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해넘이가 아름다운 서해, 나는 지금 그 곳으로 떠난다
오늘도 해가 지고 있다. 매번 보는 해이건만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저 해는 어제 그것이 아니니라.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날마다 대할 수 있는 해넘이, 사람들은 한 해 끝자락의 해넘이를 좇아 여행을 떠난다. 서해의 어느 섬에서 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아파트 옥상에 올라 북적이는 세상사 한가운데로 고즈넉히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사람들은 마지막 해넘이를 가슴으로 환송하고자 한다. 여기, 서해 너머로 지는 장엄한 해넘이가 있다. 광활한 서해바다로 잠겨가는 해넘이는 장엄하다 못해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 |
수평선에 해가 닿는 순간 바다는 오메가(Ω)를 그리며 해를 안아 들인다. 바다에 몸을 담근 해는 거대한 용강로의 쇳물처럼, 서서히 몸을 이글거리며 꿈틀거리며 바다에 녹아든다. 이 순간 지상의 모든 것들은 얼굴을 가리고 묵상에 잠긴다. 모든 절망.불신.증오 등은 저 넘어가는 해처럼 모두 다 날려버리자. 제 한 몸을 활활 불사르며 내일 다시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품자. 해너미는 해돋이와는 또 다른 평화로운 감흥이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지는 해는 빨갛게 자기만의 색깔을 나타내며 흔적을 남긴다. 낭만적인 겨울여행의 테마를 꼽자면 단연 '낙조 감상'을 떠올릴 만하다. 한해를 마감하는 즈음 바라보는 낙조는 낭만과 서정,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시뻘건 불덩이가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장관속에 지난 한해의 묵은 상념도 함께 담아 보낸다면 가뿐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다. 경기도 서해안 지역에는 손꼽히는 해넘이 명소가 많다. 화성시의 궁평리, 제부도, 국화도, 입파도와 안산의 대부도에 있는 구봉도, 시흥의 오이도와 월곶포구, 또 바다로 지는 해넘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해넘이 명소를 만나보자.
궁평리 해송 사이로의 화려한 낙조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는 빽빽이 들어선 해송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가히 일품이다. 서신면사무소 지나 계속 직진하다 보면 오른편으로 회단지 표시판이 나오는데 그 길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회단지 옆에 울창한 해송의 군락을 만날 수 있다. 그 해송 사이로 바라보는 바다는 부드러운 모래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우아한 해송을 옆에 두고 천천히 바다 사이로 빨려드는 빠알간 해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이 해넘이의 순간포착을 잡으러 이곳을 많이 찾는다. 간조시에는 회단지 지나서 궁평리 포구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건너면 해송 사이로 보이는 해넘이와는 사뭇 느낌이 다른 크고 작은 어선들이 배경이 되어 주는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바다에서 해가 지는 광경은 바라보는 장소에 따라 다른 감흥을 준다. 대개 해넘이는 당일의 날씨와 구름 모습, 바람 등에 따라 아름다움이 좌우되지만, 같은 조건에서라면 해안 경치가 뛰어난 곳에서 보는 편이 훨씬 감동적이다. 해 질 무렵 운 좋게 갈매기가 떼를 이뤄 날고, 고깃배들이 금빛 물결을 헤치며 지난다면 더욱 그림 같은 풍경이 될 것이다. 해넘이를 감상하고 난후 주민들이 직접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구경하거나 싼값에 살 수 있고 회단지에서 신선한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다.
제부도의 아름다운 전설 매바위 낙조
궁평리와 20여분 거리의 제부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며 하루에 두 번 열리는 해할현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바닷길이 열리는 신비한 섬으로만 알지 아름다운 제부도의 낙조를 아는 이들은 적다. 제부도 왼편으로 가다 보면 매바위 또는 촛대바위라 불리는 묘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봉우리가 뾰족해서 촛대바위라고도 하고 매가 살았다고 매바위로도 불리며 봉우리가 세 개라고 삼형제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뾰족한 바위 사이로 지는 해넘이는 장관이다. 해가 저리도 크던가? 놀라움은 곧 경외심마저 갖게 만든다. 거대한 크기로 우리를 압도하는 제부도의 낙조는 신비로운 자연 앞에 작아지는 내 자신을 느끼며 겸손함을 배우게 한다. 제부도 낙조 감상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꼭 통행시간을 알아보고 가야한다. 올 12월 31일의 통행시간은 새벽 6시 9분부터 13시 58분까지 1차 통행길이 열리고 2차는 19시 46분부터 02시 29분까지 통행길이 열린다. 그러므로 2005년 마지막 해넘이를 감상하려면 낮 2시 전에 들어가서 산책이나 조개구이를 즐기다 해넘이를 감상하고 저녁 8시 이후에 섬을 나오면 된다.
* 문의 : 화성시 시설관리공단 031-355-3924, 031-369-2360
국화도, 입파도 섬에서의 추억만들기
1년에 해돋이·해넘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대개 100일 미만이라고 한다. 따라서 특정한 장소·날짜에 매달리지 말고, 날씨 등을 고려해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오는 해를 반갑게 맞으러 동해안으로 떠난다. 그러다보니 많은 인파가 몰려 해맞이 보러 가는 길은 교통체증으로 고생길이 된다. 자칫하다가는 밤새 고속도로에 갇혀 떠오르는 해를 놓칠 수도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투자하며 짜증나는 고생길을 갈 필요가 있을까? 마음을 비우고, 여유로움을 가지고 여기 서해로 오라. 서해에서도 해맞이를 할 수 있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의 국화도와 입파도는 일출, 일몰을 다 감상할 수 있는 섬이다. 물론 동해에서 일출을 맞는 이들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에 일출을 대하겠지만 그게 뭐 대수랴. 오가는 시간과 피곤함을 감안하면 훨씬 이득이다. 또 작은 섬에서 느끼는 정서는 동행한 이들과의 추억을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2005년 12월 31일 저녁엔 마지막으로 지는 해에게 한 해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과 아쉬움을 다 떨쳐버리고 2006년 1월 1일 새벽에는 찬란하게 용트림하며 떠오르는 해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물받자. 국화도와 입파도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한 자리에서 가능하다. 작고 예쁜 섬이라 바닷바람 맞으며 산책하기에도 좋고 주민들이 직접 잡아온 회를 먹으며 낭만의 겨울여행을 완성할 수 있다. 유의할 점은 국화도와 입파도에는 정기여객선이 없기 때문에 꼭 섬에 가기 전에 국화도 이장과 미리 연락을 해서 배와 민박할 곳을 정해놓고 가야 한다. 장고항에 가서 연락해 둔 배를 타고 들어가면 섬까지는 5분에서 10분밖에 안 걸린다. 배는 보통 10명까지 탈 수 있고 이용요금은 왕복 5만원이다. 4인가족 두 집이 간다면 비싼편은 아니다. 민박 5만원선.
* 문의 : 011-433-0405 박광식
오이도와 월곶포구의 황홀한 해넘이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와 월곶포구도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이다. 영동고속도로 월곶IC로 빠져나와 좌회전해서 계속 가다보면 우측으로 오이도가 나온다. 간척공사로 지금은 섬 아닌 육지 같은 섬이 되어 버렸지만 갯벌이 있는 바닷가의 낭만은 살아 있다. 싱싱한 회와 각종 해산물을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바닷가 둑 위로는 산책로가 잘 마련되어 있다. 군데군데 바닷가를 향해 놓여져 있는 벤치에는 다정한 연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일어날 줄을 모른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어도 그 다정한 연인들은 계속 그렇게 앉아 있을 것 같다. 간조시에 오이도 갯벌은 장관이다. 해가 넘어갈 즈음 해에 감염된 듯이 갯벌 전체가 붉게 물드는 모습은 온 몸에 전율이 온 지경이다. 한겨울에는 갯벌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럽지만 춥지 않은 날엔 아이들이 장화를 신고 갯벌로 들어가 정신없이 작은 게나 조개 캐기에 여념이 없는데 황홀한 금빛에 물든 갯벌과 그 갯벌에 있는 아이들도 금빛으로 물들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또 오이도 오기 전 옥구공원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도 시흥시에서 8경으로 지정할 만큼 아름답다. 오이도 가까운 곳의 월곶포구는 포구의 특성상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포구로 귀환하는 어선들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가 예술이다. 이글거리며 바다로 침몰해 가는 커다란 해를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어선들... 엄숙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해넘이의 장관 앞에 어선들도 작아져 어서어서 피해 가는 것 같다.
* 문의 : 시흥시 문화관광과 031-310-2061
구봉도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낙조 일기
지금은 섬 아닌 섬, 대부도 끝머리에 구봉도란 지명의 긴 부리가 있다. 옛부터 영혐한 약수터로 이름난 곳이어서 한여름 복날이면 경향 각지에서 땀띠를 다스리려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곤 했다고 한다. 길게 이어진 봉우리가 일곱이나 여덟인 것 같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선 열이 넘어 보이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은 그것을 아홉으로 보아 구봉도라 이름지어 불렀나 보다. 요즘은 이곳의 명물인 바지락 칼국수나 싱싱한 회맛을 즐기려는 미식가들에 의해 일대가 차츰 유원지화 되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십리가 넘는 긴 해변을 따라 걷노라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한가로이 누워 있는 크고 작은 섬 사이로 떠다니는 어선들. 그리고 장엄한 서해의 낙조. 구봉도 해안에는 두 개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일컬어 구봉이 선돌이라 부른다. 작은 바위는 '할매' 큰 바위는 '할아배' 같다하여 할매 할아배 바위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 특이한 형태의 두 바위 사이로 지는 해가 긴 여운을 남긴다. 또한 구봉도는 아직 비포장 길이 많아 산악자전거 동호회들이 산악자전거를 즐기기도 하고 비포장도로라 그런지 오염 안 된 작은 어촌의 멋이 남아 있다. 그리고 구봉이 선돌 오른쪽으로 외딴 후미진 곳에는 동쪽해안의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곳이 있는 데 이곳은 만조 때에는 배가 지나가는 뱃길이 되기도 하지만 간조 때에는 물이 빠져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조개캐기는 금지이다. 어민들이 어린 종패를 키우는 곳이어서 감시가 만만치 않다. 조개 캐다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니 구봉도는 눈으로만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왕송호수의 호젓한 해넘이
바다의 해넘이만 해넘이더냐. 경기도 의왕시의 왕송호수의 해넘이도 상당히 아름답다. 제방길이가 640m에 이르는 왕송호수는 수면이 넓고 붕어.잉어 등 물고기가 많으며, 특히 원앙과 같은 천연기념물을 종종 볼 수 있어 철새도래지로서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잔잔한 호수 위로 하얀 뭉게구름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구름 사이로 강렬하게 뻗어나오는 태고의 신비한 빛, 그 빛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철새들... 왕송호수만의 해넘이 풍경이다. 뭐랄까. 장엄허고 엄숙한 바다의 해넘이는 기가 눌려 말문이 딱 막혀버리는데 비해 왕송호수의 해넘이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속삭이고 싶어진다. “들리니? 붉은 노을의 속삭임이...” 낚시꾼들만 종종 찾을 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왕송호수는 그래서 깨끗하고 아름답다. 의왕시에서는 약36만평에 걸쳐 철새 도래지와 야생수초 집단군락지인 환경자원을 살리고 현재 주변에 마련된 자연학습공원과 철도박물관, 하수처리장, 도예·한지체험관 등 체험시설 확충과 생태 및 편의시설을 갖춘 '자연생태형 휴양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 문의 : 의왕시 문화관광과 031-345-2064
청평호반으로 사라지는 붉은 해
가평군 설악면쪽의 청평호반으로 지는 해는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와는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볼거리이다. 청평호 옆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길을 달리며 낙조를 감상할 수도 있고 예쁘고 낭만적인 카페에 앉아 차한잔 마시며 느긋이 낙조를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밖에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배웅하는 해넘이도 멋있겠지만 추위가 싫다면 가평의 청평호수를 찾아 그윽한 분위기의 해넘이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날씨만 좋다면 수면위로 빨려들어가는 시뻘건 불덩이를 온전히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평택에 있는 서해대교의 해넘이나 수원시 화성의 서장대와 연무대에서 도심으로 지는 해넘이도 또 다른 운치를 준다. 동해에 해돋이가 있다면 서해엔 해넘이가 있다. 연말연시에 해돋이와 해넘이 여행을 다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뜻 깊은 일이 없을 것이다. 동해쪽은 우람한 해돋이는 있으나 운치 있는 해넘이를 보기는 어려운데 비해 서해쪽에서는 멋진 해넘이 또는 해돋이. 해넘이를 다 볼 수 있다. 비교적 교통이 덜 혼잡하다는 것도 서해안쪽 해돋이·해넘이 여행의 장점이다.
지난 시름 모두 안고 해가 저물어 간다. 저리도 아름답고 웅혼한 마무리 앞에 내가 서 있다. 저 서해의 일몰이 쓸어 모아 담고 가는 대자연의 영혼과 에너지는 내일 또 다른 힘으로 이 땅에 쏟아지리라. 그 쏟아짐 속에 생명과 희망이 가득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