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는 낙안읍성이 있다. 예부터 낙안읍성이 자리한 마을에는 임경업 장군이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낙안은 교통의 요충지이며, 물산이 풍부했던 곳으로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지역이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낙안 출신의 김빈길(金贇吉) 장군이 토성을 쌓은 것이 낙안읍성을 시초라 할 수 있다. 이후 세종 6년(1424)에 다시 돌로 쌓기 시작했고, 인조 4년(1626)에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낙안 군수로 있을 때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낙안읍성은 해미읍성, 고창읍성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읍성’ 중 하나이며, 다른 읍성과는 달리 실제로 이백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국내 유일의 민속마을이다.
옛날 임경업 장군이 낙안의 군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낙안은 왜구의 침입이 잦아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하였던지라 임경업 장군은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을 쌓기로 하였다. 임경업 장군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백성들을 생각하는 장군의 마음이 대견하여 동생을 돕기 위해 내기를 하자고 했다. 누이는 “너는 성을 쌓고 나는 군사들의 군복을 만들 것이니, 더 빨리 끝내는 사람이 이기는 거로 하자.”라고 했다. 누이는 봄에 목화를 심어 가꾸었고, 수확한 목화솜으로 베를 짜서 옷을 열심히 만들었다. 임경업 장군도 병사와 주민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기 시작했다. 임경업 장군은 채찍으로 금전산의 큰 돌을 옮기는 도술을 부렸다.
옮겨 온 돌로 성을 다 쌓은 후 바위 하나가 남았는데,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남은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누이는 옷을 다 만들고 이제 옷고름만 달면 내기에서 이기는 것이었지만, 아직 동생이 성을 다 쌓지 못한 것을 알고, ‘아, 내가 여자인데, 내기에서 이기면 동생과 군사들의 사기가 내려가겠구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성을 다 쌓고 나서 동생이 오자 자신이 졌다며 임경업 장군에게 승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임경업 장군만 기억하는 낙안읍성
낙안읍성에 얽힌 설화는 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축성설화’로 임경업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낙안읍성 안에는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재직할 당시 선정을 베푼 것과 왜구를 물리친 것에 대한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긴 ‘임경업장군비각(林慶業將軍碑閣)’도 있다. 또한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당산제를 지내는데, 이때 임경업장군비각에서부터 제를 올린다고 한다. 이처럼 임경업 장군은 낙안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영웅을 넘어 마을 수호하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는 임경업 장군에 대한 전승집단의 강한 믿음과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낙안읍성을 처음으로 쌓은 사람은 김빈길 장군이다. 김빈길 장군은 낙안에서 태어나 의병들을 모아 낙안읍성을 쌓고, 왜구를 무찔러 낙안을 지킨 인물이다. 그런데 김빈길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없어지고, 현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민사(忠愍祠)에서 영정과 위패를 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