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에세이] 강남에는 거지가 없다?
강남에는 거지를 거의 볼 수 없다. 지하도에도, 육교에도, 번화한 유흥가 길거리에서도 동냥을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노숙을 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주택가 이외에도 극장, 오락실 등 특히 고급 놀이문화가 번창하고 있는 강남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인정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내도 강북 주민들이 강남 주민보다 더 많이 낸다고 한다. 오염된 도시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새인 것처럼 거지들도 인정이 메마른 동네에서 있다가는 굶주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논현동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부랑자 한 사람을 목격했다. 그는 자기 몸보다 훨씬 커 보이는 종이박스를 노끈으로 칭칭 묶고는 질질 끌면서 걸어가던 중이었다. '리어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마치기도 전에 그는 차가 어지럽게 다니는 도로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멀리서 봐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탈진한 상태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몹시도 굶주려 보였다. 하루 종일 끼니를 채우지 못한 그는 목마름과 허기짐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얼른 우유와 빵을 사러 간 사이 그의 주위에 행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도로에 주저앉아 있던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손가락질하고, 피우던 담배꽁초를 종이박스에 버리기도 했다. 그가 우유와 빵을 먹고 있던 중에도 이같은 행태는 계속됐다.
번화한 쇼핑가 옆 쓰레기 하치장에서 추위와 영양실조로 객사한 노숙자가 1주일만에 발견됐다는 기사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쥐가 얼굴을 갉아먹고 있을 동안 여유롭게 쇼핑을 다니던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해서.
구제금융에 실업대란이 겹치자 더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잃고 거리로 나왔다. 다행히 삶의 의욕을 되찾고 기회가 닿아 재취업을 한 사람도 있으나,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채 부랑자로 전락한 사람도 많다. 우리의 무관심과 나아가 이들에 대한 혐오감은 ‘해외토픽’감이다.
부유한 사람일 수록 지갑을 여는 인정이 넉넉해야 할 텐데, '부자가 천국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지가 많다는 것은 나라가 그 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인정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십시일반’, 즉 서로 나누는 인정이 식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유독 강남에서 두드러지는 거지 없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깨끗한 도시 환경'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는 시대가 아닌가. 각박해지는 세상에 휩쓸리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