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면 저리苧里) 유래
동쪽은 가는골, 서쪽은 모시골, 남쪽은 입암면 연당리, 북쪽은 상청리로 이어지는데 논이 많고 살기에 넉넉한 곳이다. 본래 영양군 청초면의 지역으로서 모시가 많아 생산됨으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저곡(苧谷)이라고 한다.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쳤는데 소청동(小靑洞)의 일부를 떼어다가 합하여 저리라고 하여 청기면에 들게 했다.
[마을의 특징]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 가는골 바위인데 이를 일러 단장바우(丹粧岩)라고 한다. 옥녀봉의 옥녀가 가마소에서 머리를 빗고 이 바위에서 단장을 하였다고 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모시골ㆍ저동(苧洞)
북부지방에서 나는 모시중 가장 질이 좋은 모시는 청기면 저리 모시였다. 이곳에서 나는 모시는 여름철 양반들의 한복과 두루마가 감으로 사용되었고, 이러한 산물이 이 곳에서 나기에 살림살이 또한 넉넉하였다.저동이라 하면 모시가 많이 나는 곳, 부자가많은곳, 부자마을로 통하였는데 그러한 사연으로 해서 동명을 모시골이라 했다 한다.(김찬성(63)제보)
모시골을 한자로 뒤치면 저리가 되니 한자의 뜻을 빌려다가 적어 쓴 것이다.
*개능골ㆍ가는골ㆍ간곡ㆍ세월(洗越)
옛날에 이 마을로 가자면 반드시 빨래 터를 지나야 했기에 세월이라고 하며 마을 앞에 큰 바위가 있다 하여 양곡(良谷)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간곡(澗谷)으로 되었다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 마을의 모양새가 범이 잠을 잔다는 뜻으로 범숙이라 하다가 범이있으면 반드시 사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자가 있는곳을 가마봉 또는 사자봉이라 했고, 범과 사자가 있으면 개가 있어야 했기에 마을 전체를 개능골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가는골이 되었다고 한다.(김찬성 (63)제보)
가마봉-양곡-간곡의 걸림으로 보아 감골이 본래의 이름이 아닌가 한다. 양곡의 양(良)은땅 이름을 고칠 때에 그칠 간(艮)에 점을 더하여 어질 양(良)으로 썼던 것이며, 이는 북방 또는 물신ㆍ땅신을 드러내는 문화기호론적인 풀이가 가능한다. 나머지 이름들은 여기에 다 의미 부여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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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34, 212) 청기면 저리(苧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쫴매, 가아, 디게, 댁낄, 그랑, 엄첸, 방구, 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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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면은 대부분이 산으로 된 지역 이지만
저리(苧里)는 논농사를 질(짓을)수 있는
팬팬한 평야가 있는 마실이시더.
본대부터 영양군 청초면 지역으로
디게 조은 모시가 생산되는 꼴짝이라꼬
저곡(苧谷)이라꼬 카니더.
1914년에 행정구역 바낄때
기존의 모시꼴캉 소청(小靑)지역 일부를
엄체가 저리라 카면서
청기면에 속하게 됬니더.
(저동ㆍ모시골)
저리마을회관이 있는데로
1960년대경 경북 최고의 질 좋은 모시가
댁낄로 많이 생산되는 꼴짝이라꼬
모시꼴이라 카게 된니더.
저리(苧里)는 모시꼴을 한자로 쓴거시더.
(개능골ㆍ가는골ㆍ간곡ㆍ세월)
마실입구에 그랑캉 빨래터가 있는데
무조건 이 빨래터를 건네야
마실로 들어 갈 수 있는데라꼬 세월(洗越)
혹은 세곡(洗谷)이라 카니더.
그후 마실 앞에 근 방구가 있따고
양곡(良谷)이라 카다가,
간곡(澗谷)이라 바까 부르게 된니더.
글코, 풍수상 마실모양은
개캉 닮았따꼬 개능골이라 카다
가는꼴로 바까 부르게 된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