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바라본다.
이 영호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면서 거울 속에 비춰진 나를 무심코 쳐다보았다. 머리는 희끗희끗, 시들은 꽃처럼 되어버렸다.
며칠 전 치과에 가서 흔들거리는 이를 또 하나 뽑았다. 반 이상이 내 치아가 아니다. 세월의 흔적이랄까, 어느덧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황혼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왠지 처량해 보이고 오늘따라 내가 슬퍼진다.
인생이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던가, 오는 세월 가는 세월은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다.
오랜만에 책장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사진첩을 꺼냈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과 가족, 친지들과의 기념사진이며 기회마다 찍어두었던 사진들이 내 눈과 마주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부모님과 형제, 친척 친구들의 옛적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난 기억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어색하지만 멋지고 폼나게 찍은 나의 모습 사진도 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사진도 있다.
특히 부모님 얼굴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고향 떠나 객지인 서울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집도 마련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아갈 무렵, 시골의 부모님을 모셔다가 자식 도리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런 나의 바람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불효 된 마음 가눌 길 없다.
사진 속 둘째 여동생도 바라본다. 내가 결혼 전 직장 다니며 자취할 때 서울에 올라와 밥해주느라 고생 많이 했었던 여동생이, 어머니 문병차 대학 병원에 둘러 본인도 몸이 안 좋아 종합건강검진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날의 슬픔이란……
저세상으로 먼저 간 가족들을 떠올리니 하늘이 원망스럽다.
추억의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그리움이 쌓인다. 정면을 보고 해맑게 웃는 젊은 아내의 사진을 보니 반갑고 또 아프다. 사진을 통해 과거를 만나보고 현재의 나의 모습을 비춰보니 돌연 허무한 마음이 머릿속에 솟구친다.
퇴직 후 삶과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꿈을 꾸며 제2의 인생길을 나름대로 보람차게 걸어왔는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용하다는 한의. 양의 병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백방으로 치료해 보았지만 쾌차하지 못하고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산 밑에 깃든 요양병원에서 지금 투병 중이다.
아내의 야윈 얼굴을 보면 평생을 알뜰살뜰 열심히 살아온 우리 가정에 왜 이런 일이 닥쳤는가, 라는 원망과 함께 가슴이 아리다.
인생이란 누가 주관하기에 긴 목숨, 짧은 목숨이 있고., 팔자에 복을 갖고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살다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째서 고생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 갈등, 불안 등등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자신의 삶에서 겪게 되는 운명의 몫이라 여겨진다. 확고한 신념과 목표가 서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때마다 반추反芻의 거울로 삼았던 나의 용기와 마음을 적잖이 북돋아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운명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인가.
과거는 이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긴 채 잊어야 하고 버려야 한다. 버려야 또 채워진다. 현재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듯이, 늙은이는 사라지고 젊은이는 늙어가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길을 수긍하면서 말이다.
사진첩을 덮는다.
잠시 눈을 감고 그동안의 나를 뒤돌아본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나, 자문한다.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지금껏 살아오면서 시대에 따라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며 살아왔는가. 파란만장했던 기억 속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니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한다.
거울 속, 내가 나를 바라본다.
깊게 폐인 주름, 허옇게 서리가 뒤덮인 내 몰골.
저자소개: 창작산맥으로 수필 등단
창작산맥 문학회원
강서 문인협회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