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03[12] 재능이 부족하고 신병이 있으므로 체차해 주기를 청하는 평안 감사 조성하의 계
○ 평안 감사 조성하(趙成夏)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사리에 어둡고 용렬하며 조그마한 장점도 없다는 것은 성상께서 환히 다 알고 계시는 바인데도, 외람되이 가까운 심장부에 자리하여 비호해 주시는 은택을 후하게 받고 있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벼슬길에 올라 털끝만큼도 도모한 것 없이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쳤으며, 40이 되려면 아직도 10년이나 남았는데 과분한 작질은 이미 이경(貳卿)에 올랐으니, 거처함에 항상 조심스럽고 두려워 깊은 계곡이 앞에 임한 듯합니다. 의당 한산직(閒散職)에 있으면서 분수대로 있는 힘껏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보답 아닌 보답이 될 터인데, 이제 평안 감사를 특별히 제수하심이 어찌하여 형편없는 신에게 잘못 미쳤단 말입니까.
무릇 감사의 중요성이야 어느 도(道)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울타리가 되고 보익(補翼)이 됨은 관서 지방이 으뜸입니다. 이곳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옛 도읍지이며 연주(燕州), 계주(薊州)와 경계를 접한 요충지로 사신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배와 수레가 다 모이는 곳입니다. 산천은 아름답고 재화(財貨)가 폭주하며, 풍속은 도전적인 것을 숭상하여 연(燕) 나라나 대(代) 나라 같은 분위기가 있고, 인구는 많고 물산은 풍부한데다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의 수려함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곳을 제어하고 어루만지는 책무는 오직 그곳 우두머리를 적임자를 얻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근래에는 온갖 폐단이 일시에 모여 들어 명망 있는 도읍이 완전히 영락하여 다시 예전의 성대함은 간데없고, 하급 관리들이 농간을 부려 창고의 비축은 바닥이 나고, 호적이 문란해져 군대는 인원이 비고, 군사 훈련이 해이해져 변방이 소홀해졌으며, 생산 활동이 폐기되어 민력이 고갈된 상황입니다. 이렇게 온갖 폐단을 바로잡아 구제해야 할 때에는 진실로 진양(晉陽)을 나라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게 한 진(晉) 나라 윤탁(尹鐸)이나 북방을 잘 방비하여 요(遼)의 침입을 막아낸 송(宋) 나라 구준(寇準) 같은 이가 아니라면 어렵습니다. 전하께서는 신에게서 어떤 점을 취하였기에 이런 직책을 들어 주시면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셨는지요?
신은 나이도 어리고 식견도 짧아 주군(州郡)을 다스리는 일을 익히지 못하여 백 리 되는 작은 고을의 지방관으로 나가도 감당할 수 없을까 늘 걱정스러운데 갑작스레 43개 주(州)를 관할하는 임무를 맡기시니, 이는 3척밖에 안 되는 난쟁이에게 1000균(勻)의 짐을 강제로 떠맡기거나 귀머거리에게 오음(五音)을 일러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신은 의리로 보아 즐거움이나 근심 걱정을 함께하여야 하는데도 공효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었으니, 이제 보답해야 하는 처지에서 어찌 편하고 험난하고를 가리겠습니까. 하물며 깃대를 끼고 갖옷의 띠를 느슨히 하고서 뛰어난 강산과 누대가 있는 곳을 관할하며 관직 생활을 하여 자사(刺史)에 이른 그 자체가 또한 영광인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의(毛義)가 수령으로 삼는다는 격문을 받든 것은 그의 개인적인 사정상 다행스러워서였습니다만, 왕양(王陽)이 질책하면서 취했던 것이 어찌 평소의 뜻이 부족해서였겠습니까. 진실로 역량을 헤아려봄에 맞지 않고 재능을 헤아려봄에 억지로 하기 어려워서였으니, 결국엔 일을 그르쳐 특별히 간택해 주신 성상의 사람을 볼 줄 아는 혜안에 누를 끼치고 우리 전하께서 미천한 신을 총애하고 영광되게 하신 뜻을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두려워 떨며 감히 무릅쓰고 복응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은 근래 환절기로 인해 갑작스레 학질에 걸려 병상에 누워 지체하면서 내팽개쳐 두고 살피지 않은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증상으로는 억지로 계책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특명을 내리심에 더욱 송구스럽고 위축되어, 이에 감히 정황을 다 드러내어 우러러 성상께 아룁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굽어살피시어 신에게 새로 제수하신 평안도 관찰사의 직임을 빨리 체차하여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다 다행하게 해 주시기를 크게 바라 마지않습니다. 신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가서 경건히 공무를 살피라.”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강여진 (역) ┃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