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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문학(Proletarian Literature)
자본주의 계급과 무산계급의 대립이 심하여지자, 재래의 지배계급의 문예에 대립하여 프롤레타리아의 감정ㆍ이데올로기 및 그 생활을 내용으로 한 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계급투쟁을 첫째 목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 신문학사상에서도 1923년경의 신경향파(新傾向派)의 대두에서부터 시작되고,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결성 이래 본격화되어 1935년까지 계속되었다. (학원사: <문예대사전>)
부르조아문학에 대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자각에서 출발하여 그 사상․감정을 반영하는 문학.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 ‘대장장이’, ‘젊은 친위대’, ‘노동자의 봄’ 등 그룹에 의해 이운동이 추진되었다.
1925년 개최된 제1회 전소련프롤레타리아 작가대회에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협회 ‘라프(RAPF)'라는 것이 결성되어 창작 방법을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에 따르게 한다든가, 문학운동을 볼세비키화한다든가 하는 주장을 내세웠으나, 이러한 방법론으로는 길이 막혀 1932년 해산을 하고,
거기에 대신해서 전 소련 작가동맹이 조직되어 프롤레타리아문학을 소련문학이라는 개념 속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계급운동의 정도나 변천에 따라서 프로문학운동의 소장(消長)을 겪었다. 외국의 예를 아메리카에서 보면, 20세기 초두에 프랭크 노리스가 <문어>에서 기업과 인간의 상극을 묘사하고
싱클레어는 <정글>에서 새로운 사회의식이 각성되는 과정을 그렸다. 특히 1929년의 경제공황을 계기로 해서 좌익문학의 폭풍이 일어났는데, 1930년대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나라도 같은 현상을 겪었다. (문원각: <한국문학대사전> 부록)
계급문학(階級文學) 혹은 무산계급문학(無産階級文學). 제4계급문학이라고도 한다. 원래 'Proletariat'란 귀족계급ㆍ승려계급ㆍ시민계급 다음 차례에 오는 계급을 뜻하는 서구적 계층구조의 영어이다.
이 제4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의 전면(前面)에 커다란 세력으로 나타난 것은 러시아혁명(1917) 이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프로문학은 러시아혁명의 성공과 제1차세계대전 전후의 불안으로 인해 현대사의 전면에 대두한 계급사상에 거점을 둔 문학운동이라 규정된다.
이 프로문학을 엄밀히 살피기 위해서는 광범한 당시의 사회상과 국제관계를 함께 고찰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프로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봄이 편리하다.
첫째, 조직론(組織論)이다. 프로문학은 운동으로서의 조직론의 우위를 갖고 이에 따라 전개되었으므로 비평의 상당한 부분이 조직론에 관계되어 있다. (1) 염군사(焰群社) : 1922년 이적효(李赤曉)ㆍ이호(李浩)ㆍ김홍파(金紅波)ㆍ김두수(金斗洙)ㆍ최승일(崔承一)ㆍ심훈(沈熏)ㆍ김영팔(金永八)ㆍ송영(宋影)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프로문학단체로 그 강령은 ‘본사는 해방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으로 되어 있다. [염군]이라는 잡지를 2호까지 편집했으나 미간(未刊)으로 그쳤다.
(2) 파스큘라(PASKYULA) : 박영희ㆍ김기진 등 당시의 중견문인에 의해 1923년 조직된 일종의 신경향적(新傾向的)인 문학단체.
(3)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역칭으로 카프는 1925년 8월 23일 관철동(貫鐵洞) 이인(李仁)의 계씨(季氏) 집에서 결성, 1935년 5월 21일 해체된 것이다. 이 용어는 러시아의 라프(RAPF), 일본의 나프(NAPF)와 동계의 명칭에 속하고, 직접적인 지령관계(指令關係)는 없었다.
카프는 염군계(焰群系)와 파스큘라계의 합동이며, 그 구성원은 박영희ㆍ김기진ㆍ이호ㆍ김영팔ㆍ이익상ㆍ박용대ㆍ이적효ㆍ이상화ㆍ김온ㆍ김복진ㆍ안석영ㆍ송영ㆍ최승일ㆍ심대섭ㆍ조명희ㆍ이기영ㆍ박팔양ㆍ김양(金陽) 등이다, 카프가 사회적 거취를 분명히 헌 것은 1926년 [문예운동]이라는 준기관지를 발간한 이후로 봄이 통설이다.
카프의 면모 과정은 몇 차례의 방향 전환에서 볼 수 있다. 제1차 방향 전환은 1927년 9월 종래의 자연발생적 단계에서 계급 이데올로기에 의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강조하는 단계였다. 이 무렵 카프 속에 제3전선을 들고 나온 세칭 동경유학생 소장파 조중원ㆍ김두용ㆍ한식ㆍ홍효민ㆍ이북만 등이 등장한다.
제2차 방향 전환은 1931년을 전후하여 소장파들이 헤게모니를 잡아 카프가 매우 강경한 노선을 지향하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 일체의 중도적 탈협주의를 배격하고 전투하는 계급의식을 내세웠으며, 구체적으로 그것은 ‘전위(前衛)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와 ‘당의 문학’이라는 두 명제로 요약된다. 이때는 안막(安漠)ㆍ김남천(金南天)ㆍ임화(林和)ㆍ권환(權煥) 등이 중심분자였고, 구(舊) 카프의 박영희ㆍ김기진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1년 2월에서 8월까지 70여 명이 검거되었는데, 그 간접적 원인은 신간회(新幹會)의 해체, 카프의 볼세비키화(化), 동북사변(東北事變) 등이며, 직접적인 원인은 ‘무산자사건(無産者事件)’, 영화 <지하촌(地下村)> 사건이다. 이 1차 검거사건에 이어 1934년 2월에서 12월까지 80여 명이 검거되는 세칭 전주사건(全州事件)이라는 제2차 검거사건이 일어났다. 이 검거는 ‘신건설사(新建設社)’라는 연극단체가 뿌린 바라에서 발단된 것이다. 그러다가 1935년 5월 21일 임화ㆍ김팔봉과의 협의 아래 김남천이 해산계(解散屆)를 경기도경찰국에 제출함으로써 카프는 해체되었다.
둘째는, 자체내의 논쟁이다. 프로문학의 발전 과정은 자체내의 논쟁과 대외적인 논쟁을 동반하면서 전개된다. 우선 내용과 형식 논쟁이 있다. 목적의식기(目的意識期)에 접어든 1927년에서 1930년까지 카프의 창작방법론에서 야기된 이 논쟁은 프로문학의 원론(原論)운동으로서의 정책적 측면의 갈등이라 규정된다. 이 논쟁은 박영희의 작품 <지옥순례(地獄巡禮)>를 두고 김기진이 ‘소설이란 하나의 건축이다. 기둥도 석가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입혀놓은 건축이 있는가’라고 비판한 데서 발단되었다. 이를 둘러싸고 박영희ㆍ권구현(權九玄)ㆍ양주동(梁柱東)ㆍ염상섭(廉想涉) 등의 복수적 논쟁으로 발전했다.
결국 이 논쟁은 정책적 레벨에서 김기진의 자설철회(自說撤回)로 끝났지만, 결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문예학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쳐들어오는 적을 격파하기 위해 응급히 제작하는 장검(長劍)에서는 백인(白刃)의 강도(强度)만이 문제된다는 측면이 소위 정책적 규정이다. 그러나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다는 루나찰스키 혹은 콤 아카데미의 문예철학의 규정은 문학의 인식적 기능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아나키스트와의 논쟁이 있다. 방향 전환기에 접어든 1927년초 ‘프로문예 중에 아나키즘 문예오하 볼세비즘 문예의 대립을 상상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가 그가 파지(把持)하는 인생관 내지 사회관에 입각하여 무산계급문예를 수립할 수 있다면, 아나키즘 역시 그의 사상적 견지에서 무산계급예술론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김화산(金華山)ㆍ이향(李鄕) 등에 의해 제기되었다.
아나키즘이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相互扶助論)에 연결된 민중주의(民衆主義)의 일환으로 초기 계급부정사상과는 일치한다. 그러나 이미 계급사상으로 목적의식을 선명히 하는 마당에서는 이러한 불투명한 아나키즘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이어서 대중화론이 있었다. 대중이란 원래 정치적인 개념으로 지도자에 대립되는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대중이란 정치적으로 무자각한 계층이라고 정의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노동자 농민을 뜻한다.
프로문학이 신경향의 자연발생적 본능적 투쟁에서 선명한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방향 전환한 이후에 부딪치는 최대의 난점은 바로 대중화 문제였다. 프로문학을 지식인이 쓰고, 또 읽는 계층 역시 지식인에 국한되어 노동자 농민이 외면한다면, 프로문학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두고 김기진은 문체와 용어의 평이(平易), 낭독에 편하게, 화려하게, 간결하게, 심리묘사와 사건의 기복, 책값을 싸게 할 것 등의 조항을 내세워 대중화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김기진의 이러한 주장은 일제하의 검열 제도도 함께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다분히 통속화에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임화 등 소장파들은 타협주의 내지 항복주의(降服主義)라 하여 계속 강경 노선을 폈다. 요컨대 이 문제는 프로문학이 위로부터의 운동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끝으로 창작방법론이 있다. 프로문학은 그 이데올로기적 지도성의 우위로 말미암아 비평이 주력점(主力點)에 놓였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창작 방법을 지도하는 측면이 현저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 구체적인 것은 변증법적 사실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 전자(前者)는 일본의 이론가 사시하라(藏原性人)의 주장을 김기진이 도입한 것인데, 집요한 사실에서 출발할 것, 사회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고 표현할 것, 전체적으로 파악할 것 등으로 요약된다.
한편, 후자(候者)는 1934년 소련의 제1회 작가동맹규약으로 채택된 것이며, 전자의 공식주위(公式主義)를 오류로 규정하여 사회주의 건설에서 빚어지는 다양성을 고려케 한 것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카프는 많은 혼란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종가(宗家)인 소련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도 아직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었다는 데서 연유된다.
셋째는, 외부와의 논쟁이다. 한국의 프로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자체내의 논쟁과 외부와의 논쟁은 동시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외부란 구체적으로는 민족주의 문학파 및 해외문학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외부의 유파들은 모두 프로문학에 의해 대타의식화(對他意識化)된 것이란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프로문학이 퇴조하자 이들 외부의 대립유파(對立流派)들이 자동적으로 소멸되고 만 것은 이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윤식: <한국문학대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