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8일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선언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거품이 꺼진 뒤 13년 만의 일이다. 2003년 10∼12월까지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7분기 연속 플러스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경기를 뛰어넘는 연 7%에 가까운 성장세다. 아사히 신문 등 일본의 유력 언론들도 ‘순풍이 불고 있다’며 일제히 경기회복에 관한 특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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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안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안고 있는 ‘쌍둥이 적자’를 복병으로 꼽는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는 미국을 오래 버티지 못하게 할 것이란 지적이다. 그렇게 되면 달러는 폭락하게 되고, 급격한 엔고가 다시 한번 일본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란 논리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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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자릿수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은 내부에서조차 과잉생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권위 있는 경제월간지 「중국기업가」는 지난 2월호에서 “2008년까지 전면적인 생산과잉의 위기가 도래할지 모른다”고 경고하며 더 이상 중국 정부의 거시적인 통제가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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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2008년 올림픽 때까지는 공공투자가 계속돼 성장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과도한 설비투자와 토지 가격의 급등 등 버블 징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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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동아시아 전체가 수출 호조에 따른 경기회복의 ‘단비’를 즐기고 있는 이때 유독 한국만은 경제가 정치에 발목을 잡혀 주춤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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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 발전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본지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예리한 경제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하세가와 게이타로(長谷川慶太郞)를 만나 ‘21세기 일본의 경제전략과 세계 경제의 흐름’에 관한 견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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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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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세계에는 큰 전쟁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유는 미국의 군사력에 감히 대항할 수 있는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1극 지배체제’는 피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전쟁이 사라지면 큰 수요는 없어집니다. 물건은 공급과잉이 되고, 노동력은 남아돌게 됩니다. 따라서 물건 값은 올라가지 않고 임금 또한 오르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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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발발한 이라크 전쟁은 앞으로 전쟁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중동 최강의 군사 대국인 이라크가 불과 3주 만에 힘 한번 못쓰고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권위에 도전했던 리비아·이란·파키스탄 등도 모두 미국의 노선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유일하게 북한만이 미국에 대항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국 또한 미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면 패배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은 이번 6자 회담이 끝나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해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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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없으면 인플레이션도 없습니다. 지난 20세기에는 1·2차세계대전과 냉전 등 세 차례의 대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막대한 물자가 소모됐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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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는 완전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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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최근의 경제지표를 보면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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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높은 기술력입니다.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물건을 파는 측이 사는 측보다 약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디플레이션은 ‘파는 측에는 지옥, 사는 측에는 극락’인 셈이죠. 물건을 파는 측은 옛날보다 훌륭한 제품을 보다 싼 값에 제공해야만 사는 측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품질이 좋은 제품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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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난 92년부터 기술특허에 있어서 수출 초과 국가가 됐습니다. 96년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 기술무역에서 수출 초과가 됐죠. 미국에 대해서도, 독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00년에 일본이 기술특허로 벌어들인 돈은 1조1천억엔인 데 비해, 특허료로 외국에 지불한 돈은 4천억엔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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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통계에 따르면, GDP에 대한 일본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3.1%입니다. 미국은 2.7%, 독일은 2.5%, 영국과 프랑스는 2% 정도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죠. 중국은 1%입니다. 연구개발에 있어서 일본이 단연 앞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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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유는 일본의 기계공업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해 있다는 점입니다. 공작기계는 89년 이후 22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82년 세계 공작기계 시장에서 차지한 일본의 점유율은 12%였으며, 2002년에는 무려 26%로 늘어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작기계 4대 중 1대는 일본 제품입니다. 이미 세계의 기계공업과 설비투자의 중심에는 일본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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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현상은 얼마나 지속될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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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전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1극 지배체제’는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달러의 힘과 정치의 힘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치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유연합니다. 정세 변화에도 가장 민감하게 작동합니다. 2002년에 미국에서 엔론 사태가 있었죠. 그 사태가 불거진 지 불과 2주 만에 미국 의회는 분식회계를 제재하는 기업회계부정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처럼 기민하게 시스템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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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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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경영자의 뛰어난 능력이 필요합니다. 첫째 정보를 읽는 힘이 필요하고, 둘째 그 정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내 조직을 개혁해 경영전략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빠른 판단력과 강한 실행력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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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회사는 자산의 흐름을 한푼이라도 흑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 자산을 물건에서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으로 바꿔야 합니다. 연구개발에도 힘을 기울여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로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매출의 2%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과거처럼 대졸자를 정기 채용하는 방식도 버려야 합니다. 젊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근로 의욕이 높은 인재를 모아 회사를 꾸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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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 정기채용을 줄이고 명예퇴직이 많아지면 사회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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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의 시대에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변해야 합니다. 옛날처럼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방심하고 있는 사람은 도태되고 맙니다. 뛰어난 전문지식을 가진 젊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 제도를 개혁해야만 합니다. 고등 교육에 있어서는 기초 학력과 함께 광범위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은 어렵도록 대학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과 일본은 정반대죠. 또한 대학 졸업 뒤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을 늘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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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국립대 공학부나 이학부를 졸업한 학부생 중 40% 이상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5∼6년간 공부하며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기업에서 환영받는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국가는 장학금 제도 등을 확대해 지원해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것이죠. 전문성만 있으면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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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시대에는 어떤 정부가 바람직할까요. 지금 고이즈미 정부는 제대로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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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시대에는 ‘작은 정부’가 바람직합니다. 어느 나라건 행정기구를 간소화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고, 국가 예산을 절약해야 합니다. 일본처럼 역사가 긴 국가는 이를 위해 많은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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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고이즈미 정권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런 방향으로 노력은 하고 있다고 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라는 남자는 일본의 전후 정치가들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마작·가라오케·골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서 직접 전해들은 사실입니다. 내가 10여년 전에 일본의 샐러리맨들을 향해 「마작·가라오케·골프를 하지 말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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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고이즈미 총리가 이 책을 읽고 내게 만나자고 연락해 왔습니다. 그때 그는 ‘나는 마작·가라오케·골프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계에서 늘 고독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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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마작을 하지 않으면 정계에서 부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마작을 하다 보면 돈을 잃게 되죠. 이때 보스는 부하들이 잃은 돈을 대신 갚아줍니다. 대신 부하들은 충성을 바치죠. 가라오케를 하지 않으면 파벌을 만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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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을 한 뒤 대개 2차로 가라오케를 가죠. 함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파벌의 단합을 과시합니다. 골프를 하지 않으면 주말에 다른 정치가들과 교류를 할 수 없습니다. 종종 라운딩을 함께 하면서 중요한 정치 이야기도 나누곤 하죠. 한국에서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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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이즈미란 남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이런 인물은 정말 드뭅니다. 고이즈미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개인 사무소도 없습니다. 그가 당 총재 선거에 나왔을 때 선거대책본부를 차릴 장소가 없어 당 본부에 방 하나를 빌려 썼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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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회의원 때 기사 딸린 전용차도 없었습니다. 나와 만나 식사할 때에도 택시를 타고 왔었죠. 이런 인물이 총리가 된 것은 지금의 일본으로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곡절도 많았지만 도로공단도 민영화했고, 우정성도 개혁했습니다. 과거 같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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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의 시대에는 중국의 영향력도 굉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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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잉생산은 엄청납니다. 예컨대 컬러TV의 경우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것이 7천8백만대나 됩니다. 세계 전체 생산의 60%에 달하는 물량입니다. 이 중 중국 내에서 팔린 것은 3분의 1도 채 안 됩니다. 나머지는 싼값으로 세계 시장에 흘러 들어갔죠. 중국제 32인치 브라운관 컬러TV 1대가 일본의 할인점에서 불과 1만엔에 팔리고 있습니다. 넥타이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넥타이는 무려 5억개나 됩니다. 세계 전체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입니다. 중국제 넥타이는 지금 일본의 1백엔 숍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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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과 일본은 웬만한 상품으로는 중국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만들기 힘든 첨단제품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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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었던 한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고사하고 7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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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연구개발입니다. 지금도 물론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삼성이 왜 성장했는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삼성이라는 한 회사가 한국 전체 연구개발비의 10% 이상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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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으로 치면 한국 전체 연구개발비가 12조원 정도이며, 삼성은 이 중 1조2천억원 정도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했습니다. 도요타자동차는 연구개발비로 지난해 6천8백억엔(약 7조4천8백억원)을 투자했고, 금년에는 9천억엔(약 9조9천억원)으로 늘린다고 합니다. 도요타자동차 한 회사의 연구개발비가 한국 전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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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한국은 극단적인 발탁 인사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능력 평가가 너무 단기적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회사의 인재를 선별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사실 경영자 자신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단기적인 인사가 될 수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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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대주주들이 상의해 경영자를 임명하는 일이 많은데, 종종 밖에서 경영자를 데리고 옵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 경영자와 종업원 사이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기업과 고락을 함께 해온 종업원 가운데서 경영자가 나올 수 있도록 장기적인 인사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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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에도 ‘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이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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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을 구분 짓는 기준은 경제정책을 시장 기능에 맡기는가 아니면 인위적으로 조정하는가의 차이입니다. 예컨대 시장의 논리와 무관한 정책으로 부동산값의 폭락을 부추기는 등의 정책을 펼친다면 ‘나쁜 디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됩니다. ‘좋은 디플레이션’은 생산력을 높이고, 새 기술을 도입해 품질 좋은 제품을 싼 값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한국도 경제를 정책으로 조절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시장의 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소비를 촉진한답시고 과거처럼 신용카드를 남발하거나 과도하게 부동산 대책을 펼치는 등의 행위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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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호조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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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아시아 제국의 관계는 공생 관계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최대의 수출선인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아시아 국가들은 예외 없이 대미 무역흑자여서 달러가 크게 유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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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외환보유고가 가장 늘어난 나라는 일본으로 약 2천억 달러가 늘어났으며, 그 다음은 약 1천3백억 달러 늘어난 중국입니다. 이 두 나라의 증가된 외환보유고를 합하면 3천3백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를 대부분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형태로 미국에 다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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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정적자 4천7백억 달러의 60%에 달하는 외화를 미국 국채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장기자금을 공급해 미국의 경기를 지원하면서 동아시아 전체의 경기를 지탱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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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돕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미국과 대서양을 사이에 둔 국가들과는 원만하지 않습니다. 미국·일본·동아시아의 경제를 합치면 세계 경제 활동의 50%가 넘습니다. 이 지역의 경기가 좋아지면 세계 경제의 절반이 좋은 셈입니다. 이는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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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을 위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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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한국은 정말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힘든 시련기도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성과입니다. 그 와중에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가 뛰어난 경제분석과 경제제언을 함으로써 한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 데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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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대립은 결코 감정론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책적인 대립이 돼야만 합니다. 정책적인 대립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며, 정치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정치가와 유권자들은 모두 감정적인 대립을 버리고 정책 논쟁을 펼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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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인플레이션을 전제로 한 경영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샐러리맨에서 올라온 인물들이기 때문에 선배 경영자들의 방법이 비록 잘못된 것이었다 해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닛산의 카를로스 곤은 그러한 선배가 없었기 때문에 개혁이 가능했습니다. 한국도 과거의 관행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합니다.”