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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과 핵발전소
이응인
형님, 매화꽃 향기가 온 마을에 가득한 봄날입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요? 그 동안 뉴스를 통해서 밀양 송전탑 싸움이나 이치우 어르신 분신 소식은 들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오늘은 밀양 산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고압 송전탑과 맞서 싸우고 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드릴까 합니다.
도지사가 보내온 종이 한 장
2007년 12월, 산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경남도지사가 보낸 편지가 하나 왔습니다.
‘산업자원부장관이 전원개발촉진법(電源開發促進法) 제5조의 규정에 의거 승인한 765kV 신고리북경남송전선로(2구간) 건설사업에 귀하 소유 토지가 편입 예정되어 동법 시행령 제7조의 규정에 의거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사항 열람을 안내하오니 기한 내 열람하시기 바랍니다’
편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76만5천 볼트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당신 땅이 들어가니, 그 내용을 확인하시오.’라는 거였어요. ‘아니, 내가 허락해 준 적도 없는데 내 땅이 들어가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그러고 보니 2년 전에 송전탑 몇 개가 선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소리로 들은 것도 같았습니다.
한전은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765kV 초고압의 새로운 송전선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간혹 보게 되는 송전탑은 345kV가 가장 고압인데, 765kV는 345kV의 5배 전력량을 수송한다고 합니다.) 그러곤 2005년에 주민설명회를 해당 지역의 주민들 몰래, 몇몇 사람들만 모아 놓고 해치웠습니다. 얼마 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잠깐 갔었는데, 시골 어른들로서는 난생처음 해 보는 데모였어요. 그때부터 송전선이 지나가는 5개 면 주민들이 힘을 모아 대책위를 꾸리고 싸움을 시작했지요. 그런데 대책위가 송전선로의 문제점을 짚고 주민 의견 반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을 때, 산업자원부에서 2007년 12월 30일자로 이 사업을 승인해 준 겁니다. 뒷일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항의 집회로 밀양이 발칵 뒤집어졌어요.
산골 마을에 높이만 해도 100m가 넘는, 40층 아파트와 맞먹는 철탑이 들어서고 76만5천 볼트의 전압이 흐른다면 그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집이 있고 농토가 있는 이들에게 달리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주거나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단장면의 70대 노 부부는 30년 동안 손톱 발톱이 닳도록 비탈진 산을 개간하여 밤나무 단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에서 한 해 7~8백만 원 정도 벌어서 두 노인이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밤나무 단지로 송전선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밤나무밭은 항공방제라고 해서 헬기로 약을 칩니다. 그런데 고압 송전선이 지나가면 헬기가 못 뜨니 약을 칠 수 없게 되고, 밤 농사는 지을 수 없게 됩니다. 살아갈 방도가 막혀버린 노부부에게 보상금 154만 원을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더랍니다. 송전선이 지나가는 곳에서 비슷한 피해 사례가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왜 고압 송전탑인가?
우리나라는 현재 21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세계 5위의 핵발전 국가라고 합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고리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수명이 다한 걸 최근 재가동해서 잦은 사고를 일으키는 고리 1호기부터 4호기까지 있고, 그 옆에 신고리 1호기가 있습니다. 신고리 2,3,4호기는 건설 중이고, 거기다 5,6호기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기장군청까지 11km,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22km, 부산시청까지 26km거리에 모두 10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됩니다. 지난 연말에는 삼척과 영덕을 신규 원전 후보지로 발표하기도 했지요. 지난 해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세계는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핵발전에 목숨을 걸고 덤비는 것 같습니다.
핵발전은 장거리 송전을 전제로 합니다. 전기가 필요한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신고리 원전이 건설되면서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수도권에까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로라고 했다가(이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서울에 전기가 필요하면 핵발전소를 서울에 지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그 뒤로는 영남권에 공급하는 선로라고 하고, 그때그때 말을 바꾸어 왔습니다.
게다가 2010년 12월까지 송전선로 공사를 끝마치지 않으면 하루 28억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주민들을 협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2월에 신고리 1호기가 가동되었습니다. 송전선로가 없는데 어찌 되었나 했더니 기존의 345kV 송전선로로 전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책위에서 자료를 찾고 검토한 결과 신고리 2,3,4호기가 완공되어도 기존의 선로로 전기를 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세우려고 계획 중인 5,6호기만 건설하지 않으면 765kV 송전선로가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주민들은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기존 선로를 보강하면 구태여 새로운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비용도 절감되고 주민 피해도 없어 일거양득이다. 이미 실용화 단계에 들어간 전력 손실 제로의 초전도 캐이블을 이용해 지하에 매설하자. 지하 매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올해 착공 예정인 함양 울산 고속도로를 이용하자.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정작 대안을 내 놓아야 할 한전은 765kV 송전선로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전자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답답한 밀양의 주민들이 765kV 송전선이 지나가는 충남 당진을 찾아갔습니다. 철탑의 기둥 하나가 두 사람이 팔을 벌려서 껴안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송전탑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100m가 넘는 높이에 놀랐습니다. 충남 청양군의 한 마을은 154kV가 지나가는 곳인데도 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요. 경기도 양주시 장흥 지역의 경우도 변전소와 송전탑으로 인해 주민들이 암 발병을 호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은 어디나 소나 돼지를 키워도 새끼가 죽어서 나오거나 기형이 나왔다고 주민들이 증언했습니다. 게다가 전자파 때문에 벌들이 날아오지 않아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하니 과수원이 농사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송전선이 지나가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임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도 한전은 ‘송전선로 주변의 전자파는 833mG 이하로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제시한 833mG는 단기 노출 기준입니다. 송전선 주변은 24시간, 365일 전자파에 노출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세계보건기구도 3mG 이상에 노출되면 소아 백혈병이 1.7배 증가한다는 점을 인정해, 4mG 이상의 지속적인 전자파를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전자레인지는 전자파 방출량이 76.9mG, 진공청소기는 52.7mG, 냉장고가 3.3mG입니다. 그러니 833mG라는 기준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부터 주민들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송전탑을 없애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전의 공사 방법
한전이 2011년 4월 4일부터 공사를 강행하자 마을 어른들은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아섰습니다. 한전은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공사를 하지 못한 데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겠다고 을러댔습니다.(이러면 순박한 시골 어른들은 대부분 무너진다는 사실을 한전은 그 동안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책위는 14일부터는 상동면 121번 철탑 부지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한전은 대화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라는 게 아주 희한합니다. 한전은 보상 협의만 하겠다고 나오고 주민들은 공사 중지와 초전도 케이블과 같은 대안 마련을 요구합니다. 한전은 주민들이 보상 협의 이외에 ‘초전도’의 ‘초’자만 꺼내도 대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면서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겁을 줍니다. 대화는 중단되었고 7월에 공사가 재개되어 현장에서는 다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주민들은 서울로 올라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김황식 총리를 규탄하고 노숙 투쟁까지 들어갔습니다.
10월에 국회 지식경제위 국정감사에서 밀양 송전탑 문제가 다루어져, 국회의원들이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전 사장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21일, 밀양 시청에서 주민 대표와 한전 사장의 간담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한전 사장이 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할머니 두 분이 수행원에게 짓밟히는 사고 외에는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주민들은 만난 것이지, 송전탑 문제와 핵발전에 대한 아무런 대안을 가지고 있질 않았습니다. 11월부터 철탑이 들어서는 현장에 나무를 베어내는 공사가 벌어졌습니다. 이른 아침, 엉금엉금 기어서 산에 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나무를 끌어안았습니다. 공사 인부들의 전기톱이 다가오면 지팡이로 밀어냈습니다. 인부가 다른 나무로 옮겨 가서 ‘워리 워리.’ 개를 부르듯 손짓을 하면 그리고 가서 나무를 끌어안았습니다. 이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어르신들은 공사장 입구에 움막을 짓고, 낮에는 공사를 막고 밤에는 교대로 감시를 하면서 한겨울 추위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신문에 발표된 저의 시 ‘겨울 송전탑’과 ‘평밭 할매의 시’도 움막에 갔다와서 쓴 것입니다.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이후
지난 1월 16일 저녁,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어르신이 분신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습니다. 이날은 새벽부터 공사 인부들이 아니라 용역 50명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들이닥쳤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이치우 할아버지 형제의 논 앞에서 마을 노인들은 20대 용역 50명과 밀고 당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온종일 용역들과 맞서다 지친 저녁, 용역들은 내일 오겠다고 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이치우 어르신이 자신의 논에서 포크레인을 빼라고 외쳤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저녁 이치우 어르신은 “내가 죽으면 이 억울함을 알아주겠지.”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당겼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민들은 한편으론 어르신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내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밀양시청 앞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영남루 아래서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3월 2일에 고인의 49제가 열렸고, 3월 7일 장례가 치뤄졌습니다. 17일에 이치우 열사 추모문화제(제1차 탈핵희망버스)도 열렸습니다.
지난 수요일 촛불 집회 때입니다. 발언에 나선 주민 한 분이 한전에서 개별적으로 전화를 해서 회유하고 서로 이간질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주민들은 4월 11일 총선이 끝나면 다시 공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도 송전탑이 백지화될 때까지 싸우자며 쨍쨍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형님, 이 싸움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지 않고 젊은 우리들이 했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깨우쳐 아는 만큼 매일매일 실천하며 7년 동안 싸워왔습니다. 이제 그분들은 보상의 문제를 떠났습니다. 송전탑 문제의 근원이 핵발전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몸을 부딪쳐 분명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형님, 전기는 대도시에서 대량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에 따른 장거리 송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도시의 현란한 불빛 뒤에는 산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생명줄이 걸려 있고, 그 뒤에는 핵발전소를 짓고 유지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건설재벌들과 한전이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불편한 진실을 피해가려고 할 때, 밀양 산골의 어르신들은 산에서 먹고 산에서 자면서 핵발전소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 저도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건강한 글, 생명의 글 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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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인 : 1987년 무크지 <전망> 5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그냥 휘파람새>,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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