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貴下)라는 화제한어(和制漢語)를 사용하지 맙시다.

[김태신]

                         귀하(貴下)라는 화제한어(和制漢語)를 사용하지 맙시다.

 우리나라 유교문화의 산실(産室)이라 할 수 있는 유학(儒學)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의 현재 직제(職制)는 관장(館長)과 부관장(副館長) 이외에 전의(典儀), 전학(典學), 사의(司儀)라는 자문, 전례, 사정 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전의(典儀)는 석전(釋奠) 기타 일반의례(一般儀禮)를 관장 연구하며, 전학(典學)은 학문과 교화를 담당하는 부서의 임원으로 학문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위주로 궁구(窮究)하며 교화는 유학의 사상과 예절을 가르치는데 세상의 물질만을 숭상하므로 정신세계가 피폐하여진 부분의 교육을 위한 인성교육(人性敎育) 담당 직책이라 할 수 있다. 교육, 교화, 학리(學理) 및 학술(學術)연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연구하는 직책이 성균관(成均館) 전학(典學)이다. 임명장 수여는 성균관 대성전(大成展)앞뜰에서 거행하는데 전학(典學)에 임명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집안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균관 전학 임명장을 보면 "貴下를 成均館 典學에 任命함"이라고 되어 있고 물론 임명자는 성균관장(成均館長)이다. 유교의 최고 교육 기관의 성균관장이 임명장에서 좌하(座下)가 아닌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造語) 즉 화제한어(和制漢語)인 귀하(貴下)라는 어휘를 왜 사용하는지 의아(疑訝)하다.

 우리는 편지를 쓸 때나 연하장 또는 청첩을 보낼 때 상대방의 이름 아래에 좌하(座下)라는 단어를 썼다. 어릴 때 어른들이 편지를 쓰고 보낼 때 반드시 상대방 이름 아래에 좌하(座下)라고 표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요새는 좌하(座下)라고 쓰는 것을 거의 볼 수 없고 대부분은 귀하(貴下)를 쓴다. 귀하를 쓰는 사람은 친일파이거나 아마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몰라서 그러할 것이다. 결혼(結婚)이 일본식 한자어이고 혼인(婚姻)이 우리말이듯이(우리나라 민법에서는 법률 용어로 일본식 한자어인 결혼을 쓰지 않고 혼인이라고 쓴다. 그래서 혼인신고라고 하지 결혼신고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비들은 받는 사람 이름자 밑에 귀하(貴下)나 귀중(貴中) 혜존(惠存) 등의 일본식 한자어를 결코 쓴 적이 없다. 자기보다 위이면 좌하(座下)라 하고 자기와 대등하거나 아래이면 좌전(座前)이라 했다. 이는 받는 사람은 그대로 있고 주는 사람이 허리를 굽히며 앉은자리 밑에 갖다 드리거나(좌하), 앉은자리 앞에 갖다 놓는다는 의미이다.(좌전) 중국말에는 폐하, 전하, 저하, 각하, 마하, 합하, 절하 등의 용어가 있다. 우리의 선비 말인 좌하(座下)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식 한자어(和制漢語)인 귀하(貴下)라는 말을 쓰게 된 연유(緣由)는 일제 침략 35년간 일본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미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는 일본 한자어를 모두 추방하면, 우리 한국인은 거의 한 문장도 쓸 수 없게 될 정도로 일본어 문화가 우리의 언어문화에 미친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고 심히 크다 하겠다. 일본은 중국이나 조선과는 달리 명치(明治 1868-1912) 시기에 서구의 지식과 학문과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기존 한자에 없는 서구 어휘를 일본인들은 한자를 새롭게 만들어 번역했다. 이런 것들을 일본인들은 화제한어(和制漢語)라고 하였고 중국에서는 일본한어(日本漢語)라고 하였다. 그런 결과 현재 중국어 속에는 일본 한자어가 약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서구의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특히 의학 용어 가운데 80% 정도가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다. 심지어 현재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자의 60% 정도가 일본식 조어인 화제한어이다. 그러므로 화제한어를 무시하면 우리는 한 문장도 쓰거나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실로 일본이 중국이나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우리가 외래어(外來語)를 무조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없는 한자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화제한어를 쓸 수밖에 없으나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정신이 녹아있는 우리의 고유 선비 언어까지 내팽개치면서 굳이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한자를 써야 하겠는가 말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많은 우편물을 받아보고 있지만, 우리 조상이 상대방 이름 아래에 즐겨 썼던 좌하(座下)라고 쓴 서신을 우리 집안사람이나 일부 학자들이 보내주는 것 외에는 받아본 적이 없다. 좌하(座下)와 귀하(貴下)는 과학이나 의학 용어와는 달리 전혀 다른 우리 정신과 일본인의 정신이 녹아있기에 우리 정체성(正體性)을 지키고 우리 선비문화의 창달(暢達)과 후손에게 우리 정신문화의 계승(繼承)을 위하여서도 우리는 반드시 일본 한자어인 귀하(貴下)가 아니라 좌하(座下)를 써야 마땅하리라.

[김기후]

태신 종원님 반갑습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우리말 만큼은 더욱 주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우리말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부끄럽기 조차 합니다.
모르고 있었던 걸 일깨워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