈 걸까, 왜 나만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수천번, 수만번도
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 까페에 들어오시는 학생분들과 학부모님들께 감히 말씀드리지만 KMO든
과학고든 건강이 먼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과학고 떨어져도 건강만 있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든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고 좋은 학교를
나온다 한들 저처럼 아파버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아프면서 얻은 것도 있었고 제가 좀더 성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몸이 나아진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지 정말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 Game Over 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온갖 악행과 폭언을 다 받아주시며 매일매일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고난의 긴 터널을 함께 가 주신 저의 어머님, 사랑하는 저의 어머님께
못난 아들의 죄스러움과 감사함, 사랑을 담아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글을 올린 후에 제일 먼저 어머님께 프린트해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
사랑합니다, 어머니...
- 준교쌤 드림
p. s. 언제나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준교야, 네 병은 꼭 나을 거야, 희망을 갖자..
나중에 이때를 돌아보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날이 꼭 올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