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경제포커스
입력 : 23.08.14 19:17
관행과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동일한 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
법과 제도,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더라도 운영은 결국 사람들의 몫
건설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염치, 하는 척, 뻔뻔함, 남탓을 경계해야
건설 중이던 멀쩡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건물이 붕괴되었고 그 결과 무량판 지하주차장 구조에 대한 안전진단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LH 아파트 일부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근 국토부 장관이 방문했던 건설현장은 무량판 구조임에도 방문한 현장에 대해서는 안전진단조차도 하지 않고 제외되어 있었다. 국토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야 이 현장은 무량판 구조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전수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음이 확인되어 불신을 초래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5개 단지는 아애 안전진단 조사결과 철근이 누락되어 있었지만 그 정도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철근누락 단지에서 자체적으로 제외시켰고 이러한 사항은 LH 사장에게도 전혀 보고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LH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며 해체 수준의 강력한 구조조정 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들로 인해 건설업계와 건설관련 공공조직에 대한 신뢰가 땅 밑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떨어졌다. 건설 기술인이라고 얼글을 들고서 다니기가 부끄럽고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지금이라도 뼈를 깍는 각오로 신뢰회복이 급선무이다.
어쩌다가 건설업계와 건설관련 공공조직이 이러한 상황까지 왔는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왜 이러한 일들이 생겼을까?
부실공사 방지를 위해서는 불법 재하도급, 공사기간 부족, 최저가 공사비용, 기능인력 부족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 채용, 아웃소싱, 전관예우 등 개선할 점이 많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러한 원인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건설문화를 재조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시스템 개선과 법령 정비 등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아무리 법과 제도,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더라도 운영은 결국 사람들의 몫이다.
거시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람들이 일하는 LH와 건설업계의 오랜 시간동안 고착화되고 관행처럼 굳어온 건설문화가 이런 문제를 촉발했다고 본다. 건설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반성해보고 창의적인 개선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첫째, 염치(廉恥)가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촉발된 첫 번째 원인이다. 염치가 없으면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은 물론이고 갑질과 이권에 쉽게 유혹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병폐가 되풀이 되어왔다. 내부 구성원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한 이유이다. 갑질과 이권에 관여하는 행위를 차단하도록 시스템 개선과 더불어 인식개선이 부족한 구성원들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패널티가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하는 척 하는 문화가 조직 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일보다는 너무 보여주기식 일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종 보고서 상에서는 그럴 듯 하게 보이지만 현장과는 괴리되고 동떨어진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충대충 이라는 인식과 보고서나 사진 상에서는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현실 곳곳에서는 부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일하는 문화조성이 필요하다. 입으로만 일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 앞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보다는 현장에서 실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셋째는 정치권에서 유발시켰지만 어느새 건설업계와 공공조직에서도 뻔뻔함과 남 탓으로 돌리는 문화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 보니 앞뒤 분간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또한 개인이나 부서, 조직의 이윤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이번 사태를 초래한 면이 있다. 뻔뻔함이나 남 탓을 하는 구성원들에 대해 강력한 패널티 적용이 필요한 이유이다. 뻔뻔함으로 인해 얻었던 이윤추구에 대해 몇 백배, 몇 천배의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외에도 조직에 끼친 손해액에 대해서는 구성원 각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여야 한다. 영국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이 틀렸을 때는 감리단장과 감리원 사이에서도 공문으로 문서를 서로 주고받는다고 한다.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와 더불어 회사에서 청구되는 구상권에 대해 그 책임을 확실히 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인적 측면에서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문화가 형성된다면 개인의 책임의식 강화는 물론이고 불법이나 부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는 사법부의 기업에 대한 봐주기식 판결 등에 따른 영향도 크다. 사법부는 사실상 이런 부실문화를 조성한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형 사고들이 발생하면 건설업계나 공공조직에서는 책임회피를 위해 비싼 수수료를 주고서 대형로펌을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방어하였다. 이때 사법부는 거시적 측면보다는 특정 사안의 프레임 속에서 법리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그 결과 부실을 초래했던 건설업계와 공공조직에 대한 책임을 면제시켜 주었던 측면이 있었고 그 결과가 관행처럼 되풀이 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법조계의 시장만 확대시켜 주면서 건설업계는 부실공사를 또다시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제 안전이나 품질은 정부가 강조하던 시대에서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시대로 변했다. 이러한 시대흐름에 맞게 사법부도 국민들의 안전과 품질을 위해서는 기업들에게 면제부를 주기 보다는 강력한 처벌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실공사 방지와 공공기관 혁신을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 개선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먼저 건설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이런 관행과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이번 사고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
최명기 대민국산업현장교수(건설) c95019@naver.com
(한국건설품질기술사회 부회장)
출처 : 경제포커스 (economy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