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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산책 (9) 지구의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
[진화론 산책]은 촬스 다윈의 ‘종의 기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지상 최대의 쇼‘,와 ’만들어진 신‘의 독후감으로 구성되어있다.
도킨스의 신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이기적 유전자와 혈연선택 이론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지구의 정복자’는 집단선택의 결과라는 반대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 연구의 권위자이다. 과학 저술 ‘개미’와 ‘인간 본성에 관하여’로 퓰리처상을 두 번 받았다. 제자 최재천 교수가 번역한 그의 책 ‘통섭’이 국내에서 증명했듯이, 생물학뿐 아니라 세계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친 진화론자로 꼽힌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으로 기억되는 과학 저술가다. “인간은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배달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싸이의 말춤과 같은 문화(또는 지식)가 DNA처럼 시공간을 넘어 전파되며 인간 행동을 조종한다는 ‘밈(meme)’ 이론도 그로부터 나왔다.
윌슨과 도킨스는 경쟁 관계다. 월슨은 도킨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킨스는 과학자가 아니라 저술가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세게’ 발언해 평판을 얻었을 뿐이다.”
‘지구의 정복자’에 대한 독후감은 본서와 조선일보의 서평, 최재천 교수의 해설 등을 정리한 내용이 될 것이다.
[독후감]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
1. 서론
(1) 경희대학교 조인원 총장은 본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서평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토속의 삶에서 인간 존재의 명멸을 고뇌하던 예술가 폴 고갱의 화두다. 이 오래된 묵직한 물음을 오늘 이 시점에 다시 끄집어낸 이는 예술가도, 인문학도도 아닌 자연과학의 거장 월슨 교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놀랍지 않다. 한평생 ‘통섭(*)’의 길을 걸으며 인간 조건을 끊임없이 천착해 온 그는 바로 이 물음이 인간 기원을 탐색하는 사회생물학의 중핵이라고 말해 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또 다른 지적 혁명의 단초를 제공한다. 인간의 진화가 ‘혈연의 생존을 위한 이기적 본능의 결과’라는 자신이 정초한 학계 정설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집단 선택’이 인간이 지구를 정복한 원동력이라는 관점을 내놓았다. 비주류 정치학의 문맥에서 인접 학문의 변화를 살펴온 내겐 반가운 소식이다. ‘이기적 권력’에 주목하는 현대 정치학은 더 큰 사유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정치와 사회의 보존은 나와 타자, 공동체의 이타적 행위의 연결망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때 더 온전한 설명이 가능하다. 자연과 문명의 역사를 통섭하며 인간 존재, 혹은 희망의 또 다른 지평을 연 ‘지구의 정복자‘에 경의를 표한다.”
* 통섭(統攝: consilience) : 큰 줄기(통)를 잡다(섭),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 The New Synthesis)』(1975)을 저술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이 사용한 ‘컨슬리언스(consilience)’를 그의 제자인 이화여대 교수 최재천이 번역한 말이다.
(2)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은 다음과 같은 서평을 추가하고 있다.
“ ‘지구의 정복자’는 불과 수십만 년 전에 출현하여 지난 6만 년 동안에 지구 전역으로 퍼져 가며 농경을 개발하고,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며 언어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며 지구를 정복해 온 우리 인류의 대서사를 기록하고 분석한 대작이다. 사고의 깊이와 범주는 통섭을 주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저작답게 우리가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학문적 경계를 넘나든다. 내가 관찰한 윌슨은 순간적인 분석력이 예리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조용히 홀로 앉아 주어진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고 다양한 학문의 관점을 통틀어 종합하는 능력은 내가 아는 한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다. 세상에는 사실 다양한 천재가 있는 법이다. 그는 그가 설파한 그대로 말하자면 통섭형 인재의 전형이다. 이 책은 현존하고 있는 최고의 통섭형 학자가 그의 학문 여정의 정점에 다가서며 내놓은 결작이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또 읽을 책이다.”
(3) 저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1929년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엄에서 태어났으며, 개미에 관한 연구로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윌슨은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섬 생물 지리학이론 및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써, 1956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미국 학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저술로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와 ’개미(The Ants)'로 플리처상을 두 번 수상했다. 그밖에도 미국 국가 과학 메달, 국제생물학상,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상이 수여되지 않는 분야를 위해 마련한 크러퍼드상을 수상했으며,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힌다. 그 외에도 과학과 자연 보존 분야에서 쌓은 업적으로 카슬러상, TED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사회생물학(Sociobiology)', ’자연주의자(Naturalist)', '통섭(Consilience)', ‘생명의 미래(The Future of Life)',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의 편지(The Creation)', '개미언덕(Antbill)' 등이 있다.
(4) 옮긴이 이한음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소설<해부의 목적>으로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과학 전문 번역자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들어진 신’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부문을 수상했다.
2. 지구의 정복자
(1) 고갱의 그림 앞에서
고갱이 타히티의 월든 호숫가의 작은 오두막에서 얻은 깨달음은 그의 폭 3.65미터짜리 걸작에 잘 표현되어있다.
흐릿하게 뒤섞인 산과 바다 같은 타히티 경관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인간 삶의 주기를 나타낸다. 화가는 우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기를 원한다. 맨 오른쪽의 아기는 출생을 뜻한다. 중앙에는 성별이 모호한 어른이 양팔을 치켜들고 있다. 개인의 자아의식을 상징한다. 그 왼쪽에는 사과를 따먹는 젊은 쌍이 그려져 있다. 지식을 추구하는 아담과 이브의 원형이다. 왼쪽 끝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늙은 여인이 고통과 절망에 찌든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왼쪽 배경에는 파란색을 띤 우상이 종교 의례를 연상시키는 자세로 양손을 든 채 우리를 응시한다. 자애로운 자세일 수도 있고 악의를 품은 자세일 수도 있다. 고갱 자신은 모호한 시적인 어투로 이 형상의 의미를 이렇게 기술했다.
“이 우상은 문학적인 설명 장치가 아니라네. 하나의 조각상이지. 아니 조각상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동물의 형상이라는 게 맞겠지. 동물이 아닐 수도 있어. 내 꿈속에 나타난 그 형상은 내 오두막 앞에 있었지. 자연 전체를 품은 그것은 우리의 원시적 영혼을 지배하며, 우리의 기원과 미래라는 수수께끼 앞에서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우리의 고통을 위로하는 형상이자 그 고통이 가진 가치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라네.”
캔버스의 왼쪽 위 구석에 그는 유명한 제목을 적어 놓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u Venons Nous/Que Sommes Nous/Qu Allons Nous)”
고갱의 그림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2)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수십만 년 전, 자바 동쪽의 소순다 열도에는 ‘호빗 족’이라는 별명이 붙은 기이한 소형 인류인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가 살았다. 이들은 침팬지보다 별로 크지 않는 뇌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석기를 개발했다. 유럽과 지중해 동부 연안에는 호모 사피엔스의 자매종인 네안데르탈인 즉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가 살았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직계조상처럼 잡식성이었고, 현생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보다 뼈가 더 굵고 뇌가 더 컸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쇠퇴했고, 결국 멸종했다. 인류의 목록을 채울 마지막 집단은 북아시아에 살았던 데니소바인(Denisovan)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자매종임이 분명하다. 네안데르탈인이 아직 지상에 살고 있을 때 호모 사피엔스의 고대 혈통은 아프리카에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후손은 아프리카 대륙 바깥으로 뻗어나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그들은 구대륙 전체로 퍼지면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진출했고, 이윽고 멀리 신대륙과 오세아니아의 먼 섬들까지 뻗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맞닥뜨린 다른 모든 인류 종들은 짓밟히고 제거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고작 수십만 년 전에야 지구에 등장했다. 2억2000만 년 전 출현한 흰개미에 견주면 ‘갓난아기’다. 생물량으로도 70억 인구는 각 변의 길이가 2km인 정육면체에 다 들어갈 만큼 미미하다. 어떻게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진 지 6만 년 만에 지구를 점령했을까. 이 거대한 질문 앞에 종교와 철학은 무력하다. 석기시대부터 인간은 숱한 창조신화를 지어내 부족민에게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종교(신화 창조)는 ‘생존을 위한 다윈주의적 장치’일 뿐, 인류의 기원과 의미를 밝혀주지 않는다. 철학은 고상한 목적과 역사를 지녔지만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포기한 지 오래다. 사회생물학을 개척한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도의 사회성이 왜 존재하는지 추적하려면 지구의 다른 정복자를 살펴야 한다.
(3) 개미의 사회성 진화
흰개미는 2억20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1억5000만 년 전에 진화했고, 6500만년에서 5000만 년 전에 현재의 수준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개미와 흰개미의 진화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은 대항수단을 진화시킬 수 있었고, 결국 생태계는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1억3000만 년 전, 속씨식물(*)이 겉씨식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파도에 개미가 올라탔다. 속씨식물 숲은 조성이 풍부하고 구조가 복잡해 개미가 살기 더 적합했다.
개미는 진딧물, 깍지벌레처럼 식물의 수액을 먹고사는 흡즙곤충과 동맹을 맺어 지배자의 지위에 오른다. 개미는 흡즙곤충의 배설물(액체 방울)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파리와 거미 등 흡즙곤충의 천적을 몰아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는 더 나아갔다. 개미는 흡즙곤충을 일종의 ‘젖소’로 변모시켰다. 흡즙곤충은 이제 배설물을 아무렇게나 흩뿌리지 않고 개미가 와서 더듬이로 건드릴 때 후하게 배출한다.
오랫동안 개미를 연구해 온 월슨은 사회성 곤충의 진화를 이해하는 핵심원리의 하나를 잡아낸다.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들여서 집을 공들여 짓는 개미일수록 그것을 지킬 때 더 사납다는 것이다. 사회성 진화는 두 단계로 일어난다. 먼저 이타적 협동을 통해 포식자, 경쟁자 같은 적으로부터 보금자리를 지킨다. 집단 구성원은 두 세대 이상으로 이뤄지며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분업한다.
* 속씨식물과 겉씨식물은 꽃이 피는 꽃식물(종자식물)은 밑씨가 씨방 속에 있는지, 겉에 드러나 있는지에 따라 속씨식물과 겉씨식물로 구분할 수 있다. 속씨식물은 밑씨가 씨방 속에 들어 있고, 겉씨식물은 씨방이 없어 밑씨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속씨식물의 꽃은 대부분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양성화이고 꽃잎과 꽃받침, 씨방이 발달해 있다. 무궁화, 봉숭아, 해바라기, 복숭아나무, 옥수수, 백합 등이 해당한다. 겉씨식물의 대부분은 암술만 있는 암꽃과 수술만 있는 수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이고, 주로 바람에 의해 수정이 이루어진다. 한국에는 소나무, 향나무 등 50여 종의 겉씨식물이 있다.
(4) 인간은 개미와 달랐다
인간과 곤충 사이엔 지능 말고도 큰 차이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번식 능력이 있고 그것을 위해 경쟁한다. 또 가족뿐 아니라 성별, 계급, 부족 사이에도 유연한 동맹을 형성한다. 그러려면 서로를 정밀 평가하는 능력을 길러야 했다. 본능에 이끌리는 곤충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성을 획득했다는 뜻이다. 이 ‘게임’에는 더 높은 지능이 필요했다. 뇌는 대인관계의 장단기 시나리오를 재빨리 짜야 했고, 과거의 기억을 점검하면서 미래의 결과까지 상상해야 했다.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이타적인, 충돌하는 두 충동을 지닌 인간조건은 그렇게 탄생했다.
곤충에게는 포유동물보다 훨씬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는 날개가 있었다. 사회성 곤충은 또 암컷 이주자가 수컷을 데려갈 필요가 없었다. 짝짓기 비행 이후 암컷은 자신이 받은 정자를 뱃속 작은 주머니에 저장한 뒤 하나씩 꺼내 난자와 수정시키면서 여러 해 동안 숱한 일개미를 만들 수 있다. 포유동물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지능과 기억을 바탕으로 개체 간의 유대와 동맹, 사회집단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윌슨은 “현생 인류의 기원은 요행이었다.”고 말한다. “개미는 진화 속도가 느려 다른 생물이 대항 수단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인류는 단기간에 맹렬한 속도로 세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다른 종들이 인류의 대량 학살에 대비하거나 보조를 맞출 틈이 없었다.”
(5) ‘혈연 선택’ 이론과의 이별
폴 고갱은 타히티에서 명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그렸다. 이 책은 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윌슨은 인간의 큰 몸집과 상대적 비이동성, 나무 위 생활, 직립보행, 불(火)의 제어, 야영지 집결을 진화의 큰 징검다리로 꼽았다. 초기 인류는 빨리 달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마라톤’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우리는 사냥을 다시 체험한다.”는 것이다.
윌슨은 진화의 핵심이 ‘혈연선택(이기적 유전자)’이라는 기존 견해를 내팽개친다. “혈연선택이론으로는 여왕개미와 그 유전형이 확장된 로봇인 일개미로 이워진 개미사회의 진화도, 이기적 본능을 가진 개인들을 집단목표에 복종시켜야 하는 인간사회의 역동성도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기적 본능과 이타적 본능의 길항 속에 살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면서 그는 ‘다수준 선택(집단선택)’이론을 주장한다.
(6) 우리는 무엇인가
벌레들은 무리지어 먹는다. 집단적 식습관은 다른 포식자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사회성의 밑바닥 주춧돌은 연대감도 사랑도 아니고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서 나아가 언어, 도덕, 종교, 창작의 기원까지 의욕적으로 살핀다.
인간의 본성은 유전되는 마음 발달상의 규칙적인 속성들로 우리 종에 공통된 것을 가리킨다. 그 속성들은 ‘후성규칙‘으로서, 머나먼 선사시대에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문화는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분하는 형질들의 조합이다. 문화형질은 처음 한 집단에서 창안되거나 다른 집단에게서 배운 다음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전파되는 행동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이 존속했던 20만 년 동안 그들의 기술이나 문화는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호모사피엔스는 발전을 거듭했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질 무렵에 호모 사피엔스는 경이로운 성취를 이루었다. 최초의 집단이 다뉴브강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서 유럽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은 약 4만 년 전이었다. 그로부터 1만 년 뒤, 후기 구석기시대를 특징짓는 혁신들이 시작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늘어난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직전과 이후에 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새 환경으로 진출하고 강력한 적수와 경쟁하는 종에게 중요한 것은 집단 내의 단결과 협동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 지도자에 대한 복종, 종교적 열정, 전투능력이 상상력 및 기억과 결합됨으로써 승자를 낳았다.
언어는 인류 사회성 진화의 ‘성배’였으며, 인류는 그것을 찾아냈다. 일단 이 성배를 쥐고 나자, 언어는 인류에게 마법과 같은 힘을 주었다. 인간 언어 습득의 유전적 토대는 언어와 공진화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언어의 출현보다 앞서 형성되었다. 다윈이 시사했듯이 언어와 그 기본 메커니즘이 들어맞는 것은 언어가 인간의 뇌에 들어맞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자연선택이 독립된 보편 문법을 빚어내지 못한 것이 문화의 다양화에 주된 역할을 했고, 그 융통성과 잠재적인 창의성으로부터 인간 재능이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도덕과 명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많은 경우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가 공유하는 윤리 규범들이 생물학을 토대로 한 현실주의의 시험을 견뎌낼 것이다. 반면에 인공피임 금지, 동성애 혐오, 어린 소녀의 강제혼인과 같은 것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종교는 과학자들에게 인류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애써야하는 별도의 세계가 아니고, 자연선택을 거친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종교에서 비논리성은 약점이 아니라, 핵심 강점이다. 현실세계에서 강렬하게 작동하는 부족주의 본능은 부족끼리 경쟁하는 상황에서 작용하는 집단선택을 통해서만 진화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
인류는 유원인과 더불어 주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드문 생명체에 속하며, 따라서 미각과 후각이 약하다. 즉 우리의 감각세계는 딱할 정도로 작다. 따라서 장치와 기구를 통해서 우리는 나머지 생물들의 감각세계를 우리 자신의 감각세계로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예술작품이 복잡성을 지닌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이러한 동일한 수준의 복잡성은 원시예술과 현대추상미술 및 디자인에서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한 부분을 이룬다. 한 번에 보고 셀 수 있는 대상들의 최대 개수가 7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수준의 복잡성이 뇌가 한번 보고 처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이라는 데에서 미학적원리가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비유의 독창성과 힘이다. 문학에서 서정적 표현은 작가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독자의 마음에 전달하는 장치이다. 소설에서는 감정을 공유하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언어는 더 서정적이어야 한다. 창작예술은 인류가 추상적 사유능력을 계발했을 때 가능해진 진화적 발전의 한 유형이다. 그 뒤에야 인간의 마음은 모양이나 사물의 종류나 행동에 대한 심적 주형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개념의 확고한 표상을 다른 마음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사건의 해석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음악을 담당하는 신경회로는 유달리 복잡하며, 적어도 여섯 가지 뇌 메커니즘에서 감정을 이끌어 내는 듯하다.
(7)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 조상들은 유기체 다음의 주요 생물학적 조직화 수준인 진사회성(*)을 진화시킨 겨우 20여 가지 동물계통 중 하나였다. 진사회성을 이룬 집단은 두 세대 이상의 구성원들이 함께 머물면서 협동하고, 새끼를 돌보고, 일부 개체의 번식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분업한다. 선행인류는 진사회성을 이룬 곤충을 비롯한 무척추동물들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 그들은 처음부터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었다. 때가 되자 그들은 기호를 토대로 한 언어, 읽고 쓰는 능력, 과학을 토대로 한 기술을 발명했다. 결국 우리는 나머지 생물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이제 많은 시간을 유인원처럼 행동하고 유전적으로 한정된 수명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빼면, 우리는 신처럼 보인다.
우리를 이렇게 높은 지위로 올려놓은 역동적인 힘은 다수준 자연선택임이 분명하다. 혈연선택은 혈연관계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개체들이 서로 협동하거나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이 선택 양상은 범위를 넓히면 고도의 사회 조직화를 비롯하여 모든 형태의 사회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다. 월슨은 혈연선택의 이론을 다수준 자연선택에 적용되는 집단유전학의 표준모형으로 그것을 대체한다. 거기에는 진화에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첫째, 협동, 공감능력, 관계망 패턴을 비롯한 집단 수준의 형질들은 인류에게서 유전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둘째, 협동과 통합은 경쟁하는 집단들의 생존에 명백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윌슨은 자신이 가진 인류의 미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이후 2세기가 지나기 전에 인류는 월슨에 의해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가 몹시 원한다면, 22세기쯤이면 지구는 인류의 영원한 낙원이 되거나 적어도 그 초입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히겠지만, 서로에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소박한 윤리관, 이성을 가차 없이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 태도, 우리가 진정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우리의 꿈은 마침내 이곳 지구에서 실현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지구의 정복자가 되기까지 인간 진화의 구불구불한 여행길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아우르며, 인류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촛불과 같은 책이다.
* 진사회성(eusociality)이란 집단의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의 일부로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