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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도 갑오년 월례치성 도훈>
“나를 찾아가는 성숙한 신앙”
2014. 8. 30 (음력 2014. 8. 6)
열매 맺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오늘은 상제님 고수부님 모시고 어떻게 신앙의 열매를 맺을 것인지, 어떻게 신앙을 성숙시켜서 상제님 고수부님이 원하시는 후천인간 태을도인이 될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강증산과 태을도』 p265 보면, 상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앉을 자리를 탐내어 당치 않은 자리에 앉으면 신명들이 등을 쳐서 물리치나니, 자리 탐을 내지 말고 덕 닦기를 힘쓰며 마을을 잘 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느니라.” (대순전경 p334)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상제님 고수부님을 모시고 신앙을 하다 보면, 신앙의 초창기에는 자기도 모르게 ‘개벽’이라는 말, ‘도통’이라는 말, 이런 말에 마음이 가고 욕심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자리탐을 내게 된다고요. 그러니까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내가 갖고 있는 꿈을 이루어서 성취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은 다들 있기 때문에,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어떤 자리에 앉겠다 하는 것을 크게 보면 탓할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서 시간이 흘러서 진정으로 상제님 고수부님이 원하는 인간상이 무엇인가 그걸 알게 되면, 그 자리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원한다고 그 자리에 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여기 상제님 말씀과 같이 덕 닦기를 잘하고 마음을 잘 가지면, 신명들이 자연스럽게 추대를 하고 자리를 정해서 서로 받들어 앉힌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다 마치신 다음에 제자들한테 물어봐요. “내가 죽을 지라도 너희들이 마음을 잘 지켜서 나를 믿겠느냐?” 그러니까 제자들이 “틀림없이 믿겠습니다.”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돌아오도록 잘 믿고 있으라.” “마음을 잘 닦으면서 내 생각을 많이 하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 마음을 변치 말고 잘 믿고 있으라.” 그러시면서,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無語別時情若月有期來處信通潮)-이별할 때 그 마음은 달빛처럼 아련하지만, 돌아올 기약 있어 그 믿는 마음은 조수가 들고 나듯이 틀림이 없다.” “너희들이 마음을 잘 닦고 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너희들이 닦은 대로 다 자리를 추대받아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약속을 하고 가셨어요.
처음 상제님을 접하면, 개벽과 도통에 마음을 뺏겨가지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상제님 고수부님한테 매달리게 돼요. ‘상제님께서 도통을 해주시겠지, 상제님께서 개벽을 해주시겠지.’ 그래서 상제님 고수부님을 자기 주관적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선전하기에 바빠요. ‘상제님은 우주를 주재하시는 옥황상제시다, 고수부님은 상제님과 짝을 이뤄가지고 천지를 주재하시는 분이시다, 신통묘술이 대단하다, 해와 달을 움직인다, 개벽장이다, 죽은 사람도 살리신다, 상제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 고수부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상제님 고수부님의 모습,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주관적인 모습을 가지고, 쉴 새 없이 다른 사람한테 선전을 한다구요.
마치 어린애들이 ‘우리 아버지가 최고, 우리 어머니가 최고’라고 하듯이, ‘상제님 고수부님이 최고다.’ 이런 것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홍보하고 이렇게 추종한다고요. 무엇 때문에? 개벽과 도통의 욕심 때문에. 어린애들이 그렇잖아요. 자기 엄마, 자기 아버지가 최고라고요. 어린애들은 자기 엄마 아버지가 최고인지 알아요. 그램서 서로 싸운다고요.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아니다,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우리 엄마가 최고다.” “아니야, 우리 엄마가 최고다.” 서로 싸운다고요. 우리 아버지는 돈도 많고 (지위도) 높은사람이고, 우리 집은 아주 큰 집이고 차도 좋고, 그걸 가지고 자랑을 한다구요. 동네방네 떠든다구요. 그렇게 자랑하는 게 그 또래들 속에서 인정받는 건줄 알아요. 그러다 거기에서 자기 아버지보다 자동차도 더 좋은 거, 집도 더 큰 거, 더 고위관직, 이런 게 있으면 주눅이 들어 가지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또 친구들하고 주먹다짐을 한다고요. “우리 아버지가 더 훌륭한데 왜 너희 아버지가 더 훌륭하냐”, “우리 엄마가 더 훌륭한데 왜 너희 엄마가 훌륭하냐”, 그렇게 싸운다고요.
상제님 고수부님을 처음 만나서 제대로 상제님 고수부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어린애들이 ‘우리 엄마가 제일이다,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다’ 그렇게 싸우듯이 다른 종교인들하고 싸우게 되고, 또 같은 종단 안에서도 싸우게 된다고요. 내 교리가 우수하네 네 교리가 우수하네, 내가 정통이네 네가 정통이네, 내가 진법이니 네가 진법이니, 서로 싸운다고요.
그러면 객관성을 잃어버려요. 그렇게 신앙을 하면 신앙의 발전이 없어요. 항상 개벽만을 외치고 항상 도통만을 외쳐요. ‘상제님이 최고 고수부님이 최고’를 외치고 다니면 상제님 고수부님이 다 해줄 거니까, 마치 어린애들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만 부르면 다 해주니까. 맛있는 거도 사주고 좋은 장난감도 사주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만능맨으로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니까, 부모님을 선전하는 데에 하여튼 총력을 다해요.
그러니까 상제님 신앙인들도 초창기에는 제대로 성숙되기보다는 유아적인 신앙을 했다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에 대한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그런 모습으로 상제님 고수부님 행적이라든가 권능이라든가 이런 걸 선전하는데 바쁘고, 거기에 의존하기 바빴어요. 그런데 어린애들이 철이 들어가면서 우리 아버지가 최고가 아니구나, 우리 엄마가 최고가 아니구나,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서 객관적인 눈이 떠져요. 아! 우리 아버지가 제일 큰 차를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돈이 가장 많은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객관적인 눈이 떠지면서 다른 친구들 부모님의 실체에 대한 눈이 떠진다구요. 그러면서 싸움이 줄어들어요. 우리 부모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의 부모의 실체에 대해서 이해하고 알게 되니까, 우리 부모가 최고이고 제일이라고 하는 도그마에서 벗어나게 된다고요.
상제님 신앙도, 상제님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우리 상제님이 최고이고 우리 고수부님이 최고이고, 다른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증산종단에서도 다른 종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싸웠었는데, 이제는 신앙이 성숙되어가면서 상제님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고수부님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또 다른 종교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다른 종파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구요.
상제님께서 항상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나는 충직한 종복을 원하지 않는다.” “노예근성이나 종지기 의식이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나하고 진리를 같이 논할 진리의 어진 벗을 원한다.” “너희들도 전지전능하다.” 이런 얘기를 항상 하신다구요. 그런데 제자들은 상제님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언제 개벽 오나 언제 도통 주나, 그런 유아적인 신앙단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김광찬 성도 같은 경우는 상제님한테 그런다고요. “내 가족도 다 내팽개치고 상제님을 따른 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이렇게 개벽을 지연시키시면 내가 죽는 것만 못합니다, 내가 죽을랍니다.” 이렇게 상제님한테 항의를 한다고요.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개벽이란 것은 다 때와 기회가 있다. 마음을 눅여서 어린 짓을 버려라. 자방(子房)의 종용(從容)과 공명(孔明)의 정대(正大)를 본받아라.” 하고 다독다독 달랜다고요.
상제님 신앙하는 데에, 상제님 가르침을 받는 데에, 유아적인 단계를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준비하지 않고, 개벽만 바라고 언제 개벽 오나, 상제님 권위에 의존해서 상제님 권능에 의존해서 한 몫 잡아보려고 한다고요. 상제님께서는 제자들한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개벽이 오고 한자리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또, 신원일 성도도 상제님한테 항의를 한다고요. 천지공사를 하신지도 꽤 되셨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신다고 말씀하신 게 꽤 되었는데, 왜 아직까지 이 세상은 전혀 변함이 없냐, 세상을 빨리 뒤집어가지고 세상사람들한테 비소(鼻笑)를 받는 저희들에게 영화를 주시라고, 어떻게 보면 간절히 상제님한테 말씀드린다고요.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인사는 기회가 있고 천리는 도수가 있다, 그 기회를 지으며 도수를 짜내는 것이 공사의 규범이다, 억지로 기회를 만들고 억지로 도수를 짜내면 천지에 재앙을 끼친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신원일 성도가 계속 상제님한테 조르니까, 상제님께서 개암사에 데려가셔서는 부안 석교로 물을 손가락에다 찍어서는 부안 석교 쪽으로 뿌리세요. 그러니까 그쪽으로 구름이 몰려가서 폭우가 내리는 거예요. 상제님이 신원일 성도에게 집에 가봐라 그래서 가보니까, 집에 자기 동생이 와 있는 거예요. 동생 집이 비에 쓸려가서 동생 식구들이 다 와 있는 거예요. 얼마나 처참해요. 신원일 성도가 슬픔을 이기지 몸하고 상제님한테 그 사실을 고하니까, “세상을 물로 덮는 것은 쉬운 거다. 억조를 다 멸망하게 하고 우리만 살아나오면 무슨 복이 되겠냐. 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패(雄覇)의 술(術)이고,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성인(聖人)의 도(道)다. 내가 상생의 도로써 창생을 잘 교화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마음을 잘 고쳐라.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렵다.” 그렇게 하면서 신원일 성도를 달랜다고요.
김광찬 성도나 신원일 성도나 항상 개벽을 말했어요. 개벽! 개벽! 개벽! 개벽! 유치한 신앙을 한 거지요. 마치 어린애가 자기 부모가 최고라고 자기 부모만을 선전하고 다녔듯이, 상제님이 최고이고 상제님 권능이 최고이고, 그 권능에 의존해 가지고 개벽세상에 한 자리 잡아보려고, 가정도 내팽개치고 그렇게 다녔던 거예요. 상제님께서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마음을 잘 닦아서 앞으로 다가올 좋은 세상을 맞으라.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 닦기가 어렵다. 마음 고치기가 어렵다. 지금부터 마음을 고쳐라.’
아까 처음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덕 닦기를 힘쓰며 마음을 잘 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힌다는 거예요. 개벽 때 한몫 잡아가지고 한자리 차지해서 떵떵거리고 유세 부리고 싶은 마음을 버리라는 거예요. 개벽을 바라는 마음이 다 있듯이, 도통을 바라는 마음도 사람들한테 다 있다는 거에요. 마음을 닦지 않고 개벽을 바라고 도통을 바라면, 그것은 제 무덤을 제가 판다는 거예요.
도통을 바라는 제자들한테 고수부님이 아주 자세하게 훈계를 해요. 고수부님의 수제자인 고민환 성도한테 고수부님이 그런다고요. “상제님께서 도통문을 닫았음으로 도통이 없다. 그러니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고 내 곁에 꼭 붙어만 있어라.” 고수부님 곁을 떠나지 말라는 거예요. 고수부님의 수제자인 고민환 성도도 도통하는 것이 꿈이에요.
고수부님이 해와 달을 움직이고, 죽은 사람도 살리고 하니까, 도통해 가지고 저렇게 신명도 자유자재로 부리고 풍운조화도 좀 해보고, 그래서 고수부님한테 그런다고요. “저는 도통하는 것이 꿈이니까 산에 도통공부하러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수부님이 멍하니 한참 바라보세요.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고수부님의 수제자라는 사람이 유치한 신앙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 닦을 생각을 하지 않고 도통공부 하러간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그러니까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고 내 곁에 꼭 붙어있어라.” 부질없는 짓이란 게 무엇이에요. 철들지 못한 애들이 우리 아버지가 최고, 우리 엄마가 최고 해가지고, 아버지 엄마에 기대어가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행세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그렇게 하려는 마음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또, 남상돈이라는 사람이 도통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 그러니 고수부님께서 남상돈이 오니까, “너 도통하는게 꿈이냐?” “네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고수부님이 그러신다고요. “도통을 원하지 말아라.” 도통을 원하는 그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라는 거예요. “네가 신심만 잘 가지면 도통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그러니 허망한 마음을 버려라.” 고수부님이 경계를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도통 공부한다고, 신통술 공부한다고, 용담으로 들어가서 술객을 만나가지고 돈 홀딱 잃고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고수부님한테 온다고요. 면목이 없잖아요. 그러니 고수부님이 혀를 끌끌 차시면서, “너한테 진작에 허망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네가 그렇게 하니 할 수 없다.”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어요.
상제님 고수부님을 신앙하면서, 개벽과 도통에 욕심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닦지 않는 것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것이고, 부질없는 짓이고, 허망한 마음을 갖는 거라는 거예요. 유치한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요. 자기한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고, 상제님 고수부님 한테만 초점을 맞춰 가지고, 상제님이 어떻고 고수부님이 어떻고 그것만 선전하기에 바빠요. 개벽과 도통이라는 측면에서 상제님 말씀 고수부님 말씀을 동원해가지고 개벽과 도통을 선전한다는 거예요.
상제님의 권능, 고수부님의 권능에 기대서, 조만간 개벽되고 조만간 도통된다 그것만 선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얘기를 하더라도 앉을 자리, 누울 자리를 보고 얘기하라고 그랬다고, 어딜 가든 우리 상제님이 최고, 우리 고수부님이 최고, 개벽과 도통을 해준다 그러니, 다른 종교 사람들이 다른 종파 사람들이 좋아하겠냐는 거예요.
어린 애들이 우리 아버지 최고, 우리 엄마 최고 하는 것 자체는 자만심이 있는 거예요. 교만심이 있는 거예요. 오만심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는 폭력성이 수반돼요. 사기성이 수반된다구요. 그러니까 개벽과 도통을 앞세워가지고 상제님과 고수부님에 기대고 의존하는 것은, 결국 오만심과 자만심과 그런 것들을 부추겨 가지고 말과 행동에 폭력성과 사기성이 나온다는 거예요.
개벽신앙과 도통신앙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면, 독기와 살기를 풀어없앨 기회가 사라지는 거예요. 상극세상에서 상생세상으로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고 고수부님이 감리를 하셨는데, 상극세상에서 상생세상으로 가려면 독기와 살기를 풀어없애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려면 나한테 초점을 맞춰야 한다구요, 내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내 행실을 바꾸는 것으로, 그러니까 심법신앙으로 전환을 하여야지만이 상생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거예요.
유치한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바꾸려면 심법신앙을 해야 돼요. 상제님 고수부님의 권위에 기대고 권능에 기대서 개벽과 도통을 외치다가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진정한 개벽과 도통 준비는 마음 닦고 태을주 읽는 거예요.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어가지고 본래의 자기를 찾으라는 거예요. 나의 모습, 나의 실체. 상제님도 그 길을 갔고 고수부님도 그 길을 갔고,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거예요.
“앉을 자리를 탐내어 당치 않은 자리에 앉으면 신명들이 등을 쳐서 물리치나니, 자리 탐을 내지 말고 덕 닦기를 힘쓰며 마을을 잘 가지면,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느니라.” (대순전경 p334)
마음 닦고 태을주를 잘 읽어가지고 상생인간으로 바뀌면 바뀔수록, 상생세상에서는 자리가 올라간다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 권능을 선전하고 그 능력을 선전해 가지고, 개벽과 도통을 외친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개벽과 도통을 외치기 위한 자리, 개벽과 도통의 욕심으로 말미암은 자리, 그런 자리는 천지에서 때가 되면 다 정리한다는 거예요. 과도적으로 그 사람의 욕심으로 만든 자리요, 그 사람의 독기와 살기로 만든 자리라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은 첫째도 둘째도 우리들한테 ‘너를 찾으라는 거예요.’ ‘초점을 너한테 맞추라는 거예요.’ 너 자신한테. 너 심중에 직통하는 길이 있으니까, 그 마음길을 찾아가지고 본래 내 마음을 찾으라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시천(侍天)과 태을(太乙)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밝혀서 천주의 품성을 되찾고 태을신성과 태을생명력을 회복하라는 거예요. 개벽과 도통신앙에 마취되지 말고 개벽과 도통신앙에 휘둘리지 말고, 심법신앙을 하라는 거예요. 진정한 개벽과 도통을 원하면 마음을 닦으라는 거예요. 상제님께서 그런 얘기 하시잖아요. “후천선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닦기가 시급하다.” 마음 닦기가 시급하다는 거예요. “마음을 잘 닦아서 앞으로 다가오는 좋은 세상을 맞이하라.” 고수부님 말씀대로 “각자한테 달린 일”이라는 거예요.
고수부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선천으로부터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으로부터는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라. 마음닦는 공부이니 심통공부 어서 하소. 제가 제 심통도 못하고서 무엇을 한다는가.” “후천의 천지사업이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 하나뿐이로다.” 각자 할 일이라는 거예요. 알았으면 잘 하라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을 앞세워서, 간판으로 내세워서, 상제님 고수부님의 권능 상제님 고수부님의 능력, 그것을 내세워서 그 뒤에 숨지 말라는 거예요. 개벽이라는 이름으로 도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그렇게 해봐야 너의 자리가 높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너의 자리가 보전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사람들이 너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너의 욕심일 뿐이라는 거예요.
이제 지난 100년 동안에, 우리가 유치한 신앙, 개벽과 도통 신앙에서 벗어나서, 정말로 나를 찾는 내 본래의 진면목을 찾는 심법신앙으로 대전환을 해야지 추수가 되고 열매가 된다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한테 의존하고 기대는 신앙은 과도기적인 신앙이라는 거예요. 추수자의 자세는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어서, 내 본래의 진면목, 태을도인으로서 내 스스로를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홀로 서라는 거예요. 상제님도 홀로 섰고 고수부님도 홀로 섰으니까, 너희들도 내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홀로 서라는 거예요. 그것이 열매 맺는 길이고 성숙되어가는 길이다.
들판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 가잖아요. 각자가 익어야 추수가 되는 거지, 각자가 익는 것을 포기하면 추수를 할 게 없어요. 이제는 개벽과 도통신앙에서 심법신앙으로 대전환을 해 가지고, 급살병의 병목에 내 마음을 추수할 준비를 하고, 내 태을을 추수할 준비를 해야 되겠다. 상제님 고수부님이 우리들에게 “추수준비를 하라.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어 가지고 추수준비를 하라.” 간곡히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명심, 명심해야 되겠다는 당부를 드리면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녹취해 주셔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마음닦고 태을주입니다. 녹취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충벽도인님! 바쁘신데 녹취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천지부모님의 간곡한 말씀을 디시한번 가슴에 담고 갑니다.
참례 못하였지만 녹취글 올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너 심중에 직통하는 길이 있으니까, 그 마음길을 찾아가지고 본래 내 마음을 찾으라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시천(侍天)과 태을(太乙)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밝혀서 천주의 품성을 되찾고 태을신성과 태을생명력을 회복하라는 거예요." - 나를 돌이키게 하는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녹취하느라 수고하신 충벽님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